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인도 대신 하게 된 성경 필사
<중주>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무더위와 장마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열대야가 유난히 일찍 찾아왔다고 하네요.
오늘은 “발행인 통신”에 가볍고 부담이 되지 않는 내용을 담아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무엇을 쓸까?’하다가 제가 7개월 전에 시작한 중국어성경 필사 이야기를 택했습니다.
간자(簡字) 성경을 필사하고 있는데요, 간자의 정식 이름은 ‘간화자’(簡化字)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흔하게 쓰는 이름을 따라서 간자라고 하겠습니다.
목회에서 은퇴한 다음에 한편으로는 편해져서 좋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워진 일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니고 새벽기도회입니다.
목회를 하고 있을 때 새벽기도회 인도는 참 부담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한 선배가 “새벽기도회 인도하는 일만 없으면 목사도 할만한 일이야!”하자 대다수가 “그래요!”하고 맞장구를 친 일도 있었습니다.
은퇴를 하고 그 일에서 벗어나니 편해서 좋기는 한데 많이 허전하였습니다.
대안으로 하기 시작한 것이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던 시간에 한글성경를 연속으로 통독하고 이어 성서를 필사하는 일이었습니다.
먼저 헬라어 성경을 필사하였고, 이어서 끝나자 중국어성경을 필사에 착수했습니다..
중국어성경을 필사하는 이유는 둘입니다.
‘중국의 영혼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구나 <중국을 주께로> 가족들을 섬기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또 하나는 간자를 익히기 위해서였습니다.
저희 세대에게는 아무래도 번자{繁体字]가 익숙한데 선교현장에서는 간자가 많이 쓰이는 것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저는 중국어를 모릅니다. 대산 한문에는 비교적 익숙한 편입니다. 어려서 천자문을 배웠고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여러 해 한 덕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중국어성경에 감히 도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을 세 번 바꾸다
병음해설과 한글성경이 함께 들어 있는 성경을 가지고 필사를 시작했는데 편리한 점도 여럿 있었지만 너무 복잡해서 진도가 제대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4장부터는 중국기독교협회가 1998년에 발간한 『聖經』을 가지고 필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성경은 띄어쓰기가 되어 있고 소제목들이 삽입되어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시편 같은 시가서들은 물론이지만 다른 성경들도 중간에 운문이 많이 들어 있는데 중국기독교협회가 발행한 서경은 운문(韻文)처리가 충실하게 되어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판형이 너무 작아서 큰 판형의 성경을 구하러 서점에 갔다가 Cross Fish 출판사업부에서 펴낸 『聖經 -和合本-』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1장부터는 계속해서 이 성경을 가지고 필사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려면 이렇게 우여곡절, 또는 시행착오를 겪게 마련이지요.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이 성경을 출판한 Cross Fish 출판사업부의 주소가 경기도 포천으로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무슨 내력이 있는 것 같아 알려고 힘썼으나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은 한 면이 왼쪽 단과 오른쪽 단, 이렇게 두 개의 단으로 되어 있는데 하루에 한쪽 단씩을 필사하고 있습니다.
필사하는 순서는, 먼저 중국어 성경을 읽으며 뜻을 알려고 애씁니다.
한문에 익숙하다고 하더라도 중국어성경을 만족스럽게 이해하는 것은 바라기 어려운 일입니다.
낯익은 단어나 이름이 나오면 그와 연관된 한글성경 내용을 떠올리며 ‘아, 이런 이야기이겠구나!’ 하는 정도입니다.
그 다음에는 한글성경과 비교하며 한 번 읽고 그리고 필사에 착수합니다.
이렇게 하면 한 단(한면의 반)을 필사하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
10년 걸리겠네
저는 이 성경을 필사하는데 10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성경은 구약 941쪽, 신약 242쪽, 합해 1,233쪽, 모두 2,466단으로 되어 있는데 한 주일에 5일 정도가 필사가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주일에는 필사를 하지 않고, 평일에도 사정이 있어 필사를 하지 못하는 날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잡은 것입니다.
그러면 1년에 260일 정도를 필사를 할 수 있는데 2,466단(段)을 260일으로 나누면 10년 정도가 필요하다는 답이 나옵니다.
이렇게 되면 ‘제 생전에 필사를 끝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할 문제이겠지요.
앞에서 간자 이야기를 했는데 간자 성경을 필사하면서 ‘간자와 번자가 그렇게 큰 차이가 없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국 당국이 간자를 만든 것이 잘 한 일일까?’ 하는 질문도 갖게 되었는데 이것이 합당한 질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중국어성경을 필사하면서 특히 흥미 있는 것은 고유명사들입니다.
‘이, 이 이름을 중국어로는 이렇게 적는구나!’ 하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무척 재미 있었습니다.
에덴을 ‘伊甸’이라고 적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1986년의 서울아시안게임 때와 1988년의 서울올림픽 때 저는 선수촌 종교관의 채플린[館牧]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일했는데 그때 중국 선수단과 임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86아시안게임 때는 제약이 많았고, 88올림픽 때는 좀 자유로워졌지요.
그때 필담(筆談)으로 전도를 했습니다.
상대방은 제가 한문을 자유롭게 쓰는 것을 브고 말도 잘 하는 줄 알고 말을 걸어오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면 “워 부찌 쭝국화”(我不知中國話) 하면서 손을 저었지요.
속으로 ‘내가 조선 시대 선비도 아니면서 이게 뭐야!’ 하면서 말입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한문에 능숙했기 대문에 중국 학자들과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얼마 전에 이슬람권에서 일하고 있는 선교사님 한 분을 만났더니 “저도 그때 종교관 스텝 가운데 하나였는데 목사님이 그렇게 하시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하더군요.
중국어성경 필사를 하면서, 또 그런 일을 만나다면 생긴다면 이번에는 필담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중국어성경 필사는 여러 가지로 저에게 유익을 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제일 큰 것은 중국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지고 중국교회에 대한 이해가 더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매일 새벽이 일을 시작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마음으로 노트를 펼치고 있습니다.
올해 8월 24일은 한중수교 30년이 되는 날입니다.
한중수교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큰 일이었습니다.
작년부터 한중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한중수교 30년을 주제로 한 책도 여러 권 나왔습니다.
인터넷에 “한중수교 30년”을 입력해 보시면 ‘관련된 글들이 많네!' 하실 것입니다.
경제 분야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선교적 관점에서도 분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중수교는 한국교회의 중국사역에 엄청난 변화를 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실을 생각하며 <중주> 7월호의 특집 주제를 ‘한중수교30주년, 다시 선교중국을 생각하다’를 특집으로 정했습니다.
<중주> 가족 여러분께, 그리고 한국교회의 중국사역에 도움이 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