崛起(굴기) {崛; 우뚝 솟을 굴, 起; 일어날 기} 崛起(굴기)는 ①(산이)쑥쑥 솟음 ②'기울어져 가는 집안에 훌륭한 사람이 남'의 비유.
중국이 2003년 말부터 채택한 외교노선.
'굴기' 앞에 '평화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사용하는 까닭에 '화평굴기(和平崛起)'라고도 한다. 1980년대 덩샤오핑[鄧小平]이 추진한 '도광양회(韜光養晦)', 1990년대 장쩌민[江澤民]이 추진한 대국외교에 이어 후진타오[胡錦濤]가 새롭게 추진하는 외교전략이다.
도광양회는 '칼집에 칼날의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굴기'는 '산이 우뚝 솟은 모양'을 가리키는 말로, 굴기외교는 2003년 10월 하이난섬[海南島]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서 정비젠[鄭必堅] 중앙당교 상무부장이 주창하였다. 이어 후진타오 주석이 2004년 1월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을 순방하면서 중국의 새로운 외교노선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
中 신해혁명 100주년…화만 내는 ‘굴기’
G2로 올라선 중국의 과제
중국이 마침내 일본을 제치고 주요 2개국(G2)으로 올라섰다. 지난 7월 말 기준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3조1970억 달러, 그 가운데 미국 국채 보유액은 1조1735억 달러였다. 중국이 사들인 미 국채는 7월까지 연속 4개월 증가했다. 중국 국무원은 최근 중국이 향후 5년 동안에도 경제성장률 8% 이상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청(淸)이 망하고 공화정이 들어선 지 100년. 역사의 물줄기는 바뀌고 있다. 유럽 열강에 대한 굴종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중국 근대사의 대전환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륙의 면모를 일신해놓은 중국 공산당도 바로 여기에서 태동했다.
중국은 이제 커진 경제력만큼이나 센 목소리를 낸다. 지난 100년 역사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이 아니라 외세에 대한 분노다. 그래서 굴기(崛起)하는 중국의 모습이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세계는 곤혹스러워한다.
미국이 위안화 환율이 저평가됐다고 하면 “무역전쟁으로 가 볼 테냐”고 밀어붙인다. 이 같은 장면은 크게 생소하지 않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거치면서 가시화된 ‘신애국주의’ 물결 속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중국 CCTV와 봉황위성TV에서 군사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쑹샤오쥔(宋曉軍)은 2009년 “금융위기가 몰고 올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전쟁”이라고 이미 예고했다. 대표적 논객들이 쓴 중국의 분노를 담은 책 ‘앵그리 차이나(中國不高興)’에서다.
지난달 궈칭제(國慶節) 직전 한 전략분석가가 “남중국해에서 전쟁을 통해 베트남과 필리핀을 단속해야 한다”는 글을 환구시보에 싣자 네티즌들의 지지가 쏟아졌던 것도 마찬가지다. 2008년 대만 대선 기간에도 그랬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대만이 독립을 선언한다면 전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차이나 스탠더드’를 말하고 ‘게임의 룰’을 바꾸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상당수 중국인들은 여전히 전제(專制)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2008년 작고한 유명 작가 보양(柏楊)은 이를 ‘장독문화’(중국인들이 장독 속에 너무 오래 담가져 판단과 시야가 흐려졌다는 것) 탓이라고 비판했다.
지금 중국을 괴롭히는 과제는 한둘이 아니다. 경제적 불공평으로 인한 사회불안은 심각하다. 나라는 부자지만 국민은 가난하고(國富民窮) 빈부격차 또한 엄청나다. 칭화대 사회학과 쑨리핑 교수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이로 인해 발생한 소요 사태는 10년 전보다 4배 이상 많은 18만건이나 됐다.
근본적으로는 ‘의식’이 문제다.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중국을 보면서 다른 나라들은 불안해한다.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는 지금 중국에서는 중화주의와 민족주의가 성행한다. 공공연히 전쟁을 말하는 그들을 보면서 다시 황화론(黃禍論)을 떠올린다. ‘중국의 부상은 세계에 이익이 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쑨원의 후손 쑨비다(쑨원의 증질손)는 최근 인민일보 인터뷰에서 “대만과 통일됐을 때 비로소 신해혁명의 성공을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언론인 저우후이라이(周慧來)는 중국은 이제 ‘신문화운동’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이 새로운 세계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신해혁명은 아직 ‘미완(未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Key Word
-신해혁명
1911년(辛亥年) 10월 10일 우창(武昌) 봉기를 시발로 한 중국의 공화혁명. 이를 통해 2000여년에 걸친 봉건왕조 체제가 무너지고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공화정(中華民國)이 시작됐다. 오늘의 중국을 있게 한 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우창봉기
혁명 이념으로 무장된 청나라의 신군(新軍)이 1911년 후베이(湖北)성 우창에서 일으킨 군사 봉기. 우창기의(武昌起義)라고도 한다. 같은 해 4월 광둥(廣東)성 광저우에서 동맹회(同盟會)가 ‘타도 청조(淸朝)’를 외치며 일어선 ‘황화강 사건’이 우창봉기의 밑거름이 됐다.
<출 처 ; 쿠키뉴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