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름 동안 광안리해수욕장을 멀리했다. 때로는 산으로 들어갈까 하는 역피서를 생각하기도 했었다. 광안리해수욕장을 바라다보는 곳에서 아내와 함께 먹고 자고 살면서 남의 삶을 읽고 들으며 내 삶을 쓰고 이야기 하는 곳이다. 해수욕장은 더위에 지친 몸을 담그고 휠링할 수 있는 환경과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욕심 같아서는 심장의 고동이 들리는 고요함과 자연의 속삭임을 지닌 파도가 진종일 밀려오는 차분한 바닷가에서 해조음을 들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갖가지 환경오염과 스트레스로 더럽혀져서 안타깝다. 해수욕장마저 시장바닥이나 선거철 유세장 같이 정치꾼들과 장사치들이 설치는 도떼기시장의 시끌벅적한 북새통을 연출해야할까? 바다도 우리에게 낙원을 허용하지 않으려는가 보다. 우리가 바라는 조용하고 쾌적한 바닷가의 그런 낭만적인 해변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시끄럽고 지저분하여 찝찝하고 짜증스럽다. 무슨 행사가 그리도 많은지 거의 매일 밤 폭죽이 터지고 밤낮을 가리지 않은 뽕짝 가요가 지겹도록 이어지며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쉰 소리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다.
그곳에는 표밭을 다지려는 정치인과 기관장들이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집안에서 창문을 열면 덮치는 소음이 마치 시장 골목이나 디스코텍 같다. 일 년 내내 시끄럽고 소란스럽다. 나는 여름이면 창문을 제대로 열지 못한 채 지낸다. 세상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 가운데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진다. 해수욕장의 환경은 우리에게 달린 문제로 우리의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좌우한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광안리 해수욕장의 평면도, 단면도, 입면도를 살피듯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어 산다. 젊은이의 피서지라는 광안리 해수욕장의 밤은 광란의 빛과 소리가 넘친다. 도심의 해수욕장을 오염시키는 빛과 소리가 원래 자연의 모습을 잃어간다. 늦은 밤 창문을 열면 한낮 같은 밝기의 빛 공해와 난장의 소음이 시끄럽게 몰려온다. 깊은 밤 창가에 나서면 강렬한 불빛이 눈이 부시다. 소음 공해와 더불어 빛 공해가 일으킨 환경오염이 심각한 수준으로 '해수욕장의 현주소‘를 확인시킨다.
바다에도 세상의 욕망이 넘치고 상업주의를 앞세운 천민자본주의가 춤춘다. 어쩌면 맑고 깨끗하여 속되지 않은 분위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고 죄가 될 것 같다. 해수욕장은 마치 나만 잘 살고 즐거우면 그만이라는 빗나간 욕구가 분출하는 쓰레기 집하장 같다. 나는 바다를 좋아하는 만큼 맑고 깨끗한 해수욕장의 단순하고 청정(淸淨)함을 바란다. 청정한 해수욕장. 욕심 같아서는 해조음이 깔린 해변에서 해돋이와 해넘이의 노을이 곱게 물드는 순간과 여유을 즐기며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일상을 살고 싶다. 우리에게 조용히 바다를 즐기며 안전하게 릴렉스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일 년 내내 행사가 이어지는 소란한 해변 따라 들어선 시설물에 불을 밝히고 광안대교의 LED조명이 피로에 찌든 밤을 지새운다. 그뿐인가. 갓 준공된 아파트와 빌딩들이 임대분양을 홍보하는 불빛으로 밤의 광란을 부채질한다. 해수욕장이 개장한 이후 주말이면 차량통행을 차단한 해변도로에는 버스킹이 아우성치듯 자기도취에 빠진다.
해수욕장의 여름밤은 그렇게 소란스럽고 북새통에 찌든다. 바캉스의 휴양지에서 기본질서를 요구하는 일은 사치일까? 여름철에 겪는 해수욕장은 온통 공해의 박람회장 같다. 대기와 수질 오염에 비해 소음 공해와 빛 공해 또한 대단하다. 생활소음과 빛의 퍼짐은 정치경제보다 시민의 삶을 더욱 괴롭히는 요소들이다. 어느 정도일까? 해수욕장은 인공조명에 의한 ‘빛 공해 ’와 자연의 숨결을 짓밟는 ‘소음 진동’은 잠 못 이루는 밤을 이룬다. 이제 해수욕장 인근 주택가의 환경은 생활을 파괴하는 수준으로 청각장애와 신경정신성 질환을 유발하고 우리를 편히 잠들지 못하게 한다. 해수욕장 주변의 생활 공해가 서민 생활의 불편요소가 되었다. 그것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 문제요 지방자치의 아젠다가 되어 국민의 안전과 주민의 고통을 해결해야 할 현안이다. 해수욕장 주변의 삶은 무더위 속에 괴롭고 힘들다. ‘도심의 해수욕장 이대로 좋은가?’라는 민원과 함께 우리가 바다의 순수를 지키자는 어리석은 제안을 다시 제기한다. 생활환경 유지에도 민의를 반영하는 수준 높은 선출제도의 순기능을 살려야 한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사랑, 믿음처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과 배제하는 것으로 구분된다. 그렇다면 해수욕장에서 남을 의식하지 않은 채 흥에 겨워 소리 지르는 확성기 굉음과 빛 공해 위에 폭죽이 춤추는 현상은 우리와 어떤 관계일까? 해수욕장 주변 환경은 우리의 삶과 직간접 관계를 가진다. 우리가 내놓는 소음이 해변의 활력을 잃게 하고 그 매연이 밤하늘의 별빛을 뿌연 안개로 뒤덮는다. 우리가 여름이면 좀 더 가난하게 살더라도 마음 놓고 창문을 열고 밤공기를 마음껏 숨 쉬고 싶다. 그런 삶이 인간다운 삶의 기본적인 품격이 아닐까? 그것은 맑고 깨끗한 ‘청정 해수욕장’을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사물을 잘 만들고 관리하는 것도 기도가 아닐까? 해수욕장의 환경관리와 정비도 우리에게 맡겨진 신앙의 몫이다. 경제정치부분의 난제들과 남북문제 해결 못지않은 해수욕장의 쾌적한 환경유지와 시민들의 만족도가 대통령 지지율과 정당지지도 조사의 평가 기준에 포함되어야 한다. 산과 들, 바다와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삶의 질을 가늠하는 수준까지 그 폭을 넓혀나가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