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이야기 ④
그림과 이야기가 얽히고 섥힌 12월 비 (雨)
12월은 비(雨)이다. 일본에서는 11월에 놓는다. 끗에는 제비가, 광에는 오노노 미치카제(小野道風)가 그려져 있다. 쌍피의 검은 색은 라쇼몬(羅生門)이라고 하며 저승으로 가는 문을 말한다.
비광에 얽힌 얘기기를 보면 갓을 쓴 사람은 헤이안(平安)시대의 일본의 3대 서예가 중 한 사람인 오노도후(おのどうふう、小野道風, 도후/道風는 음 읽기이고, 뜻 읽기로 미치카제)를 그린 것이다. 그는 비가 내리던 어느 날, 글씨 공부가 진척되지 않자 아예 붓을 꺾고 방을 나섰다. 답답한 마음에 이리저리 거닐던 중 버드나무 아래서 버드나무 가지에 뛰어 오르려고 계속 미끄러지면서도 애쓰는 개구리를 보았다. 몇 번이고 실패를 거듭하던 끝에, 드디어 나뭇가지 오르기에 성공하는 개구리를 지켜보던 그는 노력의 중요성을 크게 깨닫고, 다시 서예공부를 계속하여 후에 유명한 서예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메이지시대 이전에 그려졌던 인물은 바로 ‘사다구로(定九郎)’라는 산적이었다. 산적이 그려졌던 11월의 광(光)패는 메이지 유신과 함께 교육적인 차원에서 ‘오노도후’로 바뀌었다. 그리고 버드나무와 개구리는 11월이나 12월이 아니라 봄에 어울리는 것이다. 그래서 12월 화투장의 그림은 여러 이야기가 섞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두건은 갓으로 바뀌고 게다(下駄)는 고무신으로 바꾸었다. 또 우리나라의 화투에서 만 볼 수 있는 광(光)의 표시 위치도 다른 광과는 달리 이 비광 만큼은 위쪽에 광을 표시했다. 그 이유는 그림에 있는 개구리는 매사를 거꾸로 한다는 우리의 옛이야기에 나오는 청개구리를 연상하여 광의 위치도 다른 광과는 달리 위쪽에 그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열 끗’에 나오는 빨간 머리와 길고 빨간 꼬리를 가진 새가 있는데 이 새는 제비로도 보이고 꿩(일본의 국조)으로도 보인다. 꿩이라면 장끼이다. 하지만 버드나무와 꿩은 어울리지 않고 제비와는 어울린다. 철새인 제비는 봄의 상징이어서 11월에 배치 된 것도 헷갈리게 하므로 12월의 비 그림은 여러 번 바뀐 것이다.
뻘건 바탕에 새까만 문짝 두 개가 그려진 비 껍데기는 기분 나쁘게 보인다. 이 문양은 저승 세계이며 번개가 떨어지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라쇼몬쪽에도 오니(鬼)의 발, 오니의 태고(太鼓)가 그려져 있으나, 한국 화투에서는 완전히 검은색으로 그려져 보이지 않는다. 라쇼몬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竜之介)의 소설제목이기도 하다. 이 문에는 시체들이 즐비하고 귀신들이 우글거리는 으스스한 곳인데 쏟아지는 빗줄기와 함께 번쩍이는 번개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고스톱과 비슷한 일본의 ‘하치하치(はちはち, 八八)’란 화투게임에서는 11월의 모든 것을 피(皮)로 바꾸어 쓸 수가 있다는데, 이는 온갖 귀신이 그려져 있어 도깨비처럼 수시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3.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