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세례 (1643)
호세 데 리베라
발렌시아 출신의 화가 호세 데 리베라(Jose de Ribera, 1591-1652)는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카라바조에게 큰 영향을 받아,
1616년에 스페인 영이었던 나폴리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종교화를 주문받으며 자신의 가장 뛰어난 작품들을 제작했다.
리베라의 구도는 당대의 화가 중에서 가장 뛰어났으며,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양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가 말년에 그린 그림들은 주제와 구성에서 온화해졌고,
더욱 밝은 화면과 확고한 구도로 인간적인 감정이 넘쳐흐르는 화풍을 보여주었다.
그가 1643년경에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는 밝고 온화하고 인간적인 감정이 넘쳐흐른다.
<그리스도의 세례>에 대해서는 모든 복음사가가 기록으로 남겼다.
그 내용이 마태오복음 3,13-17; 마르코복음 1,9-11;
루카복음 3,21-22에는 직접적으로 나왔고,
요한복음 1,19-28에는 간접적으로 나왔다.
예수님께서는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9-11)
리베라는 <그리스도의 세례> 장면의 구성을 <주님 탄생 예고>의 구성을 따랐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방문하여 주님 탄생을 예고하자
마리아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순종하는 자세를 취했듯이,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에게 조개껍데기로 물을 떠서 세례를 베풀자,
예수님께서는 무릎을 꿇어 자세를 낮추고 두 손을 모아 순종하는 자세를 취하신다.
신성을 지닌 예수님께서 인성을 지닌 세례자 요한에게 몸을 숙이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그를 상징하는 갈대로 만든 십자가를 들고,
낙타 털옷에 인성을 상징하는 붉은색 겉옷을 두르고 있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암시하는 흰색 수건만 몸에 걸치고
신성을 상징하는 푸른색 옷을 벗는 것이다.
리베라는 등장인물들을 화면의 경계까지 끌어당겼다.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세례에 동참하라고 가까이에서 사람들을 부른다.
예수님께서는 그림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리스도는 사도 바오로의 고백을 통해 보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6-8)
예수님께서는 몸소 자신을 낮추시어 세례를 받았듯이
우리도 하느님의 뜻에 겸손하게 순종하라고 눈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옷을 받아들고 있는 천사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둘기를 보고,
하늘에서 들리는 하느님의 음성에 귀를 열고 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9-11)
자기를 낮추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길이고,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일인가 보다.
그런데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오늘도 우리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무한히 투쟁하고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처럼 나를 죽을 것인가?
아니면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버리고 나만 살릴 것인가?
늘 갈등하고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