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사업의 각종 절차 중 법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조합들이 거쳐가는 단계가 있다. 바로 신탁등기가 그것이다. 신탁등기는 대체로 사업시행인가 후 관리처분인가를 거쳐 이주단계에서 실시된다. 이 때문에 대부분 조합은 이주기간과 거의 동일하게 신탁등기 기간을 정하기도 한다.
신탁등기는 말 그대로 조합원들의 재산을 조합에 신탁하는 행위를 말한다. 신탁법 제1조 제2항은 ‘신탁설정자(위탁자)와 신탁을 인수하는 자(수탁자)와 특별한 신임관계에 기하여 위탁자가 특정의 재산권을 수탁자에게 이전하거나 기타의 처분을 하고 수탁자로 하여금 일정한 자(수익자)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특정의 목적을 위하여 그 재산권을 관리·처분하게 하는 법률관계를 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재건축사업에서는 조합원이 자신이 소유한 주택 등에 대한 출자의무를 갖기 때문에 이를 통해 발생하는 어려움을 방지하기 위해 조합원 재산을 일체화해 관리처분을 하게 된다.
수탁자인 조합은 신탁재산을 관리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지만 재건축사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해야 한다. 신탁등기에 필요한 서류는 통상 등기부 등본과 인감 정도이다. 업무 대행은 일반적으로 법무사가 담당하게 되며 소요 경비는 사업장 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략 세대당 10만원∼15만원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거정비법은 신탁등기에 대해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표준정관도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다만 조합 재량에 의해 자율적으로 실시하도록 권장하고 있을 따름이다. 법 제정 과정에서 신탁등기 조항 삽입이 검토되기도 했지만 입법과정에서 삭제됐다.
신탁등기의 필요성
신탁등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일선 조합이나 관계 전문가 공히 긍정적인 견해를 밝힌다. 비록 법이 강제로 규정하고 있는 사항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효율적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관계 전문가나 일선 조합이 밝히는 효율적인 측면은 우선 조합원 관리가 용이하다는 점이다. 현재 주거정비법은 조합인가 후 조합원 양도양수 금지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몇 가지 예외 조항이 있고, 1회에 한해 이전이 허용되는 조합도 있어 신탁등기 후에 소유권 변동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조합에 알릴 의무가 있기 때문에 조합 집행부는 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조합이 채권을 확보할 수 있어 일반분양 등 소유권 확보가 필요할 때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일선 법무사들은 신탁등기를 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기부채납 등이 발생했을 때나 건물 철거·멸실시 조합원 전원 인감 필요, 조합원 지분 제3자 매각시 소유권 상실 및 회복 어려움, 일반분양 사실상 불가능, 사업주체가 조합원 전원이기 때문에 사실상 통제 불가능 등을 꼽는다. 결국 조합원의 재산권 보호나 관리 측면에서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상섭 법무사는 “주거정비법 전에는 법원 판례에 따라 의무적으로 신탁등기를 했다”며 “현재는 법에 이전고시 조항을 규정하고 있어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설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신탁등기를 하는 것이 여러모로 효율적”이라고 밝혔다.
또한 신탁등기에 소요되는 비용이 세대당 10만원∼15만원 선이라는 점도 굳이 신탁등기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이기 때문에 이를 아끼는 것보다 이를 통해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 이인호 변호사는 “법리적인 측면에서 신탁등기의 필요성 유무를 따지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조건으로 볼 때 이를 피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고 견해를 밝혔다.
표준정관에 의무규정 둘 필요 있나?
신탁등기의 강제 집행 여부가 논란이 된 것은 주거정비법이 시행되면서부터다. 재개발사업은 예전부터 신탁등기가 없다. 조합설립인가를 받으면 토지등소유자는 무조건 조합원 자격을 갖게 된다. 이는 예전 재개발법과 현 주거정비법이 동일하다. 따라서 재개발사업에서 미동의자의 소유부분은 조합에 수용되며 조합원은 분양과 청산 조합원으로 나뉘게 된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조합인가를 받는 순간 사업구역 내의 소유권은 조합이 갖게 되는 셈이다. 조합은 정해진 인·허가 절차를 거쳐 관리처분계획을 세우고 공사를 시작해 준공인가를 받은 후 이전고시를 하면 사업을 종료하게 된다. 따로 신탁등기가 필요 없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러나 재건축사업은 조합인가를 받더라도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은 토지등소유자는 조합원이 아니기 때문에 100% 소유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매도청구 및 명도소송을 통해야 한다. 주거정비법 이전에는 이 같은 절차와 더불어 신탁등기를 통해 소유권 확보 및 각종 권리관계를 조합이 일괄적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주거정비법이 제정된 후에는 재개발과 동일하게 이전고시 규정을 적용 받기 때문에 굳이 신탁등기를 통한 소유권 확보가 필요 없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신탁등기 여부에 대한 논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재개발과 같이 이전고시를 통해 소유권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굳이 신탁등기가 필요하지 않다는 견해가 제기된 것이다. 이전고시란 준공인가의 고시로 사업시행이 완료된 이후에 관리처분계획에서 정한 바에 따라 소유권을 귀속시키는 행정청의 처분을 말한다. 따라서 이전고시는 관리처분계획의 집행 행위로서 정비사업으로 조성된 대지 및 건축물 등의 소유권을 분양 받을 자에게 이전하는 행정처분이다. 즉, 재개발이든 재건축이든 조합이 정비사업을 시행하며 갖고 있던 소유권을 조합원 및 일반분양자에게 법적으로 이전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따라서 이전고시가 이루어지려면 먼저 조합이 100% 소유권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정비사업은 조합에게 일차적으로 토지 등의 소유권을 확보시킨 후 그 지상에 건축물을 건설하여 조합원 등에게 배분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 때 재개발의 토지수용이나 재건축의 매도청구 등은 조합이 토지소유권을 확보하기 위한 보충적 수단으로 활용된다. 따라서 이전고시 전에 반드시 정비사업에 반대하는 자들의 소유권도 확보돼야 한다. 재건축의 경우 매도청구를 통해 소유권 확보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지만,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소유권 확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하나의 논란은 이전고시로 인해 종전 소유자들의 소유권이 소멸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부분이다. 여기에 대한 해석은 반반이다. 법조문에는 이전고시에 의해 소유권이 이전된다는 표현만 있을 뿐, 종전 소유권이 소멸된다는 표현은 없기 때문에 소멸된다고 보기 힘들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그 자체로 소멸됐다고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에 대해 이정욱 법무사는 “양 견해가 모두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이전고시 전에 조합이 100% 소유권을 갖는 것”이라고 못박는다. 특히 일반분양이 있는 조합의 경우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반드시 일반분양을 할 경우 소유권을 확보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이전고시가 아니라도 소유권은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법무사는 “이전고시라는 제도 자체가 재개발에 있던 것을 재건축에 준용하다 보니 다소 억지스럽게 적용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논란의 소지는 다분하지만 100% 소유권 확보와 조합 업무의 편의성을 위해서라도 신탁등기는 필요하다”고 밝혔다.
어쨌든 주거정비법은 이전고시 조항을 삽입함으로 인해 재건축에서도 매도청구 등을 통해 조합이 100% 소유권을 확보한 후 사업이 추진된다고 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굳이 신탁등기가 없어도 사업은 추진될 수 있다고 보는 듯 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법리적으로 가능할지는 몰라도 실제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신탁등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조합에 유리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신탁등기, 과연 편리한가?
이와 관련해 현재 일반분양을 준비중인 수원 천천 주공 김춘수 조합장은 “재건축사업의 경우 신탁등기를 하는 것이 훨씬 이익인 것 같다”고 견해를 밝힌다. 불필요한 시간적 낭비를 줄일 수 있고, 소유권 이전 움직임도 손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김 조합장은 신탁등기를 하지 않을 경우 조합과 조합원 모두 불편 및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이란 입장을 밝힌다. 김 조합장은 “만약 신탁등기가 불필요하다고 행정당국이 판단한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며 “특히 대단지의 경우 신탁등기는 더욱 절실한 것 같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최근 표준정관 개정안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주거환경연합은 지난 5월 30일 개최된 표준정관 개정(안) 설명회에서 신탁등기 조항을 삽입한 안을 내놓기도 했다. 주거환경연합은 이를 설명하는 자료를 통해 신탁등기는 당초 법률로 정하려 했었지만 조합이 자율적으로 정할 사항으로 입법과정에서 삭제됐음을 밝히며 신탁법상 신탁으로 인해 조세를 절세할 수도 있고, 탈퇴·제명 조합원의 출자재산 청산이 용이하고 청산절차 지연으로 인한 사업지연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조합원과 출자재산의 일체적인 통제관리, 사전 권리침해 방지, 수탁자로서 배타적인 소유권 취득으로 미이주자의 명도청구권 및 강제집행권 직접 행사 등의 효과도 있음을 밝혔다. 따라서 주거환경연합 표준정관(안)은 규약에 신탁등기 근거규정을 두고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신탁등기를 할 수 있도록 정관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를 접한 건교부의 태도는 다소 미온적이다. 주거환경과 담당 사무관은 “신탁등기를 표준정관에 명문화하는 점에 대해 아직 검토 중”이라며 “사업추진이 수월하다는 편리함도 있지만 여러 가지 단점도 노출돼 있어 좀 더 다양한 의견수렴 과정이 필요한 단계”라고 밝혔다. 일선 조합에서 밝히고 있는 신탁등기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공감하지만 굳이 법이나 표준정관에 명시돼 있지 않더라도 조합이 자율적으로 행하고 있는 부분을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비용이나 신탁등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리발생 위험도 크기 때문에 과연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신탁등기 규정을 삽입할 필요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건교부가 이 부분을 좀 더 전향적으로 고려하려면 보다 다양한 고민과 검토가 필요한 단계이다.
신탁등기와 관련해 아직까지 논란은 종결되지 않고 있다. 주거정비법은 재건축사업에도 현금청산 제도를 만들어 놓고 있으며, 사업 시행자도 법인격이 부여된 조합이기 때문에 굳이 신탁등기 절차를 밟지 않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조합원의 권리 변동관계를 지속적으로 파악해야 할 조합 입장에서는 신탁등기를 통해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 재건축 사업장은 신탁등기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재개발 사업장은 여전히 신탁등기를 하지 않고 있다. 중요한 것은 조합이 사업을 추진하는데 어떤 것이 더 편리한가의 문제일 것이다. 보다 다양한 시각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규식 기자 2006-07-14 19:02: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