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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 그리고 물러섬
사회과학으로 먹고 사는 데까지, 어찌어찌 하다 보니 겨우겨우 왔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도와주거나 챙겨주면서 살 형편은 아니고, 나야 워낙 돈을 안 쓰니까.
내 책을 사는 많은 독자들은, 아마 나보다 형편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평소에 생각한다. 그래서 뭔가 화려한 게 가지고 싶을 때가 있더라도, 그냥 세 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보다는 더 호사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흥행으로만 치면, 내가 쓰는 책들은 이제는 출판사의 손익 분기점들은 넘어간다.
직장 시절부터 흥행이라는 표현을 좋아했었는데, 가끔 내 이력에 따라붙는 국제 협상가 시절의 경력들을 가끔 보게 될 것이다. 그 시절에 나는 협상과 흥행, 두 가지를 동시에 했었다.
결국 내가 많은 일을 결정할 수 있던 것은, 내가 최고의 흥행 성적을 냈었기 때문일 것 같다.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
기후변화협약 회의에 처음 간 것은, 99년 6월 본 회의였다. 그 전에는 현대에 있었고, 쿄토 회의에도 갈 기회가 되었는데, 난 그걸 상사한테 양보했다. 현대 시절에도, 나는 외국 갈 기회가 워낙 맣았으니까, 꼭 내가 가지 않아도 되는 회의 특히 미국 출장 건은 내 상사들한테 양보를 했다. 그 정도는 해야, 상사 말 전혀 듣지 않는 나 같은 깡패가 윗사람들의 독사 눈을 피하면서 살 수 있으니까.
하여간 그 때 본에 가보니까, 다른 나라는 부스를 차려놓고 홍보물 같은 걸 전시하는데, 특히 일본의 NEDO라는 회사가 잘 해놓고 있었다. NEDO는 KEMCO, 에너지관리공단과 경쟁 중인 일본 정부 기관이다. 프랑스의 NOVEM 등, 요런 기관들과 경쟁 중.
그 회의 때, 첫 정부 발언을 했었는데, 당시 총리실에 있던 과장 양반이, 불어로 발표하라고 해서 약간은 유명해진 불어 연설 사건이 그 때 벌어졌다. 한국이 발언해도 아무도 안 보는데, 불어로 얘기하니까, 갑자기 졸던 잠들 깨고, 후다닥 통역기를 끼어야 했던. 뭐, 별 내용은 없고, 한국도 니들만큼은 한다, 그런 얘기였는데, 조선에서 불어로 얘기하는 넘이 대표로 나오기 시작한다고, 짧은 연설이었는데, 신문에 나왔다. 한국 대표 발언이 외국 신문에 나온 게 거의 처음이라고, 하여간 약간의 발언권이 생겼다.
그 해 10월에 열린 총회에서는 나도 부스를 준비해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기후변화협약에서의 한국 정부 부스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에, 우리는 뭔가 했던 경력이 없어서, 진짜 부스 하나 따느라고 애 좀 먹었다.
그 때 내가 동원했던 첫 번째 무기가, 낚시대 만드는 회사에 부탁해서 약간 입체적으로 전시물을 놓을 수 있는 조립식 전시대.
그 해에 그게 대 히트를 치면서, 다음 해부터는 어지간하면 다른 나라도 그런 걸 준비해왔었다. 그 다음 해에는, 기후변화협약 정신에는 잘 안 맞지만, 어쨌든 우리는 개도국이니까.
시침 뚝 떼고 조명 장치를 달았다. 아마 헤이그였나, 그 해에도 네도와 앞 자리에 있었는데, 영업에 성공을 했다.
그렇게 몇 년, 네도에서 늘상 내가 했던 방식을 다음 해에 도입을 했는데, 그 경쟁은 내가 협상을 그만두게 된 인도 뉴델리까지 몇 년을 계속 갔고, 내가 유럽의 다른 선진 국가들에게는 몰라도, 네도한테게는 안 지겠다, 그런 생각이 좀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실상 항명 사건. 일이 커지다보니, 실무 직원 말고, 과장 한 명을 더 데리고 갔으면 했는데, 얘기는 다 끝났는데 이사장이 외국에서 돈 너무 많이 쓴다고 결재를 안 해주는 거라.
안 해주면 못 나간다고, 이사장 앞에 앉아서 버팅겼는데, 공무원 실장까지 지낸 점쟎은 양반 입에서 진짜 험악한 소리가 막.
“이거 안 해주시면, 저는 못 나갑니다.”
나도 막 개겼다. 그냥 이사장실 뒤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버텼고, 내 뒤로 팀장 몇 명이 더 결제를 받고 나갔다. 결국 결재를 받아왔는데, 나도 진짜 똘아이… 아마 그 양반 좀 질렸던 것 같다.
처장들이 나중에 막 해명을 해주었는데, 걔가 현대 출신이예요, 거기 좀 무식하쟎아요… 아, 그렇구나.
사십분 남짓 벌어졌던 이 짧은 해피닝은, 뒤에 달린 스토리가 아주 많고, 나중에는 전설적인 얘기가 되었다. 나중에 이 양반이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되었는데, 총리 만날 때마다, 거기 똑똑한 직원 한 명 가 있다고… 이한동 총리와 좀 편하게 뭔가 해볼 수 있는 그런 일들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 이 얘기의 뒷 스토리가 아주 많다. 하여간 얌전 빼는 공기업 직원들 중에서, 아주 골 때리는 젊은 박사가 한 명 들어왔다는, 뒷얘기가 아주 무성한 사건이 되었다.
두 번째 기억나는 사건은 마라케쉬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상당히 중요한 협상이었는데, 내가 EGTT라고 부르는 당시에는 좀 중요했던 새로운 위원회에 아시아 대표로 선발되는, 협상 가기 전에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고, 갑자기 정책분과 의장이 된 것도 그 회의였다. 협상 경력으로는, 그 때가 절정기였던 것 같다. 물론 그 뒤에 더 높은 자리에 가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전기가 마라카쉬에서 생겼다. 어쨌든 그건 다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고, 나는 최고로 딜럭스하게, 이번에야말로 네도에게 당신들이 지금 누구랑 상대하고 있는지, 똑똑히 보여주겠다고 신병기를 준비했던 그런 회의였다.
아, 근데 이게 회의시작했는데도 회의장에 배달이 안 되어있네… 아프리카에서 뭔가 현지에서 해결하자면 답답해서 디져버린다. 전시물은, 통관이 안되어서 그냥 잡혀 있었다. 다행히 모로코가 불어를 썼다. 2주간 회의를 하는데, 결국 통관에 걸려있던 전시물을 풀어내서 그 다음날 오후에 회의장에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코트라의 전격적인 협조 아래, 현지 한국업체 사장들의 도움을 받고, 과장 한 명을 통관장까지 보내서, 사막을 뚫고 들고 온. 조그만 전시 부스 하나 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가끔 생각해보면 나도 너무 무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스토리는 결국 비극이 되었다. 환경부 장관이 왔다가 기분이 확 상해서, 현장에서 국장, 과장, 다 보직해임시켜 버렸다. 뭐, 나중에는 어찌어찌해서 윗자리까지들 올라갔는데, 미안해서 아주 죽는 줄 알았다.
어쨌든 나와 네도 사이의 이 몇 년에 걸친 부스 홍보전이, 오랫동안 협상한 사람들에게는 잔잔한 재밋거리였고, 결국 일본에 초청받아서 놀러 가게 되는. 그 때는 호숫가에 있는 진짜 특급 호텔에서, 고위급 대접 받고, 와, 일본 사람들 접대 한 번 끝내주는군. 저속하지 않고, 비싸지 않으면서도 정성이 느껴지는, 뭐 그런 것였다. 그걸 지켜보던 미국 국무성 등 미국 공무원들이, 미국 공무원으로 같이 일해보자고 했었는데, 그럴 수는 없고.
하여간 그 시절에는 나도 국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이었고, DJ 시절의 정부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좀 했던 것 같다. 한나라당 쪽 공무원들은, DJ 정부에서 뭘 그렇게 열심히 하려고 하느냐, 적당히 하다가 정권 바뀌면 그 때 한 자리해라, 그런 얘기들을 많이 했었다.
아 네, 고맙습니다, 생각해주셔서…
그러고 그냥 넘어갔지만, 난 DJ 정권의 성공을 정말 현장에서 바랬었다.
내가 들인 돈은 큰 돈은 아니었는데, 그 대신 나는 내가 하자고 하면 진짜로 지구 끝까지 따라가서라도 부스를 지키려고 했던 팀원들이 있었고, 내가 한다고 하면 꼴통임에는 분명하지만 흥행 성적은 올릴 것이라고 믿어주던 좋은 상사들이 있었다.
공직에서 그만둔지, 꽤 되는데, 그 때의 파트너들이나 상사들과, 요즘은 철에 한 번씩은 만난다. 나름 자기들 인생에서, 왜 하는지는 모르지만 재미는 있었던 시간이라고 기억하나 보다.
내가 벌렸던 일 중에서, 실패한 일들도 종종 된다. 늘 성공만 했던 건 아니고.
일이라는 게 하다 보면 잘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는데, 나는 좀 재밌게 그리고 피가 끓도록 승부욕을 한 번 불태워볼 수 있게,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눈에 띄는 성공이 생기면, 적도 같이 생긴다. 당시에는 참 재밌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다 보니 적도 많이 생겼다.
당시 에너지 분야의 개혁프로그램들 중 일부는 한나라당 쪽 사람들 손에서 직접 나온 거고, 일부는 내 손에서 나온 거다. 뭐든지, 한 쪽을 올리면 또 다른 쪽에서는 문제가 생긴다.
요즘 내 몸에 밴, 더 할 수 있어도 이만하면 되었다 싶으면 적당히 손 털고 뒤로 물러나는 습관은 그 때 생겼다.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더 하면 어디서 날라오는지도 모르는 칼을 맞고 디지는 수가 있다.
탑 스타, 최고의 흥행, 맨 앞의 반열, 그게 좀 허무한 거고, 그러다 보면 언제 쥐도 새도 모르게 날라갈지도 모른다.
그러니 열심히는 하는데, 몇 성과는 없는, 그래서 진짜 위협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상황.
지금의 내 상황이 딱 그 정도인데, 죽지 않으려면 지금 정도 상황에서 더 앞으로 나가면 안된다고, 나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내가 살아보니, 적들의 맹렬한 공격에 의하여 전사,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
형식은 적들의 침공에 의하여 방어선 괘멸,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밀고자나 조력자는, 늘 최측근에 있는 사람이다.
곽노현 사건도, 그럴 거라고 본다. 적들의 맹렬한 공격에 의해서 사망, 그러면 영광스럽기라도 하지.
주변에서 공격이 시작되면, 보통은 그런 전사 처리되는 영웅적 사망이 아니라, 잡범 아니면 파렴치범으로 몰리게 된다. 그 정도로 상황을 디자인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편 그것도 최측근 외에는 없다. 아무런 증거나 상황에 대한 이해는 없지만, 곽노현의 경우도 그렇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좀 해본다.
자, 마무리 삼아서 흥행에 대한 얘기.
책도 일종의 흥행인데, 데뷔를 생각하거나 처음 움직이려고 할 때에는, 정말 최소한이라도 어느 정도는 흥행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잔뜩 눌려 있을 것이다. 뭐, 당연하지.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니까.
두 가지 얘기만 미리 하고 싶다.
흥행이라는 게 하려고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사회과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애당초 흥행과는 거리가 먼 분야라서, 그냥 즐긴다고 생각하시라는.
길게 가야 하는 길에는, 게다가 자신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할 때에는, 편하게 생각하고 즐긴다고 맘 먹는 게 장땡이다.
그리고 이 중의 몇 명에게는 그런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맨 앞에 서게 되고, 정상에 서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내가 그렇게 보는 이유는, 다음 기회에.)
그 때 증권가에서 유행하는 얘기 하나를…
목까지만 먹어라…
머리 끝 즉 정수리까지 먹으려고 하다가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많아서, 목이라고 생각되면 지체없이 팔라고 하는 교훈이 이런 것인데…
흥행은 과하지 않게, 이게 최고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 세상의 이치 자체가 그런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히딩크야 워낙 상인으로 유명한 네달란드 사람이라서 그런 거고,
이만하면 되었다고 물러섬을 배우지 못하고, 끝까지 나는 아직 배고프다, 그랬다가는.
양만춘이 당태종의 눈까리를 맞춘 것처럼, 언제 어떤 화살을 맞고 한 방에 갈지도 모른다.
지금은 이 얘기가 너무 멀게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고지가 저긴데” 하면서 정상을 향해 달려가다가 지금 내가 하는 이 말이 생각날지도 모를 것이라서,
나는 얘기해줬으니까, 머리 초반에 얘기를 하는 거다.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이걸 경구로 삼지 말고 “이미 공이 높았으니 그만 물러섬이 어떤가”라는 양만춘이 당태종에게 보낸 편지 문구를 생각하시기 바란다.
자신이 앞에 서서,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는, 부모도 배우자도, 친구도, 아무도 말리지 못하게 된다.
사회과학 책 역시 기본은 흥행이라서, 아마 1년 동안 나는 흥행에 관한 얘기, 사람들의 시선을 모을 수 있는 방법 혹은 앞에서 연설하는 법, 이런 얘기만 할 것이다. 그거야 시작할 때는 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그 순간을 지나면, 언젠가는 한 풀 스스로 꺾고, ‘가늘고 길게’를 생각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영화 <황산벌>에서 김유신이 화랑들을 전장터에서 화살받이로 내몰면서 이렇게 말한다.
“꽃은 화려할 때 지는기야!”
여기에서 습작을 시작하는 분들, 미안하지만 화려하게 피어난 화랑은 이미 아니니, 늘 최선을 다하지만, 영업도 최고의 결과가 나와야 된다고 생각하시지는 마시길 부탁드린다.
내 주변에, 뭔가 더 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는 사람들, 엄청 많다.
뭐도 해보고, 뭐도 해보고…
그 때마다 내가 대답하는 게,
살아서 볼 수 있는 영광은 어려서 이미 다 봤어요, 제가 이제 와서 무슨 영광을 더 보겠다고.
물론 더 큰 영광을 볼 수만 있다면, why not?, 여전히 내 생각에 그런 욕심도 좀 있지만, 살다 보느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역발산이나 기개세라, 항우도 세상을 정리하지 못했다.
저자의 역할은 영웅이 아니라, 달을 가리키는 손에 불과하다. 그 달을 붙들어 매다가 사람들에게 주는 일, 사람들을 몽창 달로 데리고 가는 일, 그런 건 못한다.
달을 가리키고, 몇 사람이라도, 아 저기 달이 있구나, 그랬으면 충분한 거다. 아닌가?
첫댓글 "할아버지 재밌는 얘기 해주세요."
"옛다."
우샘은 이야기꾼인가요?ㅋㅋ
맞쥬~ 달을 보는 사람 몇,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사람 몇, 달을 보랬는데 그 너머까지 보는 사람 몇..
같은 달을 보지만 서로 다른 달을 생각하더라도, 같이 즐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쥬~
곽씨 아저씨는 아마 NIS에서 털었을 거란 이야기가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