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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하버드 대학의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은 업무 관계로 파리에 들렀다 한밤중에 급한 전화를 받는다. 루브르 박물관 내에서 큐레이터인 소니에르가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진 것. 피살자의 시신 근처에서 이상한 암호를 찾은 경찰이 기호학자인 랭던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다. 암호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던 랭던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에 단서가 있다는 것, 죽은 소니에르가 시온 수도회와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충무로는 통화중] 신성 모독 vs 표현의 자유
<다빈치 코드> 개봉 앞두고 기독교계 상영 철회 요구
손주연 5월18로 예정된 <다빈치 코드>의 개봉이 다가옴에 따라 상영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국내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다빈치 코드>는 ‘예수가 마리아와 결혼해 그 사이에서 자식까지 얻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동명소설이 원작으로, 기독교계는 출간된 지 3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소설을 맹비난하고 있다. 지난 3월7일에는 그동안 이 영화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왔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이 입장을 밝혔다. 한기총은 수입·배급사인 소니픽쳐스릴리징코리아를 방문해 영화의 수입 및 상영의 철회를 요구했다. 3월28일에는 “이 영화가 기독교의 신앙을 폄하하고 신을 왜곡하고 있다”면서 “국내 상영을 저지하기 위해 법원에 영화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다빈치 코드>에 대한 찬반 논란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28일 ‘2080 CEO 포럼 특강’을 마친 뒤 가진 질의·응답에서 “어느 종교든 그 신성을 모독하는 영화 등을 규제할 수 있는 입법을 할 계획이 있냐”는 한기총 홍재철 목사의 질문에 답하면서 가열됐다. 그는 “(영화 상영을) 법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국회에 돌아가 논의해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가톨릭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주교회의 관계자는 “주교회의 차원의 공식 대응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소니픽쳐스릴리징코리아의 입장은 단호하다. 황선용 상무는 “허구인 영화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는 일”이라며 “본사에 문의해본 결과 영화 내용을 수정해달라고 요구한 단체는 있었지만 우리처럼 작품 자체를 전면 거부한 단체는 어디에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어 그는 “(그들의 반대성명에)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며 “오는 5월18일 개봉 준비만 열심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글) 손주연 purple0402@hani.co.kr
진실은 아무리 흔들어도 진실
수도회의 정체와 『다빈치 코드』의 시온 수도회
전헌호 신부 |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다빈치 코드』는 여러 가지로 필자를 당혹케 한다. 소년 시절에나 잠시 관심을 가졌던 탐정 소설에 분류될 수 있는 『다빈치 코드』를 대상으로 글을 써야 하는 것부터 필자를 당혹케 했고, 이 글을 쓰기 위해 『다빈치 코드』 1, 2권을 사서 판매 부수를 높여 주어야만 한 것도 당혹스러운 일이었으며, 다 읽은 지금 읽을 가치가 특별히 없다는 것 또한 당혹스럽고, 이런 정도의 책을 요즘 주머니 사정이 별로 좋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100만 권 이상 사서 읽었다는 것 또한 당혹스럽다.
전국의 서점들에는 우리의 지적 능력과 양식을 배양해 줄 수 있는 많은 수의 양서들이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읽을 가치가 빈약한 『다빈치 코드』를 많은 수의 사람들이 선택했다는 것이 그저 의아할 뿐이다. 솔직히 이 두 권에 투자한 돈과 시간을 생각하면 속은 느낌이 든다. 이런 책에서 언급하는 허구적인 시온 수도회를 테마로 삼아 글을 써야 한다니 시간이 아깝다는 느낌이 자꾸만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작가가 상상력을 동원하여 꾸민 허구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접근하면서 그것이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굳이 펴야만 하나라는 생각이 자꾸만 일지만, 이 소설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의 머리가 혼란할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글을 기획한 편집부의 고심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빈치 코드』에 대한 글을 부탁 받은 다른 분들도 필자와 같은 심정이리라 생각된다.
가톨릭교회에서 정식 수도회로 인가를 받으려면 갖추어야 할 요소들이 있다. 먼저 수도 생활을 진지하게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수도자란 기본적으로 독신 생활을 하면서 청빈과 순명의 삶을 살고자 해야 한다. 이미 결혼을 해서 가족이 있는 사람은 성가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본분이다. 아내나 남편, 그리고 양육해야 할 아이들을 버려두고 독신 생활을 하겠다고 나설 수는 없는 것이다. 설사 그렇게 살겠다고 나선다고 해도 정식 수도자가 될 수는 없다.
수도회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자질을 갖춘 사람들의 모임이 있어야 한다. 개별적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는 수도회를 결성할 수 없다. 여럿이 함께해야 한다. 각자 따로 살면서 정기적으로 모이는 정도로는 정식 수도회를 설립할 수 없다. 함께 모여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살아가자면 일정한 크기의 땅과 집이 있어야 하고, 먹고 살아 갈 수 있는 생계 수단이 있어야 한다. 수도회가 되자면 함께 모여 기도할 성당 또는 경당이 있어야 하고 수도회의 목적에 따라 회의실, 강의실을 비롯한 여러 부속 건물들이 필요하다. 수도회는 기본적으로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수도자들이 생계를 위한 일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또한 관상 수도회, 전교 수도회, 교육 수도회 등 수도회의 설립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설들이 있어야 한다.
일정한 장소에 집을 짓고 함께 모여 사는 것만으로는 수도회가 되지 않는다. 정식 수도회로 성장하자면 설립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한 수도 규칙이 있어야 하고, 그 규칙을 따라 살아온 삶의 여정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종이 위에 여러 가지 규칙들을 나열해 기록하는 것만으로 되지 않는다. 규칙을 성실하게 준수하는 강한 의지의 수도자들이 있어야 하고, 그들의 삶에 사랑과 평화 그리고 하느님과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는 긍정적인 열매가 있어야 한다.
수도회는 물리적으로나 생활 방식으로 높은 담을 쌓아 주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비밀 집단과 같은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지역 사람들이 의혹을 가지지 않도록 자신의 정체를 개방해야 하고, 찾아오는 손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대하듯이 친절하게 맞이해야 한다. 수도회가 위치한 지역의 주교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본당 신부와의 관계도 우호적이고 협조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요건을 갖추고 지속되어야 한다. 몇 년 있다가 없어진다면 그것은 수도회가 아니다. 형성되기 시작한 지 최소한 몇 십 년은 되어야 해당 교구장에게 수도회로 인가해 달라는 신청을 할 수 있고 해당 교구장의 인가가 있어야 교황청의 인가를 청할 수 있다. 교황청으로부터 정식 수도회로 인가를 받기까지는 앞에서 언급한 요소들을 고루 갖추어야 하고 긴 삶의 여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수도자로서 성실하게 살고자 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입회가 대를 잇고 세기를 이어 지속되어야 한다.
간단히 나열한 이러한 사실들을 두고 볼 때 『다빈치 코드』에서 언급하는 시온 수도회는 이들 중 어느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 더구나 화가이자 조각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물리학자인 아이작 뉴튼, 작곡가인 모차르트 그리고 작가인 빅토르 위고가 수도자가 아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런 사람들이 회원 또는 원장이었다는 시온 수도회는 댄 브라운의 상상력의 창조물이지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역사적인 사실이 아닌 것을 역사적인 사실로 믿는다면 그렇게 믿는 사람의 지적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다른 곳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픽션인 소설은 소설로 읽고 말 일이지 소설을 읽고 소설의 잣대로 현실을 진단한다면 매번 틀릴 것이고 틀릴 때마다 어둠 속을 헤매게 될 것이다.
서점가에는 좋은 양서들이 많다. 우리의 지적 능력과 교양을 향상시켜 줄 책들은 외면하고 혼란만 가중시킬 픽션 소설만 손에 쥔다면 오랫동안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벗어나기까지 많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올바른 신앙을 가르쳐 주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성당이 전국 곳곳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수고하여 성당을 지어 그곳에서 기도하고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 그곳을 외면하고 다른 곳에서 진리를 찾아 돌아다닌다면 계속해서 혼미의 세계를 헤맬 것이고, 결국은 성당에 와야 문제가 풀릴 것이다.
『다빈치 코드』와 같은 부류의 책들은 과거에도 많이 있었고 앞으로도 많이 있을 것이므로 교회에 성실한 사람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한때는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하시기 전에 인도에 가서 불교에 심취했었다는 픽션이 성행하지 않았던가?
월간 『참 소중한 당신』 2005년 2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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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넘의 코드란 단어 참 지겹네요 ㅎㅎ.........
그렇죠..청와대에서 코드문화를 널리 보급시키는가 싶더니..요즘은 보편화된 어휘가 된 것 같네요...
예수가 결혼하여 후손을 낳았다...크리스찬 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쇼킹한 이야기가 되겠지요...그러니 교계를 들쑤신 꼴이 됨은 빤하고요...늘 논점이 되고 있지만, 예술이 진실을 침범하는 한계를 설정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예술 창작.표현이 예술의 속성상 자유로워야 하는 것이고, 헌법에도 이를 기반할 사상.학문.출판 등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긴 하지만...이 예술활동으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입게 된다면, 예술의 남용을 제재해야만 할 상대적 자유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광수씨나,장정일씨 등의 작품성을 두고 법적 제재가 하해짐에 대해 논란이 구구하지만...저 개인적으로는 최근의 예술 경향들은
너무 튀어 보이려는 실험적이고 전위적 성격이 강하다고 봅니다. 그러니 다른 영역과 충돌될 여지가 많아 소란해지고 있는 듯하고요..예술을 영역을 너무 관대히 허용하다 보면, 진실과 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져, 이를 더욱 선정적이고 교묘하게 활용하려들 상업주의에 편승되어, 권리 침해등의 논란이 잦아 그 만큼 사회적 불신의 풍조가 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