시늉이란 흉내이고 진실을 어설프게 포장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데는 꼭 지켜야 할 법도가 있다. 저마다 가진 능력과 기능을 다 함으로서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도리를 다 한 사람의 것을 적당히 흉내 내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해 있다.
아침에 일터로 차를 몰고 나간다. 차선을 지키고 신호등을 철저하게 잘 지키므로서 방어 운전을 하는 셈이다. 빨간 불이 들어와 정지선에 섰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없다고 그냥 지나가는 것은 법을 지키는 척 시늉을 내는 게 아닌가? 운전자의 눈이 한꺼번에 사방을 볼 수는 없다. 횡단보도가 파란불 일 때는 사람이 어디서 뛰쳐 나올지 모른다. 사고를 저지르고 난 뒤 후회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의 행동이다. 30초 늦게 갔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황색 선을 달릴 때 맞은편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 한 바퀴도 운전할 수가 없다. 하지만 맞은편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오지 않는다는 법도가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운전하지 않는가? 교통사고를 내지 않는 것은 귀중한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며 자기도 사는 길이다.
큰 병원에는 중환자들이 많이 온다. 잠깐 진료하고 돌아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입원을 하게 된다. 멀리서 온 환자 가족이면 보호자도 같이 숙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병원은 식당까지 운영한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지만 환자의 영양섭취가 받처주어야 회복하는데 좋은 결과를 가져 오기 때문에 병원은 영양사와 조리사를 의무적으로 고용해서 운영하고 있다. 식단도 환자가 일일 섭취해야 할 칼로리를 채우고 빠른 시간에 쾌유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같이 한다. 그런데 규모가 작은 병원에서도 입원 환자들에게 큰 병원에서 하는 것처럼 식단도 만들어 운영하지만 함량 미달로 부실하기가 마련이다. 정상이 아니고 시늉만 하는데도 반찬 나쁘다고 치료받지 않고 나갈 수도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다. 함량미달로 운영하는 병원은 자기가 어리석은 사람인 줄 모르고 적당히 두루뭉술 시늉을 하는 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각 분야에서 남의 것 잘 된 것을 모방하고 시늉 내는 것이 너무 많아 개탄스러울 때가 많다. 정권이 바뀌고 새 주인이 들어오면 높은 자리 일꾼들이 바뀐다. 새 주인 입에 맞는 사람과 살림을 하기 위해서인데 일정한 직급에 한해서는 국회에서 청문회를 갖게 된다. 단골 메뉴로 나오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한 궤적을 반추하는 일이다. 적어도 그런 위치에 오르는 사람들은 석 박사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위장전입, 납세, 병역사항 등을 보지만 박사논문 표절의혹이 불거진다. 표절이란 남의 창작물을 자기 것인 양 무단으로 도용하는 것이다. 한자에서도 “剽”는 겁박할 표 “竊”은 좀도둑절자이다. 남의 논문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니 남의 논문을 훔치는 일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라 살림을 맡길 수 있을까?
나는 수필공부를 하는 사람이다. 선배 작가들의 책을 많이 읽는다. 읽다 보면 너무 멋있는 단어들에 매료 되여 외우고 적어 두었다가 적당히 인용하는 때가 많다. 지금도 시늉이란 주제로 글을 쓰면서도 인용한 단어들이 표절이 아닌가 싶다. 쉼 없이 우주 공간을 헤매는 글감들이 유혹의 마음으로 눈 에 서성이고 있다. 적당히 하나씩 골라 수필에 심는 시늉을 한 것 같아 잔잔한 파문처럼 내 마음을 어둡게 한다. 표절이든 시늉이든 잘 못된 관행은 없어져야 하고 새로운 지혜로 참신한 모델을 창조하여 발전해야 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