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은 전이 아닌 전이라는 뜻인데 어떤 인물의 생애를 다룬 글은 아니면서 전으로서의 격식을 갖추고 있고 사서의 열전을 흉내내어 평까지 곁들이기도 한다. 가전에서 다룬 대상은 사물인데 술, 돈, 거북, 대나무, 지팡이 같은 것을 의인화해서 전을 지었다. 가전은 이전의 공동작인 설화와는 달리 작가가 분명한 허구적 문학으로 설화와 소설을
이어주는 교량적 구실을 하였다는 데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물을 의인화해서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수법은 일찌기 설총의
화왕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가전은 고려말에 등장해서 잠깐 사라진 문학이 아닌 조선시대에도 가전을 표방한 작품들이 꾸준히 이어졌다. 여기서는 가전 문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임춘의 '국순전' 과 똑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규보의 '국선생전' 을 통해 가전 문학과 소설의 공통점, 차이점등을 비교해 봄으로써 가전을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해 논의해 보기로 하겠다.
국순전은 술을 의인화하여 계세징인을 목적으로 한 가전체 풍자소설로 주지 육림에 빠져 향락만을 일삼던 당시의 임금을 풍자한 동시에
조신들의 문약과 방탕한 생활만을 일삼은 간신배들을 질책하고 있다.
국순전은 한국고대소설사상 중요한 위치를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종래의 설화나 전설의 표현방법을 벗어나 구성에 있어서 창작적 소설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격적인
창작 의도를 발휘하여 인간성의 결함과 사회의 불합리 및 그 모순을
지적하고 사회정의를 절규하는 풍자 문학을 시도했다는 것은 한국 소설사상 획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을 '금오신화'라고 규정하고 그 이전의 것들은 소설이 아닌 것을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많았지만 본인의 견해는 소설의 발생을 임춘의 국순전에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금오신화가 전등신화의 모작임은 분명하나
그보다도 대내적으로는 고려 가전체 문학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풍자소설의 배경은 복잡한 사회환경이 한 요건이라는
사실로 볼 때 고려의 무단정치가 국정을 풍자하고 계세징인을 목적으로 하는 가전체 풍자소설의 발생을 촉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규보의 '국선생전'은 임춘의 국순전의 영향을 받아 지었는데 똑같이 술을 주제로 다룬 것이지만 술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국순전과는
달리 국선생전에서는 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같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다지도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규보는 국순전을 모방했지만 좀더 훌륭한 글을 쓰고 싶어서 주제를 다르게 잡았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임춘과 이규보의 생애와 연결해 보면 그들의 사물을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평생 불우하게 지낸 임춘과는 달리 40세부터 70세에 이르기까지 귄세를 누린
이규보는 당연히 인생관도 다르고 여러면에서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국순전에서 보면 "순의 기국과 도량은 크고 깊었다. 출렁대고 넘실거림이 만경창파와 같이 맑혀도 맑지 않고, 뒤흔들어도 흐리지 않으며, 자못 기운을 사람에게 더해 주었다" 와 같이 묘사한 장면이
나오는데 위와 같이 성품이 깨끗한 순이 권세를 얻게 되자 변해서 결국은 비극적 죽음을 맞는 것으로 되어 있다. 즉 임춘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 처럼 권력을 갖지 못한 자신을 비관하는 대신 권력의 더러움을 그리며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에 반해 이규보는 국선생전에서 국순전의 순과 같은 성품을 가진 성이 비록 아들들이 방자하게 굴어 벼슬을 그만두게 되지만 다시 쓰임받게 되고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표현하여 자신의 일생과 흡사하게 성을 묘사했다. 이렇게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 임춘과
이규보는 한시에서도 그런 차이가 드러나는데 우울한 경향의 임춘과
달리 이규보의 한시에서는 호방한 기상을 엿볼 수 있다.
금오신화는 다섯 편이 전하는데 '만복사저포기'에서 왜구에게 죽음을 당한 처녀라든지, '이생규장전'에서 홍건적의 난으로 부부가 이별하고 가족이 모두 죽으며 이생만 살아남았다든지 하는 점에서 현실인식을 엿볼 수는 있지만 전체적인 내용이나 주제면에서는 환타지 계열의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천재이면서도 자신의 재주를 펼칠 수 없이
떠돌며 살았던 김시습의 생애가 이런 경향의 소설을 낳았다고 여겨지는데 현실이 너무 괴로운 나머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어기제인 백일몽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과 현실의 세계, 용궁과 지상의 세계, 저승과 이승의 세계가 혼합되어 나타난 소설에서는 현실의 개혁보다는 뭔가 다른 이상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가전이 워낙 짧고 구성이 인과관계에 의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단순히 사건이 나열되어 있다는 점에서 소설로 말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문학이 현실을 반영한다는 측면, 개인의 삶의 고양 뿐만 아니라 공동체 통합의 기능도 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금오신화 보다도 오히려 더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 문학의 중요한 특질 중의 하나가 풍자, 해학에 있다고 볼
때 가전 문학은 우리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즉 가전 문학은 형식면에서는 소설에 부족하지만 주제면, 혹은 내용면에서는 소설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