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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12월27일 00시05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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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룡산 이옥순[필명:이지연]남편을 기절 시킨 여자
저는 남편을 기절시킨 적이 있습니다. 한 삼 십년 전쯤 일입니다.
남편은 늘 나한테 잔소리를 많이 듣는 편이었습니다. 거의 매일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지요 성격은 어찌나 급한지 외출에서 돌아오면 신발 한 쪽은 마당 한가운데 또 한쪽은 마루 밑에 쳐 박히곤 했었답니다. 어떤 날은 출근할 때 신발 한쪽 찾느라 한참씩이나 수선을 피우곤 했지요. 남편은 또 대충 털털한 성격이라 자주 씻으라는 잔소리까지, 나는 잔소리 목록이 많았습니다.
내가 입 아프게 잔소리해도 효과는 별로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남편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거울을 자주 보며 깔끔을 떨고 점잖아진 척을 하구요. 당시에는 휴대폰이 없었고 삐삐를 사용할 때인데 삐삐가 오면 꼭 밖에 나가 공중전화를 이용하고 집에서는 전화를 쓰지 않았습니다. 또 숙직을 사흘이 멀다 하고 합니다. 내가 무슨 숙직을 그리 자주 하냐고 따져 물을 때마다 직장동료가 집안일이 생겨서 대신했다고 합니다. 나는 속으로는 의심이 갔지만 그렇다고 남편 직장에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왠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고 남편 체면도 있고 해서 그냥 참아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 ‘의심’이란 씨앗이 심어졌는지 자꾸자꾸 의심이 자랍니다. 나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고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이 인간이 분명 바람이 난 거야! 배우자의 바람과 바퀴벌레는 봤을 때 바로 잡으라고 했어.”
나는 이렇게 결정지어 놓고,
“이 인간들 잡히기만 해봐라. 얼굴을 긴 손톱으로 확 긁어 버릴 거야!”
그때부터 내 머리 속은 상상의 탑이 쌓여서 머리가 터져 나갈 것만 같았습니다. 하루 종일 머릿속은 그런 생각뿐이었습니다.
“아니야! 섣불리 건드리면 나만 불리해! 현장을 잡아서 꼼짝 못하게 직격탄을 날려버려야지! 이 인간 두고 보자!”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현장을 잡을 때까지는 침착하게 참기로 하고 스스로 마음을 또닥였습니다. 계속 쓸데없는 핑계로 늦게 들어오는 날과 안 들어오는 날이 많았지만 일을 그르칠세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잘 대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현장을 잡을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여자들은 참 무섭습니다.
침착하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심증은 가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으니 속 시원하게 따지지도 못하고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숙직이라 못 들어온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 오늘이야! 오늘은 기어코 잡고 말 거야!”
나의 머릿속에 반짝 파란 신호등이 켜 졌습니다.
“그래 이런 좋은 방법이...”
이럴 때 여자는 벌레의 촉수만큼이나 예민해 진다고 합니다. 나는 남편의 비상용 자동차 열쇠가 생각났습니다. 집안에 보관해 두었던 남편의 비상용 자동차 열쇠를 찾아 들고 무조건 남편이 숙직하는 사무실로 달려갔습니다.
남편의 차는 사무실 앞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다행이 약간 어두운 곳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당시 남편의 승용차는 7인승 훼미리라는 차종이었습니다. 맨 뒤 칸은 보조의자가 있어 사람이 탈수도 있고 의자를 접으면 짐을 실을 수도 있는 칸입니다. 나는 열쇠로 차문을 열고 맨 뒤 칸으로 갔습니다. 뒤 칸에 숨어 있다가 혹시라도 남편이 숙직하다가 밤에 어디로 가면 현장을 잡을 생각이었습니다.
4월초의 밤공기는 추웠습니다. 보조의자에는 얇은 군인 담요가 하나 있었습니다. 나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의자에 납작 엎드려 숨을 죽이고 오직 사무실 현관문 쪽만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기어코 현장을 잡을 거라는 확신으로 추운 밤공기를 참아가며 한참 시간이 흘렀습니다. 대충 밤 열시쯤 된 것 같았습니다.
이때! 나의 예상대로 사무실 현관문이 삐걱 열리더니 남편이 나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멀리서 봐도 분명 남편의 모습이었습니다. 추운데 기다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이제 남편이 차를 몰고 그 여자와의 밀회 장소로 간다면 나는 현장을 잡는 일은 식은 죽 먹기가 될 것입니다.
“너 네들 오늘 딱 걸렸어! 잡히기만 해봐라! 확! 그냥 다 죽었어!"
나는 벌써 현장 상황에 흥분되어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현장을 잡으면 어떡하지? 이혼을 해야 하나?”
별별 상상을 하는 사이 남편은 자동차가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왔습니다. 나는 긴장감에 숨이 멎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펼쳐질 현장 상황에 머릿속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어서 운전석 문을 열고 차가 출발하기를 초조히 기다릴 뿐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남편은 운전석을 지나 내가 숨어 있는 뒤쪽으로 성큼성큼 다가 왔습니다. 남편의 발자국 소리 만큼이나 내 가슴도 쿵쾅거렸습니다. 어둠속 발자국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리기 시작 했습니다. 머릿속은 다시 다른 방향으로 복잡해지기 시작 했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내 생각대로라면 운전석으로 가서 차를 몰고 그 여자를 만나러 가야 되는데, 왜 뒤쪽으로 오는 거야?’ 나는 몸을 더 납작 엎드리고 숨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남편의 발자국 소리는 내가 숨어있는 맨 뒷문 바로 앞에 시커먼 그림자를 드리우고 우뚝 멈추어 섰습니다. 갑자기 내 머릿속은 풀어진 실타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머릿속을 정리할 사이도 없이
‘찰깍!’
열쇠 돌리는 소리와 함께 뒷문이 삐끔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또 웬일입니까!”
삐끔 열린 어두운 차속으로 남편의 팔이 쑥 들어 왔습니다. 남편의 손은 내가 앉아있는 의자 바로 앞으로 쑥 들어 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내 머릿속은 이미 방향을 잃었고 어쩔 줄 몰라 잠시 당황하다 순간 반짝!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나는 차안으로 쑥 들어온 남편의 손을 두 손으로 확 잡아 버렸습니다.
순간 남편은
“으 ~~ 아 ~~ 아 ~~ 아 ~~ 악!!! ~~”
소리를 벼락 같이 지르며 뒤로 벌렁 나자빠지고 말았습니다. 비명소리는 주차장 바로 옆 작은 동산까지 삼킬 듯이 울렸습니다. 비명소리에 놀라 같이 숙직하던 직원들이 뛰어나와 눈이 휘둥그레 졌습니다. 나도 남편의 비명소리에 놀라 기절할 뻔했습니다. 뛰어 나왔던 직원들은 나자빠진 남편과 담요를 뒤집어쓴 내 모습을 번갈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에구! 내가 무슨 일을 ...”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잠시 후 남편은 겨우 정신을 차렸지만 이상한 분위기에 토끼눈을 하고 있는 직원들에게는 나도 남편도 뭐라고 설명 할 수도 없고 참으로 민망할 뿐이 었습니다. 직원들은 우리 두 사람 얼굴을 번갈아 살피더니 어정쩡한 발걸음으로 슬금슬금 들어갔습니다. 나는 그 동안 죽일 듯이 벼르던 마음은 다 어디로 가고 남편이 놀라 나자빠지던 모습에 그만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아직도 힘없는 다리로 서서 할 말을 잃고 어이없어 눈만 멀뚱거립니다.
그런데 남편은 왜 하필 그 시간에 어두운 차안에 손만 들이 밀었던 것일까요? 알고 보니, 남편은 차안에 두고 먹고 있던 한약을 가지러 나왔던 것이었습니다. 한약 박스는 내가 숨어있는 맨 뒤 칸 보조의자 바로 앞에 손만 넣으면 잡히는 곳에 있었습니다.
혼자 쓴 소설 속에 갇혀 쓸데없는 상상의 나래를 펴고 남편을 의심하다가 결국 망신만 당한 나는 그 시간부터 꼬리를 내리고 마음을 비우기로 했습니다. 숙직을 자주 한다고 해도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도 믿어 주기로 했습니다.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남편이 퇴직할 때까지 사무실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그 때 직원들에게 뭐라고 설명 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그 그때 일을 생각하면 민망하기도 하고 웃음도 나옵니다.
첫댓글 이 옥순님! 이 글을 동성커피 같은 공모에 응모해 볼 걸 그랬어요.
수필은 일단 스토리가 있어야 좋찮아요. 또 읽어도 너무 재미있어요. 잘 썼습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