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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9차 연구회 간산 및 하계 연찬회 안내 (부산지역 2018년 8월 26일)
우리 연구회 제 59차 간산 겸 2018년 하계 연찬회를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인 부산에서 실시할 예정입니다.
부산은 근대 이후 우리 역사의 핵심적 역할을 맡았던 도시로, 서구 문물이 들어오는 개항지가 되었고, 6·25 전쟁 중에는 임시 수도로, 그 역할을 다했습니다. 현재 부산은 남동임해공업지역 중심 도시이면서 해운대를 비롯하여 해수욕장으로 대표되는 관광 도시이며,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되는 문화도시입니다.
이곳 부산에 큰 기운을 불어넣는 정맥은 낙동정맥(洛東正脈)으로,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남하하다 강원도 태백 언저리에서 한 맥을 남쪽으로 분지(分枝)시켜 낙동강 동쪽에 위치하는 영남지방 곳곳에 기를 공급하면서 진행하다가 부산에 온 힘을 쏟아 부으면서 멈춥니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낙동정맥은 강원도 태백 매봉산 아래 1060봉에서 출발하여, 부산 다대포 몰운대에서 그 행도를 마감하는데, 이 정맥은 큰 강줄기인 낙동강 1000리길을 서쪽으로 포옹하면서 남쪽으로 진행하여 부산을 품안으로 끌어안고, 생기를 불어넣는 진산(鎭山)인 금정산(金井山)을 솟구칩니다.
이곳 부산은 서울에서는 원거리에 위치하여 선뜩 그룹 간산이 쉽지 않아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당초에는 학회 임원들을 대상으로 2018년 연찬회를 계획했다가, 그 동안 우리 학회를 사랑하고 성원해주신 모든 회원들에게도 동참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확대 기획한 것입니다.
이번에 실시하는 부산 간산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특히 역사나 유적지 탐방, 관광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과 부부동반도 가능하오니, 회원 여러분들의 많은 동참을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간산은 우리 연구회 2018년 연찬회를 겸한 행사가 되어, 학회 임원들의 필시 참여 등, 좌석확보 등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이곳 카페에 꼭 리필을 달아 주시면 선착순으로 참여를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1. 간산 일시
- 2018년 8월 26일(일요일)
▶ 태릉역: 06시 30분 까지 지하철 6, 7호선 태릉역 1번 출구로 나오시면 43인승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 양재역: 07시 전까지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서 1번 출구로 나와 50m 정도 걸어오시면 서초구청 맞은편에 43인승 관광버스 대기 (수도권에서 참여하시는 분들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최대한 시간을 늦추어 출발하오니. 시간 지켜 나오시기 바랍니다.)
2. 최종 집결장소
▶ 07시 양재동 서초구청 맞은편(수협은행 앞)
- 지하철 3호선 양재역 1번 출구에서 걸어오시면 수협은행 앞 도로에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07시 까지 시간 엄수)
※ 태릉역에서 출발하실 회원께서는 06시 30분까지 지하철 6, 7호선 태릉역 1번 출구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시간 엄수)
3. 회비: 50,000원 [교통비, 중식, 석식 겸 연찬회(횟집), 기타비용 등, 아침은 간단한 음료수와 떡을 제공할 예정이며, 실제 경비는 1인 약 8만원 정도가 소요되지만 초과되는 경비는 학회에서 부담합니다]
4. 답사 경유지 및 간산지 안내
서울 양재역 출발(07:00) → 죽전 임시정류소(07:20) → 경부고속도로 → 부산 TG(11:00) → LG 구인회 회장 음택 → 중식(화지회관) → 동래정씨 정문도 공 음택 → 해동 용궁사 → 석식 겸 연찬회(대변항 횟집) → 경부고속도로 귀경(21:00)
※ 다른 장소에서 합류를 희망하실 분은 김명식 고문(010-2212-3494), 정철화 부회장(010-3475-2357)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5. 답사지 안내
1) LG 구인회 회장 음택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 산190-7)
LG그룹 3세대 총수인 고 구본무 회장이 향년 73세로 올해 5월 20일 별세하면서, 조부인 구인회 회장의 묘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소박' '혁신' '배려' 등 글로벌 그룹의 경영철학을 만든 창업주의 묘이면서, 사회지도층들이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로 정착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그룹으로 각인되는 연유이다.
구인회 창업주의 본관은 능성(綾城)인데, 능성은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능주면(綾州面)의 옛 지명이다. 아명(兒名)은 정득(丁得)으로, 정미(丁未)년에 태어난 옥동자란 뜻으로 전한다. 호는 연암(蓮庵)이며, 진주 출신으로, 아버지 구재서(具再書)와 어머니 진양하씨(晉陽河氏)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20년 같은 마을에 살던 허만식(許萬寔)의 딸 허을수(許乙壽)와 혼인하여 구자경(具滋暻) 등 6남 4녀를 두었다. 그는 홍문관 시독관(侍讀官)이던 조부(祖父), 구연호(具然鎬)에게서 한학(漢學)을 공부하였으며, 지수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3학년에 중퇴하였고,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2년 수료하였다. 1931년 7월, 그는 부친을 설득하여 고향땅을 담보로 8천 원을 융자받아 당시 진주에서 동생 구철회(具哲會)와 함께 구인회상점을 설립하여, 포목상으로 첫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1947년 화장품을 생산하는 낙희화학공업사(樂喜化學工業社)를 설립, 제조업에 참여하여 럭키크림, 치약, 하이타이 등을 생산하여, 기업을 키워나갔다.
1959년에는 주식회사 금성사를 설립하여 국내 최초로 라디오, 선풍기, 텔레비전 등 전자기기를 생산하였으며, 1969년에는 반도체(半導體)회사인 금성전자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첨단산업분야에 진출하였고, 호남정유 여수공장을 완공하여 정유업에도 참여하였다.
한편 언론 사업에도 관심을 갇고, 동양방송(TBC)의 설립에 참여했으며, 부산문화방송과『국제신보(國際新報)』를 인수하여 경영하였다. 죽기 직전인 1969년에는 연암문화재단(蓮庵文化財團)을 설립하여 장학육영(奬學育英), 문화, 사회복지사업에 기여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일제식민지에서는 상업에 종사하고, 광복 이후에 기업을 설립하여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과정에서 럭키금성(지금의 LG)재벌을 형성한 것이다.
LG그룹 창업자 구인회를 기준으로, 조부와 부친, 그룹의 후계자 가계(家系)를 보면, 祖父 구연호(具然鎬) → 父 재서(再書) → 본인 인회(仁會) → 아들 자경(滋璟) → 손자 본무(本茂) → 증손 광모(光謨)로 이어지는데, 증손(曾孫)인 광모는 올해 사망한 구본무 회장의 양자(養子)이다.
원래 구본무 회장에게는 원모란 외아들이 있었지만, 1994년 6월에 19세란 어린나이로 사망하자, LG그룹의 전통인 장남 승계원칙에 따라 2004년, 첫째 동생인 구본능의 아들인 광모를 양자로 입적시켜 회장으로 승계된 것이다. LG그룹 2대회장을 지낸 구본무의 부친 구자경 씨는 현재 93세로 생존하고 있다.
이곳 묘역은 위아래 두 개의 단(壇)으로 조성되었는데, 위쪽 단이 구인회 부모 묘고, 아래쪽이 구인회 부부 묘다.
이곳 터를 일구는 용맥은 금정산(金井山)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낙동정맥이 기복굴곡 변화를 하면서 진행하다가 원효봉과 의상봉을 연거푸 일으키고, 계속 남쪽으로 내려와 대륙봉과 동제봉을 솟구친다. 계속 남행을 고집하는 내룡(來龍)은 서쪽에 만덕사지를 두고, 제1만덕터널을 뛰어넘고, 지하철 3호선이 통과하는 제2만덕터널 위를 지나, 방향을 동쪽으로 돌려 행도(行度)하다가, 횡결접맥처(橫結接脈處)에서 90도로 꺾어 횡룡(橫龍)을 내려 보내 묘소를 점지했는데, 묘역의 윗 단에 조성된 구인회 부모 묘소는 거의 임좌(壬坐)로 격침되고, 구인회 묘소는 건좌손향(乾坐巽向)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곳 묘소를 형세적(形勢的)으로 조명하면 백호(白虎)를 일구는 지맥이 본맥(本脈)으로, 진행하면서 본신안산(本身案山)을 빙 돌아 일구고, 이곳 터를 일구는 주맥(主脈)은 편맥(偏脈)이 되어, 조금은 역량이 떨어진다고 보지만, 이곳 묘역에 대한 세세한 평가는 용혈사수(龍穴砂水)와 혈증(穴證) 여부 등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현장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구인회 부부 묘소 전경>
2) 우리나라 8대 명당 정문도 묘소 (부산시 부산진구 동평로 335)
조선 8대 명당 중 한 곳으로 알려진 이곳 정문도(鄭文道) 묘는 전국적인 음택 간산 코스가 되어, 풍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으며, 국내에서 출판되는 풍수관련 서적 등에 빠지지 않고, 명당으로 언급되는 명묘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동래현 인물조 고려 부분, 첫머리에 나와 있는 문헌에『정문도는 읍에 속한 아전(衙前)이었는데, 세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묘는 현의 서쪽 7리 에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정문도의 벼슬이 호장(戶長)에 불과한 아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명과 묘의 위치까지 기록한 점을 보면, 정문도에 대한 특별한 배려라 볼 수 있다. 이는 당시에 동래정씨(東萊鄭氏)의 후손들이 그만큼 훌륭한 가문으로 대를 이어온 까닭이다.
동래정씨는 조선시대 문과(文科)급제자 198명, 정승(政丞) 17명을 배출하였다. 이것은 왕계(王系)인 전주이씨(全州李氏)와 외척세도(外戚勢道)가 극에 달했던 안동김씨(安東金氏)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그 외에도 대제학 2명, 공신 4명, 판서 20여 명을 배출하였다.
즉, 동래정씨는 왕비(王妃)를 한 사람도 배출하지 못해 외척(外戚)으로 출세했거나, 행세한 적이 없지만 이만한 인물을 배출해 내었다는 것이 특이하다.
특히 조선조 500년 동안 많은 후손들이 벼슬길에 올랐어도 사약(賜藥)을 받거나, 유배(流配)를 당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으로 전한다.
동래정씨의 시조(始祖)는 신라 때,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으로 전하지만 기록이 분명치 않아, 고려 때 호장(戶長)이던 정지원(鄭之遠)을 1세로 하여, 그의 아들이면서 역시 호장을 세습(世襲)한 정문도를 중시조(中始祖)로 삼는다.
호장(戶長)이란 신라와 고려, 조선시대에 고을에서 세습으로 내려오던 아전(衙前)으로, 향리직(鄕吏織)의 우두머리다. 이들은 부호장과 더불어 호장 층을 형성하면서 해당 고을의 모든 향리(鄕吏)들이 수행하던 말단 실무 행정을 총괄하였다. 그러나 조선조에서는 호장이란 직분이 고을의 수령 아래 단계인 아전단계였지만, 신라와 고려 때는 대부분 지방의 세력가인 토호(土豪)들이 주축을 이루면서 그 세력이 막강했다.
<올곶게 조성된 정문도 묘소>
명당에는 의례히 설화가 등장한다. 특히 우리나라 8대 명당을 포함하여, 그 후손들이 번성했거나, 발복한 묘들은 이러한 신화나 전설 등의 줄거리가 꼭 등장하기 마련이다. 즉, 하늘이 숨기고, 땅이 감춘 천장지비(天藏地秘)의 터를 이인(異人)이나 도승(道僧) 등이 찾아주고 홀연히 사라지는 설화적인 요소가 다분한데, 이곳 정문도 묘소도 예외는 아니다. 당시 호장이던 정문도는 청빈(淸貧)하게 살았는데, 동래 부사이던 고익호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부사는 당시 유명한 지사(地師)가 점지해 준 화지산 아래 명당을 답사하고자, 정문도와 아전 한 사람을 대동하고 산에 올라 혈처를 확인하고, 날달걀 하나를 묻고 내려온다. 다음날 새벽, 그곳에 올랐지만 잔뜩 기대한, 닭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생기가 뭉친 혈에 달걀을 묻으면 달걀이 부화하여 닭 울음소리를 낸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옛 사람들이 명당을 찾는 하나의 징조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실망한 부사가 여러 원인을 곰곰이 판단한 결과, 명당은 분명하지만, 이곳 터 주변의 황령산이 흉석(凶石)으로 덮여있어 그 때문에 닭이 울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조상의 장사 치르기를 단념한다. 얼마 후, 부사가 영전하여 송도로 올라갈 때, 정문도가 그 자리를 달라고 간청하여 허락을 받는다. 그리고 아들 정목(鄭穆)에게 『나를 그 자리에 묻으라』고 유언했는데, 아버지가 죽자, 정목이 그 자리에 아버지를 장사 지낸 것이다. 다음날 묘소를 가보니 누군가가 무덤을 파헤쳐 놓았다. 다시 봉분을 만들고, 다음날 또 가보니 역시 또 누군가가 무덤을 파헤쳐 놓은 것이다. 이에 격분한 정목이 밤이 되기를 기다려, 몰래 무덤을 지켜보는데, 한밤중이 되자 무리의 도깨비들이 나타나 무덤을 파헤치면서 말하기를『金棺이 들어갈 자리에 누가 함부로 木棺을 쓴 것인가』하였다.
금관(金棺)이라면 금으로 만든 관인데, 가난하게 살던 정목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한 참을 상심하고 있는데, 한 노인이 나타나 이르기를『황금빛이 나는 보리 짚으로 棺을 싸서 덮으면 도깨비들이 金棺으로 생각할 것이니 그대로 해보라』하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노인이 시키는 대로 보리 짚으로 관을 싸서 덮고, 다시 지켜본다. 전날과 똑같이 봉분을 파헤치는데, 이번에는 금빛이 새어 나왔다. 보릿짚이 달빛에 반사되어 황금빛으로 보인 것이다. 이를 본 도깨비들이『금관이로구먼. 이젠 됐다』하면서 봉분을 다시 쌓고는 사라진다.
그 이듬해에도 기이한 일이 일어났는데, 뇌성벽력이 떨어져 부근 산에 보이던 험상궂은 바위가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그 부사가 명당의 흠을 아쉬워하며 한숨을 쉬던 원인이 해소된 것이다. 동남쪽, 청룡방에 있는 황령산(荒嶺山)의 괴시암이 그 바위란 얘기가 이곳 명당설화와 함께 전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정문도의 묘는 명당 중의 명당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일 이후로, 정문도의 아들 정목은 당시 고려 수도이던 송도로 올라가 아버지 정문도가 모신 부사 고익호 집에서 11년을 기거하면서 과거에 급제하였고, 고익호의 사위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 터에 짱짱한 지기를 공급하는 용맥은 낙동정맥이 부산의 진산(鎭山)인 금정산을 크게 솟구치고, 남으로 진행하다가 금정봉을 치올린다. 금정봉에서 좌선(左旋)하여 남동쪽으로 진행하는 한 맥이 지금의 부산아시아드 주경기장을 관통하여 아래로 내려와 부산시 의료원을 지나, 이 묘의 주산(主山)인 화지산(華池山, 199m)을 세우고, 아래로 행도하다가 이곳 터를 일구었다. 이곳 묘역은 외백호(外白虎)가 내청룡(內靑龍)을 감싸 안은 지세를 이루는 중심부분의 진혈처(眞穴處)에 묘를 점지하였다.
당판의 형상은 목유(木乳)가 되어, 반드시 당판 좌우 양쪽에서 혈을 움켜쥐고 오므리는 양국(兩掬)이 그 유(乳)를 고리처럼 둥그렇게 회환(迴環)해야 유혈의 혈증(穴證)이 되는데, 이곳 묘소 양쪽으로 마치 선익사(蟬翼砂)처럼 생긴 양국의 흔적이 그림자처럼 뚜렷하게 있어, 합격이다.
이곳 터를 응기(應氣)하는 전방과 좌우의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들이 이곳 터를 감싸고 어우러지는 모습이 정답고, 화평하여, 봉분(封墳)에 양기(陽氣)를 무한정 공급하는 모습으로, 화지산에서 쏟아내는 지기(地氣)와 양명한 산천의 양기가 합화(合化)하여, 난화(煖火)를 일구면서, 생성된 생기(生氣)가 봉분의 혈구(穴口)를 따라 피어오른다.
다만 당판을 일구는 세력이 왼쪽보다 오른쪽이 더 짱짱하여, 장남계열보다는 차남계열이 발음(發蔭)을 더 받은 것으로 유추된다.
즉,【동덕창(董德彰)】이 이르기를《용유력칙의룡(龍有力則倚龍)。호유력칙의호(虎有力則倚虎)》라 하여,〈청룡이 힘이 있으면 청룡 쪽에 의지하고, 백호가 힘이 있으면 백호 쪽에 의지한다.〉하여 혈(穴)도 그 세력을 보아 강한 쪽으로 치우친다 하였다.
< 양국의 혈증이 뚜렷한 유혈을 일구는 정문도 묘소>
3) 관음신앙의 성지 부산 海東龍宮寺(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용궁길 86)
해가 제일 먼저 뜬다는 사찰(寺刹)로 유명해진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는 진심으로 기도를 드리면 누구나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곳 사찰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특별한데, 특이하게도 산속이 아닌 바닷가에 축조되어, 바다와 절이 만나 어우러지면서 한 폭의 멋진 풍광을 자아내는데,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인 1376년에 고려 공민왕의 왕사이던 나옹 혜근 선사가 경주 분황사(芬皇寺)에서 주석하면서 수도할 때, 나라에 큰 가뭄이 들어 들에는 곡식과 풀이 말라죽고 인심이 흉흉했다. 어느 날 혜근의 꿈에 용왕이 나타나 말하기를 “봉래산 끝자락에 절을 짓고 기도하면 비가 내리고 국태민안(國泰民安)할 것이다.” 라 하였다. 이에 혜근이 이곳에 와서 지세(地勢)를 살피니, 뒤는 산이고 앞은 푸른 바다라, 아침에 불공을 드리면 저녁에 복을 받는 명당이라 여기고, 절을 짓고 산 이름을 봉래산이라 하였으며, 절 이름을 보문사(普門寺)라 하였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때, 사찰 건물이 모두 불탔는데, 1930년대 초에 통도사 운강 화상이 보문사를 중창한 이후 여러 승려를 거쳐 1974년 승려 정암이 부임하면서 관음도량으로 복원할 것을 발원하고, 절의 이름을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로 바꾸었다.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으로 삼아 기암괴석 위에 조성된 해동용궁사>
이곳은 일반적인 사찰이 산중 깊숙이 있는 것과 달리 발아래로 바닷물이 보이는 수상법당(水上法堂)이다. 우리나라 관음신앙은 주로 해안가나 섬에 형성되면서, 강원 양양군의 낙산사, 경남 남해군의 보리암, 부산 기장군 기장읍 시랑리의 해동용궁사로, 이 세 사찰이 한국의 3대 관음성지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해동용궁사는 바다와 용과 관음대불이 조화를 이루면서 그 어느 곳보다도 깊은 신앙심을 자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 사찰을 일으킨 용맥은 낙동정맥이 남하하다가 양산시 하북면에 있는 천성산(922m)을 우뚝 솟구치고, 이곳 어름에서 남동쪽으로 한 맥을 분지(分枝)하는데, 이 지맥(支脈)이 부산 기장군 일대에 기를 공급하는 용천지맥으로, 엄격히 말하면 부산시내에 기를 공급하는 금정산을 일군 정맥과는 다르다. 이 맥은 크고 작은 산을 연이어 솟구치면서 바다를 좌측에 두고 남쪽으로 진행한다. 기장의 봉대산을 지나, 그 몸통을 숨기는 천전맥(穿田脈)과 평강룡(平岡龍)을 번갈아 하면서 행도하다가 연화산을 일으켜, 이곳 해동용궁사를 일구고, 사랑산에서 그 맥을 마감한다.
<수려한 경관이 어우러지는 해동용궁사>
6. 지참물
간산을 할 수 있는 간단한 복장과 나경패철, 필기도구, 우천시 우산. 간식 등
7. 신청 방법
참가를 희망하시는 분은 반드시 이름과 연락처를 카페 답사안내 공지사항 아래, 신청 등록 란에 리필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간산은 한국자연풍수지리연구회 2018년 하계 연찬회와 겸한 간산이 되어 조기 마감될 수 있으니 반드시 리필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8. 연락처
서울, 경기, 전국 : 정철화(010-3745-2357), 김명식(010-2212-3494)
충북(청주) : 김홍길 010-8001-0020, (한국자연풍수지리연구회 충북지부장)
중부(충주) : 이현철 010-3774-8854, (한국자연풍수지리연구회 중부지부장)
경북 : 박정수 010-3530-2847, (한국자연풍수지리연구회 상주지부장)
경남, 부산 : 윤진성 010-8773-5277. (한국자연풍수연구회 부산지부장)
전북 : 장원기 010-5638-6905, (한국자연풍수지리연구회 전북지부장)
전남 : 손인호 010-6471-1040, (한국자연풍수지리연구회 전남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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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상외 2명, 태릉 역에서 승차합니다.
저 예병린은 23-26일 해외여행이 계획되어 있어서 부득이 참석 할 수 없습니다.
김민서 위원님 참가합니다.
박종남 위원님 양재역
전종혁 위원님 태릉역
손정호 선생님 양재역 이용합니다
김채빈 선생 양재역
벅정수님 외5명 상주IC 에서
김태희님 양재
강태훈외1명 중부고속도로 괴산IC톨게이트에서 탑승합니다. 현재20명
예정코스 = 태릉 6/30 - 양재07시 - 동천동 - 경부 - 영동 - 중부내륙 - 경부 - 중앙고속 - 구인회 12시 간산 - 13시 화지회관 중식 - 13시40분 정 시조묘 간산 - 14시30분 - 15시 해동 용궁사 - 16시 용궁사 출발 - 양재 22시 착
유형주 위원 양재
부산 정남중고문외 2명 구안회묘역 에서
김행기님 태릉에서
박기현회장,정수옥님,김 교수 참석. 26
뮨진성 위원외 1명 부산에서 합류
조찬성 고문 태릉역
서민경 위원님 외 4명 양재역 이용합니다
양재역에서 합류합니다
이승연님 양재역
하태주 위원님 양재 이용
최길호 교수님 동천동 환승센터 이용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8.25 1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