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우체통
릴레이수필
이 영 만
서울·은평치과의원 원장
먼지 뒤집어 쓴 채 서 있는 우체통 세월의 뒤안길로
‘느림의 미학’ 역설하는 목청 높아져도 별도리 없어
아파트 단지 입구 왼쪽 한 구석에 서 있는 빨간 우체통.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덩그러니 서 있는 모습이 왠지 애처로워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뿔싸! 하얀 실같은 거미줄이 종횡으로 얽혀 있지 않은가. 우체통은 그렇게 세월의 뒤안길에서 버려지고 잊혀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편지지에 손글씨로 사연을 적고 편지봉투에 우표를 붙여본 때가 아득한 기억에서 하나둘 떠오른다. 국민학교 시절에 삐뚤빼뚤 연필로 써서 국군장병아저씨에게 보냈던 위문편지. 사춘기 시절에 밤을 밝히며 썼던 펜팔 연애편지.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아마도 군 복무시절에 받아보았던 얼굴도 모르던 아이들의 위문편지가 거의 마지막이었지 않았을까. 한편으론 가슴 먹먹해지는 어린시절의 기억들이다.
이제 동전 떨어지던 소리와 신호음에 가슴을 조리게 하던 공중전화가 거리에서 자취를 감춘지도 꽤나 오래 되었다.
지금은 이메일도 번거로워 문자 메시지나 카톡으로 소통이 이뤄지는 초스피드 SNS 시대이다. 요즘 어린이들에게는 생소한 편지가 고리타분하던 시절의 유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춘하추동 사계절 자연의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련만 사람의 시계는 갈수록 빨라지는 것같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빨라지는 시간의 흐름에 대항이라도 하듯 ‘느림의 미학’을 역설하는 목청이 높아져도 별 수는 없는 듯하다.
즉각적인 소통이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고독과 단절과 갈등이 사회문제화 하는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듯하다.
아무튼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상징되는 우체통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단연코 그같은 시간의 역주행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빨간 우체통은 빛바랜 추억의 한 페이지로 기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물처럼 바람처럼 잡을 수 없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 흘러가는 세월이 안타까운 것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삶의 고비고비를 넘길 때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주문처럼 외며 살아왔다. 누군들 그렇지 않았을까. 그런데 어느 날 빨간 우체통을 보니 덜컹하는 가슴에 쿵!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올해는 ‘황금개띠의 해’라고 정초부터, 아니 지난 해부터 동창들이 이구동성으로 떠들썩했다. 제주도로 혹은 동남아로 최소한 2박3일의 환갑여행을 떠나자고 입을 모았다. 그렇지…. 뭔가 어떤 식으로든 기념을 해야겠지…라고 생각은 하는데 왠지 이 상황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가 벌써 환갑이란 말인가. 아버지는 필자가 국민학교 6학년 때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하셨는데…. 베이비 붐 세대에게 환갑은 어려운 화두처럼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50대에 시속 50km로 달리는 인생열차가 60대에는 시속 60km로, 70대에는 70km로 달린다고 한다. 그리고 반환점을 돈 인생열차가 종착역에 가까워질수록 자꾸만 자신의 뒷모습을 돌아보게 된다고 한다.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꿈도 기억도 순수했던 어린시절이 생생한가 보다.
과연 어느 때의 모습이 나의 진짜 모습일까. 거울 속 현재의 내 얼굴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저 세상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몇 살 때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어떤 시인은 말했다. 거울로 볼 수 없는 뒷모습이야말로 진짜 얼굴이라고. 그리고 삶의 종착역에서 보여주는 뒷모습이 아름답고 믿음직스러워 후광으로 빛나는 사람은 어린 시절의 얼굴을 잘 간직해온 사람이라고.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꾸만 나를 따라오는 그림자를 돌아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입추가 지난 지 벌써 여러 날이다.
한낮의 불볕더위에도 불구하고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 속에는 가을의 내음이 느껴진다. 귀뚜라미 우는 새벽에 참으로 오랜만에 가을의 편지를 써 봐야겠다. 개구쟁이 철 없던 시절의 나에게 쓰는 시간 여행의 편지.
그 편지를 거미줄을 걷어낸 빨간 우체통에 넣고 싶다.
토실한 칡뿌리 하나 캐면/ 환호성을 지르던 시절/ 아카시아꽃 훑어 한 입 가득 털어 넣으면/ 향긋한 맛이 좋았고/ 옥수수 대궁 꺾어 먹을때/ 달달한 맛도 좋았지/ 버리기 아까워/ 잠 자리 머리맡 벽에 붙여 두었다가 되먹던/ 풍선껌의 종이맛이라니…//
산으로 들로 종일토록 뛰어놀아도/ 배고픈 줄 몰랐던 시절/ 설날에나 어쩌다 한번 맛보는 하얀 박하사탕/ 쇠눈만한 알사탕 하나 물게 되면/ 참 오래도록 굴리고 굴리면서 녹여 먹었지/ 달달한 그 맛 잊혀지지 않아/ 알사탕을 입에 넣어보는데/ 웬걸, 끝까지 굴리지를 못하네/ 매번 도중에 꽉 캐물어 으깨어 버리고야 마니/ 알다가도 모르겠네//
빨리 빨리/ 앞만 보고 달려 왔나보다/ 천천히 천천히/ 이젠 뒤를 돌아봐야 할 나이인가보다/ 알사탕 굴려 먹듯. <졸시 ‘알사탕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