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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 규슈지방 旅行記
-旅行前夜 이야기
“쾌속선으로 즐기는 絶頂의 경치와 최고의 온천 뱃부, 운치(韻致) 있는 유후인 온천까지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여행”이라는 하나투어의 광고 문구 때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미 계획했거나 준비된 여행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아내가 회갑을 맞아 가족끼리 가진 조촐한 식사행사를 마치고 난 자리에서 딸아이들이
마련해준 행사의 하나로 갑자기 가게 된 일본여행이었다.
지독한 편식증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음식 때문에 외국여행이 그렇게 달갑지는
않았지만 아내가 회갑기념으로 가는 여행이고,
부산에서 살고 있는 둘째딸아이가 동행을 하겠다기에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선 여행이었다.
뿐만 아니라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데리고 여행을 한다기에 우리는
졸지에 다섯 명이 함께하는 가족 단체여행이 되버렸다.
하루전날 광주에서 출발한 우리내외는 해운대에서 살고 있는 둘째딸아이 집에서 一泊을
하고 다음날 08시30분-
부산국제터미널 2층에서 여행사가이드와 첫 미팅을 해야 한다는 시간에 마쳐 일찍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해운대에서 항만으로 가는 부산의 아침 도로사정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았다.
더구나 직장인들의 아침 출근시간대이고 보니 항만도로의 지, 정체현상은 시간에 쫓기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초조하게하고 안타깝게 만들고 있었다.
둘째딸아이의 핸드폰으로 여행사가이드의 출발확인 전화가 오더니 이후로 독촉전화가
여러 번 걸려왔다.
둘째사위가 바쁜 마음으로 곡예운전을 하면서 가까스로 항만 터미널주차장에 우리를
내려주고 떠났다.
터미널 2층으로 올라가니 여행객들로 장내가 북적이고 있었다.
하나투어의 여행가이드인 여직원 문 연정을 맞나 출국수속을 마쳤다.
여행에 필요한 안내서와 주의사항을 설명 듣고 출국자대기실에서 출국시간을 기다렸다.
-제1일차:11월3일(월요일)
날씨는 쾌청하고 맑았으며 바다는 조용하고 잔잔했다.
오전10시 정각에 부관페리호인 KJ-210편으로 부산항을 출발했다.
크루즈船을 상상하고 있던 나는 배의 크기에 실망과 당혹감을 가졌지만,
“이 배는 코비型 소형쾌속선으로 항공기엔진을 탑재하고 있으며 최첨단 항법장비를
장착하고 있는 신형선박입니다.
최고의 안전과 친절한 서비스로 손님여러분을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라는
선장의 선내 방송으로 다소 위안을 삼았다.
2층으로 된 쾌속선의 크기는 외형상으로 볼 때,
선체의 폭은 고속버스 두 대를 합쳐놓은 정도의 폭이었으며 배의 길이 또한 고속버스
두 대의 길이쯤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체는 작아도 배는 생각보다 빠르고 흔들림이 없어 좋았다.
처음 가보는 일본여행은 잔잔한 감동으로 나를 흔들어주고 있었고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었다.
말로만 듣던 현해탄-
현해탄은 우리민족이 품었던 애환(哀歡)을 말없이 지켜본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많은 섬과 암초가 散在해 있는 수심(50-60m)이 얕은 바다로 겨울에는 북서계절풍이
강하게 불어 파도가 거세기로 유명한곳이다.
일본의 대륙왕래의 주요통로가 되어 왔지만 13세기 말에는 원(元)나라의 일본 침입路가
되었던 바다였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
한국인 학병과 일본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한국영화가 문뜩 생각나기도 했다.
부관패리쾌속선은 쉴 새 없이 푸른바다를 가르며 쏜 살같이 달렸다.
12시55분에 일본 후쿠오카 하카다港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정확하게 2시간
55분이 소요되었다.
우리는 절차에 따른 입국수속을 밟았다.
새로 강화된 일본국내법에 따라 지문체취와 얼굴사진 촬영을 마치고 국제여객터미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객터미널주차장에는 우리를 2박3일 동안 태우고 관광을 할 45인승 붉은색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적 금융위기와 엔화강세에 따른 원화價 하락으로 경제적 부담을 느낀 국내의
많은 관광객들이 중도에 예약을 취소하는 우여곡절 때문에 28명만이 참여하는 저조한
관광투어가 되고 말았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그것은 관광회사의 사정일 뿐이고 우리에게는 주어진 일정대로 관광을 진행하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일본인 관광버스기사는 나이가 들어 보이고 키가 크고 몸매가 깡마른 체격이었다.
우리를 보고는 직각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친절과 예의를 보이기도 했다.
규슈는:-
일본열도를 구성하고 있는 4대 섬 중 가장 남쪽에 있는 섬이다.
그 섬을 중심으로 부속도서로 이루어진 지방으로 인구는 약 1480만 명이다.
규슈지방은 규슈본도와 이키 섬, 쓰시마 섬, 고토열도, 아마쿠사 제도, 사쓰난 제도 등
1,400여 섬들로 이루어져있다.
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 오이타, 구마모토, 미야자키, 가고시마 등 7개현을 포함하고
있으며 넓게는 오키나와 현도 포함된다고 한다.
우리는 하카다항 인근에 있는 日本우동本家라고 가이드가 소개하는 “천신복”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우동은
일본의 대표적인 면 요리로 그 시초는 에도시대에 교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발달한
면발이 연하고 야들야들한 “시누끼”우동을 말한다고 했다.
우동은 지역에 따라 종류가 다른데,
하카다 지방에서는 해산물로 국물을 내고 면이 굵은 우동이며,
오사카지방에는 면과 건더기를 냄비에 끓이면서 먹는 우동스키와 아무것도 넣지 않고
면과 국물의 맛만 즐기는 스우동이 있다.
간토지방은 우동에 떡을 넣는 지카라우동이 유명하고,
야마나시 지방은 우동에 밥을 넣어 먹는 우동메시,
닛코 지방에는 굵은 면에 타마리 간장을 넣어 먹는 이세우동 등이 있기도 한데,
우동에 넣는 재료에 따라,
기쓰네우동, 덴뿌라우동, 니쿠우동, 쇼유우동, 스키미우동, 가야쿠우동도 있다고 한다.
오늘 우리가 먹은 우동은 어느 지방 어떤 종류의 우동인지는 몰라도 국물 맛이 순하고
통통한 면발과 함께 나온 건더기가 양배추와 숙주나물로 채워져 있었다.
조개, 새우, 꼴뚜기 등 해산물이 많이 들어가는 우리 우동과는 달리 해물類가 하나도
없는 것이 특별했다.
다만 전체적으로 양이 너무 많았다.
점심식사를 마친 우리는 구마모토로 이동해 일본 3대 명성(名城)중의 하나로 1607년
가토 가요마사가 건축한 구마모토城을 관광했다.
구마모토城은 일본 구마모토縣 구마모토市에 있는 산성으로 1601년 무로마치 시대에
세워진 치바城과 옛 구마모토성이 있던 챠우스山 일대에 성을 쌓아 1607년에 완공한
山城이다.
지금의 성곽은 1960년에 복원한 것이라 한다.
이 城의 특징은 城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도록 성벽 중간 중간에 돌출 벽을 쌓았고,
성내 도로는 직각으로 만들어 적이 쉽게 진입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또한 건물 窓은 검은 목판으로 차단막을 만들어 적이 성내 동정을 알 수 없게 하였다.
구마모토城 구경을 마친 우리는 活火山으로 유명한 아소로 이동,
아소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 호텔은 아담한 규모의 리조트風으로 아소의 山들을 볼 수 있는 우찌노마키 온천지대에
위치한 호텔로 천연온천과 맛있는 가이세키 요리를 맛 볼 수 있는 호텔이었다.
현대식 5층 건물에 객실은 일본전통의 다다미방이었다.
고풍스런 전통을 고집하여 현대식 리모델링을 거부하고 가구와 집기 등을 모두 옛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호텔이었다.
아소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자연친화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으며 친절하고
세심한 서비스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입고 저녁은 세미일본정식을 먹었다.
식사 후 온천욕을 하고 호텔부근 주택가를 걸으면서 일본인들의 삶과 체취를 느껴보았다.
-제2일차:11월4일(화요일)
세미 일본정식으로 아침을 먹고 여행용 짐을 챙겨 아소山관광을 하기위해 버스에 올랐다.
날씨는 맑고 하늘은 쾌청했다.
아소山은:-
일본 규슈 중앙부에 있는 활화산으로 높이는 1,592m이다.
구마모토, 오이타 두縣에 걸쳐있는 세계최대의 칼데라를 갖고 있는 복식화산(複式火山)으로
아소국립공원의 중요 부를 형성하고 있다.
기리시마 화산대(火山帶)의 북단(北端)과 하쿠야마山 화산대가 마주치는 지점에 있다.
중앙화구구(中央火口丘)의 나카가쿠山(中岳)은 현재도 화산이 활동 중이다.
그 화구(火口) 구경이 아소山 관광의 중심이 된다.
일본에서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며 교토대학 아소山연구소와 기상청의 아소山
관측소가 설치되어있었다.
아소山은 高地帶여서 기상이변이 심한 곳으로 날씨나 유황가스 분출여부에 따라 관광이
불가능 할 수도 있다고 가이드가 설명해주었다.
아소山을 버스를 타고 올라가면서 잘 정리된 쿠사센리(초원지대)와 고매즈카(전설적 쌀
창고)를 볼 수 있었다.
로프웨이를 타고 분화구(1,323m) 관람지점까지 올라가서 아직도 화산활동중인 세계 최대의
칼데라복식화산을 보았다.
연초록 에메랄드빛을 띈 분화水는 가히 환상적이고 신비스럽기 그지없었다.
뭉개 뭉개 피어오르는 유황가스 연기사이로 살짝 살짝 보이는 분화구 내부 붉은 벽들은
마치 서부영화에서 나오는 황량한 사막지대를 연상시켜주었다.
내려올 때는 로프웨이를 타지 않고 주변산야를 구경하며 육로로 걸어서 내려왔다.
관광지휴게소에 있는 뷔페식당에서 뷔페식으로 점심을 먹고 유후인으로 이동했다.
유후인은 일본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양지중의 하나라고 한다.
온화하고 투명하며 물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킨린湖水(호수바닥에서 차가운 샘물과
뜨거운 온천수가 동시에 솟아오르는 호수)가 있는 곳이었다.
유후인 거리에는 규슈 각지에서 옮겨온 民家로 이루어져있었으며 가게 안에는 각종
일본민예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일명 유후인 부자(富者)의 거리라는 곳도 걸어보았다.
우리는 유후인을 구경하고 다시 일본최고의 온천도시 뱃부로 이동했다.
뱃부는 도시전체가 유황의 특유한 냄새로 배어있다.
관광버스 차 창밖으로 보이는 길옆 숲속에서도 여기저기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유황연기를 볼 수 있었다.
뱃부만 전망대에서는 반원형의 뱃부 市內전경을 한눈으로 내려다 볼 수가 있었다.
유노하나 유황재배지도 구경하고 유황이 생성되는 과정도 직접 보았다.
지옥온천(地獄溫泉) 순례지도 갔었다.
가마도地獄-
밥솥지옥이라고 불리며 옛날에는 이 지옥열기를 이용해서 신사(神祠)나 사찰의 밥을
지었다고 한다.
온천연기에 담배를 갖다 대면 불이 붙을 정도로 뜨겁다고 하며 안내원이 직접 시연(試演)을
보이기도 했다.
관광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유황연기흡입, 路泉족탕사용, 온천수에 손 씻기, 그리고
유황수로 삶은 계란도 기념으로 사서 먹었다.
우리는 카메노이 호텔에 여장을 풀고 일식과 양식을 혼합한 뷔페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호텔 3층에 있는 대 욕장에서 유황온천욕을 했다.
카메노이는 온천휴양지로 유명한 뱃부에 있으며 건물층수도 10층이 넘는 322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는
현대식(양식)호텔이었다.
객실은 침대식이고,
객실이 개인, 커플. 가족, 그룹여행객들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숙박 플랜을 가지고 있는
호텔이었다.
남쪽 窓으로 스며드는 햇살과 쾌적한 공간이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제3일차(11월5일)수요일
뱃부 호텔에서 뷔페식으로 아침을 먹고 우리는 디자이후로 이동했다.
일본인의 학문적 神으로 추앙받고 있는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모신 신사(神祠) 태재부천만궁을
관광했다.
이곳은 일본인들의 단체관광이나 학생들의 수학여행 시 필수답사코스로 되어있어
평일임에도 日本人관광객들로 붐벼 발 딛을 곳이 없이 혼잡했다.
神祠 내 정원도 고궁답게 수령이 수백 년이 넘을 고목들이 즐비하게 서있었고,
신사의 품격을 나타낸다는 石門도 십여 개가 넘는 것을 보면 일본인들이 태재부천만궁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태재부천만궁 관람도중에 한 일본인 할머니가 피로에 지쳐 의식을 잃고 땅바닥에
쓰러졌는데 관리소 직원이 출동하는 시간이 너무나 지체가 되는 것을 보고 선진일본의
위기관리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점심식사는 신사 안에 있는 식당에서 일본식 도시락을 먹었다.
이 점심식사를 끝으로 우리의 실질적인 일본관광은 끝이 났다.
후쿠오카에 있는 스카이 면세점에 들려 쇼핑을 했었다.
아내는 딸아이들에게 선물 할 부엌용 세라늄 식칼을 사고 각질제거용 로션도 샀다.
우리는 14시15분에 부산으로 출발하는 KJ-129편에 승선하기위해 하카다港으로 갔다.
-旅行後記
일본에 대한 역사적 선입감이 좋지 않는 우리세대가 더구나 독도문제를 시시콜콜하게
꺼내 수시로 분쟁을 야기 시키고 있는 곱지 않는 나라,
가깝고도 먼 일본을 난생 처음으로 관광이라는 명목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2박3일간의 짧은 여정(旅程)으로 일본을 말한다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다리를 만지는 격이라
모두들 말하겠지만,
극히 단편적이고 제한되고 전시적(展示的)일수도 있는 旅行地라고 하지만 내가 눈으로
직접보고 피부로 느낀 점을 솔직담백하게 말하고 싶어서다.
일본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고속도로가 國道위에 이층高架로 건설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연계망이 잘 이뤄져있어 어디서나 순환도로를 타고 빠져나가 국도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山野는 모두가 사람에 의해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나무와 잡목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山보다는
키 큰 편백나무 造林地帶가 많아 숲이 푸르고 우람스럽게 보였다.
양탄자보다 더 매끄럽게 보이는 초지(草地)와 草原의 아름다움은 여행객의 마음을 한결
부드럽고 편안하게 해주었다.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山은 개발되어 잘 관리되고 있었다.
특히 자투리가 버려지지 않고 관리됨으로 전체를 살리는 절묘한 발상을 볼 수가 있었다.
관광지라 그렇겠지만 달리는 차도주변의 잡풀은 모두 제초되어 깨끗했다.
도로 절개地는 미학적으로 처리되어있었고 시내거리도 깨끗하고 질서정연했다.
상가건물들은 들 쑥 날 죽 함이 없이 조화롭게 공간을 매우고 있었고 아파트단지가 보이지
않는다.
시골 마을에는 일본전통식 단층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자동차들은 주차장 주차線에 정확하게 차를 주차시키고 있다.
24시 편의점 앞에는 분리형쓰레기통이 버티고 서 있어서 편의점을 이용하는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
아소호텔 주변 상가도로를 상당시간 아내와 함께 걸었지만 길거리에 버려진 과자봉지나
휴지 한 장을 보지 못했다.
규슈의 80%가 관광지이고 주민생업의 대부분을 관광수입으로 번다는 곳이라 하지만
일본인의 국민의식을 평가절하해서는 안될 것 같다.
규슈지방은 온난다우(溫暖多雨)한 지역으로 연평균기온이 16℃이상이고 연강우량도
1,500mm이상의 온난지대이다.
해안부에는 아열대성기후를 보여 빈랑, 소철 등이 무성하다.
대륙에 가까워 일찍이 대륙문물에 접하기 쉬웠기 때문에 야마토지방과 함께 일본고대문화인
야요이식文化의 2대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다.
그 뒤 대륙과의 사이에 정식거래가 이루어지자 대외교통의 요충이 되어왔다.
13세기 후반에는 2차에 걸쳐 元의 침입을 받았으며 에도시대에는 조총, 그리스도교 등
유럽문물이 이곳을 거쳐 전래되어 일본의 역사에 영향을 끼쳤다한다.
-2박3일 규슈 후쿠오카지방을 다녀와서-
(2008년 11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