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이중적 기본 가치와 윤리적 의무 (2)
원시기독교의 지혜와 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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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와 정결 주제에 관한 가치전환
권력층은 자신이 가진 부와 힘이 정당한 것임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혜자와 제사장들은 이러한 후광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부를 늘이는 유혹에 참여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제사장들의 진정한 힘은, 어떤 개념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이는 권위를 지녔다는 사실이다.
레위기 10:10 -11에 따르면, 제사장들은 이에 관한 전권을 지니고 있다.
너희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여야 하고,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구별하여야 한다. 또 너희는 나 주가 모세를 시켜 말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야 할 사람들이다.
‘거룩’ 과 ‘정결’ 은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같은 뜻이 아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는 동시에 인간과 사물의 제의에 적용된다. 거룩의 반대말은 부정함이 아니라 세속적임인 것이다.
‘정결’은 인간과 사물의 속성에 대한 개념이다. 정결해짐으로 인간은 제의에 참여할 수 있고 제사용기구들도 정결해짐으로써 사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정결한 것과 불결한 것의 구별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사 행위 가운데서 가능해진다.
<지위와 보전> , <금기조항의 강화>
지위와 보전은 혈통과 혼인에 관한 규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금기조항의 강화를 통해서 제사장과 평민 사이의 구별은 심화된다. 부정한 것의 금기는 무엇보다도 죽음과 질병, 성적인 것, 더불어 일상적인 것에도 적용되었다. 특히 성과 관련된 제약은 평민에게는 없는 것으로, 제사장은 더 높은 윤리와 실천을 강요받았다.
<대중화>
이와는 반대로 대중화의 경향도 존재했다.
예수운동과 원시기독교 내부에서 성화와 성화에 대한 의무들이 일반인에게도 확장되었다. 이유는, 유대교에서 이루어진 가치전환이라는 형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원시기독교의 특징으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원시기독교 내에서 기독교 신앙을 선택한 비유대인들까지 이러한 대중화의 영향력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혈통을 통한 지위의 보전, 즉 제사장의 특권은 원시기독교 안에서 사라졌다. 이는 엘리트에게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의 포기를 통해서, 전체 백성 모두가 특권화되기를 바라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세례 요한의 선포는 아브라함의 자손 됨이 구원을 보장한다는 관점에 대해서 근본적인 반론을 제시했다.
원시기독교 안에서 세례는 성령과 결부되고, 세레는 엘리트주의의 권위를 대체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높여진 예수는 순전히 ‘거룩한 영’을 통해서 다윗의 후손이라는 지위를 의도적으로 폭기한다. 이를 통해 성령으로 탄생된 예수는 모든 기독교인의 롤모델이 된다. 즉, 모든 기독교인들은 똑같이 거룩하다.
그렇다면, 거룩한 지위와 마차가지로 금기조항의 강화 또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가? 답은 그렇다이다.
대신, 엄격한 윤리적 에토스의 반대편에서 관용적인 태도 역시 예수의 어록에서 볼 수 있는데, 이는 인간의 한계를 배려하고 설정한 목표와 현실이 괴리되지 않기 위한 처사로 보여진다.
단, 바울의 경우 관용적 성윤리를 제시하지 않았다. 바울이 제시한 기독교인의 삶은,
공동체적 삶에 맞는 단정한 태도를 갖추고, 서로 사랑하며, 외부인에게도 사랑을 베풀고, 또한 국가에 충성해야 했다.
베드로 전서는 모든 기독교인에게 제사장의 지위와 행동양식을 부하한 대표적 예다.
당시의 기독교인들은 이전의 유대교 전통에서 벗어남으로써, ‘거룩함’ 을 획득할 수 있었다.
성화는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공동체의 틀 안에서의 새로운 삶이며,
물론 베드로 전서는 순응적 윤리를 가르치지만, 이 행동양식은 원래 상류층의 자의식이었다. 노예로서 또는 고난에 처한 기독교인들 역시 상류층의 자의식을 가짐으로써, 실제로는 왕의 혈통을 지닌 귀한 자들이 된다는 뜻이었다.
제의적 규범과 금기조항들의 대한 자유롭고 도발적인 태도는 필연적으로 제사장들과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예수의 성전 멸망 예언은 유대교 제의의 심장부를 겨냥한 것이었다. 예수의 죽음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자들은 율법학자들인 바리새파가 아니라, 제사장 계급인 사두개파였다.
원시기독교인들의 성전에 대한 태도는 가치전환을 통해서 ‘거룩함’을 민족초월적인 것으로 환치시키려는 경향을 지녔다. 바울과 스데반을 비롯한 원시기독교인들이 성전을 유대교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개방하려한다는 불만은 유대교 관점에서만 정당했다.
정결과 성화에 관한 제사장적 가치는, 신화와 에토스의 결합, 에토스와 공동체의 결합으로 나타났다. 바울은 그리스도 사건을,
권력과 피권력/ 부와 가난/ 지혜와 무지/ 죄와 의로움을 역전시키려는 것으로 해석했다.
원시기독교 에토스는 이웃사랑과 겸비라는 이중적 에토스를 지닌다. 이중적 가치는 이방인, 원수, 죄인까지도 사랑하고, 급진화된 에토스를 통해 내부 집단과 외부 집단의 경계를 초월한다. 원시기독교의 에토스는 상류층과 하류층의 경계를 초월하기에, 상류층을 향한 요청이 되며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기준이 된다.
이와 같은 에토스의 사회적 삶의 자리는, 즉 원시기독교의 공동체들은 다른 사회적 기본 단위들과의 구별됨을 의무화했다. 은총의 급진화도 원시기독교 공동체 삶이라는 ‘삶의 자리’에 속했을 것이며, 이 급진화된 에토스를 통해 사회통화작업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급직전 에토스가 세속적 인간의 삶 속에서 공존될 수 있었던 까닭은, 원시기독교의 에토스가 그리스도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즉, 하나님은 강자를 약하게, 약자를 강하게, 부유한 자를 가난하게, 가난한 자를 부유하게, 지혜로운 자를 어리석게, 죄인을 의롭게 하는 분이다. 이러한 논리는 사회적 관계의 평등과 내면의 수양을 동시에 요구했다.
원시기독교 에토스가 요구하는 새로운 인간상은 이러한 것이었다.
철저하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자요, 타인을 성적착취의 대상이나 난폭한 공격의 대상으로 삼지 아니하고, 그러한 풍조도 거부하며,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평화를 확산시키고, 거짓과 위선과 싸우는 자다. 그리고 그러한 자는 “마음이 깨끗한 자는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마 5:8) 이라는 예수의 축복선언을 통해 마음에 감동을 받은 자다.
과목: 기독교의 탄생(예수 운동에서 종교로)
저자: 게르트 타이쎈 지음. / 박창웅, 민경식 옮김.
출판사: 대한기독교서회
발제자: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신학원 최승현
발제자 질문: 그런데 원시기독교의 공동체와 공동체적 삶은 전통으로 계승되지 못하고 현실에서 실패한 것일까?
첫댓글 어렵사리 잘 읽긴했는데..저는 이런(?)공부는 취미 없어해서 별 말씀을 못해드리겠습니다.ㅎ 여튼 최승현님 공부하시느라 애 많이 쓰셔요. 가끔 삼계탕도 드셔가며 하시길..ㅋ 홧팅 ! ^&^
저는 취미가 있어요 ^^;; 함북님도 홧팅!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