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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함을 변백함 | 1-5 1 ①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2 건져낼 자 없으면 저희가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3 ②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것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 무고히 빼앗았거든 5 ③ 원수로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고 내 영광을 진토에 떨어뜨리게 하소서(셀라) |
심판을 호소함 | 6-9 6 ④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하셨나이다 7 ⑤ 민족들의 집회로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8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나를 판단하소서 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 하시나이다 |
하나님은 재판장이시라 | 10-17 10 ⑥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⑦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13 죽일 기계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 만든 살은 화전이로다 14 악인이 죄악을 해산함이여 잔해를 잉태하여 궤휼을 낳았도다 15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16 그 잔해는 자기 머리로 돌아오고 그 포학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17 ⑧ 내가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
7편, 판단을 의로우신 하나님께 맡김
요절 : 11절,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7편도 다윗의 시인데,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1) 하고 호소하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이는 다윗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도표를 보시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를 중심으로, ① “주께 피하오니”, ② “내가 이것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하다면, ③ “원수로 나의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해 달라, 즉 무고히 당하고 있음을 호소하면서, ④ 그래서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⑤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즉 심판석에 서주십시오, ⑥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⑦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라 고백합니다. ⑧ 그리하여 호소로 시작한 7편은, “내가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리로다” 하는 “감사”로 마치고 있습니다.
첫째 단원(1-5) 무고함을 변백함
둘째 단원(6-9) 심판은 주께 있사오니
셋째 단원(10-17) 하나님은 재판장이시라
첫째 단원(1-5) 무고함을 변백함
첫째단원은 자신의 무고함을 변백하는 내용입니다.
①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1) 합니다. “주께 피한다”는 뜻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인데 “도피성”을 상기시키는 표현입니다. 다윗은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어 도피성을 향해서 도망을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 사무엘상에 의하면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찾고 있을 당시,
㉮ “혹이 사울에게 고하여 가로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19:19),
㉯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23:7),
㉰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13),
㉱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더이다”(24:1),
㉲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27:4) 하고, 계속적으로 밀고(密告)하는 자가 있고, 그 때마다 사울이 추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 그래서 “건져낼 자 없으면 저희가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2) 하고 호소합니다.
② 그러면서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것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3),
㉠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 무고히 빼앗았거든”(4),
③ “원수로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고 내 영광을 진토에 떨어뜨리게 하소서(셀라)”(5) 합니다.
㉠ 그러니까 무고히 죽이려고 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그처럼 악랄하게 쫓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몇 번이고 주어졌지만,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해하는 것이 용납이 되지 않는다고 겉옷자락만 베고(삼상 24:4), 머리 곁에 놓아 둔 창과 물병(삼상 26:11)만을 증거물로 가지고 왔을 뿐입니다. 이것이 “무고함을 변백”하는 내용입니다.
둘째 단원(6-9) 심판은 주께 있사오니
둘째 단원의 중심점은 “주께서 심판을 명하셨나이다”(6)에 있습니다.
④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하셨나이다”(6) 합니다.
㉠ “주께서 심판을 명하셨다”는 뜻은,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롬 12:19)는 그런 뜻입니다. 이를 알았기에 다윗은,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 죽을 날이 이르거나 혹 전장에 들어가서 망하리라”(삼상 26:10) 하고, 심판을 하나님께 맡겼던 것입니다. 형제가 다윗의 경우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⑤ “민족들의 집회(集會)로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7) 합니다.
㉠ 이는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계 20:11, 12) 한 최후심판을 전망(展望)하는 호소입니다. 50편에는, “저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1) 하고, 온 세상 만민을 심판대 앞으로 소집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네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시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셀라)”(50:4-6) 하고 말씀하는데, 본문의 “민족들의 집회”라는 말도 그런 뜻입니다.
㉡ 그래서 본문은, “여호와께서 만민(萬民)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8상) 하고, 최후심판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쫓는 대적을 심판하시리라는 차원을 뛰어넘어, 만민의 심판 주되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들을 상고해보면 앞부분에서는 개인적(個人的)인 내용으로 시작이 되었다가도, 뒷부분에서는 자신과 이스라엘을 뛰어넘어 만민으로 확대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시편의 경험을 예표로 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 그 심판 주되시는 하나님께,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나를 판단하소서”(8하) 하고, 의롭게, 성실하게 살려고 애를 쓴 자신의 결백을 판단 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왜 이처럼 미움과 박해를 받아야만 했는가?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시고 기름 부어 성령으로 충만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왜 이렇게 악해졌는가? 악신의 조정을 받기(삼상 16:13) 때문입니다.
㉣ 그래서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9) 합니다. 다윗은 139:23-24절에서,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합니다.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 하니까 생각나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하갈이,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창 16:13) 한 말입니다. 애굽 여인 하갈도 하나님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부르고 있는데 신약의 성도들인 우리는 “감찰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얼마나 둔감한가? 그래서 “심판은 주께 있사오니” 하는 것입니다.
셋째 단원(10-17) 하나님은 재판장이시라
⑥ 그런 후에,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10) 하는 선언이 나옵니다.
㉠ 하나님을 “나의 방패”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도 “하나님은 나의 방패시다” 하고 담대히 선언하시기를 바랍니다.
⑦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11) 합니다.
㉠ 하나님이 재판장이심은 알고 있으나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으로 아는 자는 많지 아니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편의 진술과는 반대(反對)로, “매일 보시지도 못하고, 매일 모르시는 하나님”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영적으로 깨어있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한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들은, “귀를 지으신 하나님이 듣지 못하시고, 눈을 만드신 하나님이 보지 못하시는”(94:9) 양 말하기도 하고 행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 그러므로 다윗은,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12) 하고, 먼저 “회개”(悔改)를 촉구입니다. 회개치 아니하면, “죽일 기계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 만든 살은 화전이로다”(13) 하고, 심판(審判)을 경고합니다.
㉢ “악인이 죄악을 해산함이여 잔해를 잉태하여 궤휼을 낳았도다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그 잔해는 자기 머리로 돌아오고 그 포학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14-16) 합니다. 이 말씀에는 짝들이 있는데,
㉮ “잔해를 잉태해서, 죄악과 궤휼을 낳고”,
㉯ “자기가 판 웅덩이와 함정에, 자기가 빠지고”,
㉰ “잔해와 포학이, 자기 머리와 정수리로 돌아간다” 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방도이기도 합니다.
⑧ 사자에게 쫓기는 한 마리 토끼인 양 시작된 7편은, “내가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17) 하고, “감사와 찬양”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 다윗은 무엇을 감사하며, 왜 찬양을 하는가? 다윗은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17)한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 “여호와의 의”가 문맥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라” 한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공의(公義)로 심판하신데 대한 감사요 찬양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 그런데 “여호와의 의”를,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8) 하는 “심판”과 결부를 시킨다면 어떻게 되는가? 심판의 날에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8)으로 그 앞에 설 수 있는 자가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만민만이 아니라 자신도 심판에서 제외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구속사라는 맥락에서 “내가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17) 한 말씀을 보게 되면 이를 공의(公義)로만 한정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이라 하여도 하나님의 공의 앞에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 17절에는 “여호와의 의와, 감사와 찬양”(17)이 함께 등장하는데, “감사와 찬양”은 원수에 대한 심판보다는,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한, 은혜를 입은 자 속에서 더욱 울어 나오는 산물인 것입니다.
시편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좀 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에게는 “공의와, 칭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한 “의로우심” 하나뿐입니다. 이 “의”가 직접 임하게 되면 죄에 대한 심판을 시행하게 되는 공의(公義)가 되고,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10) 하는, 방패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임하게 되면 “칭의”(稱義)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출 12:13) 한 말씀을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적용 :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십니다. 그리고 심판하는 것이 내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공의(公義)가 우리의 대적을 심판하시는 “방패”가 되고, “칭의”(稱義)”가 대적의 송사로부터 우리를 막아주는 방패가 됩니다. 그러므로 쫓기는 것으로 시작된 본문은 “감사함이여, 찬양하리로다” 하고 마치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다. 범사에 감사하면서 찬양하십시다.
묵상
㉠ “주께서 심판을 명하셨나이다”에 대해서,
㉡ “감찰하시는 하나님,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 개인의 호소에서 만민의 심판으로 나아가고 있는 점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