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의 도시 론다(Ronda) 최 건 차
안달루시아와 특히 론다라는 지명이 나를 흥분케 한다. 헤밍웨이가 그의 대표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무기여 잘 있거라’를 집필한 곳이 라는 데서부터다. 헤밍웨이가 론다에 체류하면서 허니문이나 연인과 스페인에 간다면 론다에는 꼭 가봐야 한다’라는 말이 전해지면서 절벽의 도시가 연인의 도시로 불리고 있다.
절벽 위에 세워진 인구 3만 여명의 소도시에 들어섰다. 고원지대라서 공기가 그지없이 맑고 서늘하다. 버스로 2시간 거리의 세비야는 한여름이었는데 늦은 봄 같다. 사통팔달로 난 골목 같은 거리에는 장이 서는 것처럼 관광객들이 북적거린다.
톨레도에서처럼 앞사람을 바로 따라가지 않으면 길을 잃기 십상이라는 주의를 또 듣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데서 쯤은 괜찮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일행 중에 보이지 않는 커플이 생겼다. 연인의 도시에 온 기분으로 데이트를 즐기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그게 아니라서 30여분을 찾아 합류하게 되었다.
론다에 와서 한 번 더 스페인의 색깔을 느끼고 그 진한 냄새를 맡게 될 것 같다. 스페인은 가톨릭국가지만 남부 안달루시아에는 이슬람왕조가 오랜 동안 영화를 누렸던 역사와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유랑민족인 집시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던 웅거지로 그들의 삶과 이야기가 농축된 춤과 노래가 대중화 되어 있다. 이제는 세계인들이 플라맹고의 매력에 빠져 안달루시아를 찾고 있다.
론다는 작지만 안달루시아에서 뿐만 아니라 스페인에서도 손꼽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 발걸음 보다 마음이 더 바빠지고 있다. 행여 시간에 쫒기다 다음 장소로 옮겨가야 하는 일이 생길까봐 조바심이 난다. 온통 바닥이 돌로 깔리고, 하얀 벽에 빨강 지붕의 2,3층 이상의 가옥들이 풍경화처럼 줄지어 모여 있고 그 중앙에는 틀림없이 큰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어디서나 하나님을 찾고 예술을 좋아하는 스페인 사람들의 심성이 두껍게 까려져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우리 일행은 금방 뛰어 들것 같은 기세로 뿔을 고추 세우고 있는 검은 황소의 조형물 바라보면서 발을 멈추었다. 스페인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투우장이 있는 중앙광장이었다. 스페인에서 투우는 고대 농업의 풍요를 위해 소를 제물로 바치는 종교의식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소는 자연이고 투우사는 인간으로,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려는 의도에서 투우가 발전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투우는 카포테라라는 붉은 천을 들고 거만스러운 자세로 경직된 춤을 추듯이 하는 동작으로 바뀐 게 현대 스페인의 투우다. 그 시작이 론다 시가지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6천석 규모의 투우장이라는 것이다.
18세기의 투우사 프란치스코 로메로가 근대 우투의 창시자다. 그의 손자 페드로 로메로는 5천 마리 이상의 소와 대결하여 승리한 전설적인 투우사가 되었다. 1785년 제1회 투우대회가 론다에서 개최되므로 스페인 전역으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매년 9월4일 열리는 론다의 투우장에는 6청명을 수용하는 좌석이 일찍 암치 매진되어 초만원인 상태에서 투우가 열린다고 한다. 6명의 투우사와 6마리의 검은 소가 대결하는데 투우사가 다치는 경우도 있지만 희생된 소는 비싼 값으로 팔려서 스테이크가 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소를 자연으로 보는 스페인 사람들의 사고와 정서가 투우를 즐기면서 관광 상품화 하는 것 같다. 근래 동물애호가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 투우도 이전 같이 자주 열리지 않고 아예 금하는 지역도 있고 축구가 없을 때만 열린다고 한다.
연인의 도시 론다의 상징은 누에보 다리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려는 높이 98m의 협곡에 다리를 놓으려고 1751년에 시작하여 42년이 걸려서 완공했다. 튼튼하게 절묘하게 지어진 누에보 다리는 투우장과 더불어 론다의 명물로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정없이 사로잡으면서 감동을 주는 역사의 명물이었다.
내가 론다에서 찾아보고 싶은 것은 투우장과 누에보 다리보다는 헤밍웨이의 흔적이었다. 할리우드의 대스타 켈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을 주연으로 1943년에 제작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는 많은 영화팬들의 사랑 속에 간직된 명작이다. 그 영화 스토리의 현장이 론다며 영화의 배경이 인근 바위산들과 계곡들이여서 아련한 화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헤밍웨이에 대한 것이 어디에 있나 살피다가 그의 흉상이 있다는 투우장 앞으로 갔다. 미국 소설가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을 썼다는 기록이 적혀있다. 기념사진을 찍고 누에보 다리로 다시 돌아가 영화중의 마지막 장면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 장소에서 커피를 마셨다. 생명의 은인 로베르토를 애타게 부르며 절규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떠올리며 짤막하게 해준 영화해설에 감동되어 지인 장목사가 누에보 다리 옆의 최상급 레스토랑에서 고급 와인을 곁들인 점심을 샀다. 아쉬운 마음으로 론다를 떠나면서 다음 여행지에 익숙한 기사로 버스까지 교체되었다. 지금까지 매일 아침저녁으로 17명의 무거운 가방을 싣고 내려주면서 수고한 젊은 기사는 회사의 지시에 따라 남프랑스에 있는 관광객들을 태우러갔다. 우리는 새로 맞이한 나이가 더 들어 뵈는 기사와 인사를 하고 역시 시설이 괜찮은 대형버스에 넉넉하게 자리를 잡고 그라나다로 향했다. 2016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