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의 지하철은 이전 포스팅을 통해 여러 번 소개한 바 있다. 이 지하철의 노선도를 펼쳐놓고 동쪽 끝, 빨간색 2호선(U2) 라인의 오른쪽 가장 끝 즈음을 보면 "메쎄슈타트 베스트 / 오스트 (Messestadt West / Ost)" 역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독일어 "메쎄(Messe)"는 영어의 "Fair" 즉, 박람회를 뜻하고, "슈타트(Stadt)"는 "City" 혹은 "Town"을 뜻한다. 직역하면 박람회 도시(마을) 정도가 되겠다. 베스트(West)는 서쪽, 오스트(Ost)는 동쪽을 뜻하니 조합하면 박람회 도시의 서쪽과 동쪽역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의 코엑스(COEX) 혹은 킨텍스(KINTEX) 처럼 박람회를 위해 특화된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메쎄슈타트에서는 일 년 내내 각종 박람회가 열리는데 그 기간에 맞추어, 작게는 독일 내 크게는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바이어들과 해당분야 종사자들이 뮌헨을 방문한다. 그래서 이 박람회 도시는 아마도 뮌헨에서 가장 많은 분야의 외부인들이 다녀가는 공간일 것이다.
매년 뮌헨의 박람회 도시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박람회 중 가장 유명한 것을 꼽으라면 세계 최대 건축박람회 중 하나인 "바우메쎄(BAU)", 전기자동차를 비롯한 다양한 전기 이동수단을 위한 박람회인 "이카테크(eCarTec)", 전자/전기제품 부품과 시스템에 관한 박람회인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 다양한 분야에 적용가능한 신소재와 처리기법 등을 전시하는 "메터리얼리카(Materialica)"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전기, 전자제품에 사용되는 각종 부품과 시스템을 소개하는 전시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에 전시되었던 "허니웰(Honeywell)"과 "파일럿피쉬(Pilotfish)"의 합작 부스(Booth)를 통해 지루한 부품 관련 박람회가 관람객들에게 어떻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관한 사례를 소개하려 한다.
최근 한국에서는 모터쇼가 한창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세계 자동차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자신들의 신차와 비전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자리이다. 자동차라는 소재는 꽤 매력적이어서 자동차 박람회장에 들어서면 지루할 틈이 없다. 하지만 전자제품 박람회도 아니고 전자제품의 부품 박람회라니, 전문가들도 쉽게 지루할 수 있는 전시가 아닌가? 조금은 과장되게 비유하자면, 파워포인트로만 만들어진 이공계생들의 프리젠테이션과(MS와 이공계생을 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디자이너들이 Adobe 툴을 이용해 만든 프리젠테이션의 차이로도 얘기할 수 있겠다. 한마디로 딱딱하고 세련되지 않다는 것이다.
▲ Honeywell Sensing Sensation(Image ⓒ Pilotfish) : 세계 최대 전자, 전기 제품의 부품들을 생산하는 미국계 글로벌 기업 허니웰(Honeywell / honeywell.com)은 자체로도 각종 완제품을 생산하기도 하지만, 소비자들보다는 최종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업들에 더 친숙한 이름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에게는 다소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자, 전기 제품 시장에서 허니웰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2012년 11월에 뮌헨에서 열린 "일렉트로니카 2012 박람회" 무대에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고수준의 다양한 센서(Sensor) 기술을 전시하려고 계획하던 허니웰이 무릎팍 도사를 찾은 의뢰인처럼 파일럿피쉬(Pilotfish)에게 던진 고민은? “어떻게 하면 박람회를 찾은 관람객을 좀 더 많이 우리 부스로 찾아오게 할 수 있을까요?” 파일럿피쉬(Pilotfish)가 제시한 해답은 "새로운 경험"이였고, 몇 달간의 디자인 작업과 프로토타입 테스트 등 허니웰과의 협업을 통해 부품박람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전시 부스를 만들어냈다. 프로젝트의 타이틀은 "센싱 센세이션(Sensing Sensation)"이다.
▲ Process(Image ⓒ Pilotfish) : 크게 네 단계의 스텝으로 이루어진 프로세스. 각 단계로 넘어가는 사이사이에는 교차하는 지점이 있는데 이는 각기 다른 프로세스로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프로젝트 초기에 확정되는 에센스(Essence)를 잃지 않고 최종 단계까지 도달하기 위한 장치이다.
▲ Research and Workshop(Image ⓒ Pilotfish) : 첫 번째 스텝에서는 실질적인 아이디에이션(Ideation)을 위한 정확한 방향설정과 리서치가 주된 작업이다. 엔지니어링에 관한 어마어마한 인풋이 필요한 관계로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킥오프(Kick-Off)부터 집중적인 워크샵을 필요로 한다. 클라이언트 그룹에서는 엔지니어들과 마케터들이 함께 워크샵에 참여하여 파일럿피쉬의 디자이너들과 프로젝트에 대한 정확한 에센스를 도출해낸다.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들은 전문가들로부터 프로젝트에 필요한 교육을 받게 된다.
▲ Ideation Brainstorm and Sketch(Image ⓒ Pilotfish) : 디자이너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디에이션 스텝 과정이다. "좋지 않은 아이디어는 없다. (There is No Bad Ideas.)", "아니, 하지만 대신 그래, 그리고(Yes, And Instead of No, But)"라는 룰안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들로 하얀 벽이 채워지는 단계이다. 최종적으로 다양한 구(Sphere) 형태의 오브젝트를 이용하여 관람객이 어떠한 행동을 취했을때, 그에 해당하는 게임을 할 수 있고 각각의 동작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센서를 컨트롤 해야 하는 미션을 관람객에게 제공하는 아이디어가 클라이언트의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게 했다.
▲ Concept Refinement(Image ⓒ Pilotfish) : 스케치단계를 통해 정리한 아이디어를 3D를 통해 시뮬레이션하고, 러프한 목업(Mock-Up)을 제작해 크기와 최종 셋업을 결정짓는다.
▲ Prototyping(Image ⓒ Pilotfish) : 파일럿피쉬팀의 디자이너들과 엔지니어들이 100% 협업하여 만들어내는 워킹 프로토타입(Working Prototype)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함께 1mm의 컨트롤까지 만족할만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십 번의 테스트를 거친다.
▲ Deliver and Assemble(Image ⓒ Pilotfish) : 최종적으로 완성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하고 나면 전시회장인 뮌헨으로 운반하고, 엔지니어들이 마지막 설치를 마친다. 이제 관람객들을 맞을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 Sensing Spheres(Image ⓒ Pilotfish) : 각고의 노력을 거쳐 탄생한 세 가지 타입의 구(Sphere)들은 입을 통해 부는 바람, 손으로 돌리는 회전, 손으로 누르는 압력에 의해 각기 다른 형태의 게임을 제공한다. 센서의 세밀한 정확도를 보여주기 위하여 각 구 오브젝트 앞에 있는 화면에 그래프 형태의 게임이 재생된다. 인풋 제스쳐(바람, 회전, 압력)의 강도에 따라 움직이는 그래프를 정해진 좁은 구간에 일정한 강도를 지속적해서 오래 유지시키는 것이 관람객들에게 주어진 미션이다.
▲ Show Time(Image ⓒ Pilotfish) : 관람객들이 설치된 기구들을 향해 하나둘 다가오고, 상기된 표정으로 게임을 즐긴다. "일렉트로니카 2012"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 허니웰(Honeywell)의 "센싱 센세이션 부스"
http://vimeo.com/58698704
▲ Pilotfish Sensing Sensation Process Film(Video ⓒ Pilotfish) : 센싱 센세이션의 모든 제작과정이 축약되어 담긴 파일럿피쉬의 프로세스 영상(현재 동영상을 리포트에 바로 링크하는데에 오류가 있는 관계로 다른화면에서 볼 수 있는 링크를 올립니다. 추후 변경 예정입니다.)
박람회에 참가하는 모든 회사는 자신들의 부스로 더욱 많은 관람객이 모이길 원하고 또한 오래도록 그들의 뇌리에 기억되어 자신들이 전시한 제품의 소비자가 되어주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선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 재미 요소를 찾아야 한다. 지루한 박람회가 재미가 있어질 방법은 바로 허니웰과 파일럿피쉬가 제안한 방법처럼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적어도 허니웰의 빨간 로고를 닮은 구 오브젝트는 쇼가 끝난 후에도 관람객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리포터 소개
리포터 양성철은 독일 뮌헨의 디자인 에이전시, Pilotfish GmbH(www.Pilotfish.eu)에서 Industrial Designer로 일하고 있다. 그는 유럽에서 겪는 디자이너의 일상들이나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지만,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보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