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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정 대법사 초청 대법회 – 불교방송 강당
성렬(산공, 순천 상적암 주지)
1) 한국 불교에 새바람을....
일찍이 철원 부연사의 사숙으로부터 관정 큰스님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2000년과 2001년 불교신문을 비롯하여 여러 매체에 중국에서 극락을 다녀오신 관정 스님의 이야기가 많이 보도되었기 때문에 나도 언젠가는 한 번 친견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나는 우리나라 불교의 현실이 너무 시대에 동떨어진 쪽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출가한 스님들도 화두를 들고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고, 스님도 아닌 재가불자들에게 실증이 되지 않는 수행법만 들이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스님들은 수행력과는 상관없이 기득권을 가지고 아상만 높았지 불교의 본질인 자비심이나 대승불교의 뿌리인 보살행에 대해서는 관심이 크지 않다. 한국의 사찰들은 너무 화려하고 외형에 치우치며 스님들은 자기만을 내세워 처음 불교를 가까이 하려는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너무 권위적이다. 이러한 한국 불교의 미래를 위해서는 선지식들이 나서서 모든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확고부동한 수행체계를 갖추는 역할을 하지 않으면 한국 불교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한국 불교의 현실을 타개하는 대안으로 나는 한국 불교에 모두가 쉽게 접할 수 있고 누구나가 수행할 수 있는 정토수행의 도입이 절실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2000년 이전만 해도 염불은 하열한 수행법이라는 편견과 오로지 화두선 만이 수승한 수행이라는 풍토가 만연되어 있어 염불을 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관정 스님이 쓰신 「정토선 정의」를 보니 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풀 수 있는 극락의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었다. 관정 스님의 수행법은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되 두 편으로 나누어, 먼저 두 번 소리 내서 염불하고 다음은 남이 염불할 때 주의 깊게 그 소리를 듣는다는 아주 간단한 수행법이었다. 그러나 염불과 선을 모두 아우르는 정토선, 곧 염불선의 원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정토선 수행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는 것을 할 수 있었다.
첫째는 ‘정토 단계’로 열심히 염불하는 단계이다. 열심히 염불했으나 자성염불이 되지 않는 사람은 그 염불한 공덕으로 극락에 가서 더 수행하는 것이다. 아미타불이 뒷받침해 주는 후견인이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배워 바로 서녘(극락)세계에 다다라, 연꽃에 화생하고 꽃이 피면 붇다를 뵙게 된다. 그러므로 정토선은 늙은 사람 . 중년 . 어린아이 같은 3가지 근기에 두루 꼭 들어맞고, 정토선을 배우면, 배운 사람 수만큼 서녘(극락)세계에 갈 수 있으니, 만 명 닦으면 만 명이 다 간다고 중국의 어느 고승이 말하지 않았는가? 이 얼마나 힘든 중생에게 희망을 주는 종교적 메시지인가?
둘째 단계는 ‘선의 단계’로 이근원통이 되어 자성염불이 되는 사람만 그 때부터 선을 하라는 것이다. 그 선이라는 것도 몸속에서 나는 자성염불 소리에만 집중하는 쉽고 안전한 방법이고, 그렇게 열심히 하면 자성염불 소리가 더욱 뚜렷하게 들리면서 일념을 이루게 된다. 그 때부터는 자성염불 소리가 점점 작아져 완전히 사라질 때 무념을 이루면서 선에서 말하는 명심견성을 이룬다는 것이다.
첫 번째 단계가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준 불교의 광대한 넓이라면, 두 번째 단계는 바로 이승에서 생사를 벗어나는 깊이를 주는 해탈법문이 아닌가? 더구나 이 수행법은 모든 과정을 모두 ‘나무아미타불’ 한마디 염불만 활용하기 때문에 간단하고 하기 쉬운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극락에서 직접 관세음보살로부터 배운 이 수행법이야 말로 말세의 수행법이고, 한국처럼 겉멋만 든 수행자들에게 단비와 같은 수행법이라고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수행법을 열어주실 수 있는 큰스님께서 오셔서 한국에서 새바람을 일으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한국 불교는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였고, 또한 나 나름대로는 큰스님을 초청하여 잘 못된 한국 불교에 도움이 되게 하고 싶었던 발원을 세우게 되었다.
2) 불교 방송국 초청법회 준비
관정 스님 초청할 길을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2002년 초 상주 석문사에서 관정 큰스님 초청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나의 뜻을 알리고 그 때부터 적극적으로 함께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에서 모셔오는 것은 석문사에서 맡아 하고 국내에서 행사를 준비하는 것은 내가 성심껏 돕기로 했다.
나는 그때부터 될 수 있으면 많은 불교인들이 큰스님의 설법을 듣도록 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해 뛰었다. 먼저 이런 일을 기획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신 정동주 선생을 모셔 함께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한국 불교가 갖는 많은 선입견들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난관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번째 선입견이 바로 “왜 하필 염불이냐?” 하는 것이다. 불교계의 풍토로서는 당연한 반론이지만 나는 거꾸로 ‘바로 수승한 염불수행법이기 때문’이라는 역주장을 하였다. 그래서 일부러 전국의 각 사찰과 각 선방에도 모두 행사안내장을 보냈다.
두 번째 선입견은 “왜 하필 중국 스님이냐?” 하는 것이다. 당시 불교 방송에서는 “왜 외국 스님을 모시고 와서 신도들을 교란시키느냐?”는 아주 극단적인 방해까지 했다. 나는 물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불교의 기본 사상인 ‘무아’가 무엇인가? 네 것 내 것, 우리 것 남의 것을 분별하지 않는 것인데, 하물며 법을 배우는데 무슨 나라가 중요한가? 당시만 해도 중국에는 문화대혁명 때문에 선불교가 완전히 사라지고 한국에서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스님들에게 중국 스님을 초청한다는 것에 반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 그럼 자리를 마련할 터이니 종교지도자, 교수, 석학 모두 와서 한 번 하늘을 찌르는 법거량을 해 보아라!’
이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각 신문사에 보도 자료를 내고 기자 간담회를 준비하고 각계의 지도자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이미 한 달 전부터 전국 곳곳에 플래카드를 걸고, 불교관계 신문에 보도 자료를 보내고, 광고도 냈다. 많은 신문에 광고를 다 낼 수는 없고 당시 한국 불교계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조계종의 「불교신문」과 한마음선원이 운영하는 「현대불교」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두 신문은 장단점이 있다. 불교신문은 조계종에서 많이 올 것이고, 현대불교는 폭넓게 많은 불자들이 참석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일 불교신문에 광고를 내지 않고 현대불교에 내면 행사를 막겠다는 압력이 들어와 할 수 없이 불교신문에 하단 전체 광고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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