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복서> 태국, 에카차이 우에크롱탐, 2003년, 드라마
<옹박>보다 훨 나은 영화다. 재작년 우리나라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와 비슷한 주제와 내용이다.
영화의 매력은 태국의 정서를 물씬 풍긴다는 것이다. <옹박>이 단순히 홍콩 무술영화의 태국판 번안이었다면, 이 영화는 첸 카이거의 <패왕별희>의 태국판 번안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물론 이 말이 태국영화를 모독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 영화도 홍콩영화식의 <장군의 아들>, 미국 첩보영화식의 <쉬리>, 그리고 장이모의 <현 위의 인생>을 연상하게 하는 <서편제> 등 앞선 영화선진국을 모방하며 자기 나라의 영화의 유형을 형성하고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태국은 타이족이 중국의 남방에 살다가 중국의 한족에 축출되어 지금의 태국으로 남하하여 세운 나라다. 그래서 중국민족과 친근성이 많다. <옹박>과 <뷰티풀 복서>의 대중영화들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도 이미 대중적으로 소통되는 무술영화의 양식이 있었고, 태국 특유의 민족적 코드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인 치앙마이나 매홍쏜, 방콕을 여행했던 터라, 영화 속 장면이 더욱 친근감 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태국 말의 여성스러운 억양에서 나오는 부드러움은 불교문화의 수동성과 참 잘 어울리면서, 그야말로 손톱만하지만 엄청나게 매운 열대고추처럼 매꼼한 킥복싱은 절묘한 대조로 마치 날줄과 씨줄처럼 태국을 인상지운다.
정말 태국에는 성전환자들이 많다. 타민족에게도 태국인들은 퍽 개방적이다. 그것이 불교에 기인한 것일까 아열대특유의 여유와 개방성 때문일까 이유는 모르겠다. 아무튼 태국의 문화적 코드를 이해하는데로 이런 대중영화는 커다란 보탬을 준다.
요즘 이 영화처럼 성정체성과 트랜스젠더를 다루는 영화들이 참 많다. 90년대 <아이다호>, <패왕별희>,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같은 영화들 이후 세계적 추세가 된 듯하다. 덕분에 성적 소주자들을 변태로 보는 시각은 많이 교정되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성정체성의 혼란 문제를 뿌리까지 심도깊게 파고든 작품을 본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런 영화가 중요한 이유는 성정체성을 비롯해 우리가 가진 일반적 편견을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포용의 여지를 열어준다는 것이다. 내가 안타까워하는 건 이것이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포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심지어 이런 성전환이 자본주의적 상업주의 속에 양성되고 고양된 유행이 아닐까 하는 다소 가혹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 정체성의 혼란과 자신감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수술이나 호르몬제 같은 것으로 정체성을 찾는 게 과연 진정한 치유가 될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가 일반적인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자신의 참나를 찾으면 이런 문제도 쉽게 극복될 수 있지 않을까? 참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이 영화는 물론 유익하고 좋은 점이 있지만, 트랜스젠더라는 코드의 문화적 유행에 대해 내가 인권차원에서만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사회경제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좀 상투적인 면도 있으니 신선한 면도 있는 영화였다. 3세계 영화는 보통 수준으로 제작되어도 그 자체로 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 나라의 실루엣을 얼핏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 시놉시스-
태국 킥복싱계를 넉다운 시킨 뒤 성전환 수술 후 영화배우겸 모델로 인기를 끌고 있는 농툼의 실화를 다룬 드라마다. 농툼은 어려서부터 남자 몸에 갇힌 여자라 생각한다. 주위 사람들의 놀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험난한 인생의 여정을 헤쳐 나가던 농툼은 가난한 집안을 살리기 위해 타이 킥복싱을 시작한다. 얻어터지고 때리면서 농툼은 용맹스런 남자처럼 링 위에서 승승장구하지만 링을 내려왔을 때 밀려드는 공허함을 이기지 못한다. 눙툼은 진한 화장을 한 채 링에 올라 상대 선수와 관중들의 비웃음을 향해 더 강력한 킥을 날린다. 농툼은 힘들 때마다 힘이 되어주었던 엄마와 아빠를 찾아가 생의 가장 힘든 결정을 의논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