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부터 유년부 교사보조를 거쳐 어린이 성가대 지휘까지 결혼 할 때까지 줄곧 대구 수산교회에서 봉사를 했는데 결혼과 동시에 교회출석마져 열심히 하지 못했다.
다형이 록형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아이들때문에라고 열심히 교회출석해야한다는 일념으로 구미에 이사오면서 부터 마음을 다잡고 새벽기도를 가기 시작했다
도량동에 이사를 하고 3년이 지나서야 목양교회로 옮겼다.
대구수산교회의 중고등부 선생님이셨던 장성천 목사님께서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총신을 나오고 유학을 하시고 구미목양교회를개척 하시게 되었다.
그런데 목양교회로 옮기면 내가 일을 많이 해야한다는 강박관념과 부담때문에 교회를 옮기지 못했다.
다형이 록형이만 유년주일학교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목사님께서 태국으로선교활동을 가시게 되었고 최한순 목사님께서 목양교회에 시무하시게 되었다.
이러저러한 일로 교회를 목양교회로 어렵게 옮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봉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단지 내편한대로 새벽기도 참석하고 주일날 일있으면 예배참석 하지 않아도 되는 양 쉽게 살았다.
주중에 새벽기도 가면 되지뭐 이런식으로...
교회 청소도 나아니라도 누군가 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 내가 무언가 해야할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아이들 가르치는 일은 죽기보다 싫었다.
내가 아이들이 좋아 교육대학을 가게되었는데도 아이들에게 너무 지쳐 아이들이 무서웠을 지경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던 와중에 생각지도 않는 여전도회일이 맡겨졌고 정말 난감한 지경에 으르렀다.
권정자 집사님 아니었으면 어찌할 뻔 했으랴
송연실 집사님은 집안일이 너무 힘겨워 내게 미룬 것이었다.
하지만 그 여전도회 일로 인하여 남편이 정식으로 교회 등록을 하게 되었고 내신앙은 회복을 하게 되었고 아이들은 엄마의봉사활동을 저절로 따라 하게 되었다.
다형이가 학생회 반주를 하게 도었고 록형이는 다형이가 유학을 가게 되니 그 뒤를 맡아 반주를 하더니만 급기야 음대에 진학하게 이르렀다.
남편은 집사직분을 받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가정은 믿음안에서 더 건강한 가정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 일을 두고 누군가 준비하고 있었음을 느낀다.
남편을 위한 기도가 20년이 지나서야 내가 주의 일에 엎드릴 때에 이루어지게 되었음을 내스스로 느낀다
여전도회일로 이렇게 저렇게 4년을 봉사하면서때로는 지치기도 했고 때로는 마음고생도 했지만
정말 나에게 돌아온 것은 아픈 것 이상의 기쁨이었고 축복으로 돌아왔다.
어제 여전도회 총회때 참 어려움이 있었다.
권정자 집사님과 동역자로 나의 동반자로 또 권집사님의 동반자로 동역자로 둘이서 마음을 맞추어서 여전도회가 여기까지 잘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정경화 집사님께서 많이 도와주셨고 우리 말없는 김영지 집사님의 인내로 큰소리 날 뻔 한 일들이 잘 마무리 되어지기도 했음을 감사드린다.
지난해 권집사님이 회장으로 있으면서 갑자기 입원을 하게 될 지경에 이르렀으 때 김영지집사님이나 나는 정말 그 짐이 무거워 내려놓고 싶어 총회를 강행하자고 했다.
하지만 목사님게서 원치 않으셨고 결국 임원진 그대로 가야한다는 압박감에 많이 힘들었다.
총회를 하지않으면 내가 정말 회장아닌 회장 역할 을 도 해야한다는 말이가 하는 나쁜 마음이 없지 않았다.
또 한편
" 아하 내가 아직 봉사해야 할 일을 덜 했기때문인가보구나 "
이런 생각이 중첩되면서 힘들어하면서도 결국에 내가 할일이구나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래저래 권집사님께서 퇴원하시고 성치않는 몸으로 교회일을 다시 시작했고 힘들어하면서도 수용하고 참으셨다.
잘 참아 주셨기에 권집사님의 신앙은 정말 어느날 보니 저 산 높이 만큼 높아져있었다.
총회를 하면서 자신의 반성 감사 간증이 나의 마음을 더 감격스럽게 만들었다.
정경화 집사님도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하나님께서 일을 통하여 그를 단련하시고 복주고자 하심을 빨리 아시고 수용하시기를 바란다.
어제의 총회는 짐을 벋었다기보다는 새롭게 나를 낮추는 계기가 되었고 앞으로 새로운 일꾼들을 통해 미래의 여전도회의 비젼을 보기도 했다. 우리는 준비해야한다.
사모님께서는 모두가 물러앉음을 크게 걱정 하셨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그들도 하나님의 축복을 스스로 체험해야하며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해야한다는 게 우리들의 뜻이었다.
총회가 끝나고 사모님과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엎드린다고 했다. 내가 이제단에 엎드리고 봉사할 것을 약속하고서야 사모님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셨다.
권집사님의 남편을 위한 기도가 해결 되리라 믿는다.
이경희 집사님도 개인의 사업이 번창할 수록 겸손하고 봉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