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이국의 아침 도 그리 낮설지는 않았다
일행이 오늘 하루 관광 하게 될 하롱베이 가 눈앞 풍경에 들어온다
비는 오지 말아야 할텐데..............
간밤의 뒤척임이 걱정 이였나보다...
여행을 밥먹듯이 하는 나와 달리 일행중 몇명은 외국여행이 처음이다
그들에게 최상의 켠디션과 기후와 느낌이 주어지기를 여행내내 우려했다..
열심히 살아온 그들에게 생애 최고의 행복이 느껴지기를..
우리를 태워 가기위해 준비하고 있는 유람선들..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사유재산,,
그들은 그 배위에서 기거하며 돈을 모은다
오늘,,그들의 일당을 채워줄 우리를 기다리느라 긴..목을 하고 대기중이다..
유람선이 시동을 걸자 순식간에 따랄 붙는 작은 배들..
그들의 상품과 일불 을 교환하기를 외쳐된다..
1불~~ 1불~~
천원에 목이 쉰다...
부지런한 새가 모이를 많이 줍는다는 생각에 새벽부터 기다렸을 그들에게
몇불어치의 물품을 구입하고 싶었지만 일행 중에 특별나 보일까봐 꾸욱 참았다
여전히..남의 눈이 무서워 내생각이 숨겨진다..
호텔을 뒤로 하고 떠나가는배...
다시 돌아올 길이 점점 멀어진다...
유람선을 따라 다니며 지친사람들..
가족이 함께 기거하며 사는 듯했다
섬으로 둘러싸여 파도가 없는 탓에 작은배에 이층을 올렸다
이불을 깔고 누웠다 일어난다
지쳐보인다...............
거부 못할 환경이면 즐기면서 살아라...
임시 선착장..
지루한 항해 중의 오아시스..
단순 풍경이 1시간이상 지속되자 몸이 지뿌둥 했었는데 잠시 쉬어가잔다
자연수족관도 있어 먹거리 볼거리가 되는 곳,,,
경제 원칙은 시간과 환경을 불사한다
선착장 주위로 빽빽이 들어선 상인들...
가장 적극적인 미모의 아가씨
16세의 그녀는 호수처럼 맑은 눈의 소유자 였다
적극적인 삶이 좋다
어짜피 그리 살아야 한다면.............
그런사람이 더 많이 얻고 혜택을 누려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녀에게서 2불의 바나나를 구입하자 입가에서 미소를 감추지 않는다
1불의 바나나를 더 구입했다
결국 그녀를 안고 말았다..
그녀는 청년이 되어서도 아직도 용돈을 부쳐달라는 내 아들 보다 8살이나 작은 나이였다
잠시 하나님 에게 부탁하나 드렸다
이 아이의 미래에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충만하게 내려주시기를...........
사랑바위..
어느곳을 가나 사랑 이 없는 곳은 없다
둘로 보였다가 하나로 보이기도 하는 바위..
칠세를 훌쩍 넘겼나보다..
남녀 칠세 부동석 ..................................인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욕심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부처도,..소망도,,행복,불행 사랑도 모두가 내마음속에 있는 것을..
신과,,좀더 조용히 면담하고 싶었을 까?...............
바다 에 위치한 동굴의 땅이 말라 죽어간다
세상의 것이 아무리 풍요로워도 아무소용이 없다고 느껴질때..
암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돌고 시간은 째깍거리며 흘러간다
호주 여행 중에 바닷가에 위치한 한 사막에서 모래 스케이트를 탄 기억이 뜨오른다
바다와 사막..
그 사막은 마를대로 말라서 먼지같은 모래들로 이루어져있었다
그때 나의 상식의 한계를 깨달았다..
내가 아는 상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 하다는 것을...
죽어 있는동굴,,
삼척의 환선굴과 비슷한 형태였지만 삭막했다
종요석들은 죽어서 모두 떨어지고 그 흔적만이 암담하게 자국으로 남아 있었다
가끔씩 땅과 연결이 되어 제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종요석 들은
화려한 조명 으로 잘 대우 받고 있었다
살아 남은 것의 영광?
환선굴 속에 흐르던 물소리가 귀에 그립다
아름다운 강산,,대한민국...
그 소중함이 이국의 땅에서 더 강하게 감성을 자극한다
아........
아름다운강산...대한민국.............
애국자가 되어가고 있는 나.........
죽어 가는 동굴속에도 버티며 꿈틀거리는 삶이 있다
지천에 널린 이름없는 풀한포기가 이곳에서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알리고자 하는 사람의 방법이 그 생명 을 위협하고있다
식믈도 낮과밤이 있어야 하거늘..
사람의 욕심이 과하다....
이름을 남기고 싶은 사람들..
역사 책에도 글속에서도 결코 남겨지지 않을 오류를 남기는 사람들..
칠판에 명단 적어야겠다..
오늘 낙서한 사람 명단..................
아름다움이 생각을 가져간다
환호가 가슴으로 쌓인다
TI TOP 섬..
하롱베이 3600 여개의 섬중에서
사람이 걸을 수있는 10 여개의 섬중 에서의 하나
이곳 백사장의 모래는 모두 퍼온것이라 한다
그리고 유일하게 간판이 있는섬..
티똡 이라는 러시아 항공사가 호치민에게 기부하기를 원했으나
섬은 주지를 않고 그의 이름 만 부쳐주었다 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하롱베이 작은 섬들..
고즈넉한 분위기에 작은 움직임이 있다
세상을 향해 계란을 던지던 젊은 날의 용트림을 닮아 쓴웃음이 지나간다
아무리 소리쳐도 끄뜩도 하지 않던 바위들...
벌써,,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러갔다
바다는 시간도 ,사람도,,역사 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그저 침묵할 따름이다..
끝없는 바다와 연속적인 작은 섬들 사이를 항해 하던 무료함이
초록의 싱그러움에 잠시 휴식 을 시도한다
사람의 움직임이 있는곳,,
사람들이 다루는 기계가 움직 이는 소리..
능동적인 환경이 나는 좋다..
정적인 환경은 언제나 나의 생각을 끝없는 미로속으로 헤메이게 한다
쉽게 死 의 예찬론자가 되게 만든다...
주 교통수단인 오토바이..
붉은 시호등앞에서 서 있다가 초록등이 켜지면서 운전을 시도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펄벅의 대지속에 달려드는 메뚜기 때를 연상 시키는듯했다
출근시간이여서 그런지.그 숫자는 참으로 어마어마 했다..
잠깐사이에 다시 모여들고 또다시 달아 나곤 하는 그들을 보며
우리의 행보도 잠시도 늦추어서는 안된다는 야릇한 생각에 잠시 잠겨본다
연평균 성장률이 10% 를 넘는다고하니...
운좋게 구경하게된 베트남 장례식 모습..
마지막길을 배웅 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 시신의 모습에서 무엇을 보고싶었을 까?
공수레공수거?
권력도 물질도 가지지도 풍족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겐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는 타인의 죽음이
어쩌면 작은 위로가 되어주는 순간 인지도 모른다
망자 가 자신이 지닌 세상의 것을 모두가지고 가서 다른세상에서 그것을 누릴수있다면
산자의 삶이 더 부지런해 졌을 까?
아귀다툼이 더 심각해져서 지구가 멸망의 위기를 맞게될까?
호치민 광장
호치민 그는 누구인가?
그의 시신 을 모시고 있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되고있는 그는누구인가?
중부 베트남 의 게친주(州)에서 농민출신 문인학자(文人學者)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서자 출신으로
훈장댁 머슴을 살다가 그의 성실함을 인정한 훈장 의 딸과 결혼..
과거급제를 하고 중앙관료로 살다가 왕도정치를 꿈꾸었지만
프랑스 식민지로 그꿈을 이루지 못해 자기감에 빠져 지방관리로 살다가
호치민엄마(호치민 10살때 사망)의 사망에도 나타나지 않고 안빈낙도에 빠진
아버지로 인해 고아 아닌 고아로 살게된 호치민..
배트남 사회를 비판하며 배움에 집중,,
1911년(26세) 프랑스선(船)의 견습 요리사로 프랑스에 건너가
구엔아이 퀙[阮愛國]이란 이름으로 식민지해방운동을 시작,
제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회의에 베트남대표로 출석하여
'베트남 인민의 8항목의 요구'를 제출하여 일약 유명해졌다. 1
920년 프랑스사회당 투르대회에서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 지지파에 가담하고,
프랑스공산당 창립과 함께 그 당원이 되었다.
이듬해 공산당의 지원으로 프랑스식민지인민연맹을 결성하고,
기관지 《르 파리아》를 편집·발행하였다.
1924년 모스크바의 코민테른 제5차 대회에 출석, 동방부(東方部) 상임위원이 되었고,
1930년 코민테른에 의하여 권한을 부여받고 인도차이나공산당을 창립하였다.
이듬해 홍콩의 영국 관헌에게 체포되었으나,
석방 후 일단 모스크바로 돌아갔다가, 1941년 베트남에 잠입,
인도차이나공산당을 중심으로 베트민(베트남독립동맹회)을 결성,
독립 총봉기(總蜂起)를 목표로 세력을 키웠다.
1942∼1943년 중국국민당에 체포·투옥당한 무렵부터 호찌민이라는 이름을 사용,
1945년 8월 태평양전쟁의 종전과 동시에 총봉기를 지도하여(,제네바 행정에 의해 17 도로 분단 )
구엔[阮]왕조로부터 정권을 탈취(8월혁명),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정부 주석으로 취임하였다.
1946년 퐁텐블로회의가 결렬되자 프랑스에 대한 항전(抗戰)을 직접 지휘,
1954년 디엔비엔푸의 승리로써 독립을 지켰다.
권력세습이나 가족들로 인한 탐욕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함이였는지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주석(대통령) 재임 중 심장병으로 급사하였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이야기 했다 한다
장례를 화려하게 치르지도 말고..조용히.그리고 무덤조차 만들지 말라고..
그러나
그의 시신은 오랜세월동안 미이라로 보관되어 지금도 배트남 국민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있다
두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누워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밀납인형 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엄숙함은 자연이 묵례를 갗추고 말게 만들었다
살아서도 영웅 죽어서도 신화적인 존재 호치민..
그가 접한 사회주의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닌.
평등관계(무상계급) 의 사회였다
지금도 그의 시신은 매년 10월에 러시아로 건너가서 방부제 처리를 다시하고 돌아온다
그곳을 뒤로 하고 나오는 길은
웬지 모를 엄숙함에 잠시 생각이 깊어지는 듯했다..
하노이 호치민 유적지
주석궁
베트남 바딘광장 옆에 있는 노란색 바탕의 주석궁은 호화스럽게 보이는 프랑스풍의 건축양식이다.
1946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대통령으로 취임해 3개월을 기거하기도 했던 곳이다.
현재 주석궁은 국빈 영접이나 중요한 손님이 왔을 때 회담 장소로만 사용하고 있다.
1954년부터 1958년까지 호치민이 기거 했던 자택
그의 검소함이 곳곳에 묻어 있어
너무많아서 버릴것도 많은 나의 생활이 참으로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였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외국의 운수들로 부터 선물받은 다기셋트..
호치민은 차를 즐겨 마셨다 한다..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 내어야 했던 그상황속에서 의 여유로움..
차를 마시며 그는 무슨생각을 하였을 까?
나는 늘..
그런 생각들이 궁금한 사람이다...
박물관을 나서면서
그곳의 사람들과 온기를 나누고 싶어서
두아이 와 어깨 동무를 하고 카메라 앞에 서니
순식간에 모여들어 한 통속이 되어준 아이들...
아이들의 표정에서 행복이 묻어 나온다
녀석들은 출세했다..
벌써부터 외국 메스컴을 탔으니...
식당가 앞에 자리한 꽃집..
남자 플로리스트...
사회주의 국가로,,이제 막 개발도상국의 국가로 발돋음 하는 나라의 꽃문화가
상상을 초월하는 만큼 발전되어있었다
프랑스 식민지 였던 영향때문인지 그들은 벌써부터 유럽피안을 익히고 상품화하고 있었다
꽃다발 하나 하나의 작품성이
테크닉이 부족한 우리나라 여느 꽃집 보다 월등이 나은수준이였다
사랑의 표현이야 말로 지구 어느곳도 소외당하지 않는 공통 언어였다
소원 처럼 저런 꽃다발이 한번 받아 보고싶어졌다,,문득............
또하나의 세계공통점..
아니,,인류의 공통 역사..
아름답게 가꾸고자하는 여성의 심리...
사람의 머리속에는 이미지로 박혀있는 관념들이 있다
베트남을 뜨올리며 가장 잘어울리는 이미지..
그 여인과 의 만남은 베트남에서의 여행이 끝나가는 일몰 직전의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