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봉찬회 신행단체에서 다음과 같이 3보 종찰을 순례합니다.
동참 하실 도반님들은 봉찬회(tel:02-387-8578)로 예약하시면 됩니다.
꼭 차량번호와 좌석번호를 확인하셔서 동참에 차질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2014년(갑오년) 정월 삼보종찰 순례(무박2일)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
1. 출발일정 : 1차 : 양력 1월 31일 - 2월 1일(음력 1월 1일-2일) 금-토요일
2차 : 양력 2월 1일 - 2일(음력 1월 2일 - 3일) 토-일요일
3차 : 양력 2월 2일 - 3일(음력 1월 3일 - 4일) 일-월요일
4차 : 양력 2월 4일 - 5일(음력 1월 5일 - 6일) 화-수요일
5차 : 양력 2월 8일 - 9일(음력 1월 9일 - 10일) 토- 일요일
6차 : 양력 2월 11일 - 12일(음력 1월 1일 - 13일) 화-수요일
7차 : 양력 2월 15일 - 16일(음력 1월 16일 - 17일) 토-일요일
8차 : 양력 2월 18일 - 19일(음력 1월 19일 - 20일) 화-수요일
※ 또한 3차 일정은 삼보종찰만 적용합니다.
2. 출발장소 및 시간
- 종로 조계사 밤 9시 출발
- 강남고속터미널 GS주유소 밤 9시20분 출발(경부선 쪽 사거리 모퉁이)
- 잠실 갤러리아 아파트 밤 9시40분 출발(롯데마트 옆 주상복합아파트)
3. 보시금 : 삼보종찰 : 60,000원 삼대보궁 : 50,000원
<통도사>
신라 제 27대 선덕여왕 15년(646) 대국통 자장스님에 의하여 창건된 통도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의 으뜸인 불보사찰이다. 즉, 초조대장경이 소실되고 난 후 다시금 대원력을 세워
조성된 팔만대장경판을 모신 법보사찰 해인사, 조계종의 중흥조이신 고려국의 보조국사(普照國師)이래
16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 송광사와 함께, 신라시대에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금란가사
(金欄袈裟) 대장경을 봉안한 통도사는 그러므로 세 사찰 중에서도 으뜸인 불보사찰이라 한다. 통도사를
불지종가[佛之宗家 불자들의 마음의 고향]이요, 국지대찰[國之大刹: 나라의 으뜸 가람]이라고 칭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도사에 봉안된 진신사리와 금란가사(金欄袈裟)는 대국통께서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모셔온 것이다. 이때 당나라 황제가 하사한 막대한 양의 비단과 채색옷감, 대장경
400권, 불교용 깃발(幡幢), 꽃으로 장식된 가리개(花蓋) 등을 함께 가져와 통도사를 창건하였다. 따라서
통도사는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로 대장경을 봉안한 사찰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통도사는 창건 이후 신라 · 고려시대를 거치며 왕실과 대중의 비호속에 한국 불교의
구심처로 자리 잡았다. 고려시대에는 원나라에서 사신이나 귀족들이 고려에 올 적에는 가장 먼저
통도사에 참배하였다. 조선시대의 억불과 임진왜란에도 굴하지 않고 중창을 통하여 면면히 법등(法燈)을
이어왔다. 조선시대에는 전국 16개 대표사찰가운데 경상남도의 대본산(大本山)이 되었다.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15교구 본사(本寺)로 국내 최대의 사찰을 형성하여 구하(九河) · 경봉(鏡峰)대선사와
같은 고승이 계셨으며, 이후로는 대한불교 조계종 9대 종정을 역임하신 월하대종사(月下大宗師)를
배출하였다. 현재는 원명지종스님께서 방장으로 중생들을 제접하고 있다. 이처럼 대국통 자장스님의
원력과 혜안에 의하여 창건된 영축총림(靈鷲叢林) 통도사는 면면이 한국불교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으며,
작금에 이르러서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진가가 잘 드러나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통도사의 사격(寺格)은 신라시대에는 계율 근본도량이 되어 수사찰(首寺刹)의 위치에 있었으며, 또
고려를 지나 조선초기에는 나라에서 각 사찰을 기도장소로 지정할 때 수위사찰(首位寺刹)이 되었다.
대한제국 당시 정부에서 관리서(管理署)를 두어 전국 16개 수사찰(首寺刹)을 정할 당시 경상남도의
수사찰(首寺刹)이 되었고, 또 전국에 본산을 정할 때에도 선교양종(禪敎兩宗) 대 본산(本山)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으며, 불보사찰(佛寶寺刹)의 위상을 갖추게 된 것은 자장율사스님의 불사리 봉안에 따른
것이다.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로 경남불교를 이끌고 있으며 자장율사스님의 창사(創寺)
정신을 계승하는 영축총림 통도사의 수행자들은 경향 각지에서 한국불교의 정신적 기반으로서 그
역할을 십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해인사>
해인사는 신라시대에 그 도도한 화엄종의 정신적인 기반을 확충하고 선양한다는 기치 아래, 이른 바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로 세워진 가람이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은 4세기 무렵에
중앙아시아에서 성립된 대승 경전의 최고봉으로서, 그 본디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동양문화의 정수라고 일컬어진다. 이 경전에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해인사 이름은
바로 이 '해인삼매'에서 비롯되었다. 해인삼매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 없이 깊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하여, 거친 파도 곧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
속에(海)에 비치는(印) 경지를 말한다. 이렇게 여실如實한 세계가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모습이요 우리
중생의 본디 모습이니, 이것이 곧 해인삼매의 가르침이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해인사는 해동
화엄종의 초조初祖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의 법손인 순응順應화상과 그 제자인 이정理貞화상이
신라 제40대 임금 애장왕 3년에, 곧, 서기 802년 10월16일에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지금의 대적광전에
자리에 창건하였다. 이리하여 화엄종은 개화기를 맞던 신라시대를 거쳐, 해인사를 중심으로,
희랑希朗대사를 위시하여 균여均如, 의천義天과 같은 빼어난 학승들을 배출하기에 이르른다. 해인사는
한국불교의 성지이며 또한 세계문화유산 및 국보 보물 등 70여 점의 유물이 산재해 있다. 국내 최대
사찰로서 명산인 가야산 자락에 위치하여, 가야산을 뒤로하고 매화산을 앞에 두고 있어 그 웅장한
모습과 주변 경관이 어우러져 경의로울 뿐 아니라 송림과 산사가 어울어져 연출하는 설경을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경에 젖게 한다.
<송광사>
송광사는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있는 조계산 자락에 새둥지처럼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다.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에는 몇가지 전설이 있다. 그 첫째는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셔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뜻이다. 곧 '송(松)'은 '十八(木)+公'을 가리키는 글자로 18명의 큰스님을
뜻하고,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가리켜서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서 불법을 크게 펼 절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보조 국사 지눌스님과 연관된 전설이다. 곧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옮기기 위해 터를
잡으실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깍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져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한다. 이 전설을 토대로 육당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 풀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찍부터
산에 소나무(솔갱이)가 많아 '솔메'라 불렀고 그에 유래해서 송광산이라 했으며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송광사는 신라말 혜린(慧璘)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송광산 길상사(吉祥寺)였으며 100여 칸쯤 되는 절로 30, 40명의 스님들이 살
수 있는 그리 크지않은 규모의 절이었다고 한다. 그 뒤 고려 인종때 석조(釋照)대사께서 절을 크게
확장하려는 원을 세우고 준비하던 중 타계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50여년 동안 버려지고
페허화된 길상사가 중창되고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정혜결사가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부터이다. 지눌스님은 9년 동안의(명종 27년1197년 ~ 희종 원년)
중창불사로 절의 면모를 일신하고 정혜결사운동에 동참하는 수많은 대중을 지도하여 한국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였다. 이 때부터 송광사가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정유재란,
6.25사변 등 숱한 재난을 겪었으나 지속적인 중창불사로 지금의 위용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1년에 한번씩은 3보종찰과 3대보궁은 다녀오셔야지요.***
첫댓글 생각만 있지 실천을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