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
본문: 로마서 12장 1~2절
설교를 시작하면서 : 예배의 정의를 다시 묻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매주 주일이 되면 이 자리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깔끔한 옷을 입고, 찬양을 부르고, 간절히 기도하며, 준비한 예물을 드립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드리고 있는 이 시간이 예배의 전부일까요?
이 한 시간의 의식이 끝나고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의 예배도 함께 끝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이 기록된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입니다.
바울은 1장부터 11장까지 거대한 복음의 진리를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죄에서 구원을 받았는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어떤 구원을 주었는지를 깊이 있게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12장 1절에 이르러 분위기가 완전히 전환됩니다.
바울은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12장을 시작합니다.
이 ‘그러므로’는 엄청난 무게를 가진 단어입니다.
“너희가 이 위대한 구원의 은혜를 받았으니,
‘그러므로’ 이제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강력한 청구서와 같습니다.
바울이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요구한 삶의 첫 단계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그런데 그 예배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요일 한 시간의 종교 의식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고 명령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짜 예배, 능력이 있는 예배가 무엇인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1: 산 제물로 드려라 — 삶이 곧 예배다.
먼저 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바울은 우리의 ‘몸’을 드리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몸’은 단순히 살과 뼈로 된 육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 우리의 행동, 시간, 물질, 인간관계 등 ‘나의 모든 삶의 영역’을 뜻합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양이나 소를 가져와 목을 베고, 피를 쏟고, 제단 위에서 불태워 드렸습니다.
그것은 ‘죽은 제물’이었습니다.
제물은 죽어야만 제 기능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에게 어떤 제물이 되라고 합니까?
‘산 제물(Living Sacrifice)’이 되라고 합니다.
이것은 모순적인 말입니다.
제물은 죽어야 하는데 살아있으라니요?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살아있는 매일의 삶 속에서 나를 죽여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의미합니다.
교회 안에서 거룩한 목소리로 찬양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가족들을 향해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그 순간이 바로 산 제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일터에서 남을 속이지 않고 성실하게 땀 흘려 일하는 그 순간이 산 제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우리는 흔히 주일 한 시간을 드리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주일에 와서 회개 눈물 한 방울 흘리면 면죄부를 받았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일 예배당 안에만 갇혀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월요일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의 화요일 출근길을, 목요일의 가정생활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나의 눈과 입과 발이 움직이는 모든 삶의 자리가 하나님이 받으실 제단입니다.
여러분의 일주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려지고 있습니까?
본론 2: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 가치관의 싸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삶을 산 제물로 드릴 수 있을까요?
2절 상반절에서 바울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여기서 ‘이 세대’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이 세상의 풍조와 가치관을 말합니다.
‘본받지 말라’는 것은 세상의 틀에 너 자신을 끼워 맞추지 말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이 세대의 가치관은 명확합니다.
돈이 최고라는 물질만능주의입니다.
내가 주인이라는 개인주의와 쾌락주의입니다.
남을 밟고서라도 올라가야 성공한다는 무한경쟁주의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돈이 있어야 대접받아. 네가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해.”
만약 우리가 이 소리에 동조하고 똑같은 가치관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물고기가 바닷속에 살지만 온몸에 소금기가 배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세상 한복판에 살면서도 세상의 죄악과 가치관에 물들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이 “네 행복을 위해 돈을 쫓으라”고 할 때,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웃을 사랑하겠다”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유행과 흐름에 아무 생각 없이 휩쓸려 가지 마십시오.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산 제물의 삶입니다.
본론 3: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 내면의 개혁
세상을 본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게 일어나야 할 본질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2절 중반절입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행동만 억지로 바꾸는 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겉모습만 흉내 내는 바리새인 같은 종교인은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진짜 변화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마음의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이 바뀌고 삶이 바뀝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까?
내 힘과 의지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내 마음에 채울 때 우리의 생각의 틀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돈을 볼 때, 성공을 볼 때, 고난을 볼 때 세상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영적 시각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누에고치가 오랜 기다림 끝에 껍질을 찢고 아름다운 나비로 ‘변화’(Metamorphosis)하는 것처럼,
말씀과 성령 안에서 우리의 속사람이 완전히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결론 및 적용: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라.
결론적으로 우리가 변화를 받아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가 2절 하반절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예배자는 삶의 매 순간마다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지금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무엇입니까?”
가정에서 배우자와 갈등이 생겼을 때,
내 혈기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는 것입니다.
재정적인 선택을 해야 할 때, 내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진짜 예배는 주일 아침의 거룩한 의식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참된 예배는 주일 예배당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그 순간부터 진짜 시작됩니다.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의 직장,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인간관계의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제단입니다.
이번 한 주간,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말씀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의 하루하루를 하나님이 정말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올려드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 적용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예배를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일 한 시간의 종교적 의무감에 갇혀 있던 우리의 좁은 신앙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일부터 시작되는 월요일의 삶 속에서 내 몸을, 내 시간을, 내 마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게 하옵소서.
세상의 가치관에 흔들리지 않도록 날마다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