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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공동선>에 실렸던 글입니다.
내가 만났던 어느‘기아바이’
애초 내가 이 글을 쓰기로 작정했을 때는‘기아바이를 아시나요?’라는 제목을 떠올렸었다. 내 삶의 경험 안에서‘기아바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기에 용어조차 아는 이가 매우 드물 거라고 생각되어서였다. 그러나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용어정리를 비롯하여 이미 여러 글이 올라와있었다. 아직 낯선 분들을 위해 검색을 토대로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1. 기아바이의 유래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굶주림이라는 뜻의 ‘기아(飢餓)’와 판매상 ‘바이(Buy)’의 합성어라는 것과, 전동차 주요 부품인 ‘기아(Gear)’와 ‘바이(Buy)’가 섞였다는 견해가 그것이다.
2. 지하철 행상을 일컫는 은어, 기아(Gear)는 바퀴달린 버스나 전철을 상징하고, 바이는 배(輩)에서 온 말인데 폭력배, 모리배처럼 낮은 사람을 상징한다. (터 잡고 앉은 장사꾼은 ‘노바이’라고 한다)
용어정리에 이어 그들의 삶에 관한 글들의 제목을 옮겨보면 이렇다.
「불황 탈출구‘기아바이’… 마진 높지만 초보자는 허탕 치기 일쑤」「지하철 판매상‘기아바이’의 숨겨진 세계」「배고픈 지하철 안의 상인, ‘기아바이’」「어느 기아바이 이야기」「기아바이 세계 동행취재」
검색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얼마든지 알 수 있겠지만, 조금 친절을 베풀어 내용요약을 해 본다.
우리는 흔히 지하철을 교통수단으로 이용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이들은 그곳이 삶의 터전이었다. ‘기아바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이름은 ‘배고픈 상인’이라는 뜻이다. 예전 칙칙폭폭 대던 기차에서부터 시작된 이들의 삶은 이제는 현대인의 필수 교통수단인 지하철 속에 자리를 잡았다.
기아바이들이 파는 상품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종류에 따라 물건을 파는 그들의 모습, 그들의 멘트 또한 각각 이색적이다. 그러나 가방 하나 가득 담겨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잔뜩 남겨서 다시 다음 칸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재수 없는 날에는 불법단속에 걸려 쓴 소리도 듣고 하루 종일 벌었던 주머니까지 털리게 된다.
1, 4호선이 교차하는 금정 역. 이곳에는 많은 기아바이들이 몰려있다. 자칫 보면 무질서해 보이는 이들의 상행위에도 규칙이 있고 지켜야 할 법도가 있다. 이들은 전동차의 맨 끝 또는 맨 앞 일정한 장소에서 먼저 온 순서대로 줄을 서 있다가 전동차가 오면 기다린 순서대로 투입이 되는 것이다. 또한 한 전동차에는 2명 이상의 상인이 투입되지 않는다.
그들을 관리하는 유통회사에서 정해준 구역만큼 가면 열차에서 내려 다시 반대편 열차를 타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아침 10시쯤에 나와서 이렇게 몇 번을 왕복하면 하루해가 스멀스멀 기어들어가고 전동차는 사람들의 퇴근으로 꽉꽉 채워진다. 회사원들의 퇴근시간에 맞춰 기아바이도 함께 오늘 하루의 장사를 닫는다.
다음 전동차를 기다리는 잠깐 사이에 동료들과 인생사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은 돈벌이가 잘 안된다면서 몇 개 팔았는지, 어떤 물건이 잘 팔리는지 등의 정보 공유부터 집안일까지 담소를 나누면서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내가 만난 기아바이들은 대부분 그들의 삶에 만족하고,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자신의 힘으로 가정을 지키고 생계를 꾸려나간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출처] 뉴스미션 <공감2030> | 조지현 명예기자 | 2007.05.09 |「배고픈 지하철 안의 상인, ‘기아바이’」에서 부분발췌)
꽉 들어찬 지하철에서 ‘희망’찾는 사람들. 불황을 탈출하기 위해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있다. 지하철 판매상, 이른바 ‘기아바이’가 그들이다. 답답한 지하철에서 희망을 찾고 있는 기아바이 세계를 동행 취재했다.“경기가 어려운 이때 적은 돈으로 양질의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본 제품은….” 지하철 행상, 이른바 ‘기아바이’의 모습이다.
지하철 내 판매행위는 엄연한 불법행위다. 기아바이에게 해당되는 죄목은 ‘경범죄처벌법’, ‘철도법 위반’ 등 다양하다. 최근 과태료 대신 ‘질서요청서 작성’으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지만, 제대로 걸리면 그날 일당을 모두 날릴 위험이 크다. 예전엔 그나마 황금시간대라도 있었다. 단속이 뜸한 점심시간을 이용하면 많은 물건을 팔 수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사라진지 오래다. 단속요원들이 이 시간대를 간파해 불시에 단속하기 때문이다. 삶의 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기아바이들. 바로 이들이 사회안전망이 절실한 저소득층의 자화상은 아닐까?
([출처] http://light34.blog.me/150044537801 |유두진 자유기고가 |「지하철 판매상 ‘기아바이’의 숨겨진 세계」에서 부분 발췌)
단가는 낮아도 백화점 성능이고, 50%의 마진율을 자랑하며, 유령업체에서 인증 받은 최신 유행상품이어야 합니다. 바람잡이처럼 유창한 멘트보다는 동정심을 유발하는 어리버리 순진한 말투가 한 수 위랍니다. CCTV 증거물로 플랫폼에서 단속요원과 승강이를 벌일지라도 007 판매시대를 달리는 폭주족 같은 삶의 현장에서 장애를 마이크처럼 안고 구걸을 연설하는, 나는 선발된 명연기자.
([출처] 다음카페 기아바이천국 | 글쓴이:정원식 | 2010.02.01 |「‘기아바이--신문’」에서 부분발췌)
신문배달, 공장직공, 건축미장일, 식당주방일, 구두닦이, 목욕탕 때밀이, 과일행상 등등 지금까지 내가 거쳐 온 수 십 가지 직업 중에 가장 맘에 들고 제일 좋아. 내 직업이 좋은 이유 몇 가지만 대 볼까? 첫째. 일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다. 둘째. 출퇴근이 자유롭다. (오후7시에 나가서 30분만 일해도 되니까 일종의 프리랜서인 셈. ㅎㅎㅎㅎ)셋째. 노력한 만큼 소득이 된다. 넷째. 겨울에는 춥다고 히터 틀어주고, 여름에는 덥다고 에어컨 틀어주며, 비가와도 눈이 와도 걱정 없다. 다섯째. 우리 경쟁자들, 말하자면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 질까봐 공익요원을 투입해서 단속해준다. 그러니까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여섯째. 이 생활 오래 하다보면 나태해질까봐 정신교육 시켜준다.(한 번씩 즉결재판 받으러 가서 구류 살다 나오면 정신 번쩍 들지.)
([출처]다음카페 기아바이천국 | 글쓴이:검성 | 2008.02.24 |「어느 기아바이 이야기」에서 부분발췌)
처음 기아바이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삶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이를테면 시작부터 과정을 비롯하여 끝까지 불법인 이른바‘불법인생’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든지 이런‘불법인생’들이 우리 곁에서 엄연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꼭 상기시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동행취재’를 계획했고 별 어려움 없이 실행되었다. 그러나 검색해보니 이미 여러 사람이 나보다 먼저 이런 일을 했었고, 그래서 쓰인 글들이 그들의 삶을 충분히 대변해 줄 수 있다고 여겨졌기에 그만 두었다. 그러다가 SSM(기업형 수퍼마켓)을 통해 문어발식으로 골목상권을 잠식해가는 대기업의 작태를 보고서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
올봄의 어느 날, 강의 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내게 전화가 걸려왔다. 종교를 갖지 않은 평범한 지하철 상인이라고 소개한 그는 우연히 TV방송을 통해 듣게 된 내 노래 한 곡에 Feel이 꽂혔다고 한다.
호수가 산을 다 품을 수 있는 것은
깊어서가 아니라 맑아서이다.
우리가 주님을 안을 수 있는 것은
가슴이 넓어서가 아니라 영혼이 맑아서이다.
오! 주님. 내 영혼 맑게 하소서. (유경환 시 김정식 곡 「호수」의 가사 전문)
기독신자도 아닌 그가 가슴에 남아있는 여운과 함께 끝없이 귓가에 맴도는 노래를 찾기 위해 방송국에 전화를 했고, 안내에 따라 가톨릭서원에 갔지만 그 노래가 들어있는 음반은 아쉽게도 찾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꿩 대신 닭’의 심정으로 그 노래를 불렀다는 가수의 음반을 다 사서 매일 들었다. 들을수록 좋았기에 돈이 모이면 다시 가서 여러 개를 사다가 동료들에게 수없이 선물했다. 6장의 음반에 실린 노래들이 대부분 좋았지만 처음 들었던 그 노래를 지울 수는 없었기에 다시 수소문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연락처를 얻게 되었다.
평생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일을 해온 내게 이런 경험은 매우 흔한 것이다. 세상에는 유행되거나 히트된 노래가 아니라 자신의 가슴을 울리고 적셔줄 단 한 곡의 노래를 찾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그렇기에 한 차례도 스타덤에 올라본 일이 없고, 한 곡도 히트시킨 일이 없는(상업음악이 아닌 순수음악을 하는 내게는 애초부터 그럴 일이 없었겠지만) 나 같은 노래쟁이에게 팬클럽과 팬카페가 있어서 수백 명이 음악을 통해 교류하는 이변 같은 일이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찾아와서 자신이 좋아하는 단 한곡의 노래를 음반에 가득 담아 그 노래만 들을 수 있게 해달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하는데, 시간만 있다면 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부탁을 종종 들어주었다.
그러나 그날 찾아온 그는 달랐다. 처음부터 자신을 지하철 상인, ‘기아바이’라고 당당하게 밝혔고 자신의 일상을 가감 없이 말해주었다. 꽤 괜찮은 전문대 기계과를 나와 전망 있는 회사에 입사하였지만 얼마 안가서 스스로 그만 두고 말았다. 자신이 처리한 제품에서 자주 불량이 나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몇 번 회사를 옮겼지만 일처리 불량은 여전했고, 그것이 ‘손재주가 없어서’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따로 손재주가 필요치 않은‘기아바이’였는데,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면 혼자 사는 것은 어려움이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 직전까지 간적도 몇 차례 있었지만 웬일인지 성사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50대 중반의 독신남이 되고 말았지만 학창시절부터 좋아했던 독서와 음악 감상 덕분에 혼자 사는 삶이 그럭저럭 괜찮다고 했다.
그런 그가 선택한 삶이 동료‘기아바이’들을 더 나은 삶으로 초대하는 것이었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과 음악을 매개물로 생각했다. 가족들의 생계를 염려해야하는 동료들과는 달리 혼자 몸인 그는, 수익 중에서 월세와 얼마간의 생활비를 제하고 남은 돈을 책과 음반을 사는데 쓸 수 있었다. 그런 결과 노년이 가까워가는 나이에도 전 재산은 월세 보증금 오백만원 뿐이다. 그래도 자신의 선물이 누군가에게 희망과 위로를 준다고 생각하면 행복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지켜본 내 소견으로는‘선물중독’이라고 여겨졌다.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명료했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기아바이의 수입은 먹고 살만하지 않다. 딸린 가족이 있다면 대부분 생계에 위협을 느끼는 수준이다. 또한 그들 중 상당수가 전과자이거나 알콜중독 혹은 가정 파탄자여서 삶의 희망을 갖기 어렵고, 이 요인은 불성실한 삶으로 이어지기 쉽다. 언제라도 나가면 현금을 만질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그들을 불성실의 늪에 빠지게 하고, 일하는 대신 술과 도박을 즐기게 된다. 그런 그들이 삶의 희망을 갖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치유인데, 좋은 글과 음악이 치유를 돕는다고 생각하기에 능력이 닿는 대로 더 자주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방에는 치유와 위로를 주는 책과 음반이 여러 벌씩 잘 정리된 채 놓여있었다. 또한 그와 동행하면서 보니 선물은 책과 음악 뿐 만이 아니었다. 출근하면서 만나는 동료들에게‘행복한 하루가 되라’고 인사하며 껌을 한 통씩 건네었고, 한 코스 돌고 온 사람에게는‘수고했다’면서 자판기에서 시원한 음료를 뽑아 건네었다.
그의 사업(?)에 동참하는 의미로 내 음반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기로 했다.(그냥 주는 것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 음반이 아니더라도 그가 자주 선물하는 음반은 구매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음반복사기로 복사해주기도 했다. 불법인생이라지만 이런 일까지 불법을 행하고 싶지 않고,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그가 적극 만류했지만,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선물이기에 양심으로 접근한다면 합법적일 수 있다고 꼬드겨서 억지춘향 격으로 받아들였다. ‘실패하고 망가진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음악’으로 내 노래를 선정해준 안목(?)을 높이 평가했기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나 역시 한 언론매체의 편집위원으로써 취재욕심이 있었기에 그의 허락을 얻어 동행을 했다. 기아바이의 하루를 체험하고 싶었고, 한 코스를 함께 돌아보았다. 이미 알려진 것들은 생략하고, 내가 새롭게 겪은 것만을 정리해 본다.
우선 검색에서 얻은 자료와는 달리 기아바이의 코스는 마지막 칸에서 시작하여 첫 번째 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직접 함께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귀한 정보이다. 통상 지하철이 열 칸이라면 9호 칸에서 시작하여 2호 칸에서 끝난다. 왜냐하면 1호 칸이나 10호 칸에는 승무원이 타고 있기에 그들 앞에서 버젓이 불법영업을 할 수는 없다. 한 칸을 비켜나 줌으로써 그들에게도 틈새를 주는 것이다.(무슨 틈새인지는 너무나 민감한 부분이어서 건드리지 않고 넘어가고 싶다. 기아바이도 승무원들도 단속반들도 모두 건드리지 않는 것이라면 필자도 굳이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도덕의 일부라고 여긴다.)
그렇게 9호 칸에서 시작하여 2호 칸까지 갔다가 다시 반대편으로 가서 같은 코스로 돌며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내가 동행했던 그의 구간은 구로에서 용산이다. 이 구역을 벗어나면 기아바이 세계에서는 위법이고, 서로간의 질서를 위해 상응하는 처벌도 있지만 굳이 밝힐 내용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므로 구로역과 용산역 등 출발역의 9호 칸 승차지점 근처에는 기아바이 수레들이 줄지어 서있다. 영업은 뒤쪽 칸에서 시작하여 앞쪽 칸에서 끝난다. 줄지어 서서 순서대로 다가오는 전철에 오르지만 이번 열차에 타고 싶지 않을 때는 뒷사람에게 한 순번을 양보한다. 그러나 거듭 양보해야 할 경우 서 있는 줄의 맨 뒤로 가야한다. 내 순번으로 다가온 열차에 탄 손님들의 성향이 준비한 물건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순번을 뒤로 늦추는 것이다. 구로-용산 구역을 예로 든다면, ‘천안행인지 동탄행인지, 급행인지 일반인지’에 따라 다르고, 출퇴근 시간대와 날씨, 정치, 사회 상황까지 꼼꼼히 잘 따져서 영업이 될 만한 열차를 선택하는 것이 노하우일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타는 출퇴근시간대에는 통행이 어려워 영업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잘 따졌는데도 실제 영업을 해보니 아니었다면 그 열차에서 내려 다음 열차를 탈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할 경우에는 반드시 이미 영업 중인 동료보다 뒤쪽 칸으로 가야한다. 이것을‘뒷방 탄다’라고 한다. ‘앞방타기’는 절대 엄금이다. 이미 선탑하여 영업 중인 동료의 상권을 보호해 주어야하기에 이것은 철칙이다.
순번을 바꾸거나 미루는 경우가 또 있다. 동료와 정담을 나누거나 음료(경우에 따라 술)를 나누다 보면 돈을 버는 것보다 친교가 더 좋은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어떤 때는 과감하게 영업을 포기하기도 한다. 돈보다 더 귀한 인정이 아직까지 그곳에는 남아 있었다. 서로가 실패했거나 낙오된 인생들이기에 흉허물 없이 기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형님 아우님이 생겨나고, 오빠 누나가 생겨나며, 심지어 아저씨도 계셨다. 그 구간에서 가장 연장자이신 분은 팔순을 바라보지만, 구역 내 누구보다도 체력 좋으시고 성실하시며 무엇보다 따뜻하셔서 모두에게 존경받는 큰 형님이고 아저씨이시다. 다른 구역 기아바이들과도 대부분 친분을 나누지만 같은 구역 식구들과의 친분은 우리 사회 그 어느 공동체와 견주어도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물론 사람이 모인 곳이니 가끔씩 원칙을 어기거나 술 한 잔 한 김에 결례를 하여 물의를 일으키는 동료도 있었고, 그러다 다툼이나 손찌검이 오가는 일도 없지 않지만,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특수 상황을 빼고 나면 전체적으로 그들은 매우 따뜻한 공동체라고 여겨졌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편을 짓밟거나 해를 끼치지 않았으며, 공존을 위해 기본적인 상도덕은 물론 그들만의 원칙까지 어기지 않고 잘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 원칙이라는 것이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불문율인데도 그렇다는 것이다. 대부분 많이 배우지 않았음직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 안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공생의 규칙은 세상의 어떤 법칙보다 합리적이었다.
이제 SSM을 통해 문어발식으로 기존 상권을 잠식해 가는 대기업들을 향하여 묻고 싶다. 당신네 기업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많이 배웠고 많이 가졌기에 사회적으로 기득권자들이라고 부른다. 그런 당신들의 이윤추구방식은 왜 그토록 천박하고 비합리적인가? 어찌하여 이익만 생긴다면 온갖 불법을 자행하고, 정치권과 야합하여 영세 상인들과 골목 상권을 무자비하게 짓밟는가? 왜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을 동료로 여기지 못하고 기회만 있으면 무시하거나 목을 조르려 드는가? 내 기업만 잘된다면 누가 어디서 어떻게 죽든 아무 책임이 없다는 말인가? 공생을 위해서 당신들이 한 일이 무엇인가? 불법인생에 삶을 기댈 수밖에 없는 기아바이들도 지키고 존중하는 상도덕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과 차원이 다를 만큼 지체가 높으신, ‘용가리 통뼈 인생들’인 당신들에게 묻는다. 제발 대답해 다오!
당신들에게 노래 한곡을 선물하고자 한다. 내가 만났던 기아바이 박 씨의 삶이 그대로 담겨있어 그가 몹시 좋아하는 노래이다.
내가 한 마음의 상처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내가 한 생명의 고통을 덜게 할 수 있다면
내가 숨져가는 흰 물새를 다시 노래하게 할 수 있다면
나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에밀리 디킨슨의 시 김정식 번안 / 김정식 곡 「내가 할 수 있다면」의 가사전문)
필자를 만난 후 가까운 성당에 입교신청을 했다는 박 씨에게 그동안 미루어왔었다는 이유를 물었다.
"'기아바이'라는 불법영업을 하다가 교우를 만나게 된다면, 신자로써 품위손상도 되겠지만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게 되지 않을까 염려 되었거든요."
저 가난한 과부가 넣은 렙톤 두 닢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은 것입니다. 모두들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입니다. (마르꼬12장4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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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에게도 선물을 많이 주셔서 지금도 갖고 온 꽃이 성모상앞에 있습니다
늘 기도하고 있고 앞으로도 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한번 뵈면 더욱 기쁘겠습니다
지하철이나 고속버스에서 장사하는 분들이 '기아바이'로 불린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 분들의 삶이 녹록치 않겠다 생각하며 그분들을 만나면 외면하기 보다 수고한다는 따뜻한 인사를 건네야 겠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로제님의 노래가 왜 좋은지 ... 더 잘 알게 되었네요
노래의 가사대로 삶에서 살아내기때문에 더 빛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