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想錄, 19 晉州矣 矗石樓
경상남도의 진주는 영남의 문화, 교육, 교통, 관광의 중심 도시다.
그리고 도심 중앙으로 남강이흐른다.
남강은 거창군 북상면에서 발원하여 동쪽, 낙동강으로 이어진다.
진주성에는 촉석루가 있다.
촉성루는 고려 공민왕때(1365년)에 창건했다.
6,25 전쟁 때 소실 됐 던 것을 1960년 진주 최씨( 저의 선대 괜당)가 사제를 털어 복원 했다.
영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누각이며 진주 남강 기슭에 있다.
진주성을 끼고 있는 촉석루에서 조금 남강으로 내려가면 의암(義巖)이 있다.
길이 약 4m, 폭 약 3.3m되는 남강으로 비스틈이 누워있는 바위 이다.
임진왜란 때 여기서 진주의 기생 논개(論介)와 왜장 " 게야무라 토꾸스케"를 껴안고 남강으로 투신했다.
이때 론개는 양손의 손가각에 옥(玉) 반지를 3개씩 끼고 남강으로 투신 했다.
그 바위가 의암이라해서 론개 사당을 진주성내에 모셔져있어,.진주예술제 때 제를 지낸다.
임진왜란 3대 대첩하면 진주대첩, 행주대첩, 한산대첩 이다.
고려 그리고 조선시대의 기생은 격조(格調)가 높았다.
기생은 미모와 교양을 두루 갖추고 예술적 재능을 갖추었다.
노래와 춤 그리고 악기(가야금, 북 등) 또한 시문(詩文)을 짓고 읆으며( 시제말로 시낭송) 풍류을 즐겼다.
뿐만 아니라 서예, 그림 등 다방면에 능통했다.
그 유명한 송도(개성) 3 절하면 황진이, 박연폭포, 서경덕은 절개를 지킨 인물이다.
오늘날에도 추앙 받으며 회자되고 있다.
문화의 도시듯 진주예술제는 국가와 가정에 안년을 기원 의식으로 개천 예술제에 남강에 유등 띄우기로 유명하지만
전국 고교 밴드브(band musicians)가 참가하는 경연대회가 있다.
제주 오현고가 참가하여, 매년 1등을 놓치지 않았다.
필자의 고교 2학년 때 짝 친구가 밴드브의 트럼본(trombone) 악기를 다루는 일원으로 경원대회 참가하고,
진주 여고생과 사귀었던 일화는 지금도 내 귀에 쟁쟁하다.
진주성의 성곽 길이는 1,700m의 석성이다.
진주성 대첩시 민관군 7만 여명이 이 성을 지키다 모두 순절한 호국충정의 성이다.
여기에는 호국 영령들의 기리기 위한 촉성정 충단비와 승병이 산성사는 그들의 넋을 기려 " 호국사"로 재건했다.
진주 국립 박물관은 진주성 내에 있다.
전시실에는 " 석기, 청동기, 원삼국, 가야시대" 의 유물과 임진왜란 당시의 유물인 현자 총통, 중완구 등 전시되여있었다.
그리고 옆 창원시에는 국가방산 기업이있다.
필자는 75년 당시 전차(땡크), 박격포, M16 소총 등 방산 공장에 갔었다.
화기 성능 태스트(test)과정및 무기제조 그리고 검수 과정 요원으로 갔었다.
창원 대로는 18 차선 이었으며, 이는 전시에 전투 비행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었다.
요즘 방산 무기 수출이 수 조원이다.(k-전차, k-9 자주포, 다연장 로켓포 등)
당시 M16소총 주물공장, 땡크 공장등 어마어마했다.
땡크가 고도 40도를 오르내리고 , 수중 3M 깊이를 통과하고, 이동간 사격 등 어찌, 글(言)로 표현할 까요, 가보지 않고는 모른다.
깊숙한 말(言)은 국가기밀이라 말할 수 없다.
이는 1970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명에의거 창원 국가 산단이 설립되었다.
창원은 동서남북 칠, 팔백 고지 산(山) 으로 둘러있는 분지이면서 금상탕지(金城湯池) 였다.
전시에 적의 전투기가 공격할 려면 300m 이하까지 하강하여 상승 할려면 정밀 타격이 불가능 한 지형적 조건을 갖춘 곳이다.
필자는 1주 동안 있었다.
여가시간에 진주, 마산, 거제, 삼천포, 진해 등 두루 그 지방을 가 보았다.
이는 하나의 산업 벨트(belt)였다.
필자는 현역때 중대원의 일년에 한번 만남의 모임을 갖는다.
옛적 ,적근산의 15사단 수색중대 부하들, 생사를 넘나들던 휴전선(GP 요원들)에서 지냈던 얘기를 하다보면,
지금은 면박도 밭고, 좋았던 얘기를 하다보면 소주 서너병은 각자 마시다보면, 밤을 설치기 일수지만 해어질때 는
건강해, 내년에 또 만나자, 인사를 나눌 때는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이게 애국하는 눈물이면서 전우애의 사랑이 아닐까 한다.
21년에는 가을에 거제시에서 있었다.
거제시의 1차 산업은 굴 양식 이다.
통영 앞바다 선착장 옆에는 굴 껍질이 오름처럼 높게 쌓여있는데, 한 노파가 굴 껍질 선별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필자의 물음에 굴 껍질을 3회(3년)를 종자를 붙여 재 사용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다음 삼천포로 빠졌는데,
선착장에서 그물 보수작업하는 어부를 만났는데 어부의 하소연이, 선불을 주고 선원을 구했는데, 도망가버려 돈만 날렸고,
빨래 줄에 속옷을 걸어 놓으면 도둑 맞는데요.
글 虎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