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드기/ 이수민
여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은 무더위에 ‘옷 정리’ 라는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나이 먹을수록 유독 입지 못하는 옷들이 참 많아진다.
남편의 첫사랑이 되게 해준 주황색 원피스 , 긴 머리 날리며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흰 롱드레스 , 낡아 버린 옷 속에서 추억들이 새어 나오고 있다.
10년이 넘어 입지 못하는 옷들을 매번 버리지 못하고 ‘애물단지 ’처럼 박스에 꼭꼭 담아둔다.
이번에는 다짐을 하고 추억의 옷들을 큰 봉투에 담아 분리수거함 앞으로 왔다. 옷을 집어 분리수거 함으로 넣으려는 찰나 , 추억들까지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다시 봉투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오는 것처럼, 내 삶 또한 익숙하고 오래된 것들을 참 버리지 못한다.
그런데 목덜미가 간지럽더니 이내 가슴까지 두드러기처럼 빨갛게 부어올랐다. 밤늦은 시간이라 피부과는 갈 수 없고 시간이 흐를수록 오돌토돌한 종기들이 생기면서 간지러워 잡히는 대로 온몸을 긁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팔과 허벅지에 긴 손톱 자국과 빨강 피들이 맺힌 흔적들이 보였다.
의사는 식중독 균이 의심된다고 했지만 별다른 음식을 섭취하지 않았기에 옷 정리를 했다고 하니 진드기 균이 의심된다며 주사를 맞고 약을 타서 집으로 왔다.
생각지고 않았던 불청객이 내 인생에 문제를 준 것이다.
처음 남편은 첫눈에 반한 나를 무척 따라 다녔다.
대학 수업 때도 , 식당에서 거나 버스를 탈 때마다 심지어 집 앞에서 기다리는 남자가
너무 무서워 도망 다녔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인생으로 들어오는 그가 귀찮고 싫었다.
친구들은 저러다 그만 둘거라 했지만 남자는 10년을 따라 다녔고 참 숨 막히고 답답했던 시간 이였다.
이상한 건 10년 만에 연예를 시작하고 결혼을 했다. 생각해 보면 소름끼치도록 남편이 눈앞에 보이는 게 싫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했다.
그가 내 인생에 들어와 익숙해진 것이다.
결혼식 날 선후배들은 ‘인간승리’ 라며 남편을 축하해 주었다.
오래된 걸 잊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도 과거의 기억이 또렷하게 연상되는 내 성격도 참 문제가 많다.
또 다른 내 삶의 진드기는 부모님이다.
대학 때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 병원비를 위해 정신없이 살았다.
대학 3학년 때 부터 엄마의 카페 운영을 맡아서 해왔다.
내 생활의 중심은 아버지 병원비와 어머니 생활비였다.
어께에 늘 매달려 있는 부모님이 너무 버거웠고 도망치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은 부모가 아니라 자식 피 빨아먹는 ‘진드기’라 고 했다.
15년 전부터 200만원씩 매달 부모님께 드리는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새벽마다 거울을 보며 마주친 내 얼굴이 참 측은했다.
그래서인지 경제적으로 빨리 자립 할 수 있었고 매달 돈을 벌기 위해 일에 집중 할 수밖에
없었다.
15년이란 세월의 돈은 아버지의 생을 유지시키고 어머니의 삶을 지탱해준 생명 이였다.
내인생은 진드기처럼 날 이빨로 꽉 물고 놓지 않는 생명들이 있었기에 내 삶이 존재했고 생애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이 있었을 것이다.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돈 앞에서 작아지고 남편의 서운한 행동에 ‘왜’ 결혼을 했을까 후회도 하지만 익숙하고 오랜 시간 꽉 잡고 있는 가족이 있어 참 감사하다.
새로운 향수들이 화려한 디자인과 독특한 향기로 새롭게 탄생되어도 짙푸른 편백나무가 주는 알싸하고 진한향이 가슴을 다독인다.
계절이 바뀌면 어김없이 아카시아 향이 방으로 찾아오는 자연스런 냄새가 참 좋다.
첫댓글 " 바래다 주기를 청했던 바로 그때부터 나는 그 여자가 내 생애 속에 끼어든것을 느꼇다." 김승옥의 무진기행 이 급 생각났습니다. 나는 옆지기거나 부모님이거나 늘 진드기 역활뿐이었는데 게시글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그들에게 존재의 가치를 확고하게 해주는 그런 역활도 더불어 했다는
면피성 변명을 슬며시 올려 봅니다.
게시글의 가독성을 위해 임의로 행갈이를 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또 한 축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