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내성지 장마기간중이라고 하지만 생활에 불편을 줄만한 지루한 장마는 아직은 아니다. 2006년 상현자이에서 미리내 성지 순례를 갔었다. 장마기간 비가 억수 같이 쏟아져서 지하성당에서 십자가의 기도를 올리고 온바 있었다. 8일 일요일 흐리기는 하였으나 비는 오지 않는다. 다시 가족과 함께 미리내 성지를 찾았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구석 구석 샅샅이 살피고 돌아왔다. "님은 가시고" 님은 가시고 진리는 왔읍니다. 피로써 가꾼땅에 무궁화 피나이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향기 가득합니다. ( 돌에 새겨진 시 ) 미리내 성지의 ’미리내’는 은하수(銀河水)의 순수 우리말로서 시궁산(時宮山 515m, 神仙峰으로도 전해짐)과 쌍령산 중심부의 깊은 골에 자리하고 있다. 골짜기 따라 흐르는 실개천 주위에,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 점점이 흩어져 살던 천주 교우들의 집에서 흘러나온 호롱불빛과 밤하늘의 별빛이 맑은 시냇물과 어우러져 보석처럼 비추이고, 그것이 마치 밤하늘 별들이 성군(星群)을 이룬 은하수(우리말 ‘미리내’)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아름다운 우리의 옛 지명이다. 초대 주임 강도영 마르코 신부와 신자들에 의해 1906년에 건립된 <미리내 성 요셉 성당> 100년이 넘은 아주 오래된 성당이다. 103성인 기념 성당 성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어는 것은 성지 한 가운데 웅장하게 서있는 기념성당이다. 이 성당은 천주교 103위의 시성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고 1989년에 103위 성인 기념 대성전이 완성되었다. 성당 내부 일요일에는 11시. 오후 2시 미사 성모당 내부 중앙에 성모 마리아 좌측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우측엔 성 이윤일 요한 김대건 신부님등 네분의 성인이 모셔진 경당 "나의 마지막 시간이 다다랐으니 잘 들으시오. 내가 외국인과 연락한 것은 나의 종교를 위해서이고 나의 천주를 위해서입니다. 이제 내가 죽는 것은 그분을 위해서 입니다. 나를 위해 영원한 생명이 바야흐로 시작되려 합니다. 여러분도 사후에 행복하려면 천주를 믿으시오."(김대건 신부님의 순교 직전 최후 증언) 김대건 신부님. 페레올 조교님. 강도영 마르코 신부님. 최문식 베드로 신부님 네분 성인이 모셔저 있다. 경당내부 순교하신 김대건 신부님의 시신을 수습하신 이민식 빈체시오의 묘 성인묘역 바로 옆에 모셔저 있다. 26세의 나이에 처형당한 김대건 신부는 조정에서 장례마저 치루지 못하게 하여 처형당한 지 40일이 지난 다음에야 이민식 빈 체시오가 간신히 시신을 빼내어 남의 눈을 피하며 일주일을 등에 지고 이곳 미리내로 옮겨와 안장할 수 있었다. 김대건 신부님의 모친 고우슬라 의묘소 수지에서는 불과 40여km 한시간안에 갈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찾을수 있는 거리다. 지금 구부러젔던 진입도로 공사를 하고 있다. 이 도로가 완성이 되면 방문하기가 좀더 나아질것이다. 1972년 부터 본격적으로 미리내 성지 정화 작업이 시작되어 103위 성인 기념성당이 건립되고 지금도 성역화 작업은 게속되고 있다. <무명 순교자 비> 비문 오! 위대하신 주님의 용사들이여! 영원한 삶의 길인 진리를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전하시다가 당신들의 소중한 성명을 아낌없이 주님께 바치신 그 숭고한 정신을 저희들은 정성을 다하여 영원히 영원히 빛내리이다 수원교구 성직자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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