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전 회계세무사무소에서 잠깐 동안 알바를 한 적이 있다.
참고로 종합 소득 신고세의 달 5월, 부가세 신고의 달 7월, 연말 정산 혹은 결산 때는 세무사무소가 가장 바쁜 시즌이다.
내가 여기서 주로 한 일은 고객사에서 보내온 영수증을 회사별로 분류해서 풀로 붙이는 단순한 작업이었다.
시작 전에는 사무실 안에서 근무하는 거라 쉬울 줄 알았는데 첫날 9시부터 6시까지 말 한마디 없이 계속해서 영수증만 보니
2시간이 지나자 내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말 한마디 안 하는게 참 고역이었다. 한다는 게 영수증 처리하는 건데
그렇게 재미있을리도 없었다.
그러나 하찮게 취급하던 영수증도 계속 보다보니 거기서도 참 좋은 정보가 보였다.
==== 영수증이 알려주는 진실 #1 ====
본격적인 산업개편에 대해 얘기해보기 전에 다른 얘기로 몸을 풀어보자ㅋ
비스페놀A가 뭐지?
월별로 영수증을 분류하다가 참 디자인이 이쁜 것을 발견했다. 유심히 보던 중에 거기에는 "우리 00는 친환경 영수증을 사용합니다. 비스페놀A 무첨가!"라고 자랑스럽게 쓰여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비스페놀 A가 뭐길래 그러지?" 집에 와서 검색을 해보았다.
"비스페놀A"
동물이나 사람의 체 내로 유입될 경우 내분비계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하거나 혼란시키는 환경호르몬의 일종으로, 주로 합성수지 원료ㆍ콤팩트디스크(CD)ㆍ식품저장용 캔 내부 코팅 재료 등으로 쓰이는 물질이다.
입으로 통하지 않아도 피부만으로 몸으로 흡수될 수 있으며 세포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매우 낮은 농도에서 내분비계교란물질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때문에 인간에게도 정자 수의 감소나 여성화 같은 건강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네이버에 비스페놀A를 검색하면 각시붕어의 배발달에 미치는 영향, 동맥경화에 미치는 영향, 토끼음경발기조직에 미치는 영향 등 여러가지 논문 제목을 살펴볼 수 있다.
뜨악~이렇게 해로울 수가 없다.. 더군다나 나는 못도 모르고 이런 일을 자원해서 9시 부터 6시까지 영수증을 만지고 있다니 제 무덤을 판 격이었다. 모르면 몰랐을까 알고나니 꺼림칙하였다. 결국 그 담주부터 장갑을 끼고 일을 처리했다. ㅡ.ㅡ
==== 영수증이 알려주는 진실 #2 ====
그 다음 우연찮게 띈 것은 중국프렌차이즈 영수증이었다. 어느 회사에서 점심에 가서 식사를 한 모양인데 아래쪽에는
"중식전문 인력 0% 이것이 바로 혁신! 000레스토랑!" 이라고 쓰여있었다.
이건 중식 요리사가 들으면 기겁할 소식이다. 10년, 20년씩 경력을 쌓아오신 분들도 불안감에 참 막막하실거다.
쉽게 말해서 앞으로 식당엔 전문 요리사가 필요 없어진다는 얘기가 아닌가. 몇 십년간의 중식 요리 실력을 쌓아도 자본과 산업의 논리앞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실례로 어느 죽 전문 프렌차이즈는 본사에서 받은 음식포장을 냉장고에서 꺼내 냄비에 풀어서 손님들에게 대접하는데 냄비에 음식을 데피는 건 초등학생도 할 수 있다. 고등 조리 교육과 훈련 과정을 받을 필요가 없다.
똑같은 맛과 질, 가격을 표방하는 프렌차이즈의 특성상 자동공정화로 음식을 대량으로 만들어 각 지점으로 적시적재에 조달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자신들의 경영철학에도 들어맞는다.
프렌차이즈의 확장 앞에 요리사들이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 만약에 이러한 시스템이 중식뿐만 아닌 일식, 한식, 양식에도 퍼진다면 한해에도 몇 천명씩 배출되는 조리인력들은 대책이 필요할 전망이다.
==== 영수증이 알려주는 진실 #3 ====
그 다음 주목한 영수증은 세무 프로그램을 선전하는 어느 업체의 선전문구였다.
"한 달에 만원이면 복잡한 세무신고 대행해주는 똑똑한 00프로그램! 이젠 자영업자도 혼자서 세무처리를 할 수 있다"
이건 우리 세무사 어르신이 보면 불쾌하실 내용이었다. 난 이 얘기를 전해드리지 않았지만 세무사무실에 곧 닥쳐올 먹구름이 어른거렸다. 난 세무사와 계약을 하는 업체들은 법인만 하는 줄 알았더니 일반 식당을 비롯한 여러 자영업자들도 세무서비스를 이용하였는데 그것도 일감이 모자라는지 서울의 중심지에 위치한 우리 사무실은 주변에 수많은 회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 경기도권의 영세업자들 일감까지 받고 있었다. 그리고 사무실엔 총 8개의 책상이 있었고 그 중 절반은 빈자리인 것을 보니 인력을 감축한 모양이다.
이런 소프트웨어가 앞으로 통용된다면 회계, 세무 분야는 직격탄에 맞을 확률이 높다. 이 분야는 숫자의 세계이므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대체될 연관성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다른 서비스 분야에도 적용이 될 것이다. 법률, 노무, 법무 분야는 숫자와는 상관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빅데이터"라는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이 소개되고 있고, 앞으로 법률 소송 당사자가 비슷한 판례를 빅데이터를 통해 찾아 재판을 준비하는 나홀로소송시대가 올지 누가 알겠는가.
정보통신의 발전에 의해 위기에 처한 일자리들
"민원24시"
민원24시는 동사무소에서 처리하는 여러가지 행정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인터넷상의 동사무소다.
물론 공무원이기 때문에 함부로 해고를 하진 못하겠지만 요즘 주민센터를 가보면 참으로 한산하다.
주로 오시는 분들도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는 중장년층이다.
그리하여 요즘 주민센터는 노총각노처녀 연맺어주기, 노인 · 장애인 돌보기, 청년층 취업장려 등 기존에 취급하지 않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여 존재명분을 남기기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무인자동차"
얼마 전 구글은 무인자동차를 개발하여 시험주행에 성공하였다. 앞으로 상용화까지 몇 년이 걸리겠지만 기술의 진보로 수많은 직업이 존폐위기에 처할 것이다.
거리의 수많은 택시를 비롯한 트럭, 버스, 심지어는 비행기까지 사람없이 운행되는 날이 올텐데 이럴 때면 과연 누구를 위한 기술의 진보인가 의문이 들게 만든다.
직업을 선택하는 혹은 종사하고 있는 분은 앞으로의 산업이 어떻게 변화할 지 주도 면밀하게 분석하고 헤쳐나가길 바래본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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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