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를 위한 새로운 출발
채홍조
저는 지금 수원 살고 있지만
음성에 땅을 조금 사서
작년부터 주말 농사를 짓고 있답니다.
이제 이곳의 사업은 아들 내외에게 물려주고
자연에 묻혀서 노후를 보내려고
용기를 내어 아무 연고도 없는
그곳에 정착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참 좋을 것 같다고 하면서도
정작 여러 가지 여건이 발목을 잡기 때문에
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부터 큰 은행나무가 많은 곳이라
은행나무 골이라고 부르는
산봉우리가 뭉게구름처럼
유연한 곡선으로 이어지고
그 치맛자락에 우산처럼 지붕 받쳐 든
일곱 가구가 옹기종기
머리 맞대고 사는 아담한 동네
한 가구만 빼고는
다 우리 집 사철나무 울타리를 경계로
새소리 바람소리 닭 우는소리 개 짖는 소리
평화로운 동네 한가운데
저희 집터가 자리하고 있답니다.
내년 봄에는 그곳에다 작은 흙집을 짓고
대강 이사하여 수원을 왔다 갔다 하며
살다가 3~4년 후에는 아주 이주하려 하는데
계획대로 잘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집터(약 300평)에다
빙 둘러 사철나무 울타리 심고
과일나무도 몇 그루씩 사다 심었답니다.
마당가에 키 큰 은행나무가
늘 동구 밖을 지키고 있다가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겨 준답니다.
저는 그 은행나무를 참 좋아합니다.
작년에는 영양실조로 잎도 늦게 나고
은행도 열리지 않았지만
올해는 거름도 주고 돌보았더니
은행이 탱글탱글 노랗게 익었네요.
하우스는(50평정도) 작년 가을에 지었어요.
꽃이나 분재를 기르려고 준비하고 있답니다.
그 안에다 텐트 치고 주말에는
하루나 이틀씩 일하다 돌아옵니다.
요즘은 날씨가 썰렁하여
전기온돌 판넬 두 장 깔았더니 따뜻하고 좋아요
수세미가 텐트지붕을 다 덮고
다리통만 한 큰 수세미가 주렁주렁 열렸네요.
끼니때면 가지고 간 밑반찬에다
상추 뜯고 풋고추 따고 들깻잎 따서
버너에다 소꿉장난처럼 밥해 먹고,
이제 수돗물도 나오고 전기도 들어와
소풍가는 아이처럼 주말이 기다려진답니다.
거리가 멀다 보니(왕복 4시간)
기름 값도 만만치가 않군요.
손익을 따지자면 답이 안 나오는 일이지만
남편이나 제가 자연을 좋아하고
농약도 주지 않고 키워서 먹는다는 것과
농작물이 커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일하다 보니 한 해가 후딱 가버렸네요
올해는 이것저것 밭에다(한 700평) 여러 가지 농작물을
동네 사람들이 심는 것을 보고 따라 심었지요.
상주 이모님 댁에 가서
노란 콩 까만 콩 참깨 씨를 얻어다 심었는데
참깨농사는 아주 오붓하게 잘 지었다고
어른들이 칭찬을 했지요
그런데 콩이나 팥은 너무 가물고
일찍 심어서 신통치 않답니다.
땅콩은 너구리가 와서 거의 다 뒤져 먹고
고추는 약을 안쳐서
탄저병으로 못 먹게 되었고
호박고구마는 많이 죽어서
겨우 한 상자를 수확했답니다.
콩이 죽은 자리에 들깨 모종을 얻어다 심어
타작을 하니 두어 되 족히 되네요.
초보 농사꾼, 힘만 들고 고생만 하고
여름 땡볕에 비 오듯 땀 흘리며
잡초와 전쟁하며 일 한 대가는 신통치 않아
무언가 억울한 것 같기도 하지만
내년에는 올해의 경험을 거울삼아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먹을 만큼은 다 했답니다
추수하여 타작해보니
알곡들이 보석처럼 사랑스럽습니다.
제가 농사지은 수확물을 골고루 담아서
사돈댁, 서울 친정엄마, 부산 사는 동생에게
조금씩 보내주었답니다
뙤약볕에 일할 때는 너무 힘들어
아까워서 아무도 못줄 것 같더니
그래도 나누어주고 나니
마음이 뿌듯하고 흐뭇합니다.
2년 동안 매주 들락거리다 보니
동네 어르신들도 (한 가구만 빼고 일흔이 넘은)
농사에 모르는 일이 있으면
친절하게 일러주시고 하여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답니다.
우리가 수원 와서 있을 때도
동네 분들이 우리 하우스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연락해주셔서 늘 고마운 마음에
올가을 추수가 끝나면 날 받아서
동네 일곱 가구 열 몇 분의 어른들을
수원의 집으로 모시고 와
점심 한 끼 대접하고 수원성이나
한 바퀴 구경시켜드리고
다시 모셔다 드리려고 계획하고 있답니다.
집터에서 700m 떨어진 밭 옆에
아담한 호수가 하나 있어
남편은 새벽이나 저녁에
그곳에서 가끔 낚시질을 하여
은빛 반짝이는 손바닥만 한 붕어들을 잡아
마당가에 파놓은 연못에 갖다 넣어줍니다
연꽃, 물 배추 부레옥잠화가
사이좋게 그늘 만들어주어
붕어들은 흰 구름과 숨바꼭질하고
새파란 하늘이 내려와 은행나무랑 놀다 갑니다.
지금 호숫가에는
노란 감국이 흐드러지게 피어
향기가 온 천지에 진동하고
벌과 나비들이 잔치를 벌이네요.
좀 덜 핀 것 골라서 한 봉지 따왔답니다.
내년에는 시기를 잘 맞추어
감국을 많이 채취하여 차를 만들어
지인들과 나누어 먹으려 계획하고 있답니다.
잘 씻어 랜인지에 쪄서 말려
올겨울에는 향긋한 감국 차를
오래도록 마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랑 따끈한 감국 차 한 잔
우아하게 하시고 싶은 분은
언제든지 연락하시고 놀러 오세요.
2006.11.6
첫댓글 시인님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스스로 지어먹는다는게 정말 힘드신데 부지런하시어 많은수확을 거두었으니 마음이 든든하시지요 손수 농사지어서 먹을수 있는것도 큰 행복입니다
네 그렇네요 알곡들을 보니까 얼마나 사랑스러운지~~~한 움큼 쥐면 자르르 손가락사이로 빠지는 느낌~~~~~
땀 흘리시고 수고하신 댓가로 풍성한 수확을 거두셨네요.항상 건강하세요...
ㅎㅎㅎ별로 풍성은 아니고 그런대로 경험이겠지요 내년을 위해서~~~`
언제나 자연과 살아보나 답답한 마음 자유롭게 살아갈날을 기약하며 .......
감사합니다 나중에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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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런 것들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