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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고려의 향가(鄕歌) 와 일본의 시가(詩歌)
세계 최초의 여류 시인은 BC 7세기에 그리스의 서정시인 사포이니... 시(詩)는 오래전 부터 쓰여
졌는데, 한국과 일본은 고유의 문자를 만들지 못했으니 글자가 없는지라, 중국에서 들어온 한자
의 음이나 뜻을 차용해서 신라는 이두(吏讀)나 향찰(鄕札), 일본은 만요 가나로 시를 적었습니다.
신라의 이두는 설총이 정리했다고 하는데...... 향가(鄕歌)는 1075년 균여전에 11수와 1281년
삼국유사에 14수등 25수가 전하며, 일본은 759년에 편찬된 만요슈에 노래가 4,516수
가 실려있고 그 외에도 797년에 편찬된 속일본기에도 수백편이 실려있으며 누카다 오키미
額田王(액전왕) 는 빼어난 시인이라고 하는데 양적으로는 한국 25수 대 일본 5,000 수 입니다.
이두는 한문 문장을 우리 어순으로 재배열하고 토씨나 어미만 향찰식으로 붙인 변칙적인 한문문장
인데 비해, 향찰은 한자의 음과 훈을 빌어서 우리말을 전면적으로 표기했던 표기법으로 말의
의미부(실질형태소)는 한자의 뜻을 빌리고..... 우리말의 형식부는 한자의 음을 빌려 표기
했는데 한문에 지식이 필요한지라 귀족층이 사용했고 이두는 중간 관리층이 공무에 사용했습니다.
향가(鄕歌)는 신라 때에 불리던 민간 노래로서 보통은 향찰(鄕札)로 기록되었는데..... 삼국
시대 때는 4구체 향가가 많았으나 남북국 시대 전기와 고려 초기로 가면서 8구체와
10구체 향가들이 지어졌으며.... 주요(呪謠) 로 부르기도 하고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향가〈서동요(薯童謠)〉 를 통해 향찰 표기례를 양주동의 설을 따릅니다.
〈서동요〉 원문 : 他 密只 嫁良 置古 (ᄂᆞᆷ 그ᅀᅳ기 얼어 두고)
〈서동요〉 해석 : 남 그윽히 (몰래) 얼어 (결혼해) 두고
향찰로 된 향가의 어학적 주석은 처음에는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먼저 시도
했으니... 25수 전반에 걸친 주해는 오구라 신페이가 처음으로 이루었고 그 후에
양주동이 더 나은 해독을 하게 되었으며.... 해방후 지헌영(池憲英) 을 비롯한
이탁(李鐸), 김준영(金俊榮), 이숭녕(李崇寧) 등이 계속 연구 발표하고 있습니다.
일본 보다 316년이 늦은 “1075년 균여전” 에 수록된 11수 향가는 고려 초기 균여대사
의 작품으로 10구체의 불교 예찬이며..... 그후 고려 중엽인 “1281년 삼국유사” 에
실린 향가는 일연이 불교에 관련된 설화를 수집하고 기록한 여러 편에 실려 있습니다.
1075년 균여전에 실린 향가 :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 - 균여대사가 불교의 대중화
를 위해 화엄경의 보현보살의 열가지 행원에다 향가 한 수씩을 짓고, 11장은
그 결론으로 된 사뇌가이니...... 고려 제4대 고려 광종 연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글은 해인사 장경판으로 전하는 균여전에 향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281년 삼국유사 서동요 : 백제 무왕과 신라 진평왕 시기로 연대상 가장
오래된 향가로.... 서동(백제 무왕의 아명)이 신라 진평왕의
선화공주와 인연을 맺기 위해 일부러 퍼뜨린 노래라고 나와 있습니다.
善化公主主隱(선화공주주은) 他密只嫁良置古(타밀지가량치고)
薯童房乙(서동방을) 夜矣夘乙抱遣去如(야의묘을포견거여)
양주동설 : 善化公主 니믄 ᄂᆞᆷ 그ᅀᅳ지 어러 두고
맛두ᇰ 바ᅌᆞᆯ 바ᄆᆡ 몰 안고 가다
: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얼어두고 맛둥 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김완진설 : 善化公主니믄 ᄂᆞᆷ 그ᅀᅳᆨ 어러 두고
薯童 바ᅌᆞᆯ 바매 알ᄒᆞᆯ 안고 가다
: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짝 맞추어 두고 서동 방을 밤에 알을 안고 간다
모죽지랑가 : 신라 효소왕 때에 만들어진 8구체 향가로서 화랑 죽지랑의 낭도였던
득오곡(得烏谷) 이 스승 죽지랑을 사모하고 찬양하여 지은 8구체
향가로 노래의 주인공은 화랑 죽지랑이므로 노래의 이름이 모죽지랑가
(慕竹旨郞歌) 며 죽지랑은 김유신(金庾信) 의 부원수로 이두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헌화가 : 신라 성덕왕 때에 지어진 4구체 향가인데..... 1281년 삼국유사에는 “소를
끌고 가던 늙은이가 수로부인에게 절벽의 철쭉꽃을 꺾어다 드릴 때에 부른
노래” 라고 하여 “노인헌화가” 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헌화가 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수로(水路)부인”이 한국어로 지은 이름을 한자로 뜻을 옮겨 만든 것인지, 바다를
끼고 곧 물을 따라가는 부인이라는 뜻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원가 : 원가(怨歌)는 신라 효성왕 때 신충(信忠) 이 지은 8구체 향가로서, 연군가(戀君歌)
인데...... 효성왕이 등극 전 신충과 잣나무를 두고 후일을 언약하였으나,
등극후 그 일을 잊으매 이 노래를 지어 잣나무에 붙이니 그 나무가 말랐다고 합니다.
도솔가 : 1281년 삼국유사 권5에 신라 경덕왕 때(760년) 월명사가 지은 것으로 기록
되어 있으며, 4구체 향가인데..... 해 2개가 나란히 나타나매 왕이 월명사로
하여금 산화공덕(散花功德) 을 지어 재앙을 물리치게 하였다는 설화가 전합니다.
안민가 : 1281년 삼국유사 권2 “경덕왕, 충담스님, 표훈대덕 편”에 실려 있는데.....
경덕왕이 충담 스님에게 “나를 위하여 편안하게 다스리도록 하는 노래를
지으라.” 라고 명령을 내려서 지은 노래로 10구체 향가로 향찰로 표기했습니다.
君隱父也
臣隱愛賜尸母史也
民焉狂尸恨阿孩古爲賜尸
知民是愛尸知古如
窟理叱大肹生
以支所音物生此肹湌惡支治良羅
此地肹捨遣只於冬是去於丁
爲尸知國惡支持以支知古如
後句君如臣多支民隱如
爲內尸等焉國惡太平恨音叱如
중세 국어 : 君은 어비여 : 임금은 아비요
臣은 ᄃᆞᅀᆞ샬 어ᅀᅵ여 : 신하는 사랑하실 어미요
民ᄋᆞᆫ 얼ᄒᆞᆫ아ᄒᆡ고 ᄒᆞ샬디 : 백성은 어린아이라고 하실때
民이 ᄃᆞᅀᆞᆯ 알고다 : 백성이 사랑을 알 것이로다
구믈ㅅ다히 살손 物生 : 구물거리며 살던 백성
이흘 머기 다ᄉᆞ라 : 이를 먹어 다스려져
이ᄯᆞᄒᆞᆯ ᄇᆞ리곡 어듸갈뎌 ᄒᆞᆯ디 : '이 땅을 버리고 어디를 가겠느냐' 할 때
나라악 디니디 알고다 : 나라가 유지될 줄 알 것이로다
아으 君다이 臣다이 民다이 ᄒᆞᄂᆞᆯᄃᆞᆫ: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할때
나라악 太平ᄒᆞ니잇다 : 나라가 태평할 것이니라
제망매가 : 제망매가(祭亡妹歌)는 신라 경덕왕 때 승려 월명사가 지은 것으로, 1281년
삼국유사 권5 “월명사 도솔가조(月明師兜率歌條)” 에 “월명이 죽은 누이를 위하여
부처에게 공양하는 재를 올리고 향가를 지어 제사를 지냈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박제천의 〈월명〉(月明) 은 〈제망매가〉 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작품으로, 나뭇잎을
통해 깨달은 인생의 본질을 노래하고 있는데..... 나무를 떠나야만 하는 수많은
나뭇잎들을 통해 죽음의 세계로 떠나야 하는 인간 존재를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찬기파랑가 :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는 신라 경덕왕 때 승려 충담사가 화랑
기파랑의 인품을 흠모하여 쓴 10구체 향가인 데..... 제망매가와
함께 현전하는 향가 가운데, 문학성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천수관음가 :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는 경덕왕 때에 희명(希明)이 지은 향가로, 천수관음가
(千手觀音歌)· 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 맹아득안가(盲兒得眼歌) 등으로도 불리는데
《삼국유사》 권3 분황사 천수대비 맹아득안조 (芬皇寺千手大悲盲兒得眼條) 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우적가 : 우적가는 1281년 삼국유사의 권5 “도적을 만나다” 에 이 노래를 짓게 된 이유 등이 실려
있으며, 이 노래의 내용을 칭송하여 지은 한시 한 편이 있으니 8세기 중엽에 지어진 노래 입니다.
처용가 : 처용가는 1281년 삼국유사 기이편에 “처용랑과 망해사조 (處容郞望海寺條)” 에
수록되어 있는데.......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란 인물이 지었다고 하며 역신이 그의
아내를 흠모하여 동침하고 같이 잠자리에 있는 것을 돌아와서 보고 시를 읊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역신은 처용이 노하지 않은 것에 감동하여 그 앞에 나타나 꿇어앉았다고 하는데
그 후로 사람들은 처용의 형상을 문에 붙여서 역신을 쫓았다고 하며.......
고려 가요 중에도 처용가는 악학궤범에도 전해져 후에 향가 해독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東京明期月良 : 서울 밝은 달밤에
夜入伊遊行如可 :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入良沙寢矣見昆 : 들어와 자리를 보니
脚烏伊四是良羅 : 다리가 넷이로구나.
二兮隱吾下於叱古 : 둘은 내 것이지만
二兮隱誰支下焉古 : 둘은 누구의 것인고?
本矣吾下是如馬於隱 : 본디 내 것(아내)이다만
奪叱良乙何如爲理古 :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풍랑가 : 현존하는 화랑세기 필사본 중 6세 세종 장에 미실이 사다함이 출정할 때
지었다는 풍랑가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러나 화랑세기 필사본은
오늘날 사학계에서는 위작으로 취급하는 견해가 우세하여 정확히 알수 없습니다.
도이장가 : 한편 고려 예종이 지은 도이장가(悼二將歌)를 향가로 보는 이도 있으며 그 밖에
경주박물관 미술관 공사부지에서 발견된 목간에 기록된 내용을 향가로 보는
논문이 출간된 바 있으니 향가로 추정되는 글에는 '만신가' (万身歌)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여류 시인은 BC 7세기 그리스 서정시인 사포 라고 하니 시(詩)는 오래전 부터
쓰여졌으니 우리나라는 처용가등 향가(鄕歌) 는 1075년 균여전에 11수와 1281년
삼국유사에 14수등 25수가 전하며....... 일본은 759년에 편찬된 만요슈에 노래가
4,516수 가 실려있으니...... 누카다 오키미 額田王(액전왕) 는 빼어난 시인 이라고 합니다.
균여전(均如傳) : 대화엄수좌원통양중대사 균여전 (大華嚴首座圓通兩重大師均如傳)》
이라고도 불리니 고려 초기의 고승 균여(均如, 923년~ 973년) 의 일대기를 적은
책으로 고려 문종 29년(1075년)에 쓰여졌으며....... 진사 혁련정(赫連挺) 이
균여의 문도(門徒) 들에게서 자료를 제공받아 편찬하게 된다.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삼국유사와 더불어, 향가인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 가 실려있는 책으로 유명한데 사실 작품
자체는 불교 포교의 목적으로 쓰여져서 문학성을 높게 쳐주진 않는다. 그러나 균여전에
남아있는 여러 문구 덕분에 향가 연구에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점에서 상당한 가치가 있습니다.
우선 삼국유사의 향가와 다르게, 보현십원가는 동시대에 살았던 최행귀가 한역(漢譯)한 향가라 지금도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데.... 덕분에 여타의 향가를 연구할 때 중요한 참고 자료로
쓰이게 되며..... 그리고 다음과 같은 기록을 통하여 향가의 특징을 알아내는 데에 도움을 얻기도 합니다.
우리 동방으로 말하자면 마사(摩詞) 와 문칙(文則) 과 체문(體文) 이 공문을 개척한 우아한 시편이
있었고, 원효(元曉) 와 박범(博凡) 과 영상(靈爽 ) 이 원음(圓音) 을 본보기로 삼았다.
혹 정수(定猷) 와 신량(神亮) 의 어진 분들이 한갓지고 다급한 시편(詩篇) 을 남기었고.....
순의(純義) 와 대거(大居) 의 준들이 우아한 시편을 지었으나, 모두 벽운(碧雲) 으로 얽지
않음이 없지만, 그 맑은 시편을 맞볼수 없으며 백설(白雪)로써 묘한 소리를 전하여 들을만 하였다.
그러나 시(詩)는 당나라 말로 얽음으로써 오언 칠구(五言七句)로서 탁마(琢磨)를 하고, 가(歌)는 우리말로써
배열하여 삼구(三句)과 육명(六名)으로써 가다듬는다. 어성(語聲)을 논하면 어긋나기 삼성(參星)과 상성
(商星)과 같아서 동서를 분별하기 쉽고, 이치를 의논하면 적대하기 창과 방패 같아서 강약을 가리기 어렵다.
비록 사봉(詞鋒)을 마주 드날렸으나, 족히 한가지 의해(義海)로 돌아갈 줄 알았고, 저마다 제자리를 얻은
것이니 내 어찌 좋다고 아니하겠는가. 그러나 한스러운 것은 우리나라 재자(才子)와 명공(名公)
들은 당나라 글귀는 읊을 줄을 알지만, 저 땅의 거유(巨儒) 와 대덕(大德)이라도 우리 노래는 알지 못한다.
하물며 당나라 글은 제망(帝網)과 같아서 우리나라에서는 읽기 쉽지만, 우리 글을 마치 범서(梵書)로 연철한
것 같아서 저 땅에서는 알기 어렵다. 대저 이와 같으므로 팔구행의 당문(唐文)으로 서(序) 한 것은 뜻이
넓고 글이 풍부하지만, 11수의 노래는 사(詞)가 맑고 구(句)가 곱다. 그 지은 바를 일컬어 사뇌(詞腦)라 한다.
즉, 향가는 중국의 문학과 대비되는 우리 고유의 문학이며, 그 구조는 삼구 육명(三句六名)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 이름을 '사뇌' 라 부른다는 것이다. 흔히 향가를 '사뇌가' 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아직 '삼구 육명'에 대한 확실한 의미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와 같은 점에서 국문학 연구에 크나큰 도움을 주고 있는 자료가 바로 균여전이다.
우리나라에 고대 노래인 서동요, 도솔가, 찬기파랑가 및 처용가 등 향가(鄕歌) 는 1075년
균여전에 11수 와 1,281년 삼국유사에 14수 등 모두 25수 가 전합니다. 일본의
만요슈 는 759년 에 편찬되었는데 이 한권에만도 노래가 무려 4,516수 가 실려
있으니.... 시기도 300여년 이상 앞서거니와 양 으로도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만요슈 노래의 저자는 수백명 도 더 되는데 그 중에 가장 빼어난 이는..... 덴무천황(天武天皇, 일왕)의
비(妃) 누카다 오키미 額田王(액전왕) 를 듭니다. 이 여인은 덴지왕의 동생인 대해인(덴무)의 처 로
“십시” 라는 딸 까지 두었는데 형으로 왕이 된 중대형(덴지왕)이 누카다를 빼앗으니 불화의 시작 이라?
덴지는 왕위를 동생 대해인이 아닌 어린 아들 대우 왕자 에게 물려주려니 동생의 반발을
염려해서는 대해인과 누카다(액전)의 딸 십시를 아들 대우의 정비 로 맞이합니다.
아내와 왕위를 빼앗긴 동생 대해인의 분노 도 외손주 가 왕위를 이으면 누그러질 것이라?
누카다 오키미(액전) 는 동생과 형 두 남자를 사랑하고 두 남자의 몸 을 받아들인
기구한 팔자의 여인 이었으니.... 그 두 사람이 모두 일왕(천황) 이 되었음에랴!!!
결혼식후 사냥 연회에서 대해인 은 두번째 처인 우노가 있음에도 누카다 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가가니..... 당황한 누카다 가 시가 를 읊습니다!
꼭두서니 자란 밭 인줄 친 밭을
이리 저리 서성대면 밭지기는 안 볼까요
그렇게 그대사 소매를 흔든다면.
그러자 대해인 이 다음과 같이 화답했다고 합니다.
꼭두서니처럼 아름다운 그대가 미울라치면
이미 남의 마누라인데도
내 어찌 사랑하리오.
660년 백제가 망해 의자왕등 1만 3천명 백제 왕족과 귀족 들이 당나라로 끌려간 후
왕족 복신과 중 도침 이 백제 부흥운동 을 일으키고는 "일본에 왕을 요청" 합니다.
그러자 사이메이 여왕(천황)의 아들로 쿠데타를 통해 백제계 소가씨를 죽이고 실권을 잡아
섭정으로 있던 나카노오에(중대형) 는 일본에서 수십년째 망명생활을 하던 의자왕의
이복 동생 (삼국사기에는 아들?) " 풍" 에게 5천 왜군을 주어 백제 32대 왕으로 보냅니다.
그러고는 수도를 아스카에서 규슈의 후쿠오카 로 옮긴 다음에 전 일본 백성을 동원해
일부는 산으로 보내 나무를 베어 배 를 만들고 나머지는 무기를 만들고
식량을 마련해 드디어 663년에 2만 7천의 대군 을 1천척 배 에 태워 한반도로 보냅니다.
하지만 왜국이 국력을 모두 기여 보냈던 왜군 천여척 함대가 금강하구 백촌강에서
당나라 수군에게 화공을 당해 참패 하자 일본으로 철수하는데....
이때 백제 유민 들이 왜군을 따라 한반도를 떠나 대거 일본으로 이주해 옵니다.
백제 왕족과 귀족에 관료며 무사들은 4년에 걸친 전쟁통에 죽고 생존자중에 1만 3천명이
당나라 로 잡혀간데다가 이때 나머지 백제인도 대거 일본 으로 달아났으니...
또 5년후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하고 뒷일을 염려해 후환을 없앤다는 점에서 고구려
백성들을 모두 당나라 로 잡아가니 한반도에 백제인과 고구려인은 씨가 말라 버립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인구 25만 이 넘는 성씨는 30개 2,500만으로 전체의 50% 를 차지하는데...
신라계 는 밀양박씨 303만, 경주김씨 173만, 경주이씨 142만등 19개성씨 1,408만이고
고구려계는 진주강씨 97만, 제주 고씨가 32만, 중국 귀화인은 남양홍씨 39만등 69만입니다.
가야계 는 김해김씨 412만이고 고려인을 시조로 하는 성씨는 해주오씨 38만등 3개 94만이며
불명이 신숭겸의 평산신씨등 2개 82만인데 반면에 충청,전라 지방은 이한을 시조로 하는
전주이씨 261만이 있으나 백제계라기 보다 신라인 파견 관리의 후예 가 아닌지 모르겠네요?
다시 말해 오늘날 한국인 중에 "고구려나 백제계 후손은 채 10%" 도 되지않는다는 것이라?
나카노오에 는 나당연합군이 보복으로 침략 할까 염려해서는... 규슈와 서부 일본에
산성을 쌓는것도 모자라... 수도를 내륙 오쓰로 옮기고 왕위에 오르니 덴지왕(천황) 입니다.
이 덴지왕(천황) 이 후일을 염려해 동생인 대해인과 사돈 을 맺은후 죽으니.... 어린
아들 대우가 왕위에 오르나 불복한 대해인이 군사를 동원 해 난을 일으켜
조카를 죽이고는 일왕에 오르니........ 천무왕(천황) 으로 "임신의 난" 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