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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어린사람입니다.
벌써 마지막으로 올리는 순례일지네요…다시 읽어보면서 천천히 써내려가니...아무래도 좀 제정신이 아니었나 봅니다.
이해가 안되고 이상하시더라도 그러려니 예쁜 눈으로 봐주세요~^^
6.4. 해
순례길에 첫발을 내디딘 날 어김없이 마음 한구석이 설레어 왔다. 늘 그렇듯 배움터 식구들에게 기운 넘치는 배웅을 받으며 논산으로 향했다. 웬일인가. 평탄하게 도착했다. 아무런 긴장감도 없었고 편히 잘 수 있었다. 깨어나니 전북 완주. 아파트가 매우 많고 높은 건물도 많아서 큰 도시구나. 생각이 들어 찾아봤더니 군이었다. 그렇게 많은 도시를 지나고 논산에 이르러 야영장에서 텐트를 치고 저녁밥 모심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6월 초. 한창 뜨거울 여름인데도 밤이 빨리 찾아오는 느낌을 받은 날. 그만큼 내 마음이 편안했나 보다. 운명이라는 말에 굉장히 생각이 깊었던 날이다. 텐트 옆에 작은 하천이 있었는데 깨끗한 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물살(물고기)들이 잘 헤엄치고 사는 모습을 보곤 불쌍하단 생각을 했는데. 어째 오히려 깨끗해 보이는 물 쪽에는 물살들이 안 보이고 오염되어 있는 쪽에만 물살들이 보였다. 하나 느낀 것은 내가 이렇게 더럽다, 깨끗하다, 산다, 안 산다. 왈가왈부하며 동정한다는 게 그들에겐 아무짝에 쓸모도 없다는 사실을 저마다 그저 다르게 살아가는 것뿐이다. 멀리서 보면 전부 고만고만하게 살지라도 가까이서 보면 많이들 다르게 산다. 이 세상 모두가 그러하다. 하루에 한 걸음씩 남들은 듣지도 배우지도 못하는 나만의 수업을 한 걸음씩 내디딘다.
6.5. 달
VIA MOTHER!!!
난 이번 순례의 기대감? 같은 게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지혜로운 어른들, 이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내가 무언가에 얽매여 여러 고민이 있을 때 그것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은 엄청난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설령 상대가 내어준 답이 내가 원하는 답변이 아닐지라도. 그 사람에 답변이 내 생각에 전환점이 생긴다. 경이로운 일. 관옥 할아버지와 효선 할머니댁 VIA MOTEHER에 와서 느낀 감정이다. 할아버지의 조언 중 너무 진지하지마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내가 보기에 나는 어떤지 몰라도 꽤 진지했나보다.(내 생각엔 매사가 장난인데…)왜 그랬는지 보다는 어떻게 할지에 시선을 두라고 하셨다. “왜 그랬는지는 너도 몰라서 나한테 질문한 게 아니더냐? 이놈아. 너무 진지하지마. 진지한 척만 해.”라는 말씀이 가장 와닿았다. 왜 그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는 이가 있더래도 이미 일어난 일이기에 왜 그랬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지는 보이는 일에 대해 집중한 것이라서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남 눈치 보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그리고 그것에 대한 책임만 네가 진다면 그러면 된 거야.” 맞다. 내가 책임만 지면 된다.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어도 할아버지를 통해 들으면 어째 좀 다르게 느껴진다. 맛없는 음식도 단숨에 맛있어지는 기분…어찌어찌 하루가 길었다. 작은 음악회도 보고 인생에 있어서 정말 귀한 경험을 한 날이다.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6.6. 불
깊은 곳.
고성으로 도착한 날. 빛나는께서 자그마치 네시간을 가량 운전하시고 드디어 3차 순례 첫 정거장에 고성에 이르렀다. 조금만 산 타고 고개 들면 북한이 보이는 신기한 곳. 이곳을 걸을 거란 생각에 벌써 설렌다. 가보지 못한 길, 그곳이 내가 밟을 길이란 것에 오늘 하루도 감사히 여긴다. 시작과 끝은 이어지는 것 같다. 정반대의 성질을 가졌더라도 시작이 있기에 끝이 있고 끝이 있기에 시작이 있으니 내가 걷는 이 길도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걷기보단 끝이라 생각하며 또 다른 시작을 찾자! 난 마음으로 걸어보고 싶다. 모든 사람은 하루하루 매일 다른 땅, 다른 돌, 다른 길을 밟는데 어째서 모두가 살아가는 이 지구는 늘 똑같이 자전할까 하는 생각에 ‘지구는 참 재미없겠다.’ 생뚱맞은 소리를 해댔다. 헌데 지구는 왜 둥글까?…구석에서 울지 말라고? 아마도 끊임없이 모두가 이어지라고 지구는 둥근 듯하다. 우리는 그런 지구에게 조그마한 성의도 보이지 못하고 있다.
6.7. 물
첫걸음을 내디딘 날. 무언가가 내 발을 인도하듯 빨려 들어가며 걸었다. 가라앉았던 물집들이 부풀어 오르고, 뜨거운 햇볕에 피부는 익어져 가고. 하지만 언제 또 내 몸에 이런 현상이 있겠나 귀한 경험. 솔직히 순례일지를 쓰면서 무엇을 담는 게 좋을지 감이 안 잡힌다. 물론 어디를 갔고, 날씨가 어떻고, 기분이 어땠는지만 적으면 참 쉽다 하지만 그런 내용을 담기엔 이 종이와 나의 하루가 매우 아까웠다. 어찌 됐건 일지가 매우 심오한 건 확실하다 오늘 내게 왔던 특이점. 하루를 마칠 무렵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들이 뿌옇긴 하지만 보일 정도는 떠 있었다. 밤하늘의 별. 아름답지만 무언가 부족하다. 낮 하늘의 별은 더없이 아름답다. 우린 낮의 하늘이 별 때문에 아름다운 줄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은 다들 안다. 그렇지만 어떤 하루는 낮에도 별이 보인다. 내가 몇 대 맞아서 그런 건진 몰라도…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이들…
6.8. 나무
무엇을 하려나 하는 찰나 이미 걷고 있었다. 그렇다 걷는 중이다.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다리가 몹시 아파서인지 새 다리로 바꿔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고통이 엄청난 나머지 걸으면서 드는 생각이 하나도 없었다. 괜히 무안해졌다. 무언가 언제부터 걸으면 생각을 해야 한다고 인식하게 했다. 사실은 그럴 필요가 없는데 그냥 걷는 것도 버거운데 말이다. 잠시 쉬어가다가 웬 참새가 열매를 물고 있었다. 두 개였는데 고 녀석 욕심이 얼마나 많던지 깡충깡충 뛰며 두 개 모두 낑낑대며 옮겼다. 어째 보고선 영 뒤통수가 시원찮았다. 바닷길 걷다가 길가에 자란 풀들을 스치고 걸었는데 잠이 들기 전에도 손끝에서 풀들의 감각이 느껴졌다. 풀잎들이 내 손 위에서 북을 치는 느낌?
풀을 스치던 하루.
6.9. 쇠
길 선생.
내가 걷는, 가는 길이 다른 동무들의 길이 된다는 작은 압박감이라 해야 할까 그런 느낌 때문에 멋진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늘 길만 잘 찾으면 다른 동무들은 별생각 없는 것 같았다. 걸음이 조금 빨랐던 날. 목적지에 생각보다 이르게 도착해서 곧 다가오는 홀로 깊이의 날. 그때 어떻게 하루를 보낼지 여유롭게 고민해보았다. 워낙 해가 강한 날이라 그런지 걸을 때 바닥이 안 보였다. 하얀 보도블록을 걸을 때 묘한 기분. 계속 보다 보니 더위를 먹었는지 그 현상이 매우 아름다웠다. 눈까지 빛이 반사되어 전달 되는 모습. 두 개의 길을 걷는 느낌? 걷는 길과 보는 길이 다른…신기한 경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던 중 웬 파도가 거세게 쳤었다. 바위에 부딪히는데 정말 소리가 컸었다. 그다음엔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잡생각 그만하라는 뜻이었을까…무언가 성을 내는 느낌이었다.
파도가 덮쳐오며…
6. 10. 흙
홀로.
누군가와 같이 걷는다? 홀로 걷는다.
굉장한 차이점 오늘 아침 관옥할아버지의 이오동화에서 한 이야기를 같이 윤독했었는데 내용이 어느 여행자가 부산으로 향하던 중 아무나하고 만나 같이 걷다 헤어지고 걷다 헤어지고 결국 부산으로 향하는 이야기였다. 누군가와 걸을 땐 재밌다. 홀로 걸을 땐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이를 수 있다. 아무래도 그런 거 같다. 남과 같이 가면 목표에 이르지 못한 기분. 이야기에서도 결국은 홀로 부산에 이르렀다. 마무리는 혼자여야 아름답다. 순례라는 것은 다시 돌아가야 순례이니 나도 집으로 돌아갈 땐 혼자 이르면 아름답지 않을까?…
6. 11. 해
지렁이와 노래기.
고양이가 지렁이를 건들자 지렁이는 ‘꿈틀’이라 대답한다. 고양이는 그게 재밌어서 계속 지렁이를 괴롭혔다. 고양이가 노래기를 건들자 노래기는 ‘도르르’라고 대답했다. 동그랗게 말리고는 꿈쩍하지를 않으니 고양이는 죽었나 싶어서 끝내 가버리고 말았다.
노래기가 지렁이에게 말하길 자기처럼 꿈쩍 않고 죽은 척을 하라고 했다. 지렁이는 “살아있는데 어떻게 죽은 척을 해…”그 말에 노래기는 언짢은 말투로 “살아있으니까 죽은 척을 하지…죽어있으면 어떻게 죽은 척을 하니?”라며 지렁이에게 타일렀다. 이 이야기 또한 이오동화에 실려 있는 한 이야기다.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여기 나오는 이 노래기와 지렁이가 조금씩 바꿔주었다. 특히 노래기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매우 당연한 것인데…그걸 인지 못하고 있었다.
웃음이 나온다. 노래기에게 한 방 먹은 기분이라서…
나는 언제나 꿈틀거렸구나.
6. 12. 달
마지막 길 선생. 첫 길 선생 순서는 마지막인 날이었다. 참 애매하다. 길 선생이란 내가 앞장서는 것인 거 만큼 기대 반 걱정 반. 그래도 걷다 보면 자그마치 22km를 넘게 걸어도 항상 목적지까지는 잘 도착한다. 하지만 길 선생은 나랑은 좀 안 맞는 듯 하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의 앞을 걸어간다는 것을 다른 이를 가로 막는다는 것으로 굳혀졌기 때문에 그런지 앞장을 서는 게 영 내키진 않는다. 또한, 내 앞에 아무도 없다는 답답함도 있다. 하지만 좋은 점도 발견했다. 사람이 앞장을 서는 순간 조금이라도 책임감을 짊어지고, 그러므로 길을 더 유심히 보고 내 발걸음에도 집중하게 된다. 길을 잃는 곤란한 상황은 덜 나오는 듯하다. 앞에 아무도 없으니 누군가에 등보단 나의 발을 보면서 걷게 된다. 걸어가는 순서에도 길에서 배우는 것이 다 다름을 새삼 느끼던 하루. 한 주를 배움으로 시작하여 정말 기쁘다.
6. 13. 해
환청? 꿈?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떴다. 이게 웬일인가. 내가 스스로 일어난 거 같지 않았다. 무언가 나를 불렀다. “하진아!” 당연히 순례 동무들은 아니라 했고. 그 누구도 나를 부른 사람은 없었다. 그러면 그냥 꿈이려나? 하곤 별생각 안 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걷던 도중 계속 “하진아!!” 라며 날 불렀던 목소리가 생각나고, 몇 번은 들려왔다. 뭔가 갑자기 들려와서 그런가? 굉장히 놀란 기색이었지만 계속 들으니 짜증이 났다. 아무런 용무도 없이 그냥 내 이름만 외치고 있는단 말이다…귀도 막아보고 노래도 불러보고 이것저것 다 시도해보았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심지어 이제는 “하~~진~아~”라고 부르며 더욱더 성가셔졌다. 도저히 못 참아서 성을 내던 그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나를 불렀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었을 때. 아무래도 꿈에서 들은 게 아닐까? 근데 왜? 대체 왜 꿈에서 들은 목소리를 온종일 더운 날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들어야 하느냔 말이다. 그래도 신기한 마음은 있었다. 단지 귀에서 들리는 게 아닌 뭔가 발에서부터 머릿속까지 전해지는 듯한 그런 느낌의 목소리였다. 또 하나. 걸으면서 던질 질문이 떠올랐다. 너는 어디서 오는 목소리더냐!!
6. 14. 물
꿈 같던 날.
걷는 자세가 문제인 것인지 계속 뒷무릎이 당기면서 아프다. 절뚝절뚝하면서 걷는데도 목적지까지 항상 잘 도착한다. 마치 꿈 같았다. 당장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꿋꿋이 뚜벅뚜벅 걷고 있으니 그 상황이 정말 꿈 같았다. 문득 어제의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 날 부른 소리. 처음엔 그게 꿈에서 들은 소리라고만 생각했는데 오늘 이렇게 내가 걷고 있는 게 꿈 같더라 생각을 하니 반대로 그 목소리가 나를 꿈에서 꺼내려고 하는 목소리 같았다. 어쩌면 꿈 같긴 하다. 이 나이에 다른 이들은 의자에 앉아 칠판을 바라보며 숫자와 알파벳에 시달릴 때 나는 해안 길을 걸으며 수평선을 바라보고 생각에 잠기니…어쩌면 꿈보다 더 꿈 같은 내 일상이다. 이로써 관옥할아버지의 지혜로운 충고대로 Why? 보다는 How? 라는 마음가짐으로 그 목소리를 고민해야겠다. 목소리를 듣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일단 잠을 좀 자야겠다.
6. 15. 나무
배턴터치.
다정이 떠나시고 빛나는이 오시는 날이다. 누가 오고 누가 가냐는 나에게 있어서 그다지 중요하진 않지만, 순례 분위기로 시선을 바꿨을 땐 엄청나게 중요한 것 같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운은 엄청나니까. 며칠 내내 계속 여우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내리지 않았다. 보고 싶었는데…맑은 날 햇볕과 일그러져 내리는 그 물방울들이 엄청 아름다웠다. 그런 날 걷는다면 30km도 거뜬하다!
………취소하겠다.
어찌 됐건 다정이 가시고 빛나는이 오신다하니 벌써 일주일씩이나 지난 건데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정말 금방 지나간 기분. 그렇지만 하루하루는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근데 또 크게 펼치면 짧게 느껴지기도 하고…하루가 길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이게 아닐까…? 나는 보통 하루를 회상하면 그날 무엇을 했는지 떠올린다. 그렇다. 걷기만 했다. 당연히 하루가 길 수밖에…하지만 일주일을 회상할 때 나는 일주일 동안 뭐 했던 자기보단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에 더 집중한다. 그렇다. 오늘은 벽이 있는, 창문이 있는 ‘방’에서 잔다. 굉장히 편안한 상태. 그러니 짧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ㅋㅋ) 물론 다정과 잠시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일주일이 금방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 걸지도 모른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나는 나라는 것.
6. 16. 쇠
산을 넘는다.
그렇다곤 하지만 그냥 오르막길만 올랐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며 유유히…언덕에 올라 저 멀리 능선을 바라보던 찰나. 내리막길이 나왔다. 그냥 내려갔다. 바라이 반겨줘서 순탄하게 잘 내려왔다. 평지가 나오고 꽃가루를 머금고 날아가는 꿀벌들을 서슴 떠올리게 하는 자동차들이 내 옆을 쌩쌩 지나가더니 뒤를 보았다. 초록빛 봉오리가 보인다. 나는 산을 넘었따. 그게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경이로웠다. 그렇게 땀을 흘리며 걷던 도중 또 다시 오르막 만났고, 바람이 반겨주는 대로 내리막을 만난 다음 날아가는 꿀벌들 옆을 걸어갔더니 나는 이미 그 자리에서 산을 넘었다. 단순히 산을 넘는 건 별거 아니다. 걷기만 할 줄 알면, 운전만 할 줄 알면…모두가 넘을 수 있다. 딱 한 가지. 앞서 만났던 오르막, 내리막, 꿀벌들을 못 만날 뿐이다. 그것들은 나만이 만났던 것들이니까. 지금 내가 다시 거기에 가도 못 만난다.
그때의 오르막 햇볕, 내리막 바람, 꿀벌 자동차가 아니니까.
6. 17. 흙
홀로.
걷는 게 생각하기 제일 편한 것 같다. 혼자 있다고 생각을 잘하는 건 절대 아니다. 오늘 내가 그러했으니…정말 생각 없이 지냈다. 정말…모든 일과를 혼자서 짜고 정리해야 하니 더 그랬던 것…책과 친해지고. 하루를 잘 먹고, 잘 자고, 잘 느꼈던 거 같다. 매일 걸으며 생각을 해대니. 한 번쯤 이렇게 슬기로운 바보가 되어 아무 생각 없이 배시시 웃는 날이 되었다.
나는 바보다.
6. 18. 해
아.
무지막지하게 뜨거웠다. 아니, 따가웠다. 내가 누나를 못살게 굴 때 누나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보다…아니 그만큼 강렬했다. 더 나 자신이 언짢았던 것은 배낭이 굉장히 뜨거웠다. 정말이지 흰 타일과 검은 타일이 똑같이 자외선을 받는 곳이면 어느 타일이 뜨거울지는 4학년짜리 내 동생도 알 것인데 나는 그걸 몰랐나 배낭 속은 짙은 어둠만 드리워졌다. 사실 나는 다른 동무들이 눈이 부실까 흰 계열을 피한 것이다!
검은 순례자…이야 멋지다.
바다와도 잘 놀았다. 자연을 그래도 오롯이 잘 느꼈던 날.
6. 19. 달
몸이 적응하는 날.
몹시 힘들다 지금 일지 쓰는 것도 힘들다. 그래도 어떻게든 손으로 연필을 쥐고 적어본다. 해돋이를 처음으로 봤다. 해님이 반겨 주었지만, 상당히 빛이 강해서 많이 보진 못했다. 그렇게 해파랑길 선. 파랑 선을 따라 계속 걸었다. 매일매일 먹는 라면처럼 파란색이 질렸다. 내 수건이 파란색인데 그걸 볼 때마다 걷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바람에 날리는 종잇장 같은 하루를 걷고 있는데 어느새 나는 숙소에 앉아 있었다. 와 정말이지 하루를 느끼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처음 깨달았다. 일상에, 그냥 당연한 것에 엄청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인상적인 하루, 볕이 센 하루, 여러 현상이 나를 일깨워 주었다.
6. 20. 불
이 일지를 읽는 모두가 편안한 하루를 보내길.
질문.
오늘까지 길 선생을 맡은 나는 순례단, 그리고 나 자신에게 던질 질문을 정해야 했었다. 하지만 까먹었다. 뒤늦게라도 빛나는께서 던져주셨다.(감사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고민이 되는? 그런 적이 한번씩은 있을 테니 그것을 생각해 보면서 걸어보자고 하셨다. 글쎄다. 나는 매우 많은 것 같다. 누구와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다툼이 있었는지를 적으면 오늘 자기엔 그른 거 같으니 내 생각만 적겠다. 아마도 나는 누군가, 즉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해서 소히 말하면 힘든? 다툼? 이 많았다. 사실 살아가는데 남을 이해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도, 도움이 되지도 않는 것 같다. 난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데…꺾을 수 없는 꽃…
그래서 이해를 안 하려고 한다. 하지만 내 마음은 늘 불쑥 ‘이해를 못 하겠네!!!’ 이렇게 나온다. 이해하려고 안 하는 날이 오길.
오늘도 어김없이 사람들을 만나 어렴풋이 웃는다.
6. 21. 물
사라진 동무들.
하루를.
그 많던 동무들이 다 사라지고 남현이 형과 둘이 걷던 날. 우와 정말 신기했다. 왜 우리 둘밖에 없는 거지? 도무지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웃겼다. 둘이 걸으니 나 자신의 말 수가 늘었다. 꽤 바쁘게 걸었다. 그 전까진 정말 여유롭게 걸었는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바쁘게 걸었다.
걸음의 변환점.
한 번쯤은 모든 일엔 변화가 필요하다. 나에겐 지금, 오늘이 필요한 시기였고. 때마침 내게 찾아와 주었다. 그래 내 발가락도, 발바닥도, 발꿈치도 숨을 쉬어야지. 거의 볕에 말려진 오징어처럼 살은 듯 죽은 듯 흐느적흐느적 대었다. 내일은 생기가 돌아 나의 튼튼한 다리가 되어주기를…
6. 22. 나무
벗어나는 날.
다른 느낌을 주는 하루였다. 길도 예쁘고 덥다가 선선하다가 또 비도 오다가 안 오다가 도무지 중간이 없는 하루 그리고 뭔가 낮과 밤이 다른 날로 나누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낮에는 평소처럼 걸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밤이 되니 내가 연못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개구리가 된 그것처럼 시간을 폴 짝 뛰어서 눈 떠보니 어느새 갑판에 걸터앉아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낮과 밤의 분위기가 매우 달라서 그런가? 낮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올챙이였나 보다. 그렇게 배도 타보고 걷기도 해보고 사진도 찍어보고 밥도 먹어보고~작은 일도 큰일도 전부 의미 있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아마 올챙이가 느끼는 기분이 아닐까.
조심스레 공감해본다.
6. 23. 쇠
울릉울릉, 울렁울렁.
별 기억은 없고 하나만 적고 싶다.
배에서 내릴 때 뒤에 있던 아저씨가 외치신 말.
“울릉도다!!!”
내 하루를 정신이 번쩍 들게 해준 말씀.
뭐 별거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의미로 본다면 독도를 다녀와서 그런가? 굉장히 있어 보이지만 순례로 보면 아쉽긴 했다. 순례하는 동안 매일매일 내가 내 일상을 알차게 하루를 빈틈없이 잘 보냈다는 기분인데 오늘은 영…그래도 내일 걷다 보면 또 무언가가 내게 속삭이며 알려주지 않을까?…그것이 의미든 알참이든 뭐든 어느 무언가가 다가와 준다면 다시 순례, 남은 여정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엉이같이 생각하고, 종달새처럼 행동한다.
6. 24. 흙
육지로.
육지에 발이 닿을 때 정말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섬에 있었던 날은 고작 하루인데 어째 인생의 반을 머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매우 반가워서 정말 육성으로 땅에게 반갑다!! 라고 해보았다. 무시당했다. 제대로 바라보며 말했는데도…그렇게 땅과 언ᄍᆞᆭ은 인사를 나눈 뒤 벌ㅆ 해가 저물어 가 오늘 하루를 되돌아 봤따 그랬더니 마치 검은 바다에서 제 혼자 빛나는 등대처럼 내 머릿속에서 환하게 떠올랐다. 엄마가 덮어주는 이불 같은 하루.
뒤돌아보니 기억이 없었다. 별생각 없이 보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아무 걱정 없이 곤히 잠들라고 덮어주는 어머니의 이불처럼.
6. 25. 해
머리가 띵
두통이 엄청나던 날.
매일매일 먹는 끼니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만큼 자주 머리가 아팠었다. 증상은 움직이는 방향으로 뇌가 따라 움직이는 느낌. 그렇게 꽤 어지러웠음에도 이 또한 지나가리. 마음으로 아무 생각 없다가 글쎄 이게 웬일인가 더욱 아파지는 것이다. 이대론 내일 비를 맞이하며 길 위에 오르지 못할 것만 같아 얼른 만병통치약 타이레놀을 먹었다. 예전에도 두통 때문에 힘들다가 이 약을 먹고 나서 바로 나았던 적이 있어서 이 약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다. 이번엔 그때랑 다르게 말끔하게 나은 느낌이 아니라 뭔가 인위적으로 나은 것만 같았다. 이럴 거면 안 먹고 그냥 디비 잘걸…오늘 하루 조금 아프더래도 내일 깨끗한 비(?)를 흠뻑 맞으면서 걸으면 아픈 기운이 좀 흘러내려 가지 않겠냔 바라고, 하루를 빠르게 마무리한다.
6. 26. 달
엄청났다.
울릉도를 가기 위해 여섯 시간 동안 배에 탔었던 그 느낌이 걸으면서 느껴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배 위에서 느껴지는 그 작은 아주 작은 흔들림 무언가 내 안에서 움직이고 흔들리는 느낌을 걸으면서 느꼈다. 왜일까 왜 배 위가 아닌 땅 위를 걷고 있는데 배 위를 걷는 느낌이 들까? 고뇌하던 도중 생각을 바꿨다. 어떻게 해야 할지…근데 이런 느낌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말 신기했다!
땅 위에는 나만이 오를 수 있는 배가 있나 보다.
6. 27. 불
아주 쨍쨍.
요즘 생각이 좀 많아져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전 바라보는 텅 빈 도화지처럼 머리를 비우고 싶었다. 세상이 이 바람을 들었나. 햇볕이 엄청 세서 그냥 생각이란 거 다 날아갔다. 머리가 시원한데 개운하진 않은 느낌?
자외선의 힘은 여러 의미로 대단한 것 같다. 정말 덥거나 정말 추우면 아무 생각이 안 든다. 한마디로 머리가 생각하길 포기한 것이다. 원인과 결과가 같다. 뭐 내가 생각이 없어진 이유는 걸어서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항상 답은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는 그 한걸음에 있으니까 단지 그 걸음을 찾지 못하는 것뿐이다. 내가 화장실을 갈 때, 학교에 갈 때, 놀러 갈 때, 이런 아무렇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일상에서 지금까지 내가 가졌던 모든 의문, 질문, 생각에 대한 답이 전부 나왔을지도 모른다.
6. 28. 물
풍덩 풍덩
재밌게 걸었다.
아침엔 조금씩 또르륵 비가 내렸지만
갈수록 햇볕이 세졌다. 바다에 풍덩 빠지기도 했다. 걸으면서 질문을 해야 했는데 하지 못해서 나의 현재 상태만 돌아보았다. 확실히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가? 몸의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 있다. 그래도 긴장을 다 놓으면 굉장히 고생할 것만 같아서 정신 줄은 어떻게든 부랴부랴 잡았다.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아서 정말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숫자가 되어서 내심 설레긴 했다. 근데 또 아쉬운 느낌?…지금까지 걸으면서 단련돼 나의 다리가 집에 돌아가면 하루 만에 풀릴 거 같다.
아…경주로구나.
그렇게 마지막 수요일의 밤이 지나갔다.
6. 29. 나무
홀로 깊이.
글쎄다 솔직히 잘 몰랐다. 홀로 깊이가 무엇인지 지금까진 홀로 있으면서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라고만 세뇌하곤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생각하지 않고선 홀로 ‘깊이’를 홀로 ‘쉬기’로 바꿔버렸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그래 순례에 잘 집중하지 못했었다. 내가 가는 길에 내가 집중하지 못했었다. 조금 부끄러웠다. 사실 마땅히 그럴 이유는 없는데 그냥 좀 부끄러웠다. 그래도 일주일에 몇 번 정도는…이래도 괜찮지 않나?…평소에도, 그냥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지금 만끽 못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이 시간에 내가 이렇게 이 시내를 걸어 다니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은 지금 이 시각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니까 지금 이 일지를 쓰고 있는 나도 낮에 있었던 일들을 거쳐야 존재하는 내가 아닌지…
6. 30. 쇠
만남
여러 가지를 만났다. 산, 바다, 계단, 사람.
하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익숙하게 매일 출근하면 만나는 직장상사처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피아노에 앉아 건반에 손을 올릴 때도 이런 비슷한 기분이다. 늘 치고 몇 년이 지났음에도 처음 건반을 두드릴 때 느껴지던 그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별생각 없이, 아니 아무 생각 없이 무엇이 도이고 무엇이 레인지도 모르던 그럴 때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아무 건반을 누르던 그때 울리던 소리. ‘파’ 아마 그렇게 아무것도 모를 때 울린 ‘파’라는 소리가 정말 내가 만나야 하는 ‘파’가 아닐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찾을 수 없다 그때의 내가 아니므로 지금 나의 진짜 파를 찾아야 한다.
얼레, 근데 피아노가 없네?
7.1. 흙
울산을 걷는 이들
걸음마다 서로 발맞추던 날. 조금 뜨거웠다. 짐은 없었지만 그만큼 사람이 많았고 내 딴엔 그 사람들이 겨울철 난로처럼 내뱉는 더운, 답답한 열기들이 견디기 힘들었다. 햇볕은…바람이 도와줘서 괜찮았다. 나는 길을 갈 때 내 발을 잘 보지 않는다. 그래도 최근엔 고치려는 마음으로 걸음걸음 내 발을 보고 있다. 목이 아프더라…그래서 산을 오르는 게 정말 진심으로 내 발걸음이 어디에 닿는지, 모양새는 어떠한지, 어느 발가락, 발바닥 어느 위치에 하중이 실리는지 그리고 그 발걸음마다 무슨 이야길 하는지 알 수 있다. 산은 가파르니 목 아프게 보지 않아도 볼 수 있다. 발걸음을 내디디며 오늘 나는 한 생각을 하며 걸었다. ‘생명을 밟지 말자’ 하지만 절대 쉽진 않았다. 산은 길이 울퉁불퉁하고 또 생명도 많다. 나는 그 생명들을 어떻게든 밟지 않으려고 탭댄스를 추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도 다행이다 아무도 안 밟아서.
7.2. 해
마지막이랄까?
“바다야 어디니”
“부산”
마지막 도시이다. 와!
그렇다 나는 지금 부산에 있는 기장군. 이라는 곳을 지나고 있다. 전에도 그랬듯 굉장히 꿈 같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봤을 푸른 초원에, 적당히 선선한 바람이 부는 그 풍경에 흰옷을 입고 맨발로 들판을 뛰어다니는 그 꿈 같은 환상. 아니 꿈. 내가 지금 이 순간 그렇다. 멀리 보이는 바다가 푸른 들판처럼 보인다. 나는 그 위를 뛰어다닌다. 흰옷은 아닌 검은 옷이지만 그것 또한 꿈 같았다. 근데 뭔가 허전했다. 잔을 반만 따른듯한 느낌이 불쑥 내 마음에 다가왔다. 생각해 보니 전과는 다르게 이런 꿈 같은 상황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가 안 들렸다. 나를 꿈에서 깨우는 듯한 목소리. 이제는 그 목소리가 밤하늘의 별똥별처럼 느껴진다.
7.3. 달
별거 없는 하루.
근데 왜인가 왜 홀로인가. 아직 꿈에서 깨지 못한 모양이다. 해운대를 혼자 걷고 있다. 밥을 혼자 먹고 있다. 잠을 홀로 청한다. 얼레 왜 혼자야?
정말 홀로이다. 아는 이가 한 명도 없다. 보이는 건 생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 일단 저녁에 숙소로 향해서 그런지 체크인을 하니 어째 9시 30분이 되어있었다. 자고 싶은 마음 씻고 싶은 마음도 안 들어서 땀에 젖은 몸을 물로만 씻어내고 바닷가로 나가봤다. 딱 한 마디만 하겠다. 그냥 매우 아주 정말이지 한강의 밤 분위기였다. 어떤 이들은 음악을 들으며 러닝을 하고. 어떤 이들은 오붓하게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또 어떤 이들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웃으며 술을 마셔댔다. 그러는 나는 무엇을 했나? 그런 사람들을 지켜봤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 걱정이 많아 보이는 사람, 설레어 보이는 사람, 사연이 많아 보이는 사람. 같은 시간 같은 고안에서도 우리 인간은 이렇게나 색이 다름을 알았다. 각자가 보내는 하루의 의미는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나도 그런 깨달음을 가질 수 있던 오늘 7월 3일을 정말 의미 있게…
없더라도!…내 하루를 나다운 모습으로 잘 보냈다.
7.4. 화
끝 밤
마지막 밤이다. 정말 오후부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돌아다녔다.
남현이 형이 빌려준 귀하디귀한 손목시계를 그만 숙소에 두고 나오는 탓에 시간 확인에 있어서 애를 좀 먹었다. 그래도 무사히 잘 돌아왔으니…무사히 잘 돌아왔으니! 천만다행이다. 11시경에 숙소에 돌아왔다. 다음날에 일정이 있음에도 좀 많이 늦게 들어왔다. 순례자답지 않군…매듭을 잘 지어야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정말 밖에 돌아다니고 싶던 하루였다. 왜냐하면, 주중이나 주말이나 해운대 해변은 사람이 매번 엄청 많다. 그래서 해안로를 걸어도 걷는 것 같지 않고 괜히 눈치만 보게 됐었다. 정말 속으로 ‘사람들이 전부 사라지고 나 혼자 남으면 좋겠다.’라며 되뇌던 찰나 내 머리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마치 그 장면이 들판에 나비들이 비를 피하는 그 모습처럼 느껴졌고. 하나, 둘 끝내 사람들은 없어졌다. 나는 오히려 이때다 싶어서 그냥 그 비를 맞으며 해변로를 걸었다. 전보다는 훨씬 적적해진 이 해운대 해변로를. 아마 좀 서투르게 표현한다면 이 순간에서 정말 ‘나’를 만난 것 같다. 나라는 존재를 내가 본듯한 그렇게 즐겁게 지내며 밥도 먹고 일몰도 보았다. 날씨가 흐려 잘 보이진 않았지만 붉은 태양의 빛이 구름을 통과하는 그 그림 같은 풍경이 내겐 더 아름다웠다. 동백섬이라는 곳도 가보고 해안 방파제에 앉아보기도 하였다. 등대에 불이 켜지는 것 세어가면서 여러 가지로 많이 늦어진 날.
그래도 내 딴엔 ‘나’를 만난 것만 같아서
매우 기쁘다. 마지막 밤.
나의 엉터리 같은 매듭, 그래도 어찌 매듭은 지어져 있다.
7.5. 물
매듭? 마침표? 아니, 매듭이다.
그래 다 왔다. 일단 걷는 건 끝난 거다.
아하…일단 난 아침에 일어나 아직 끝나지 않은 ‘혼자만의 여정’을 끝내야 한다. 해운대에서 출발했다. 그러곤 동백섬을 지나다가 아무래도 좀 더 둘러보고 싶어서 동백섬 쪽으로 조금 돌아서 갔다. 그러더니 돌아오길 정말 잘했다. 어젯밤 본 풍경하곤 360도 다른 풍경이었다. 어제는 붉은 태양이 구름에 가려진 모습이 아름다웠지만. 지금은 온전히 뜬 듯 안 뜬 듯한 태양이 우중충한 구름과 일그러져 태양이 아니라 조금은 달 같은 모습을 띄고 있었다. 그런 빛이 바다에 반사되니 이보다 더 예쁠 수가 있나. 항상 내가 눈으로 보는 것과 사진으로 찍는 것은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난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어쨌든 그렇게 돌아서 돌아서 슬슬 걸어가던 도중 광안리 해변에 도착했다. 어째 그 긴 해변을 다 돌아도 동무들이 안 보였다. 물론 내가 아주 조금 약속 시각에 늦긴 했다. 어쨌든…어떻게 서영이를 잘 만나서 빛나는께 전화를 드리고 그냥 오륙도 해맞이 공원으로 향했다. 아아…생각하기도 싫다. 정말 지금까지 30일간 순례를 하면서 올라간 계단보다 오늘 이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 가면서 더 많은 계단을 오른 것 같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던 도중 유난히 내 시야에 계속 머무르시던 아주머니가 계셨다. 나랑 걷는 속도도 비슷하다 못해 나보다 빠르셨다. 정말 대단한 아주머니셨다. 그래서 나도 조금 오기가 생겨 안 지려고 꽤 급하게 걸었는데 그래도 아주머니는 내 앞에 계셨다. 한계에 도달해서 길가에 턱 주저앉아 쉬고 있던 도중 아주머니도 멈추셔서 내게 한마디 건네셨다. “탈진 되겠다. 얘.” 그러시면서 달걀과 초콜릿, 그리고 소중한 물을 내어주셨다. 길 위에 천사를 뵀다. 그렇게 조금 쉬다가 아주머니가 “마무리 잘 하세요~!” 라시면서 먼저 일어나셨는데 뭐 나도 쉴 만큼 쉬어서 따라 일어나 걸었다. 걷는 속도가 비슷하다 보니 결국은 만났고.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졌다. 그렇게 걷던 중. 갑자기 아주머니가 멈추셔선 바닥을 보시더니 땡볕을 그대로 받는 지렁이를 풀이 우거진 시원한 흙에 옮겨주셨다. 나도 가끔 그런 지렁이가 보이면 나뭇가지로 옮겨주곤 하는데 뭔가 보고 있으니 마음이 정말 따스해졌다. 모든 이에게 친절한 천사셨다. 그렇게 얼굴에 미소를 붉히며 걷고 또 걷다 보니 결국은 보이는 해맞이 공원. 아주머니가 끝내 아이스크림과 음료수까지 주시곤 작별인사를 하셨다. 끝까지 괜찮다며 사양하려고 해도 자기 아들도 열일곱이라고 친근하다 하시면서 미소와 함께 간식을 주셨다. 정말 잊지 못할 마무리. 어쩜 이분을 만나기 위해 내가 걸어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레 해본다. 그냥 마음이 고우신 분이라서가 아니라 무엇인가 다른 감정이 들었다. 진짜 천사를 본 느낌. 그렇게 시작부터 끝까지 정말정말정말 소중한 인연 들을 거치고 나는 끝내 내 발로 다시 배움터에 서 있다.
사실은 별로 감흥이 없었다. 정말 30일. 한달간 걸었다 해도 그냥 그러했는데 오늘 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정말. 진심으로.
진짜 천사를 만난 순례.
첫댓글 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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