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갑자기 메밀이 당기는지 모르겠습니다.
혼자 배를 쓰다듬으며 메밀묵에 김치와 막걸리 생각을 하다가
심지어 모밀 판국수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냉면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습니다 ㅎㅎ
연배도 어린게 옛 음식 이야기를 해서 좀 그렇지만 대충 재미로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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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부는 엄동설한 한 겨울밤...
이불속에 뒤척이다 뱃속이 출출해 일어나
장독대에서 얼어있는 동치미 국물을 깨 얼음채 바가지로 퍼다가
메밀국수에 말아 따뜻한 아랫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채 후루룩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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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의 기원?... 하면 으레 떠오르는 내용입니다.
이 국물에 고명처럼 돼지고기를 얹어 먹기도 하고
겨울 하면 또 꿩이니까 사냥해서 집 처마 밑에 걸어 놓아 얼어 있던 꿩고기를 얇게 포 떠
넣기도 하고 아예 꿩을 삶아 육수로 내어 동치미와 섞어 고급스럽게 먹는 식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꿩이 부족하면 닭으로 육수를 내어 '꿩대신 닭'의 어원이 됐다는 말도 있고.
옛날 읍내 삼산집 냉면은 닭발로 육수를 내었죠.
좌우간에 이 평양 냉면이 6.25 이후 남북으로 나눠지는 통해 실향민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대표음식이 되면서 오늘날 남쪽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같은데 가서 드셔본 분들은 알겠지만
대부분의 우리들이 기억하고 먹는 냉면 맛은
원래 평양냉면의 그것과는 크게 다릅니다.
실제 우리가 일반적으로 평양냉면이라고 생각하고 먹는 냉면은 정체가 수상한 경우가 많죠
원래 한정식 집에서 쓰는 육수는 소양지나 사태 같은 부위로 육수를 내는데.
그나마 원래는 거기에 동치미 물을 반정도 넣는게 공식 아닌 공식이었지만
요즘은 한식당이라 해도 대부분 동치미조차 넣지 않는 경우가 흔하죠.
식초를 포함한 갖은 양념 범벅으로 속입니다.
달고 시고 짜고 맵고 등등 복잡하게 버무려 심지어 계피향까지..
간판은 전문 한식이되 아예 대량으로 만든 봉지육수를 사다가 말아서 파는 곳이 태반입니다.
짜장면집 풍운각이나 한식 한다는 '모식당' 일식 한다는 '모식당' 같은 공장의 냉면육수를 받아 사용합니다.
다만 주방의 솜씨에 따라 어떻게 가미하고 조리하느냐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이죠.
읍내에서 한일정이라는 냉면 집은 특이하게도 도가니를 삶아 육수로 내시더군요.
신생관 앞으로 이사 가시고는 이상하게 맛이 전 같지 않아요 ㅜ_ㅜ
면은 또 어떻습니까?
메밀 함량의 정도나 메밀 맛과는 아무 상관없이 면은 질기면 되죠.
볶아 태운 메밀이나 보리가루를 전분가루에 섞어 메일인척 하는 어두컴컴한 국수.
칡냉면은 밀 전분에 소다를 섞어 화학반응에 의해 시커멓게 하고요(칡 함량 0%)
실제 메밀로만 면을 만들면 색이 밝죠. 메밀묵처럼.
메밀 함량이 높을 수록 흐믈흐믈 할 수 밖에 없고요.
함흥식 냉면이라는 가는 면은 말 그대로 메밀은 1%도 안들어간 그냥 전분국수고요.
옛 말로 농마(녹말)국수인 셈입니다. 원래의 함흥식 국수엔 냉면이라는 말 자체가 없죠.
그래서 '황교익'이라는 맛칼럼니스트인 분은 '함흥식 냉면'이러면 아주 아주 분개합니다.
평양 냉면은 꿩 돼지 닭 소등 여러 재료로 다양하게 내는 육수가 특징이고
심지어 가난한 서민들 경우는 그냥 김치국물에 말아먹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선 일반적으로 우리가 한식당에서 평양냉면으로 알고 먹는 평양냉면의 맛은
평양 냉면이라기 보다 인천식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인천은 예전부터 소고기로 육수를 내었으니까요.
왜정때는 평양 냉면 보다도 소 육수의 인천 냉면을 더 알아줬다고 합니다.
제가 진짜 평양냉면 맛을 처음 경험한 곳은 대전에 있는 한밭식당이었습니다. 대전엔 한밭식당이란 이름이 여러 곳 있는데 그 중에 고향이 평양인 사람들이 거기서만 먹으면 그게 고향맛이라며 운다고 소문난 평양냉면 전문점이 따로 있었습니다. 이 식당내부에 설명한 내용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소 육수에 닭 육수 반반씩 섞는다고 돼 있더군요.
처음엔 질기고 탄력있는 전분면만 먹다가 힘 없이 풀어지며 불어가는 냉면사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두번째는 심심하고 지리한 육수였습니다.
흐믈흐믈 하며 제대로 퀴퀴한 메밀향도 당황스러웠고요.
그 후 서울에 있는 우래옥 평양면옥 을지면옥등등
평양냉면 전문가들이 알아준다는 곳들을 점차 접하게 되었습니다.
진짜 평양 냉면은 입술로도 툭툭 끊어지는 흐믈 흐믈한 메밀 면과
밍밍하고 지린것 같은 육수 맛이 특징입니다.
처음 먹는 사람들은 면은 억지로 먹어도 육수까지 다 먹기 힘들어 합니다.
광복과 육이오를 겪으면서 특히 70년대 이후 우리는 미국식 입맛에 많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밀가루 설탕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한식은 휴전선으로 가로막혀 슴슴한 북한 음식과의 교류가 단절되면서
남도식의 짜고 자극적인 맛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어느샌가 우리는 달고 맵고 짜고 기름지며 고기 씹는 맛에 익숙해졌습니다.
이런 특징이 우리 남쪽 사람들의 냉면 맛에도 영향을 끼쳤을겁니다.
평양에서도 냉면 육수에 고춧가루를 넣어 시원하면서도 얼얼한 맛을 즐기긴 합니다.
그러나 평양냉면 육수 자체의 기본 맛은 약하고 슴슴하며 가느다랗습니다.
진짜 평양냉면을 못 즐기는 분들이 많은 이유는
인공으로 가미된 자극성 있는 육수에 길들여져 평양냉면 특유의 육수맛을 제대로 못 즐겨서죠.
그러나 실제로 머얼건 그 육수에도 온갖 재료가 다 들어갔습니다. 더 많이...
육수 재료중 하나인 소 하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예전 을밀대 같은 곳에선 소 한마리 모든 부위를 다 골고루 넣어 10시간이나 우려냈답니다. 냉면 육수엔 그 외에도 돼지나 닭 그리고 알 듯 모를 듯 과일이나 야채포함 수십가지 재료가 들어갑니다.
양념이나 조미 향에 의존하지 않고 재료 자체의 순수한 맛이 아주 복잡하게 얽히다 보니 그 은근한 깊은 맛을 분별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실제론 그렇게 가늘고 약하고 슴슴하고 지리한 그 육수 맛 속에는 수 많은 재료들의 다양한 맛들이 수줍게 잘 버무려져 있습니다. 먹는 사람의 끈기 있는 탐구를 통해 깊고 미묘한 맛을 드러내는거죠. 또한 먹는 동안 면 속에 들어 있는 메밀의 성분은 밖으로 빠져 나와 육수 속에 섞임니다. 그때서야 간이 맞아지게 되는 것이고 메밀 특유의 구수한 맛까지 본격적으로 드러내며 육수 맛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으로 냉면 육수 맛의 대미를 장식하는 거죠. 그래서 평양냉면을 먹을때는 면을 한 번에 다 먹지 않고 면과 육수를 번갈아 먹으며 조금씩 풍부해 지는 육수 맛의 변화를 즐기는 것도 요령입니다. 그게 진정한 평양냉면의 맛입니다.
얼마전 애엄마 하고 일산에 갔다가 대동관이라는 식당에 우연히 들렀습니다.
먹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완전 평양식 냉면이었거든요. 속으로 감탄사를 연발하는데..
애 엄마는 못 먹고 남겼습니다. 그런 냉면은 처음 먹는 것이었으니까요.
오면서 냉면 맛이 어째서 그런지 나름대로 설명을 해줬지만 아마 쉽게 익숙해지긴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같이 먹은 만두가 맛있어서 불만은 없었을겁니다.
남북이 분단된지 벌써 60년입니다. 고향의 평양 냉면 맛을 찾을 분들은 80이 넘었을겁니다.
지금의 전통 평양냉면 집들은 고향이 평양이 아닌 별도로 그 맛에 -훈련-길들여진 분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겠죠.
일산에서 그 주인 아주머니가 어느 손님 테이블에 가 손님에게 염려스러운듯 묻던게 기억나네요.
'괜찮으신가요? 이상하진 않은가요?".....
첫댓글 제가 글을 쓰고 스스로 세 번을 읽어 봤는데, 말하고자 하는 의도에 비춰 1/4로 줄여도 될 만큼 말이 많았네요.
함축적으로 묶고 돌려 말해도 될 것이 장황해지면서 잘난 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