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시절 온 국민이 절망에 빠졌을 때 누군가 ‘금 모으기 운동’을 생각해냈다. 그런데 이 엉뚱한 생각 하나가 온 국민을
하나 되게 만들었고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적막강산 외에 아무것도 없던 전남 함평군은 ‘나비도시’라는 아이디어 하나로 매년
300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도시로 변했다. 팔리지 않는 정수기가 쌓여 갈 때 웅진은 ‘렌털 정수기’라는 컨셉트로 역전의 계기를
만들었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고 모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지만 차분히 생각하면 위기 극복의 실마리는 단 한
개의 멋진 상상력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상력 하나가 나라를 구하고, 도시를 구하고, 기업을 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 새로운 생각들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 몇 년 전 대구에 갔을 때였다. 세 명의 여성이 함께
운영하는 한 주점에 ‘3004’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대체 이 간판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골목을 지나치는 행인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세 명의 여주인? 삼천사? 세 천사? 하지만 힌트는 엉뚱한 데 있었다. 바로 그들의 고향, 물 맑고
인심 좋은 항구도시 ‘삼천포’다. 그들은 자신의 고향을 ‘3004’라는 말로 독창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수학(3004)+인문지리(삼천포)+영어(Four)라는 이질적인 지식들이 만나 재미있고 창조적인, 즉 크리에이티브한 생각이
만들어진 것이다.
요즘 인문학과 자연과학·사회과학의 지식은 물론이고, 문화와 예술까지 융합해 보려는
통섭(統攝·Consilienc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이런 상승효과 때문이다. 서로 다른 장르의 지식
융합, 즉 ‘지식의 크로스오버(Crossover)’가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왜 하필 회사 이름을 ‘애플(Apple)’이라 명명했을까? 인류 역사에는 유명한 사과들이
있다. 첫째는 아담과 이브의 사과, 바로 ‘호기심의 사과’다. 이 사과는 인간의 원죄를 상징하는 동시에 숙명적으로 인간이
호기심의 동물임을 상기시킨다. 둘째는 아이작 뉴턴의 ‘과학의 사과’다. 이 사과 덕분에 인류는 만유인력을 발견하게 되었고, 근대
과학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계기도 만들어졌다. 셋째는 폴 세잔의 ‘예술의 사과’다. 세잔은 물체의 형태에 머물지 않고 본질의
세계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모든 사물을 구(球)·원기둥·원뿔로 환원해 보았다. 그 결과 ‘추상표현주의’라는 새로운 예술의 세계를
여는 단초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결국 이 세 사과는 모두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사과’다.
잡스가
애플이라는 회사명을 생각한 이유는 자신들도 위의 사과들처럼 인류의 생활을 바꾸는 위대한 기업이 되고 싶다는 대담한 꿈을 담은 게
아닐까? 실제로 애플은 개인용 컴퓨터 애플Ⅱ(1977)를 시작으로 매킨토시(84), 아이맥(98), 아이팟(2001),
아이폰(2007)에 이르기까지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크리에이티브한 제품들을 탄생시켜 현재 ‘가장 창조적인 기업’으로 불린다.
새로운 생각을 탄생케 하는 또 한 가지의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겠다는, 어찌 보면 무모하지만
‘대담한 꿈’을 갖는 것이다.
이것은 이제 설 자리가 없어진 사양산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한물간 추억의 쇼로
여겨지던 서커스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며 블루 오션의 대명사가 된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가 바로
그렇다. 그들은 상상력만이 가장 중요한 재료라는 생각으로 장르의 벽을 허물어 버렸다. 서커스에 체조와 수영·연극·마임·음악·영상
등 다른 장르의 재료들을 융합하는 크로스오버를 통해 그들 스스로 새 장르를 창조해냈다.
또 그들은 늘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것과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것들을 꿈꾼다. 그들의 꿈은 감동과 놀라움의 판타지를 만들어 세상 사람들에게 파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꾸는 꿈은 늘 대담할 수밖에 없다. 태양의 서커스의 CEO인 기 랄리베르테는 이렇게 말한다. “꿈을 꾸지
않는다면 살아도 죽은 것과 같다. 위험을 무릅쓰고 매번 다른 시도와 결합하는 것이 우리의 성공 비결이라고 믿는다.”
지금 우리는 불황이라는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 불황이라는 단단한 자물쇠는 ‘지식의 크로스오버’와 ‘대담한 꿈’을 통해 크리에이티브한 생각을 찾아낼 때 비로소 열릴 수 있을 것이다.
강신장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첫댓글 참 고무적인 기사이네요. 나도 아이디어라면 남에 뒤지지 않는데, 새로운 삶의 계기를 마련해 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네요.
교사가 되는데 삼십년이 모자랐는데 교감이 되자 빡빡한 삼 주만에 앞으로 살아갈 모습이 거의 보인다. 남은 소중한 시간을 예정된 삶만으로 보낼 수는 없다. 요트가 생동감을 주었듯이 다시 무언가가 절실하다. ‘지식의 크로스오버’와 ‘대담한 꿈’ . 피가 돌고 눈이 빛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