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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성의 땡땡책협동조합 원문보기 글쓴이: 땡땡책협동조합
후쿠시마 현지 활동가 초청 강좌
재난 이후의 세계
후쿠시마 사람들 이야기
때 : 2014년 1월 9일 14:00
곳 : 서울여성플라자
강사 : 시마무라 모리히코 / 이와키 오텐토 SUN 기업조합 사무국장, 군지 마유미 / 후쿠시마 지원 사람 문화 네트워크
준비단체 : 행복중심생활협연합회, 한살림연합, 하자작업장학교,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정보공개센터, 인권연구소 창, 에코11,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모심과살림연구소, 땡땡책협동조합, 두레생협연합회, 녹색평론사, 녹색당, 교육공동체 벗
사회 : 이해정, 통역 : 강내영, 촬영 : 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기록 : 양선화
[시작 전 5분 영상]
그 해 가을 현장 촬영. 원전 20킬로미터 이내 모습. 주민들은 피난가고 잡초만 무성한 벌판이 보이고, 손에 든 방사능 측정기에서는 계속 수치가 올라가고 있다.
- 도착해서 살인적인 일정 소화 중, 오늘 5시 대전으로 출발 예정.
- 준비 단체들 소개와 인사
[후쿠시마 사람들과 함께 걷기 위해]
- 군지 마유미(위21재팬 활동. 고향인 후쿠시마 외곽에서 지원 단체 이끌고 있음.)
초청해주셔서 감사하다. 후쿠시마의 진상, 진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원전으로 인해서 일본 사회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 후쿠시마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관해서 정보 공유하고,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야기 나누는 자리였으면 좋겠다.
나는 후쿠시마 현 이와키 시 출신. 결혼해서 요코하마로 이주해서 살고 있다. 이주하자마자 생협 조합원 활동을 했고, 조합원들과 먹거리 안전, 환경 문제 관련해서 활동해왔다. 26년 전 체르노빌 원전이 계기가 되어서 탈원전 생각하게 되었고 이야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원자력 정책 사업에 밀려서 탈원전 인식, 움직임들이 계속 퇴화, 저하되어왔다. 그때 왜 그런 운동들이 지속되지 못했나, 그에 대한 자책감들이 후쿠시마가 계기 되어 다시 생기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후쿠시마 같은 문제가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 생겼을 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일어나지 않도록 얘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위21재팬 소개를 드리면, 일본이 아시아의 식민지라는 이름으로 피해를 끼쳤던 사건들이 있는데 그러한 사건들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정부에 맡겨놔서는, 무력으로는 절대 평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럼 시민들이 어떻게 연대해서 구축해갈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만들어졌다. 수십 년간 활동했었고 이제 이사장을 내려놓고 쉬어야지 생각했는데 311 사고가 터졌다. 후쿠시마는 나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제까지는 고향에 대해 별로 인식하지 못했었는데, 오히려 이 사건을 계기로 고향이 얼마나 나를 키워줬는지 재인식하게 되었고 고향을 위해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
311이 터졌을 때 나는 요코하마에 있는 사무실에 있었다. 여러분은 지진에 대해 경험이 별로 없으시겠지만, 상당히 많이 흔들린다. 근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상당히 길었고, 컴퓨터 떨어지고, 책장 쓰러지고... 뭔가 다르다 생각했다. 수도권 같은 경우는 교통이 전부 차단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난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걸어서 돌아가고. 물자들이 차단되어서 식량부족 사태. 패닉 상태. 제대로 된 정보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상태가 도심에도 있었다. 텔레비전 영향이 꽤 큰데, 티브이를 틀면 24시간 지진 쓰나미 피해 상황이 계속 나오니까. 일본에서는 ‘공감 피로’라는 단어를 쓴다. 공감을 많이 하다보니, 피로 상태. 일본 전체가 피로 상태에 빠져버렸다. 위21재팬 리사이클숍 통해서 아시아 시민들과 연대해왔는데, 위숍은 지역에서 거점 역할, 커뮤니티장 역할을 하는데, 이 사건 때문에 불안해서 집에 못 있겠다고 여기 모인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 활동. 후쿠시마만이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그런 활동들이 있었다는 것. 그 지역에서 일어났다고 해서 그 지역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일본 전체가 같이 패닉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사건. 한국도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원전 문제는 체르노빌부터 경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사고 터지자마자 후쿠시마의 어머니 오빠에게 절대 밖에 나가지 말라고 얘기했었다. 근데 후쿠시마 사람들은 원전에 대해 안전 신화, 정부의 말을 믿고 있었다. 상관없이 성묘를 가고 외출을 하는 일이 있었다. 나중에서야 그런 진상, 방사능 문제를 알게 되면서 정부 불신감 커졌고, 일본 전체 시민들도 그랬다.
긴급한 사태에 있어서 전 세계 같이 움직이기도 하고, 막대한 돈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 이후가 문제다. 복구라고 하는 것은 장기적 전망, 관점을 보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게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311 다음 날, 제1원전이 터졌고. 볼런티어들이 아예 지역에 들어오지 못했다. 10월에야 NPO법인 후쿠시마 지원, 사람과 문화 네트워크가 설립되었다.
사실 후쿠시마 원전이 터졌을 당시, 204만 명이 후쿠시마 현에 살고 있었다. 이들이 다 피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첫 번째 생각이었는데. 수도권에서는 그저 방사능의 위험성만 보도되고 있었다. 후쿠시마 고립화 정책으로 바뀌어갈 수밖에 없었다. 복잡한 마음이 들었는데, 한편으로는 다 피신했으면 좋겠다는 거고, 또 한편으로는 그러지 못한 상황에서 고립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슬프고 복잡한 감정이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패닉 상태.
그런 부분에서 어떻게 해야 될까, 26년 전 체르노빌을 참고하자고 생각했다. 2012년 9월에 체르노빌 직접 갔다. 가면서는 이제 수치가 많이 떨어졌겠지 생각했는데, 26년이 지났는데도 10마이크로 시벨트 측정되었다. 방사능 사고는 영원히 지속된다는 걸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아이들에 대한 부분. 우크라이나 해님보육원. 서쪽으로 60킬로미터 떨어진 곳. 아이들이 너무 조용한 게 이상했다. 모든 아이들이 호흡기, 소화기, 시력장애, 뼈 이상, 권태감 등의 증상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보육원 선생님한테 들으니 많은 아이들이 복합장애.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를 가지고 있다. 의사 선생님의 보고에서 알게 된 것은, 갑상선 같은 보이는 증상도 있지만 더 큰 것은 면역력 저하. 웬만한 병에 쉽게 걸리게 되므로 복합장애가 온다. 이 아이들은 그때 존재하지 않았던 아이들. 원전이 터졌을 때 이 아이들의 부모님이 초등학생이었다가 피폭당한 것. 세대를 넘어서 피해가 전해진다. 이분들한테 인터뷰를 했더니, 방사능 정보가 전부 통제되고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생활해야 되는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부분에서 식습관 문제도 중요한데, 이 나라 사람들은 주로 버섯, 나무열매 등을 저장해서 먹는데, 가장 방사능이 많이 축적되는 먹거리들인데, 그걸 모르니까 계속 그 생활을 해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부 피폭. 내부 피폭의 영향이 아주 컸다. 수치로 잘 표현되지 않기 때문에 상황을 잘 몰랐던 것.
체르노빌에서 느낀 것은, 원전 사고 방사능은 영원히 피해를 미친다는 것, 다음 세대에 계속 된다는 것. 우크라이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원전 정책을 펴고 있다. 경제가 침체되다보니까 에너지 만들어 유럽에 팔려는. 학교에서도 전혀 체르노빌에 대해 교육하고 있지 않다. 젊은 층에게 물어봐도 전혀 공유되고 있지 않다. 일본에서는 절대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이걸 바탕으로 단체 활동지침 만들었는데. 후쿠시마가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 일본에서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지역 문제로 치부해버린다. 미군 기지는 오키나와만의 문제, 미나마타병이 터지면 미나마타만의 문제. 그런 면에서 후쿠시마가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게 첫 번째. 또 하나는 후쿠시마에서 생산된 전기는 대부분 수도권에서 썼던 것이기 때문에, 수도권과 링크시켜야. 무엇보다 중요한 것. 아이들을 어떻게 구할 거냐. 아이들 리플래시 사업 진행. 리플래시 하우스 다섯 곳. 후쿠시마 가족들이 언제든 올 수 있도록 조치해놓고 있다.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일을 직접 듣기는 쉽지 않다. 별로 보도도 안 되고. 그곳 사람들 생생한 목소리를 어떻게 듣게 할 것인가 노력하고 있다.
직접 지원은 오가닉 코튼 농사 지원 활동. 동시에 후쿠시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실상을 들여다보면서 배우는 활동. 리플래시 하우스. 자기 집 제공해서 아이들이 쉴 수 있도록. 보양 사업. 아이들을 큐슈 같은 안전지대로 데려가 쉬고 놀게 해주는 프로그램. 고립되어 살다보니 부모로부터 학대받는 아이들이 나오게 되어 있어서. 전부 시민들의 기부에 의해서 운영되고, 국고 보조가 하나도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마음의 병인 것 같다. 후쿠시마에 있는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여기서 계속 키워도 되나 하는 불안감과 매일 싸우면서 살고 있다.
그럼 여러분은 쉽게 말할 것이다. “후쿠시마에서 나오면 되는 거 아니냐?”
하지만 나와서 일자리가 있냐. 집은 있냐. 이것들을 생각하는 순간, 간단하게 나오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부모들의 불안을 그대로 먹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 아이들 역시 불안해하며 자라고 있다는 것. 아이들한테 좋지 않다.
후쿠시마 유치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노 현으로 보양 사업 갔었는데, 원장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원래 유치원에서 진흙탕에서 놀고 나무 타고 놀면서 살고 있었는데, 사고 이후로 전혀 안 되고 있다. 자연과 접촉하면서 성장하는 게 좋은데 그게 안 돼서 안타깝다. 어렸을 때부터 서로 어울려 놀아야 사회성이 발달하는데 그게 안 되고, 감수성이 발달하지 못함으로 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다. 근데 여기서 겨우 4일을 같이 보냈는데, 전혀 다른 생활태도를 보이더라는 것. 일상으로 돌아가서 곤충을 잡는다거나 하는. 그전에는 아이들이 스스로를 통제하고 있었고, 부모들이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해서 자주성이 없었는데, 겨우 4일 만에 조금씩 되찾는 걸 보고, 아 이 사업을 계속해야겠다 생각했다.
원래 국가가 해야 되는 일인데, 일본 정부는 절대 하지 않을 거다. 왜냐면 아이들 피난시키는 순간, 원전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에, 단순히 정부가 나서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후쿠시마 시민들과 다 같이 일어서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고소단. 책임을 정확히 밝히자는. 여태까지 그런 문제들이 발생하면 정확히 책임 밝히지 않고 대충 넘어가왔다. 기업이 일으킨 공해라든가. 일본 정부와 동경전력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정확히 밝히자. 적어도 아이들만큼은 집단적으로 소개시켜야 되는 거 아니냐 해서, 후쿠시마 집단 소개 재판을 열고 있다. 체르노빌에 다녀오면서 느꼈던 것들을 진정서 형태로 써서 여기 집어넣었다. 헌법에는 당연히 국민들의 생활권 보장이 있는데, 헌법을 기초로 해서 후쿠시마 인권선언을 했다. 일본 정부를 더 이상 신용하지 않게 되어서, 시민들이 스스로 돈을 내어 방사능 측정실을 후쿠시마 현 여기저기 설치했다. 먹거리를 가져가서 측정하고 있다. 원전 재해와 관련된 정확한 정보, 방사능 수치 같은 것들을 정확히 전달해주는 정보센터. 1억 엔 시민 모금으로 건설했다. 방사능 수치보다 낮은 형태로 유기농업 계속하기 위해 유기농업 네트워크도 만들었다. 이전에는 시민성이, “정부가 하는 게 옳고 돈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면 돼” 하는 것이었는데, 311 계기로 국가에게 배신당했다, 버려졌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실감하기 시작. 원전 재해정보센터 1관 만들어졌고, 지금 2관 기초공사 진행 중. 변호사들 볼런티어 참가해서 후쿠시마 집단 소개 재판. 후쿠시마 15만 명 정도가 피난해 있다. 그중 8만 5천 명은 피난구역에 있었기 때문에 강제 피난. 7만 명은 알아서. 이 사람들은 아직도 노상에서 어디로 갈지 모르고 헤매고 있다. 수도권 사람들 만나서 얘기할 때는, 방사능 문제가 후쿠시마만의 문제 아니라는 걸 강조하고 있다. 후쿠시마만의 문제로 몰아가면서 자긴 안전하다는 상대성을 갖고 싶어 하는데, 이미 수도권 쪽으로 많이 흘러나왔다고 얘기. 우리 문제라는 걸 실감하게 만드는 활동.
3년째 맞이하고 있는데, 점점 매스컴에서도 다루는 빈도가 적어지고 있다. 점점 망각되고 있다. 이때까지 방사능 문제 중심에 놓고 얘기했었는데, 방사능은 배경으로만 얘기되고 있는.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 경우에도, 양상이 다양화되고 있다. 어디에 포커스 맞춰서 지원을 해야 할까 상당히 복잡해지는. 여전히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시민들만 움직이는. 점점 체념하고 지쳐가는 사람들 생겼다. 그런 부분에서 어쨌든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과 의무. 모티베이션 어떻게 높여갈 것인가 과제. 그런 와중에도 주체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는데. 원전사고 아동 이재민 지원법 만들어질 가능성. 그걸 만들고자 하는 시민회의 있다. 원전사고아동이재민지원법네트워크 결성. 정책적으로 백업하기 위해서 지자체 의원들이 의원 연맹 만들기도 했다.
지원자 입장에서 보기에, 가장 큰 문제가 건강 문제다. 심적이든 신체적이든. 365일 건강 문제는 늘 머리를 때리고 있는 문제. 피난생활을 하면서 재산들이 탕진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피난 난민, 빈민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현상도 중요. 이재민에도 종류가 있다. 쓰나미 피해로 인해서 피난 온 사람들 있고, 방사능 피해로 이주해온 이재민도 있다. 쓰나미 피해자들한테는 보조금이 없다. 방사능 피해자는 동경전력이 두당 10만 엔을 매달 지급하고 있다. 처음에는 같은 이재민이라 서로 도왔었는데 2년이 넘어가면서 격차 발생. 갈등 심화. 탈원전이 활발해졌지만 또 조용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사람들, 반원전에 대한 반대를 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같은 후쿠시마 사람들이라도, 후쿠시마 현을 떠난 사람들과 그냥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도 갈등이 있다. 떠난 사람들은 자책감, 후쿠시마를 버렸다고 하는.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하지만, 갔을 때 사람들이 받아줄까 하는 불안감.
나도 수도권에 살다보니까, 후쿠시마 사람들은 왜 자신들의 정보를 제대로 전하지 않을까, 강력하게 전하면 좋을 텐데 싶을 때도 있는데, 상황이 제각기 다르다보니까, 전하더라도 ‘그건 당신만의 문제야’라고 치부되기 쉽다. 다양성 때문에 오히려 특정 사람이 대표로 전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되고 있다.
체르노빌 갔을 때 놀랐던 것은, 아직도 비상사태청이라는 게 있어서 여전히 비상사태로 인식하고 있는데. 일본은 복구청을 바로 만들었다. 바로 복구해야 된다는... 거기서도 위험성을 느낀다. 방사능에 오염된 땅을 걷어내는 걸 제염이라고 하는데, 그 흙을 비닐에 걷어놓은 상황. 수도권에서 온 사람들이 스터티 투어 와서 그런 상태를 보면서, 우리는 원전과 공존할 수 없다는 걸 눈으로 실감하면서 탈원전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들 생각해봤다. 다양한 분단, 갈등 상황들 극복하는 것이 과제. 지금은 지원자지만 내가 이재민 될 가능성도 있는데... 그래서 연대 중요. 국가 넘어선 연대가 중요하다. 특히 일본과 한국은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인데, 같이 얘기하고 같이 해결하지 않으면... 정부에 맡겨놓으면 절대 안 된다. 생명을 중요히 여기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같이 노력해야 되는 거 아닌가.
[후쿠시마 지역의 미래 만들기 프로젝트]
(오가닉 코튼, 커뮤니티 전력, 스터디 투어)
-시마무라 모리히코
나는 두 번의 큰 지진을 겪었다. 고베에서 한 번. 이주해서 후쿠시마에서 또. 보기 드문 경우.
이와키 현에서 왔다. (이와키 현 들어본 분 계세요?) 후쿠시마 원전에서 내가 사는 곳은 35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혹시 거기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분?)
원래 오사카 출신이다. 1995년 고베 지진 현장에 있었다. 2000년에 후쿠시마로 이주했는데. 일본의 큰 지진 두 개를 겪은 사람이다. (한국까지 지진을 가져오지는 않았으니까 안심하세요 하하하하하.) 후쿠시마 이와키에서 살고 있는 주민 중 한 사람으로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가능하면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싶어서 보고는 최대한 짧게 하겠다. 원전을 통해서 후쿠시마는 잃은 것과 얻은 것이 있을 것 같다. 원전으로 얻은 것은 편리성, 돈? 잃은 것은 살 곳, 커뮤니티 파괴, 꿈, 희망도 없어졌다. 마음도 오염이 되었다. 원전 사고로 인해서, 원전으로 얻었던 것들이 전부 없어졌다. 돈이 있어도 아무것도 살 수 없었다. 원전이 무서웠기 때문에, 방사능이 무서웠기 때문에, 모든 물자가 들어오지 않았다. 전기도 수도도 끊겼다. 정보도 들어오지 않았다. 돈 있어도 빵 한 조각, 쌀 한 톨도 살 수 없었다. 그 속에서 나를 지지해줬던 것은 바로 커뮤니티였다. 얼굴이 보이는 커뮤니티다. 하지만 원전 사고라고 하는 것은 그 커뮤니티조차도 파괴해버렸다. 아마 여러분이 지금 당장 이와키에 방문하면 그냥 일상적으로 잘 살고 있지 않냐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 주변 산책 해봤는데 뭐 다른 곳과 비슷한 광경이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여기 정말 살아도 될까, 여기 물을 먹어도 될까, 여기 먹거리를 먹어도 될까, 그런 불안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원전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냥 잊어버리고 싶다. 그만큼 무거운 것. 얘기하고 싶지 않고, 잊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게 지역 주민들의 실제 마음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지역 그룹들과 새로운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 그 시작이 바로 지역 주민들과 외부 지원자들과 함께 모여서 후쿠시마의 미래를 생각하는 디스커션.
이런 걸 통해서 세 가지 사업이 우선 시작되었다. 후쿠시마의 문제가 뭐냐. 후쿠시마라고 하는 것은 원래 산과 바다에 둘러싸인, 말 그대로 천혜의 자연이 있는 지역이었다. 맛있는 과일, 채소, 곡물, 생선 이런 것들이 풍요로운 지역이었다. 후쿠시마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자원의 보고였다는 것. 온천도 있다. 그러한 모든 것을 방사능이 빼앗아갔다. 그런 속에서 우리가 새롭게 산업을 만들어갈 움직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단 농산물은 재배해봐야 팔리지 않고. 생산한 걸 그대로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럼 먹거리 말고 다른 걸 생각해보자. 거기서 나온 것이 바로 목화였다. 물론 후쿠시마라고 하면 방사능 지역이라는 게 당연히 있을 것인데. 다행이라고 할까, 방사능이 북쪽으로 흘러갔던 것. 남쪽으로는 거의 흘러오지 않았다. 이와키의 방사능 양은 동경과 그렇게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후쿠시마라는 이름만으로도 여러분은 염려스러우시죠? 메이드 인 코리아, 메이드 인 후쿠시마, 어느 쪽이 안심되세요? 당연히 한국이겠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팔리지 않을뿐더러, 팔릴 가격을 매길 수조차 없는 거. 한국에서 팔리는 물건의 절반 가격 정도라면 사시겠어요? 안 사시겠죠. 어렵죠. 방사능이란 게 그런 겁니다.)
하지만 후쿠시마는 그것과는 별개로, 에너지의 잠재력이 많다. 태양, 강, 바다, 자연 에너지가 많이 있다. 그래서 앞서 말했던 먹거리 농업에서 입는 농업으로 바꿔서 목화솜 생산하고 자연에너지 얻는 활동 시작하게 된 것.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해서, 여러분을 초청해서, 함께 밭을 만들고 이런 상황들을 알게 하는 스터티 투어를 시작했다. 프로젝트 담당하는 3명의 시민 리더. 요시다 에미코, 시마무리 모리히코, 사토미 요시오. 각각 원래 활동해왔던 분야들이기도 하고. 강점을 살렸다. 요시다는 옛날부터 헌옷 리사이클했기 때문에 오가닉 코튼 담당. 시마무라는 에너지 담당. 사토미는 여관의 젊은 주인이었기 때문에 스터디 투어 담당. 세 명이 같이 모여 만든 오가닉오텐토썬기업조합.
버려진 아스파라거스들. 재배해봐야 팔리지 않으니까 경작 포기. 버려진 땅을 커뮤니티 만드는 장으로서 활용하자 얘기되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만드는 수단으로서 목화를 생각했다. 큰 눈이 내리는 중에도 볼런티어들이 와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느냐 하면, 이와키 지역에는 20킬로에서 피난 온 사람들 2만 4천 명이 있다. 각각 마을에 경계들이 있는데(이와키 위에 히로노마찌 이런 식으로) 지금 일본 정부는 히로노마찌 같은 경우는 원래 30킬로 권이었기 때문에 피난 권고 풀고 돌아와도 좋다고 하고 있는 상황. 그 위 나가와마찌는 들어가서도 안 되는 지역이었다. 그 지역도 들어가도 괜찮다고 풀어줬다. 대신, 자면 안 되고 낮 동안에 돌아다니는 것은 괜찮다. 그 위 토미오까. 들어가도 되는 곳과 안 되는 곳을 바리케이드로 구분하고 있는 지역. 이것이 어떤 의미냐면, 구역을 단순히 나누는 것이 아니라 배상금이 걸려 있다는 것.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는 지역에서 안쪽과 바깥쪽. 다시 말해서, 당신은 바리케이드 안쪽이니까 돌아갈 수 없지 그러니까 10만 엔 줄게. 여섯 명 가족이면 60만 엔. 이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면, 돈을 주지 않겠다는 것. 아예 돌아갈 수 없는 지역은 700만 엔. 이렇게 구분되어진 2만 4천 명이 이와키에 살고 있는 것. 아침마다 거리는 복잡. 병원에 가보면 3시간 이상 기다려야 된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점심 먹으러 가면 매번 순서 쓰지 않으면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심각. 배상금을 받는 사람은 일자리를 구하면 배상금을 받지 못한다. 그러니까 일을 안 하는 게 당연히 좋게 되는 것. 일하지 않고 낮에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데 가서 밥 먹고. 피난민들은 병원에 가도 병원비 지불 안 해도 된다. 그런 속에서 싸움까진 하지 않지만, 원래 살고 있던 이와키 주민의 입장에서 난데없이 이재민들이 들어와서... 상황이 열악해지고, 나는 돈 지불해야 되는데, 이런 상황. 어떤 기분이 들까. 그런 상태 속에 이와키가 있는 것. 정말로 좋지 않은 상황인 것. 당장 살아도 될지 하는 불안감. 이 물을 마셔도 될지 하는 불안감. 거기다 이런 구별되어진 주민들 간의 갈등 요인까지 있고.
“근데 왜 이와키에 있냐?”
일본의 감수성일 수도 있겠지만, 그 지역에 대한 애착심, 그 속에서 뭔가 해보겠다고 하는 마음도 있는 것 같다. 어떻게 해결하면 될까 생각하게 되었다. 우선 같이 땀을 흘리는 것. 서로 입장들이 다 다르지만 같이 땀을 흘리는 것. 함께 밭에서 만난다. 원래 지역 주민, 이재민, 지원자 모두 다 모여서 함께 땀을 흘리는 과정 속에서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 이런 속에서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지면 지역에 꿈과 희망이 조금이라도 만들어지지 않을까. 이러한 활동을 거듭하면서 30개 곳에서 면화 재배하고 있다. 오가닉으로. 왜 하필 오가닉(유기농)이냐? 손이 많이 가는데. 후쿠시마는 어쨌든 환경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그래서 좀 더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신경 쓰면서 하고 싶다는 이유가 있었다.
2012년부터 시작되었고. 씨를 뿌리고 수확할 때까지 상당히 많은 일손이 필요. 여기서 농사를 지어도 되는지 의심이 되실 텐데, 시민 측정실에 의뢰를 해서 각 밭마다 토양 검사, 새싹 검사, 면화 검사, 제품도 검사, 과정과정마다 검사하고 있다.
코튼베이브 인형. 검사에 의해서 안전하다고 판명된 제품. 인형 안에 씨가 들어 있다. 이걸 사신 분들이 자신 집에다 심어서 거기서 솜이 나오는 것. 그걸 또 다시 이와키에 보내는 것. 인형도 팔고, 인형 판 걸 통해서 목화솜도 걷어들이는 지혜로운 시스템. 이걸로 티셔츠도 만들었다.
이와키 커뮤니티 전력(태양광). 참여한 사람은 목화와 같다. 볼런티어, 지역주민들과 함께 만든 발전소. 함께 땀 흘리는 공간. 쓰나미로 전력이 끊긴 상황에서 자연에너지 공급. 피난 온 분들이 사는 가설주택. 손으로 직접 만든 태양광 판넬. 태양광만으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발전한 전기를 축전지에 넣었다가 밤에 썼다. 청년들에게 자연에너지만으로도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콘서트를 연 것. 태양광 조성, 설치, 모든 것을 손으로 했다. 군대에서 ‘삽질한다’고 하듯이. 엄청 땀 흘렸다. 그게 바로 커뮤니티. 발전소를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커뮤니티를 만드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모두 손으로 한 것이다. 발전소가 목적이었으면 기계로 바로 설치했겠지. 탈원전에 대한 메시지를 위해서도 그랬다.
다음 사업, 오텐토쉐어, 밑에서는 면화 농사, 위에서는 태양광 판넬 설치. 이런 실험도 하고 있다. 이것도 손으로만. 이것은 후쿠시마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자연에너지 학교. 이와키의 초중학교 학생들. 자연에너지를 자기 손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워크숍들 진행. 판넬 직접 만들어서, 정전이 되더라도 꺼지지 않는 가로등도 부착. 우리는 후쿠시마 지역을 이렇게 만들어가고 싶다. 목화밭과 판넬, 태양열 온수기, 자연에너지 공연, 태양광 전등, 그런 학교... 여기는 당연히 전선과 전봇대가 없다. 지금 후쿠시마에 필요한 것은 꿈과 희망이다. 태양광이든 목화든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지역에서 같이 살아가자고 하는 꿈과 희망인 것이다. 그걸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런 활동들을 하고 있다. 그런 걸 투어라는 형태로 진행하는데 방글라데시, 중국에서도 온다. 지역 주민들고 있고. 볼런티어도 있고. 다양한 사람들. 이런 현실들을 이런 투어를 통해서 나누고, 마지막에는 후쿠시마의 미래를 생각하는 디스커션을 진행한다. 사실은 우리도 다 처음 시도하는 거다. 오히려 여러분들에게 어드바이스를 받고 싶다.
후쿠시마를 무서워만 하지 말고, 현실을 제대로 봐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후쿠시마에서 희망을 만들어갈 거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책임만으로 돌리지 않고, 당사자의 책임도 통감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한 여러 활동들을 하고자 하는 것이고, 여러분들도 후쿠시마의 진상을 정확히 알아주시고, 어드바이스를 주시면 좋겠다. 우리 차세대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뭔가 같이 이야기 나누자.
[2부 질의응답]
Q. 시마무라상에게 질문. 마지막 인사말이 후쿠시마에 와주세요, 였는데, 열 번 정도 토호쿠에 갔었는데, 안전 위협 느낀 적 없었다. 이와키, 후쿠시마 문제가 되는 쪽에 들어가보지는 못했는데, 작년 시위에서 이런 구호가 나왔다는 걸 들은 적이 있다. “후쿠시마를 잊지 말아주세요, 그렇지만 오지는 말아주세요, 먹거리는 먹지 말아주세요.” 후쿠시마에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면 그게 안전하다는 뜻이 돼서 아이들이 옮겨갈 수 없다, 아이들이 방사능 먹거리를 먹게 될 수도 있다고. 당사자 입장이 다양하다고 들었는데, 시마무라상의 “후쿠시마에 와주세요”라는 말과 시위 구호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진용주)
A. 방사능에 있어서, 수치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각각의 가치관, 마음의 문제인 것 같다. 커뮤니티 문제가 발생되는 것도 그 가치관에 의해서. 아까 돈의 얘기를 했지만, 그 근저에는 가치관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방금 질문하신 분의 내용이 전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생각도 있는 것이고. 그것을 부정하는 순간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한 가치관도 존중을 하고, 하지만 그러한 의견을 존중하는 위에, 현장이 아니면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지 않나. 적어도 어쨌든 내가 후쿠시마의 대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후쿠시마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이다. 물론 후쿠시마 내에도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찬성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방사능 수치가 몇 이상이면 불안전, 뭐 이런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 수치와 관련된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관이 아닐까. 어떤 사람은 같은 수치라도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불안하다고 생각하고. 같이 고민하는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지금 같은 현상조차도, 방사능의 피해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까지 포함해서 후쿠시마를 알아주시면 좋겠다.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 아닐까.
Q. 쓰나미가 있고 나서 관심이 많이 갔다. 친구들도 있고. 오늘 두 분께 질문은, 후쿠시마 집단 소개 재판을 한다는 것과, 후쿠시마에서 커뮤니티를 재건한다는 것은 상반되는 입장이 아닌가? (신도림동 이주만)
A. 상반되지 않는다. 아이들 소개 재판 같은 경우는 영원히가 아니라, 3주나 한 달 정도, 아이들이 안전한 데서 리플래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재판. 체르노빌에서도 이미 했었던 내용. 이것을 일본에서도 하면 안 되겠냐 하는 내용.
Q. 그럼 아이들이 방사능으로부터 얼마나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10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한다면 9는 안전한가?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그 지역에서 떠나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같은 질문자)
A. 물론 나도 그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만 소개시켜서 부모와 떨어져서 영원히 살게 하는 게 좋은 걸까, 생각한다면 간단한 대답은 아니다. 그럼 부모와 같이 사는 게 좋은 건지, 누구도 정답을 갖고 있진 않다. 안전 기준에 있어서도 애매모호한 상태가 되어 있다. 그런 부분에서 정부를 신용할 수 없게 되면서 개인적으로 신용하는 단체, 그 단체가 제시하는 기준을 따르는 형국이 되어 있다. (군지)
방사능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불안 속에서 사는 부모 밑에서 성장하는 아이들. 불안을 먹고 살아야 하는 아이들에 대한 심려도 있다. (시마무라)
Q. 오늘 강의를 통해서, 원래 후쿠시마에 대해서는 하나의 이미지밖에 없었는데,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 기회를 열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 우선 군지 씨께. 지자체 의원 연맹이 설립됐다고 했는데, 이들의 활동이 정부에 영향력을 끼치는지. 시마무라 씨께. 커뮤니티 예술에 관심이 있는데, 이미 그걸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태양열 공연 컨텐츠 놀랍고, 어떻게 지속되고 앞으로 계획 있으신지 궁금하다. 코튼 인형으로 인형극 할 생각 있으신지도 궁금하다. (연극 전공 대학생)
A. 연구하고 있다. 후쿠시마 청년들도 댄스, 연극 서클, 자신의 생활상 이야기들을 각본화해서 하고 있다. 교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초당 의원 연맹이 얘기됐었는데 실제로는 방치된 상태. 국회에서 빨리 통과시키라고 촉구하기 위해 의원 연맹이 있다. 서명활동을 벌였다. 기존의 재해지원법은, 가설주택을 3년간 보장하는 내용인데, 지금은 3년만으로 안 되니까 특별법 만들라고 압력을 넣는 것이다. 그 결과 10년으로 연장됐는데, 이게 의원들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연장선상에서 이재민 기본지원법도 빨리 통과시키라고 압박하고 있다. (군지)
공연하는 장소에는 콘센트가 원래 있다. 하지만 일부러 태양광 판넬 설치해서 한 것. 우리의 주장을 그런 콘서트 통해서 보여준 것. 데모 반대집회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알리기 위해, 지속하려는 생각 있다. 축전지를 만드는 기업 같은 데서 후원을 받기도 하고. 이것이 비즈니스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코튼베이브 이 친구가 너무 작아서... 그래도 인형극은 참 좋은 아이디어. 적극 생각해보겠다. (시마무라)
Q. 암울하게만 생각했던 후쿠시마에 대해서 직접 살고 있는 분들의 꿈과 희망을 들으니까, 마음이 많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두 가지 질문. 군지 씨께. 체르노빌 사람들 중에서 식습관이 잘못됐기 때문에 더 나빠졌단 얘기를 했는데, 후쿠시마에서는 어떤 식습관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시마무리 씨께. 이재민분들이 이와키에서 어떻게 같이 생활하고 있는지, 주거지가 따로 있는지, 자유롭게 사는지, 거주 형태가 궁금하다. (한살림 홍보위원 홍유진)
A. 수도권에서 주로 강연하거나 사람 만나는 경우가 많다. 1차 폭발과 2차 폭발이 있었는데, 1차 때는 수도권까지 방사능 흘러나왔고, 2차는 후쿠시마로 한정되었었는데, 일본 정부는 2차 때 얘기만 중심으로 정보를 흘리거나 보도했다. 왜냐면 1차 얘기를 많이 하는 순간, 수도권 사람들이 전부 패닉 상태가 되어 엄청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최대한 감췄던 것. 그래서 수도권에서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했던 걸 들춰낸다. 아이들과 자신의 문제라는 것. 후쿠시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식사법 같은 이야기를 한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건강을 제대로 체킹해주는 걸 얘기하는데, 꼬마들 같은 경우는 매달 혈액검사를 한다. 불쌍하긴 하지만, 수치를 알아보는 것이 예방에 도움되는 부분이 있어서.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후쿠시마 산물은 철저하게 검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전한 것만 밖으로 내보내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아예 검사를 안 한다. 그럼 다른 지역 것이 더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거냐? 한국에서도 한번 측정해보고 안전을 실감해보는,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군지)
강제로 피난 온 사람이 있고 스스로 피난 온 사람도 있다. 쓰나미에 의한 피난도 있고. 특히 강제 피난 경우에는 집단적으로 하기 때문에, 커뮤니티별로 피난. 마을 통째로. 돌아와도 좋다고 권고하지만 어쨌든 불안한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오사카, 나고야에 주소를 두고 오는 사람도 있다. 쓰나미 피난민들 같은 경우는 집단적 수용이 아니라, 근처 주택 빌려서 개별 분산. 여러 종류 피난민들이 있고, 그에 따라 보상을 받거나 못 받거나 하는 사람들이 혼재되어 살고 있는 것. (시마무라)
Q. 방사능이 신체에 악영향 주는 것만 생각했었는데 마음 벽 만들고 관계를 파괴시키는 면에 대해서 많은 걸 느끼게 됐다. 시마무라상께. 후쿠시마 지역에 사시는 분으로서, 재난을 겪고 나서 사람들의 태도,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을 텐데, 살아가면서 정말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같이 나누고 싶다. (?)
A. 물질에 대한 가치관 변화,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 진정한 풍요로움은 무엇인가. 지금까지는 그냥 콘센트가 있으면 콘센트에서 자기 것을 취해왔다. 큰 텔레비전 산다거나, 옆집이 큰 에어컨을 샀다거나 하는 식으로, 다른 사람과 구별하면서 자기 행복감을 생각해왔다. 고립되면서 돈으로 살 수 없고, 뭐가 더 중요한가 경험했다고 했듯이, 이제는 함께 사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고립으로 인해 깨달았다. 안심하고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후쿠시마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이 가능한가를 매일매일 생각하고 있다.
Q.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 갈등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 그게 단지, 병원 가서 오래 기다리고 하는 표면적인 것들이 불편한 건지... 다른 일들이 있는 건데 발표하기 어려워서 이 정도만 말씀하신 건지? 그리고 피폭을 당한 지역과 당하지 않은 지역 사이 갈등. 간사이 지방 사람들이 후쿠시마 사람들에 대해 배타적으로 대한다고 들었는데... (?)
A. 311 직후에는 후쿠시마와 그 밖 사람 간의 차별이 있었다. 학교에서 이지매를 당하고 자기 지역으로 돌아갔다든가... 초창기에는 방사능에 대한 인식이 정립되지 못해서, 방사능은 옮기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 자기 아이에게 옮기는 거 아니냐. 활동을 하면서 후쿠시마 차별에 관한 것들은 많이 줄었다고 생각한다. 일본 전체가 후쿠시마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로 움직이고 있는데, 다만, 관동과 관서 온도차는 있다. 오사카와 큐슈, 어쨌든 멀다. (군지)
사례들이야 많이 있다. 예를 들어, 가라오케 엄청 좋아하고 술 마시는 거 좋아하는데, 밤마다 어딜 가나 꽉 차 있을 정도. 가설주택에서 시간만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엄청 많고. 작년과 재작년에, 시청 앞 같은 곳에 너희들 빨리 너네 동네로 돌아가라는 낙서가 여기저기 쓰여지기도 하고. 가설주택 주차된 차들에 펑크를 내는 사건들. 같은 후쿠시마 사람들끼리 그러는 게 부끄러운 거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에서) 토지 가격도 엄청 상승하고, 원래 살던 청년들은 집을 마련할 수 없고, 그런데 이주민들은 현금으로 바로 해결할 수 있고. (시마무라)
(시간 제약상, 네 사람 질문을 한꺼번에 받겠다.)
Q. 애쓰시는 모습 감사하고, 한국에도 위험성을 알려주는 사례가 되었다. 그런데 이 피해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피해자가 전 세계인이기 때문에, 맞서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흐름은 계속될 거고, 그게 국제적 문제가 될 텐데, 이 사람들과 어떻게 우리가 연대해서 해결해나가야 할까,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어떻게 노력해야 할 것인가 하는 국제적 연대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안인숙)
Q. 마음에 큰 울림이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사고 이후 수습되고 있지 못한 상황, 동경전력 무책임, 일본 정부 대응 같은 것들 때문에, 부정적으로만, 대재앙으로만 생각했는데, 오늘 말씀 들으면서, 국가로부터 버려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어려운 조건에서 땅과 공동체를 지키면서 살아보자고 하는 사람들이 여기 찾아주고 같이 나눠주신 것 감사드리고 한국에서 탈핵을 생각하는 사람들과도 함께 이야기 나누며 기운 받아가셨으면 좋겠다. (이은영)
Q. 후쿠시마 불안 중 하나는 일본 정부 발표 믿지 못하겠다는 것인데, 실제로 모르고 있지 않나 거기서? 원전 노동자들이 현재도 작업을 하고 있다, 일할 사람이 거의 없다는 얘기. 실제로 원전에서 수습 작업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살고 계신 분들은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일본에서 거의 보도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과 마찬가지로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참으로 어려운 문제. 또 하나는 주민들이 분리되고 하는 것. 동경전력이 책임지고 있지 않은데, 처벌받지 않았고, 국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상태라고 생각하는데. 국가에 책임을 묻기 위해서 지역에서 여론이나 활동이 있는지. (김영한)
Q. 1년 후 2012년도에 인터넷상에서 근황이 궁금해서 검색해본 적이 있는데, 익명성 때문에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발전소 연료봉이 약 200여 기가 남았다고 하는데, 일부는 멜트다운을 일으켜서 지각을 뚫고 내려가서 기술적으로 고쳐나갈 수 없어 방치하고 있다 카더라 식의 얘기를 봤다. 일본 주요 언론사에서 공개된 적이 있는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
A. 연대와 관련되어서는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염수가 태평양에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고 방사능도 방치 상태 비슷한 게 사실이고, 정부는 처리한다고 제염한다고 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들이 분노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하지만 국가가 분노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시민들이 분노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힘을 모아.
일본 정부는 동경전력에 오히려 책임을 미루는 형태로 몰고 가고 있다. 단순히 동경전력에만 책임을 물을 건 아니고, 동경전력을 해체하고 정부에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갈려고 한다. 재판은 센다이는 승소했으나, 책임 추궁 면에서는... 오염수 누구 책임이냐 진행 중. (군지)
주민들 반 정도는 더 이상 이런 얘기 하고 싶지 않다, 잊어버리고 싶다. 단순히 후쿠시마만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전체, 세계 전체의 문제로 생각하면서 어떻게 같이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시마무라)
[마지막으로 할 얘기]
현재 일본은 원전이 하나도 가동되지 않지만, 전혀 문제 없이 산다. 예전엔 30프로였는데, 지금은 0프로인데 살고 있는 것. 후쿠시마 같은 리스크를 안고서 살아가는 게 과연 맞을까? 핵이 없는 사회, 핵이 없는 세계를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군지)
과연 우리가 어떤 리더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정치라든가, 어떤 목소리 빌려서 이야기할 것인가를 후쿠시마 실패를 통해 충분히 증명했다. 아이들을 생각할 때 무엇을 해야 할까도 충분히 공감되는 부분이 있을 것.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후쿠시마의 실패가 기준이 되지 않을까. 다시는 이런 실패가 일어나지 않도록, 목소리를 냅시다. (시마무라)
첫댓글 마성의 땡땡책협동조합에서 가져다 놓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