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예수 우리 [주]를 아는 것을 통해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부르사 영광과 덕에 이르게 하신 분을 아는 것을 통해 그분의 신성한 권능이 생명과 하나님의 성품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도다.
그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나니 이것은 너희가 이 약속들을 힘입어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벧후1:2-4)
아는 것을 통해 - 앎이라는 것은 헬라어로는 에피그노시스이다. 그 뜻은 지식, 인식을 의미한다. 빛이 어둠가운데 비취었으나 깨닫지 못한 것은 빛을 인식하지 못했기에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요1:10) 던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식한다는 것은 마치 미명에 떠오르는 서광과도 같다.
그 서광은 아침을 열 것이며, 한 낮의 열기를 만들어 알곡이 가득 찬 곡식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성령께서는 진리에 순종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그 인식을 시작으로 생명과 하나님의 성품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 진리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의라 불리며, 생명의 성령의 법(롬8:2)이라고도 하고, 자유의법(약2:12)이라고도 불렸으며, 최고의 법 또는 왕가의 법(약2:8) 이라고도 칭했던 "사랑"이다.
이 사랑은 죽음보다 강해서 모든 것을 견디게 하는 능력을 가졌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자로 오셨을 때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신 이유가 율법이 아닌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라 행하셨기에 율법아래 있는 자들이 몹시 분을 내어 그분을 죽게 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심으로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라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의" 이며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선언한 셈이다. 그러므로 율법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부활이라는 것은 심판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그렇다. 율법을 주신 이유는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주셨던 것이다. 율법 안에 담긴 모든 내용들은 모든 이정표들이 출구를 가리키듯 악이라는 세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인 "사랑"을 가리키고 있다.
사랑하게 되면 악을 행치 않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돈을 훔치지 않을 것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할 일도 전혀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목숨마저 아깝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사랑하셨기에 독생자를 보내셨다. 그 독생자는 아버지를 사랑하셨기에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죄인들의 대속제물이 되셨던 것이다.
이제 율법이 아닌 사랑의 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 우리는 그 완전한 길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