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꽃물 부드러운 곡선 그리며 오십천과 어우러져
분홍빛 고운 복사꽃이 만개하고 있다.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춘심이 활활 타오른다. 분홍은 어린 시절 동경의 빛(色)이다. 내 어린 시절에 콘크리트 같은 옷을 입은 아이들 속에서 한 둘 쯤은 분홍색 옷을 입고 다녔다. 분홍 옷 아이의 얼굴은 아지랑이처럼 흐릿하지만 고운 분홍의 기억만큼은 생생하다. 이때부터 마음속에는 분홍이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분홍빛 기억으로 인해 봄이면 마음속에 분홍빛 물결이 넘실댄다.
경북 청도와 더불어 복숭아의 최대 단지로 손꼽히는 경북 영덕은 복사꽃 세상이다. 오래된 나무일 수록 짙은 분홍 꽃을 피워낸다는 복사꽃나무는 순박하면서도 교태미가 묻은 꽃을 피운다.
영덕군 지품면 오천리 일대는 온통 복숭아밭이다. 복숭아 밭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오십천은 오십 개의 내가 모인다고 해서 ‘쉰내(오십 천)’라고도 부른다. 활짝 핀 복사꽃 터널이 있는 오십천변은 무릉도원이다. 양질의 모래흙 덕에 복숭아가 잘 자란다. 영덕의 젖줄 오십천에는 매년 8월 첫째 주말에 ‘오십천 은어 축제’라 열리기도 하지만, 오랜 가뭄으로 군데군데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안쓰럽다.
오십천변은 원래 논밭이었다고 한다. 1959년 태풍 사라가 휩쓸고 난 후 논밭이 온통 모래밭이 되었다. 세월이 흐른 후 배수가 잘되는 복숭아를 심었다. 지금처럼 대단지를 이루게 된 것을 두고 전화위복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햇볕이 잘 들어 과실수가 잘 되는 편인데, 단맛도 좋고 물도 많은데다 모양까지 좋아 호가를 누린다.
영덕과 청송을 잇는 34번 국도변을 따라 산비탈에서 오십천변까지 들어선 복숭아밭이 모두 115만 평쯤 된다. 매년 4월 중순이면 복사꽃이 장관을 이루고, 여름더위가 한창 시작되는 6월이면 토실토실한 복숭아가 주렁주렁 매달린다.
영덕은 대게로도 유명하다. 강구항의 비릿한 새벽과 푸르스름하게 먼동이 틀 무렵이면 앞바다에서 밤을 꼬박 지새운 작은 고깃배들은 숨차게 뱃고동을 울린다.
영덕 강구항과 축산항은 맛 좋은 대게로 유명하다. 다리마디의 생김새가 대나무와 흡사하다 해서 ‘대게’다. 지방이 적어 담백하고 독특한 향미를 맛볼 수 있는데, 영덕 앞바다에서 3~4월에 잡힌 것이 살이 차고 맛이 좋다.
강구면과 축산면의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해안도로변은 드라이버 코스로 일품이다. 이 코스의 백미 중 하나는 해맞이공원에 있다. 10ha면적에 조성한 해맞이 공원은 풍력발전소와도 연결돼 최고의 관광코스로 꼽힌다.
1997년 큰 화재로 인해 해안과 인근 산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죽음의 땅으로 변하자 사람들은 합심해 바닷가 절벽에 무인등대를 세우고 공원을 일궈냈다. 5년여 동안 흘린 땀방울로 드디어 2003년 ‘자연 그대로의 공원’을 조성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전망테크가 두 군데 설치돼 동해바다를 한눈에 바라보게 된다. 멋스러워진 창포말 조형등대 앞에서는 한낮인데도 장엄한 일출 광경이 그려진다.
‘바람의 언덕’.
2005년 3월 버려진 야산에 청정에너지를 생산하는 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해 가동에 들어갔다. 이색 지대인 풍력발전단지는 영화 속에서나 봤음직한 풍광이다. 거대한 바람개비 수십 대가 줄지어 돌아가고 있다.
영덕읍 창포리 산24번지에 그림처럼 우뚝 솟은 거대한 바람개비 24기는 동심원을 그리며 최면술을 건다. 뿜어대는 거친 숨소리에 귀가 열린다. 눈은 벌써 바람개비로 향해 있다. 야산을 수놓은 풍력발전기의 매력에 정신을 놓고 만다.
이 바람개비는 멀리서는 운치 있고 앙증맞게도 보이지만 80m의 높이에 직경 82m의 날개를 달고 회전하고 있다. 척박한 수백만평 광활한 지역에 조성된 풍력발전단지는 보물단지이다.
풍력발전기의 몸체는 강철이지만 날개는 복합탄소합금으로 만들었다. 날개에 탄성력이 있어 초속 3m이상이면 움직이기 시작해 초속 13m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돌고, 초속 20m가 넘으면 멎는다.
사계절 내내 바람이 많은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에서 거대한 바람개비와 함께 동그라미를 그리며 둥근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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