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동 저수지’
지도에는 ‘통동 저수지’로 나오고 그 앞 팻말은 맹동 저수지 또는 ‘맹동 낚시터’이다. 주민들한테는 맹동 저수지라고 해야 더 잘 안다. 하여간 네 단어를 다 조립해서 외워야 한다.
거기다 이름도 희한해서 외우기가 만만치가 않다. 맹물 저수지나 똥통 저수지로 잘 못 외울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라도 외우면 근접하게 외우는 것이니 아주 잊어 먹는 것보다는 낫다.
이름도 그렇지만 거기는 찾기도 어렵다.
애매모호한 곳에 박혀 있어서 지도를 보고 가다가도 나처럼 그냥 지나쳐서 ‘원남 저수지’ 근처까지 고개 넘어 가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덕분에 두 개를 볼 수 있는 행운도 있다.
거기 가는 쉬운 방법으로는 충북 음성에서 21번 국도를 타고 가다 오른 쪽의 조그만 간판을 잘 보고 우회전하면 바로 거기가 저수지 후문 입구로 가는 으슥한 길의 시작이다.
아니면 21번을 타고 맹동 전에 515번 도로를 타고 ‘통동리’를 지나면 바로 왼 쪽에 낚시터 간판이 있고 거기서 좌회전을 하면 바로 댐이 나온다.
맹동 저수지는 아주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다.
하긴 저수지가 뭐 다 시끌시끌한 곳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다른 곳하고 비슷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맹동이 여러 면에서 최고다.
낚시 자체는 내가 꾼이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아무튼 경치로나 드라이브나 트레킹이나 산의 느낌이나 모든 면에 있어서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후문이나 정문이나 입구에 초소 같은 것이 있어서 입장료를 만원씩 받지만 낚시꾼이 아니면 공짜로 진입이 가능하다. 앞문에는 여자가 표를 팔고 뒷문에서는 남자가 표를 판다.
그 둘은 성별만 빼고는 비슷하다. 느낌이나 말투나 모습이나 모든 것이 오누이나 쌍둥이는 절대 아니겠지만 너무 흡사하다.
뭐가 비슷하냐고 한다면 말로 표현하기가 딱히 어렵지만 아무튼 비슷하다.
느낌으로 사람을 보는 내 눈에는 너무 비슷해서 같은 사람이 변신해서 앞 뒤 문에 서있는 것 같을 정도다.
어눌하고 지나가는 투의 말투나 몸짓, 낚시꾼이 아닌 사람을 시큰둥하게 바라보는 모습이나 질문에 답하거나 소개하는 말투나 내용 등이 너무 비슷하다.
하긴 거기는 모든 자연이 다 조용하고 잔잔하고 변함이 없고 뜬금없이 갑자기 거기 있고 물은 잔잔하고 움직임도 적고 길은 거짓말처럼 천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어 여러 가지가 거기서 일하는 사람을 특징 없게 만들 법하고 특별한 감정표현을 할 짬이나 필요가 없는 그런 곳이라서 더욱 그런 지도 모르겠다.
사람도 오래 그 저수지 변에 있으면 그냥 같이 저수지가 되어 버리는 그런 곳이다.
하지만 쓰레기 치우는 중년의 두 남녀는 전혀 딴 판이다.
문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마땅히 제 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 같은데 트럭타고 다니며 쓰레기 수거하는 두 남녀는 전혀 아니다. 시골 며느리 집에 놀러 온 사람 같기도 하고 증권가 주변에서 돌다 깡통 찬 사람들 같기도 하고 선생님이 자원봉사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전혀 그 저수지와는 하나가 될 수 없는 그림이지만 하나로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인 그런 사람 두 분이 쓰레기를 수거한다.
차로 한 시간 거리인 저수지 순환 길은 일방통행이고 두 차가 비키려면 한 참을 뒤로 가서 비킬만한 공간을 찾아야 하는 곳이고 한번 들어온 길은 다시 돌아 나오려면 적당한 공간을 한참 찾아 차를 돌려야 한다.
그곳은 전체의 길을 한 바퀴 돌게 되어 있는 구조지만 정문에서 후문으로 또는 후문에서 정문으로 어느 방향이 되었든 꼭 우리네 인생처럼 꼬불꼬불한 길을 그냥 관통만 해야 하는 곳이다.
일단 온 길을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 상상하기가 힘들다.
반 토막 쯤 와서 돌아가려면 남은 길이 궁금해서 도저히 그렇게 안 되고 5분만 더 가면 그 길의 끝이라도 그 끝이 또한 궁금해서 못 가고 지나온 길이 길어서도 돌아갈 엄두가 안 생긴다.
후문은 문을 나서도 앞길이 궁금할 정도고 도대체 집으로 가는 길이 나올까 싶은 곳이다.
저수지는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문어 발 같은 곳이다 보니 그 전체는 헬리콥터를 타지 않는 한 알 수가 없는 곳이다.
그 문어발 하나하나를 길로 감싸서 빙 둘러친 참으로 절묘한 곳이다. 당연히 저수지이다 보니 길은 꼬불꼬불하긴 해도 해발은 비슷하다.
역시 최고의 매력은 저수지 그 자체보다 길이다.
길은 잔자갈을 부분적으로 깔기도 한 흙길로서 많은 경우 차바퀴자국에 의해 길 가운데 잡초가 털 난 것처럼 길쭉하게 선을 이루고 이어지는 그런 곳이다. 그 곳에 눈이 쌓인다면 그 자체가 예술이고도 남을 것이고 영화의 한 장면이고 그냥 시 자체일 수밖에 없다.
그 길 좌우로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길 위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는데 수종의 대부분은 허벅지만한 굵기의 잣나무다.
한 참을 이어지는 길을 감탄으로 굴러가다 차를 세우고 문어발의 끝쯤으로 여겨지는 좁은 물가로 내려가면 수초사이에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이 보인다. 노 젓는 배가 있다면 하루 종일을 떠 다녀도 실증이 안 날 그런 공간이다. 원시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하겠다. 어느 낚시꾼의 말로는 애들 크기의 물고기가 어슬렁거리는 것이 보일 때도 있는데 그런 것은 낚시에 걸려도 낚싯대가 부러져서 잡을 수가 없단다.
그곳은 연인이 같이 걷는 다면 헤어질 마음을 먹었다가도 다시 붙어 다릴 수밖에 없는 곳이고 죽을 마음을 가진 이도 그곳을 한 바퀴 돌면 마음을 돌릴 수밖에 없는 곳이다.
빚 받을 사람과 함께 돈다면 최소한 이자는 탕감해 줄 것이다.
문제가 있는 부부가 같이 돈다면 더 가까워지거나 아예 갈라서거나 할 것이다.
혼자 걷는다면 반드시 철학자가 될 것이다.
그곳은 그처럼 절묘한 위치에 절묘한 모습으로 천연덕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가을을 만끽하기에는 단풍나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물가로는 엄청나서 그런 잔잔한 감동을 좀 먹는 다는 점이다.
분명 세계 어디에 내 놔도 손색이 없는 자연유산임에 틀림이 없건만 우리들의 손에 의해 망쳐지고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슬프기까지 한 일이다.
이 가을이 가기 전 그 길을 호젓한 마음으로 걸을 수만 있다면 올 해의 마무리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