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을 속 자그마한 돌섬들, 장난치는 돌고래 무리인 듯
완도 청산도(靑山島)-. 하늘 높이 솟구친 산도, 섬을 둘러싼 바다도, 섬을 감싸안은 하늘마저도 푸르다는 남해의 섬이다. 해안 절벽과 갯돌해안이 번갈아 나타나며 이어지는 해안선과 민가의 경계로 비롯되었지만 정겨운 돌담길, 특이한 장례문화인 초분(草墳) 등 오랜 세월 이어져온 문화유산은 섬 밖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특함을 자랑한다. 게다가 봄이면 온 섬이 보리로 파릇해지고 곳곳이 유채꽃 노란빛으로 채색되면서 한층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섬이다.
▲ 칠흑같은 어둠이 밀려 오기 전 바다는 황홀경을 연출한다. 범바위 비박지에서 바라본 남해 낙조.
그래서일까. 완도는 어획량이 줄어들고 인구가 줄어들며 잊혀져가는 섬이었으나 1981년 12월 23일 남해의 298개 섬과 함께 다도해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2007년에는 홍도와 함께 ‘가고 싶은 섬’ 4곳 중 하나로 꼽히고, 이어 오래도록 훼손되지 않은 자연문화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슬로시티(Slowcity·Cittaslow)로 지정되었다.
‘서편제’ 주인공들이 진도아리랑 노랫가락에 덩실덩실 춤추며 걷던 황톳길
대모도, 소모도, 여서도, 장도 등 4개의 유인도와 9개 무인도의 부속도서로 구성된 청산도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삼치와 고등어 파시(波市)로 인해 완도에서도 이름난 어항이었다.
“요즘은 강산이 2년에 한 번 변해요. 10여년 전 얘긴 꺼내지도 말아요. 그런데 가고 싶은 섬, 슬로시티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요?”
완도 연안여객선 터미널에서 첫 배를 타고 청산도 관문 도청항에 도착해 관광자료를 얻기 위해 찾은 청산면사무소에서 만난 청산도 슬로시티 사무장 김송기(金松基)씨에게 기자가 11년 전 기억을 더듬으며 청산도에 대해 아는 척하려 하자 썰렁한 반응을 보내왔다. 청산도는 높은 빌딩이 들어선 것도 아닌데 예전에 비해 뭔가 많이 변했다 싶었다. 무엇보다 여객선에서 대형 화물차나 중장비 차들이 내리는 광경 때문이었다. 게다가 예전과 달리 섬 안의 길은 황톳길 대신 대부분 아스콘이나 콘크리트로 깨끗하게 포장돼 있었다.
“일단 차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요. 그러고 범바위까지 슬로(slow)길을 걸어보기로 하죠.”
▲ 1 평화로운 풍광의 청산도 갯마을. 2 돌담길이 인상적인 동촌마을. 슬로길은 진행방향이 화살표로 표시돼 있다. 3 해풍을 맞아 오히려 자연미가 넘치는 해송들. 4 ‘서편제’ 촬영 무대인 당리마을 초가집.
당리를 향해 아스팔트길을 따라 언덕마루를 올라서는 사이 오른쪽으로 멋진 도락리 포구가 눈길을 끈다. 포구 안에는 자그마한 어선도 떠 있고, 김·전복양식장이 바다를 예쁘게 장식하고 있다.
“한때 고등어와 삼치가 많이 나 파시가 열렸던 섬이에요. 인구도 1만3000명이나 됐고요. 지금은 2300명에 불과해요. 인구가 줄어든 원인은 무엇보다 교육 때문이에요. 중학교가 하나밖에 없어요. 의료시설도 빈약하고….”
김송기씨의 맏아들 역시 올해 대학에 입학해 서울에서 학교를 다녀야 한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둘째이자 외동딸 역시 내년에 고등학교를 다니려면 뭍이나 적어도 완도읍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해온다며 한숨을 쉰다.
“서편제는 아실 테고, 봄의 왈츠도 알죠? 있잖아요, TV 드라마.”
당리 마을이 바라보이는 언덕에 올라서자 오른쪽 콘크리트길 뒤편에 그림 같은 이층집이 올라앉아 있다. 2006년 방영된 TV 드라마 ‘봄의 왈츠’에서 주인공 남녀가 사랑을 나누던 무대였다. 아스팔트길을 버리고 콘크리트길을 따르는 사이 오른쪽으로 도락리 포구가 나타난다. 포구 뒤로 납다도, 두억도, 지초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다를 떠다니는 배처럼 바라보이고, 해남땅과 다리로 이어진 완도와 역시 완도와 다리로 이어진 신지도가 부연 바다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갯돌 해안과 금빛바다 풍광이 인상적인 장기미해변.
“밭을 푸르게 물들인 게 마늘대지만 그래도 봄 분위기가 나는 것 같네요.”
이층집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르는 사이 영화 ‘서편제’의 한 장면이 떠오르며 마음이 싸아해진다. 지금은 콘크리트로 포장돼 있지만 이 길은 주인공 유봉과 의붓딸 송화가 진도아리랑의 구성진 노랫가락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며 내려오던, 돌담이 가지런히 쌓인 황톳길이었다. 그때는 길 양쪽에 보리가 파랗게 피어올라 싱그러운 봄 분위기가 풍겼지만 지금은 제법 차가운 바람에 어깨가 움츠러든다.
‘봄의 왈츠’ 세트장을 지나 화랑포새끝으로 향하는 사이 우거진 숲이 바다 조망을 가로막는다. 그래도 좋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 그대로 우거진 숲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혀 주고, 숲이 벗겨지면서 드러나는 화랑포(花浪浦)는 파도가 칠 때면 마치 꽃을 보는 듯 아름답다는 포구답게 예쁘게 느껴진다.
해안 절벽과 몽돌밭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슬로길
화랑포 지명 유래와 슬로길에 대해 김송기씨의 설명을 들은 다음 새땅끝으로 향한다. 해남 땅끝에서 이름을 따온 ‘새땅끝’ 가는 길은 전구간이 ‘남해 조망대’였다. 동으로 기암 범바위(239.8m)와 그 뒤로 보적산(330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바닷가 산의 아기자기함과 내륙에 솟아오른 육산의 웅장함을 함께 갖추고 있고, 남으로 여서도 외에는 망망대해가 펼쳐졌다. 한낮의 햇살은 바다를 자극하면서 수많은 고기가 튀어오르는 듯 반짝였다. 비늘처럼 반짝이는 파도는 갯바위에 부딪치는 순간 “철썩~” 하며 소리내곤 부서져 다시 푸른 바닷물로 변했다.
“날이 맑으면 추자도는 물론 제주도까지도 보여요. 겨울철엔 한라산이 푸른 바다에서 솟구친 설산처럼 신비롭고요.”
새땅끝을 바라보다 다시 당리를 향해 가는 사이 중년 여인들이 둘, 셋 짝을 이루어 다가온다. 옷깃 사이로 찬바람이 파고드는데도 즐겁기만 한 표정이다. 청산도 슬로길은 제주 올레길만큼 도시인들이 몰려들지는 않더라도 이미 천천히 걷는 여행의 즐거움을 아는 이들에게는 이름난 길로 자리잡은 듯싶었다.
“오후엔 오늘 야영할 범바위에서 이쪽으로 걸어오기로 하죠. 길이 자연스럽고 해안 풍광이 정말 기가 막힙니다.”
[비박하며 일출·노을보기 섬산행 | 완도 청산도] 슬로길 탐승 & 보적산~고성산~대선산~대봉산 종주산행
노을 속 자그마한 돌섬들, 장난치는 돌고래 무리인 듯
권덕리 해변으로 이어지는 슬로길 갈림목에서 ‘봄의 왈츠’ 세트장을 지나 아스팔트길을 따라 당리로 내려서자 김송기씨는 골목길을 따라 허름한 초가집으로 들어선다. 이곳 역시 유봉과 송화가 머물던 서편제의 무대다. 툇마루에는 송화가 아비이자 고수인 유봉의 장구 장단에 맞춰 노래를 배우는 모습을 한 인형이 자리잡고 있고, 부엌과 변소 역시 옛 모습 그대로였다. 집 뒤편 골목길은 제주의 돌담길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쉬워요. 센서를 이용해 누가 접근하면 진도아리랑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게 하고 또 이런 곳에서 창 한 자락 가르쳐줄 수 있다면 외부인들에게 진정한 청산도 여행을 즐길 수 있게 할 텐테 말입니다.”
-
도로가의 읍리 지석묘(支石墓)와 하마비(下馬碑)를 지나 신흥리 바닷가로 다가서자 김송기씨는 해안을 따라 소나무 숲이 조성된 신흥해수욕장을 스쳐지나 동촌리 동촌마을로 안내한다. 시멘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허리 높이로 쌓아올린 마을 돌담길은 전형적인 고향 가는 길처럼 정감이 넘쳤다. 널찍한 마당에 텃밭까지 갖춘 민가에서는 행주치마 두른 어머니가 당장이라도 뛰어나올 것만 같았다. 길바닥에 파란 페인트로 표시된 화살표 방향을 따르는 사이 들려오는 닭울음소리는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동촌 마을을 지나 순환도로를 따라 몽돌 깔린 진산리 해안과 멸치로 이름난 국화리 포구에 이어 해안가 소나무 숲과 백사장이 일품인 지리해수욕장을 거쳐 다시 도청항에 닿자 오후 1시. 서둘러야 화랑포 부근의 잘루목에서 슬로길을 따르면서 해안 절경지를 탐승한 뒤 범바위에서 야영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자장면으로 점심을 후딱 해결하고 다시 봄의 왈츠 촬영장을 지나 권덕리로 이어지는 슬로길로 접어들었다.
“야~, 이거 정말 기가 막히네. 속초 앞바다와 전혀 다른 풍광이야.”
속초에서 살고 있는 노영수씨는 동해와 달리 해안 절벽과 기암이 다채로운 청산도 해안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거친 바윗길에서는 18km나 떨어져 있는 여서도가 전설 속의 섬 파랑도처럼 바라보여 가슴 설레게 하고, 숲길로 들어서자 판타지 영화 속 마술의 숲 같은 분위기에 묘한 즐거움에 빠진다. 그러다 구장마을 갯돌 해안을 따르노라면 갯돌 부딪치는 소리가 어린아이 웃음소리처럼 느껴져 정겹고, 갯바위 아래에서 나는 법 배우느라 하늘로 솟아오르다 툭 툭 떨어지는 갈매기들을 바라보노라면 괜스레 입가에 미소가 맴돈다.
-
-
-
또다시 해안 절벽 위로 이어지는 슬로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서자 갯바위 낚시터로 이름난 권덕리 마을. 11년 전 우연히 들어선 집에서 뜻하지 않게 싱싱한 회에 정 넘치는 소주를 얻어 마신 기억이 있던 터라 ‘혹시’ 싶은 기대에 골목 어귀에서 두리번거려보았지만 움직이는 이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제 가파른 산길을 10여 분 오르면 범바위 안부예요. 맑은 날에는 추자도도 보이고 제주도 한라산도 보여요. 한데 이렇게 찬바람이 불어대는데 잘 수 있겠어요?”
‘전설의 기암’ 범바위에서 환상적인 일몰 만끽
김송기씨의 걱정소리를 들으며 가파른 사면을 따라 닦인 슬로길을 따라 오르는 사이 등뒤로 화랑포새끝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이 아름답게 바라보이고, 여서도는 수면에 떠오른 커다란 고래가 점점 먼 바다로 나가는 형국이다.
-
“어휴, 추워. 이런 날 비박이 가능하겠어요? 바람 피할 만한 곳도 마땅치 않은데….”
“나는 범바위에서 밤하늘 보면서 비박할 거야. 텐트에서 잘 사람은 알아서들 쳐. 낭만이 없어, 낭만이.”
범바위와 전망대 사이의 안부는 널찍하지만 전망대 조성 공사 자재가 어지러이 널려 있어 텐트를 치기에는 마땅치 않았다. 그래도 텐트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도 노영수씨와 최준회, 이영석씨는 “범바위에 올라 비박하는 게 훨씬 낭만적이다”라며 범바위로 올라간다.
청산도에 살던 호랑이가 자신이 울부짓는 소리가 범바위에 부딪치면서 더욱 크게 울려 퍼지자 더 크고 힘센 호랑이가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겁을 집어먹고 섬 밖으로 내뺐다는 전설이 전하는 범바위는 멋진 조망대다. 여서도가 외롭게 솟은 망망대해가 끝없이 펼쳐지고 좌우로 청산도 남쪽의 아름다운 해안이 샅샅이 들어왔다.
-
-
-
날씨가 어두워지면서 서녘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기암 사이로 바라보이는 바다는 호수 같고, 해는 그 호수를 향해 서서히 내려앉았다. 바다는 한낮의 푸르고 밝은 빛 대신 칙칙한 빛깔로 변하다 어느 순간 해를 꼴깍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칠흑같은 어둠이 순식간에 덮쳐오고, 발아래 권덕리와 바다 멀리 여서도 갯마을의 민가도 한 집 한 집 불을 밝혀왔다. 어둠은 청산도는 물론 온 세상을 묻어버리는 듯했지만 밤하늘을 빼곡이 수놓은 수많은 별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별이 좋긴 한데…. 어휴, 추워. 이거 바람이 장난이 아닌데.”
“아니, 비박이 그렇게도 좋다더니 왜들 이래? 그깟 추위도 못 참는 거야?”
범바위에서 비박하던 세 사람은 추위와 강한 바람에 잠 못 이루다 자정을 넘기지도 못하고 한 명 한 명 텐트 안으로 들어오더니 결국 새벽 1시쯤에는 텐트 안은 몸을 움직이는 게 어려울 정도로 비좁아지고 말았다.
“오메, 징한 거. 왜 그렇게 산다요?”
노을 속 자그마한 돌섬들, 장난치는 돌고래 무리인 듯
산사면의 잡목을 베어내기 위해 해가 뜨기도 전에 범바위 주변으로 올라온 마을주민들은 텐트 안에 누워 있는 일행을 보더니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뭐가 그리도 좋은지 우리는 빙그레 웃음지으며 물을 끓이고 라면을 풍덩 집어넣으며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기대했던 일출은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보덕산(寶德山·330m)으로 향했다. 등뒤로 아침해가 바다에 금빛 꼬리를 늘어뜨린 채 꼼짝하지 않을 듯하더니 몇 발짝 걷다 뒤돌아서자 하늘 높이 솟아올라 있었다. 범바위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왼쪽에 툭 튀어오른 새끼 범이 어미 범을 좇아가는 형국이었다. 범 가족도 발아래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슬로길을 걸어 보고픈 것일까.
널찍하고 부드러운 능선길을 따르노라니 풀내음과 바다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찬바람이 얼굴뿐 아니라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듯하다. 이래서 청산도를 일컬어 하늘과 땅, 바다가 푸른 섬이라 하는가 보다.
-
- ▲ 1 보적산 북릉. 2 대선산 남릉상의 기암. 3 고성산 산성길.
-
망대 같은 보적산(寶積山·330m) 정상에 올라서자 고성산(310m)에서 대선산(311.1m)과 대성산(343.4m)을 거쳐 대봉산(大鳳山·379m)으로 이어지며 섬의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가 섬 북쪽을 가로막은 채 기운차게 솟아올라 있고, 동쪽으로 청산도 최고봉 매봉산(384.5m)이 암팡진 형상으로 솟아 있다. 그보다 더욱 마음에 와닿는 것은 역시 바다 건너의 육지와 남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였다. 어제는 뭍의 바닷가에 있다는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섬산을 오른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고성산 가는 길은 오른쪽으로 어제 느림보 걸음으로 둘러보았던 돌담마을과 그 주변의 구들장논이 내려다보이면서 산을 오르는 게 아니라 마치 고향집 찾아 내려가는 기분이다. 그러다 급경사 내리막을 지나 숲 우거진 능선길로 접어들자 강원도 깊은 산으로 들어서는 착각에 빠진다. 간간이 동백나무가 보이자 이영석씨는 ‘동백아가씨’ 노래를 불러대고, 분위기는 한껏 흥겨워진다.
섬 동서횡단도로가 가로지른 읍리큰재(권덕리마을 4.3km, 말탄바위 3.7km, 범바위 3km, 보적산 1.9km)로 내려섰다가 고성산으로 향한다. 10여 분 뒤 올라선 고성산은 남해의 중요한 봉수대(烽燧臺)였다.
봉수대에 올라서자 대성산~대봉산 능선은 한층 가까워오고 그 뒤로 고금도가 언뜻 보이는가 하면 오른쪽으로 생일도와 금일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뒤돌아서자 우리가 지나온 보덕산은 만만찮은 기세다. 왼쪽 매봉산과 함께 쌍봉을 이루며 남해를 지키고 있는 형상이었다.
완도는 다도해의 관문이다. 완도군에 속한 섬이 201개. 이 중 54개 섬에 사람이 살고 147개는 무인도로 남아 있다.
윤선도 유적이 있는 보길도와 청산도 정도가 귀에 익지만, 다도해에는 다도해(多島海)란 이름답게 수많은 섬들이
부표처럼 떠 있다. 완도의 최남단 여서도, 최근 다리가 개통돼 뭍과 이어진 신지도, 신지대교 덕에 한층 가까워진
금일도…. 서울에서 완도까지는 자동차로 6시간. ‘기름값’이 아깝다면 이곳들도 둘러보자.
|
|
여서도
완도 최남단의 작은 섬이다. 완도에서 40㎞, 뱃길로는 2시간30분. 위도로 따지자면 제주도 북제주군 추자도와 같다. 전체 면적 2.5㎢. 55가구 101명이 산다. 마을은 선착장이 있는 남쪽 해안이 전부. 선착장에서 한 눈에 들어온다. 선착장 앞 여서도민박이 유일한 숙박시설, 민박집 옆 ‘수퍼’가 유일한 가게다. 해경출장소, 보건지소, 분교, 교회가 각각 한곳씩 있다.
해안이 좁은 탓에 집들은 산자락에서 산 중턱으로 올라갔다. 집집마다 돌을 쌓아 담장을 만들었는데, 돌담장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골목이 운치가 있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은 학교. 청산초등학교 여서분교다. 학생 3명에 교사 2명. 정주훈군(9) 남매 2명만 다니다가 누나가 군산의 중학교로 ‘유학’가 버려 학생 1명만 남을 뻔했다. 다행히 지난해말 완도에서 김은빈양(8) 남매가 전학왔다.
이 작은 섬은 낚시꾼들에겐 익히 알려진 명소다. 봄엔 볼락, 여름엔 돌돔, 가을엔 참돔, 겨울엔 감성돔이 잡힌다. 1960년대엔 어업으로 크게 재미를 봤지만 지금은 예년만 못하다. 한 주민은 “당시엔 선착장 앞 소나무 아래에 슬레이트 지붕으로 만든 다방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방’이 흥성거림의 척도가 될 만큼 여서도는 외딴 섬이다. 완도와 제주도의 중간 지점. 제주 사람들 사이에선 ‘여서도에 가면 애 배야 나온다’는 말이 내려온다. 해녀들이 물질을 하러 여서도에 갔다가 몇년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곤 했단다. 파도가 거셌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섬 남자들과 ‘눈이 맞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먼 바다 한가운데 있는 만큼 유난히 물빛도 푸르다. 여서도로 시집가던 새색시가 물감이라도 풀었나 싶어 옷고름을 바닷물에 적셔봤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서(麗瑞)’란 이름은 ‘아름답고 상서롭다’는 뜻. ‘완도군지’에 따르면 고려 목종 10년(1007년) 탐라(제주) 근해에 7일간 대지진이 지속된 뒤 바닷속에서 큰 산(섬)이 솟았다고 한다. 고려의 ‘려’자와 상서롭다는 ‘서’를 따 ‘여서’란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지난해 말 여서도에서 발견된 패총이 7,000년 전 것으로 추정된다는 주장도 있다.
섬을 둘러보는 데는 1시간이면 족하다. 한바퀴 둘러보고 싶어도 마을 밖으로는 길이 없다. 산을 덮은 아열대 상록수림, 언제 쌓아올렸는지 알 수 없는 낡은 돌담, 벚꽃이 점점이 떨어지는 작은 학교가 ‘그림’ 같다. 이 조촐한 풍경만 바라봐도 왕복 뱃길 5시간이 아깝지 않다.
|
여서도에 사는 김은빈양(8)과 오빠 김민욱군(11)은 매일 아침 내기라도 하듯 뜀박질하며 마을 제일 높은 곳에 있는 학교로 간다. 문이 없는 교문에서는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
신지도
지난해 12월 완도와 신지도를 잇는 신지대교가 개통되면서 한층 가까워졌다. 신지대교 개통 후 주말마다 2,000여명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통상 여름 성수기 초반의 관광객 수와 맞먹는다.
신지도의 가장 큰 볼거리는 신지명사십리해수욕장. 밀물 때 100m, 썰물엔 200m 넓이의 백사장이 4㎞에 걸쳐 뻗어 있다. 모래가 유난히 잘고 곱다. 파도에 부딪친 모래가 우는 소리가 십리 밖까지 들린다고 해서 ‘명사십리’란 이름이 붙었다. 바다 너머로 청산도, 모도 등 다도해의 섬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날씨가 맑을 때는 제주도까지 보인다. 신지도에서 제주도까지는 75마일 거리다. 신지명사십리해수욕장은 벌써부터 여름 준비가 한창이다. 신지대교와 이어지는 77번 국도에 사람이 몰려들 것을 예상해 우회도로를 만드는가 하면, 샤워장·화장실·매점 등도 새로 짓고 있다.
신지도 남단의 동고리 해수욕장은 명사십리에 비해 작고 아담한 해변. 소나무숲이 둘러싸고 있어 풍광이 좋다. 섬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도 보기 좋다.
#금일도
왜구의 침입을 한번도 받지 않은 평화로운 섬이라고 해서 ‘평일도’라고도 불린다. 신지대교 개통으로 가는 길이 짧아졌다. 완도에서 뱃길로 2시간 걸렸는데, 뭍과 이어진 신지도 동고리 방죽포항을 이용하면서 1시간으로 줄어들었다. 완도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배편은 없어졌다.
금일도에도 ‘명사십리’란 이름이 붙은 해수욕장이 있다. 길이 3.8㎞의 월송리 금일해수욕장.
신지도 명사십리만큼은 못해도, 모래 우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린다고 해서 ‘명사십리’다.
파도는 신지도 명사십리보다 거세다. 여름철엔 널빤지를 놓고 파도타기 하는 사람이 많다.
수심이 낮고 경사가 완만해 위험하진 않다. 해수욕장 근처 월송리에 소나무 숲이 있다. 200~300년된 소나무
2,000여그루가 자란다. 완도의 해변 방풍림 중에 가장 크다. 소나무 위로 달이 떠오르는 정경이 명물.
모래 대신 손톱만한 갯돌이 가득한 용항리 짝돌밭 해변도 가볼 만하다.
▲여행길잡이
완도연안여객선터미널까지 간다. 서해안고속도로·호남선 종점인 목포에서 완도까지 승용차로 1시간30분 거리.
청산도 배편은 오전 8시 첫배, 오후 6시 마지막배로 하루 4번 다닌다. 일반 5,800원, 승용차는 운전자 1인을 포함해
2만3천원이다. 45분 정도 걸린다.
여서도행 배는 완도여객선터미널에서 매일 오후 2시30분 출발한다.
하루 1번. 모도, 청산도를 거쳐 여서도까지 가는 완행 배다. 2시간30분 걸린다. 일반 8,800원,
승용차는 운전자 포함해 2만8천원. 날씨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배편이 취소되는 경우가 많다.
배편 문의 한국해운조합 완도지부 (061)554-4207. 낚시꾼들은 여서도까지 단체로 배를 빌려서 간다.
배 한척을 하루 빌리는데 30만~50만원. 날씨와 계절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금일도행 배편은 신지도 동고리 방죽포항에서 하루 4번(오전 7시 첫배, 오후 5시 마지막배) 다닌다.
배편 문의 은성호 (061)843-2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