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미얀마 The Irrawaddy 2013-1-22 (번역) 크메르의 세계
[컬럼] 태국 남부의 무장반군 : 민족주의에서 이슬람주의로
Southern Thailand’s Insurgency Turns Jihad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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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Reuters) 2012년 9월 빳따니 도의 폭탄테러 현장에서, 태국 경찰이 차량폭탄 공격 현장을 살피고 있다. |
기고 : James Blair (Asia Sentinel 기자)
태국 최남단 지방의 말레이계(Malay) '무슬림 반군들'의 성격이 더욱 이슬람주의자가 되면서, 우려할만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태국 남부의 반군들은 그 역사가 오래 되진 않았지만, 이 지역의 불평불만의 정도에 따라 태국의 통치에 대한 저항은 성쇠를 보여왔다. 역사적으로 보면, 태국 최남단에서의 반란은 본질적으로 민족주의적인 것으로서, 종교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 지역은 과거에 말레이계 무슬림들이 세웠던 '빳따니 술탄 공국'(sultanate of Pattani)이 위치했던 지역이다. 빳따니 왕국의 역사는 아마도 이곳이 교역과 이슬람학의 중심지로서 유명했던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 지역 반군들의 주요한 목표는 말레이계 무슬림들의 생활 양식을 보존하고 자치권을 획득하는 것이다. 반군들이 대부분 이슬람 교도이긴 하지만, 이전에는 이들을 엄밀하게 이슬람주의자들이라거나 이슬람 반군들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많은 반군 지도자들이 이슬람 학자들이었던 시대인 1980년대의 극심한 폭력사태 기간 중에도, 반군들의 주요한 목표 및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시키는 철학적 원칙들은 민족적 자치에 대한 갈망이었다.
전통적으로 종교는 민족주의보다 뒷자리에 위치했다. 하지만 2004년에 새로운 폭력사태가 시작되면서, 그러한 상황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2004년부터 촉발된 폭력사태에 대해, 국제적인 '테러와의 전쟁'(현재는 폐기된 용어지만)을 추진하던 미국의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의 끈질긴 요청으로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당시 태국 총리가 그 정책에 참여하면서, 강경하게 진압하면서 촉발됐다고 보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경우, 무슬림 무장반군들이 지역적 불만을 촉발시키는 데 있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온 동료들과 공조를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1980년대에 많은 수의 헌신적인 무슬림들이 같은 종교를 신봉하는 형제들을 돕기 위해 소련과 싸우던 아프가니스탄을 도우러 떠났었다. 그러다 1990년대에 중동 정세가 다소 안정적 상황을 보이자, 그곳에서 싸우던 전사들 중 일부는 서서히 고국으로 돌아와 지역 반군에 합류했다. 물론 태국으로 귀환한 전사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또한 태국 당국이 초법적 살인을 비롯한 강경한 반응을 보인 것도 반군들이 소생하는 데 불을 지펴주었다.
말레이계 무슬림 반군들의 이슬람화는 2012년에 더욱 강화됐다. 그들은 불교 승려들이나 교사들을 정규적인 공격목표로 삼았다. 최근에는 치안상황이 악화되면서, '300여곳의 학교들이 휴교하고, 교사들이 파업을 단행'하기도 했다.
2012년 9월, 반군들은 무슬림들의 안식일인 금요일에 쉬는 관습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이에 따라 많은 상점들이 철시했고, 많은 주민들은 금요일에 외출도 하지 않았다. 태국 남부의 반군들은 이제 주로 이슬람교에서 적법성을 추구하는 반란을 시도하고 있다.
태국 남부지역 반란의 본성을 더욱 복잡하게 하는 점은 이들의 활동이 지역 범죄조직, 특히 마약거래와 인신매매에 중점을 두는 세력과도 결부되어 있다는 점이다. 태국 최남단의 소요사태는 대단히 이익이 큰 사업이기도 하다.
지난 2001년 미국 뉴욕에서 9.11 테러가 발생한 이래, 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은 태국 남부의 반군들이 국제적인 이슬람 테러조직과 관련성이 있는지를 탐구해왔다. 그러나 아무 것도 증명되지 않았다. 또한 그렇다고 하여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할만한 합리적 결론도 도출되지 않았다.
아마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대체로 정확할 것이다. 태국 남부의 반군들과 국제적인 이슬람 테러조직 사이에는 커다란 거래관계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결론은 태국 남부의 반군들이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후원자들과 지역적 연관을 갖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무시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서히 강화되는 이슬람화는 태국 남부에서 벌어지던 이전의 저차원적 성격을 변화시키고 있다. 결국, 국제적인 이슬람 운동이 이 지역으로 유입되고 있는가와는 상관없이, 태국 남부에서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할만한 목표들이 보다 확장되는 상황으로 유도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태국 당국을 위한 시한이 만료되고 있다. 작년 12월, 호주에 본부를 둔 '경제ㆍ평화 연구소'(Institute for Economics and Peace: IEP)는 전세계 158개국을 대상으로 지난 10년간 테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국가들의 순위를 발표했는데, 이 순위에서 태국은 수단과 이스라엘을 앞지르며 8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태국의 찰름 유밤룽(Chalerm Yubamrung) 부총리는 도리어 기묘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는 태국에는 테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태국이 상위 순위에 배치된 것이 실은 오해에서 기인한 일이라고 말했다. 찰름 부총리의 반응은 언론인들과 학자들로 구성된 NGO인 '딥 사우스 워치'(Deep South Watch: 최남단 지역의 감시자)가 지난 9년간 태국 남부에서 발생한 사상자 수를 14,890명(그 중 사망자는 5천명 이상)으로 집계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나온 것이다. 물론 그 밖의 기관들은 사상자 수를 훨씬 적게 집계하고 있다.
태국의 정치적 상황은 남부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서 방해하고 있다. 이 문제 중 일부는 무슬림 무장조직들이 다양하면서 서로 이질적인 경우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여러 조직들이 전체 반군들을 대변하려 시도하고 있고, 이로 인해 태국 정부는 도대체 누구와 협상을 해야 하는지 알아내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방콕의 중앙정부는 최남단 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지만, 남부 소요사태의 중요성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지역이 야당인 '민주당'(Democrat Party)의 지역기반이기 때문에, [집권 여당 입장에서는] 누군가 주도적으로 나서 협상에 임해야 할 특별한 이해관계도 걸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지역의 문제 해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들이 조만간 합의되거나 입법화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고 있다. 태국 남부의 갈등은 나아지기보다는 더욱 나빠지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에 나오는 태국에 대한 여행 경고들 역시 이 문제가 지닌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다. 호주 외교통상부는 현재 태국 남부지역을 "여행 불가" 지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방콕에 대한 테러 가능성에 관해 특별한 언급을 하고 있긴 하지만, 태국 전체적으로는 "높은 경각심 유지" 단계로만 규정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 국무부 역시 태국에서 테러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일반적인 경고를 발령하고, 최근 남부지역에서 발생한 최악의 공격사건들 목록을 제공하긴 하지만, 이 지역에 대한 여행을 금지한다는 특정한 경고문은 제공하지 않는다. 미국 국무부의 목록에는 2010년에 발생했던 말레이시아인 4명의 살해사건도 포함되어 있다.
여행경고문이 태국 남부를 방문한 여행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만병통치약이 되지 못한다는 점은 물론이다. 하지만 최근의 전개상황을 고려한다면, 태국의 소요사태 및 --- 종종 태국 반군들에게 안전한 안식처를 제공하기도 하는 --- 반도부 말레이시아의 북부에서 발생하는 소요사태를 추가하여 여행경보가 업그레이드되는 것이 마땅하다.
특히 주목할만한 점은 태국의 반군들이 푸켓(Phuket)이나 여타 지역들처럼 해안가의 특정한 지역들에 대해서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지역들에는 부유한 관광객들이나 해변에 부동산을 소유한 서양인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주의할만한 전례가 존재한다. 지난 2001년, 필리핀의 '아부 사야프'(Abu Sayyaf) 이슬람 무장조직이 '도스 팔마스'(Dos Palmas)에서 20명 정도의 사람들을 납치했다. '도스 팔마스'는 필리핀 팔라완(Palawan) 섬의 '푸에르토 프린세사 시'(Puerto Princesa City) 북쪽에 위치한 고급 휴양지로서, 완벽하게 안전한 곳이라고 알려졌던 지역이다.
납치범들이 데려간 인질 중에 가장 가치있는 인질들은 북미에서 온 3명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선교사 부부였던 마틴 번햄(Martin Burnham)과 가르시아 번햄(Gracia Burnham), 그리고 나중에 참수를 당하고 마는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 관광객 귈레르모 소베로(Guillermo Sobero)였다. 번햄 부부가 납치된지 일년 후, 구출작전에 나선 필리핀 정부군과 반군들이 교전하는 과정에서 마틴 씨는 사망했고, 가르시아 씨만 최종적으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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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확실히 최근에 태국 남부의 소요사태가 악화되는 것 같기는 한데요..
아직은 최남단 3~4개 도들보다 더 북쪽에서는 공격이 발생하진 않았죠.
글쎄요,.
푸켓에서 테러 사태가 발생한다면..
정말 심각하겠죠..
블레어 씨의 기우로 그치길...
송클라대학에 있는 선배는 '검문 검색이 너무 심해 집 밖에 나가지 못할 정도'라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