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력이 나쁜 탓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사실 어렷을 적 일들을 잘 기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조금씩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일들과
어른들의 말씀을 듣고있자면 참... 어린시절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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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1989년 2월 27일 새벽 3시경에 성수동(뚝섬)
육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원래 안세병원에서 나으려고 했지만 성질급한
내가 참지못해서 부모님이 가까운 동네 병원으로 갔다고 한다.
그때 난 2.6Kg이란 빈약한 체구로 뼈와 가죽만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 바
람에 인큐베이터 신세를
질 뻔 했지만 다행히 어머니 곁에서 모유를 먹으며 잘 지냈다.
그렇게 빈약하게 태어나서 이제 겨우 3년 쯤 됐을까? 내 동생이 태어난
그 무렵에 큰 일이 있었다.
집의 가장 구석에 쳐박혀 있었던 무좀약을 엉금엉금 기어서 먹었던 것이
다.
난 바로 서울중앙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거꾸로 매달린 체 위세척을 했다
고 한다.
그때 부모님과 외가친척들, 친가친척들은 내가 죽는 줄 알았다고 하신
다.
그 일이 있은 후 내 몸은 더 약해졌다. 하지만 3살이 막 되서부터 말도
일찍 깨우치고 글도 일찍 깨우친
동네 "똑똑이"가 됐었었다고 한다. 그에 비해 내 동생은 6살이 되기까지
발음도 별로 안좋았고
글도 못 깨우쳤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인 내 남동생 김우
영은 말도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려고 하며 글도 잘 쓰는 아이가 되어있다.
그 후 한 1년 쯤 지나 (그러니까 내가 4살때쯤) 우리가족은 서울특별시
강동구라는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이사를 와서 5살에 유치원에 들어갔다. 아직도 우리집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명덕유치원이였다.
그때 생각이 난다. 명덕유치원의 교복. 그때 사진을 보면 웃음밖에 안나온다.
보라색의 귀여운 유치원 교복을 입고 머리를 약쪽으로 묶고 있는 한 어린 소녀가 환하게 웃으며 서있기 때문이다.
가끔 다른 집보다 유난히 많은 우리집 사진첩들을 뒤적이며 내 어릴 적 사진들을 보고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저런 게 바로 순수한 어린아이의 미소구나!'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참으로 순수한 호수가 맑게 흐르고있고 세상 어느 빛보다 환하고 밝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입술은 책에서나 나올듯한 앵두같은 입술이다. 그리고 양볼에 있는 동그란 홍조...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흘러간 것 같다.
여하튼 난 6살때까지 유치원을 다녔고, 7살에 묘곡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생일이 빨라
1년 일찍 학교에 입학한 것이였다.
1학년 때의 일들은 그리 특별하지도 않았고 생각에 남는 것들도 없기에 별로 이야기 할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럼 얼핏 기억이 나는 2학년 때 일들부터 말하도록 하겠다.
2학년 때 난 내 단짝친구였던 하나와 나란히 난 반장, 하나는 부반장을 맞게 되었다.
반학기 동안 아이들의 지지(?)를 받으며 착실한 모범생 어린이로 반장을 맏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 성함은 거의 기억이 나지를 않지만(6학년 때 담임선생님 마저도) 2학년 때 선생님
만큼은 기억이 또렷히 난다. 그 있지 않는가. TV는 사랑을 싣고 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을 하셨던
"노병화" 선생님. - 선생님 잘 지내셨는지요. 참 그립습니다. 선생님 제자 민정이가 지금 벌써 중학교 2학년이랍니다.
그 동안 선생님께서는 교정을 떠나셔서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시리라 생각하며 지낸답니다. 선생님께서
이 글을 읽으실리 만무하시지만 이렇게 선생님이 그리운 나머지 글을 몇자 적어봅니다. 사랑하는 저의 스승님 항상
몸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시길 바랍니다.-
우리 노병화 선생님을 초청한 연예인이 누군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선생님께서 TV는 사랑을 싣고에 나오신 일이
정말 또렷히 기억에 남는다.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중반쯤 난 어느 남학생을 좋아하게 됐었다. 박동철이라고 기억이 난다.
도도하고 잘난척 하던 나였기에 그애가 말을 몇번 붙여주었지만 퉁명스럽게 대답했었고 더 관심이 없는 척 하던게
생각난다.
그렇게 2학년은 끝났고 내가 3학년이 되었다.
내 3,4학년은 내 인생에서 말하고 싶지도 않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시절이었던 것 같다.
난 2학년이 끝나자 세상에 대해 아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고 친구란 존재를 깊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3학년이 되어 다른 친구들을 만나자 난 냉소적이고 자기주의적인 생각만을 갖게 되어 친구를 거부했고
그래서 난 혼자가 되었었다. 그렇게 3학년 1학기는 '혼자'라는 단어를 안고 지나가버렸다.
하지만 1학기 동안 내 나름대로 내 성격을 고쳐보려 노력도 했었던 것 같다.
바로 '걸스카웃'이란 단체에 특활부에 들어 활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도 역시 나 혼자 힘으로 내게 잠제 되어 있는 성격을 고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되었다. 2학기가 되자 어린 나역시 '외로움(또는 혼자)'란 게 지긋지긋하고
싫었던지 친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그후 3명을 사귀었던 것 같다.
그렇게 외롭고 혼자였고 조금은 쓸쓸한 초등학교 3학년이 지나갔고 우리 학교에선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을 4학년까지 같이 올라가게 만들었다.
난 그렇게 3학년 때보다 한 살 더 먹었을 뿐 달라진 것 없이 4학년이 되었고 4학년 내내 조용하게 지냈다.
선생님께서는 그런 날 감싸주시기 보다 혼자 자립할 수 있도록 은근하게 도와주셨고 그 덕분에 난 4학년 1년동안
'자신감과 활발'이란 단어를 배워나갔다.
그렇게 5학년이 되자 난 적극적인 아이로 변신했고 주위에는 항상 친구들이 들끓었다.
난 4학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고 친구가 없었던 날도 없었다.
하지만 3,4학년 때보다 더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을 이겨내지 못 했던 이유는 내가 진정 사랑하는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주위엔 많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내 마음에 쏙 들고 사귀고 싶은 친구는 없었고
난 그래서 그저 '친구가 많다.' 라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렇게 또 1년이란 길고도 짧은 시간이 지나갔고 초등학교 최고 학년인 6학년이 되었다.
아마 모범생이였던 난 6학년 무렵부터 점차 사회가 생각하는 '불량학생'이 되어갔던 것 같다.
6학년이 되어 난 친구를 또 사귀었고 그 친구들은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노는 아이들'이었었다.
난 3학년 때부터 활동해 왔던 걸스카웃에서 후배들에게 기합이라든지 심부름 따위도 시켜보며
처음으로 다른 학교 학생들과 패싸움이라는 것도 해보았다.
그렇게 난 나쁜 길로 빠졌고 흥청망청 부모님 속을 썩이며 거짓말도 하고 6학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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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1장은 쓴 후 소감문>
아직 14년밖에 못 살아본 나의 자서전은 다른 사람들의 자서전 보다 짧고 어쩌면 미숙한 점도 많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자서전 1장을 쓰며 내 어린시절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고 회상하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초등학교를 그렇게 마치고 중학교 2학년이 되기까지의 일들을 적어보도록 하겠다.
평범하디 평범한 나의 자서전과 나의 일생이지만 내겐 뜻깊은 의미로 남게 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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