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집총간 > 서암집 > 恕菴集卷之十 > 序 > 平山申靖夏正甫
送宋翰林聖集晒史五臺序
晒史淸福也。而人有遇不遇之緣焉。夫抽金匱石室之藏而騁奇詭詼譎之觀。以之網羅舊聞。寤寐僊靈者。必以有緣而能焉。前輩之入翰苑者。遠則十年。近則三五年。而有不得一至者。觀於所謂石室題名錄者而可見也。故仕而不至翰林則不能。仕而至翰林而不能以久則不能。能此數者而不幸善病。畏道途鞍馬之勤則不能焉。盖以無緣而不能者。有此三者焉。余之居翰苑首尾五年。方其新入也。爲右位者六人。晝則裹帽伺候。爲沒頭拜。夜則被其催迫。就燈下。作蠅頭細字書。令人欲一吐氣不可得。而二右位者方且分路承綸馳馹。縱詠於嶺海之間矣。以此視彼。勞逸奚啻天淵。然當此之時。朝夕所切祝者。惟在於早免槨房之苦况而已。不敢以右位淸福自期也。及諸右位之去。余忝爲右而繼有太白赤裳兩行。則余始大償其宿願而似近於所謂有緣者焉。然仕而至翰林。非余宜有。而其能不失職以久者亦幸耳。至若疾病之難强。又在二者之外。而前後往返。不以爲疲焉若余者。盖直是强作緣者耳。獨記其出而遊山。則庵僧持杖。官妓挾書。泉潔而沃喉。果紅而隨匊。而吾不欲歸也。及其夜歸讀史。則治表亂證。雜陳於前。一得一失。互見於後。孤燈照我歎欷。風鐘發我警省。而 不覺夜之將落矣。當此之時。聖集之視余爲不敢望。當與余之視二右位同也。然其仕而至翰林且久者。皆聖集所宜有。而聖集又不如余善病。則乃眞有緣者。此則又當爲我羡也。且是役也。余之在翰苑也。盖已卜其日矣。聖集日請自往。而余固靳而不許。今余之去翰苑。而聖集始得之矣。豈玆山之緣。於聖集特深。而余固不可復强耶。然余近懶不能作詩。雖見五臺月精之勝。無以略寫其彷彿。而聖集之詩。方水涌而山出矣。以此應接。必不使山靈落莫。而及歸借觀。尙足代卧遊。不復以不得杖屨其間爲歎也。姑書此以贈之。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7
송한림(宋翰林) 성집(聖集)이 사관(史官)으로 오대산에 가는 것을 전송하며
사관의 직무는 맑고 복된 자리이지만, 사람마다 이 직무와 인연이 닿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황금처럼 귀한 기록을 보관하는 ‘금궤(金匱)’와 돌로 만든 서고 ‘석실(石室)’의 문서를 꺼내어, 놀라운 이야기와 기묘한 사연을 살펴보며 옛 기록을 정리하고 넋을 깨어나게 하는 것은 인연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과거에 한림원에 들어간 선비들을 보면, 어떤 사람은 10년이 지나도, 어떤 이는 3년 또는 5년이 지나도 한 번도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를 '석실 제명록'에서 볼 수 있다. 벼슬을 하더라도 한림원에 들어가지 못하면 이 일을 할 수 없고, 한림원에 들어가더라도 오래 머물지 못하면 할 수 없으며, 이 조건을 만족하더라도 병약하여 먼 길에 나서거나 말 타고 다니는 노고를 두려워한다면 역시 이 일을 할 수 없다. 이렇게 인연이 없어서 일을 못 하는 경우는 이러한 세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나는 한림원에 있으면서 다섯 해를 보냈다. 처음 들어갔을 때 한림원의 우위(右位) 자리에는 여섯 명이 있었고, 낮에는 모자를 단정히 쓰고 기다리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일로 하루를 보냈다. 밤에는 그들의 재촉을 받아 촛불 아래에서 작은 글씨로 서류를 작성하며 숨 돌릴 여유조차 없었다. 반면 다른 두 명의 우위 자리에 있던 자들은 벌써 임무를 나눠 맡고 왕명을 받고 남쪽 지역에서 시를 읊으며 자유롭게 다니고 있었다. 그들과 나의 노고와 여유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컸다. 그 당시 나의 유일한 바람은 곽방(檟房)에서의 고된 일을 하루라도 빨리 면하는 것뿐이었으며, 결코 右位(높은 벼슬 자리)의 여유로운 복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여러 우위들이 떠난 뒤에 나는 우위의 자리를 맡게 되었고, 태백(太白)과 적상(赤裳)의 두 줄을 더하게 되자, 마침내 내가 바랐던 것을 이룬 듯하여 인연이 있는 자와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림원에 들어와 자리를 오래 지키고 있던 것도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질병과 같은 어려움을 강하게 이겨내는 일은 내가 해낸 것이 아니지만, 앞뒤로 이곳을 오가면서 지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나처럼 간신히 인연을 만들어 간 자도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 산에 나가 노닐 때를 생각해 보니, 암자에 머무는 스님이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관기(官妓)가 책을 가지고 나를 따라다녔다. 샘물은 맑아서 목을 적시고, 과일은 붉어서 손에 담겼으니,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밤에 돌아와 역사책을 읽으며 혼란을 다스리고 증거를 바로잡는 것들이 뒤섞여 눈앞에 펼쳐지니,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어 서로 교차하게 되었다. 홀로 등불이 나를 비추며 탄식하게 했고, 바람에 흔들리는 종소리가 나를 일깨우면서 밤이 새는 줄도 몰랐다.
이때 성집(聖集)이 나를 보며 감히 넘보지 못할 자로 여겼으니, 이는 내가 두 명의 우위를 바라보는 것과 같았다. 그가 한림원에 들어와서 오래 머물게 된 것은 성집에게 어울리는 일이었고, 성집은 나처럼 질병으로 고생하지도 않으니 참으로 인연이 있는 자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은 나로서는 부러워할 만한 일이다.
게다가 이번의 일은, 내가 한림원에 있으면서 이미 그 시기를 점쳐 두었던 일이다. 성집이 날마다 나에게 함께 가자고 요청했지만, 나는 고집스레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 내가 한림원을 떠나게 되어 성집이 그곳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어찌 이 산과의 인연이 성집에게 특별히 깊어서 내가 다시 강하게 밀어붙일 수 없는 것인가? 최근 나는 게을러져 시를 짓지 못했다. 비록 오대산의 맑고 빼어난 경치를 보았지만, 그 모습을 간단히 표현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성집의 시는 샘물이 솟아오르고 산이 솟아오르는 것 같으니, 이 산과의 만남을 맞이하며 산의 신령이 외롭지 않게 할 것이다. 돌아와 그의 시를 감상하면, 마치 산에서 노니는 것과 다름없고, 직접 그 산을 오르지 못한 것을 한탄할 이유도 없겠다. 이 글을 기록하여 그에게 보낸다.
**곽방(槨房)**은 궁중 또는 관청에서 문서를 보관하고 처리하던 장소로, 조선시대에는 특히 고위 관리들이 문서를 작성하고 검토하는 업무 공간을 의미합니다. 이곳은 업무가 매우 많고 고된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본문에서 '곽방의 고된 일'로 언급된 것은, 이곳에서 문서 작업에 매진하며 고달픈 시간을 보낸 경험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곽방은 조용히 문서를 작성하는 업무 공간이지만, 일의 강도와 양이 많아 지치기 쉬운 곳이어서, 이 시에서 화자가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자리로 묘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