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계층 아이들을 위한 영어교육
장영준(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E-mail: yjang@cau.ac.kr
권력이 되어버린 영어
우리 교육에서 영어는 하나의 권력이 된 지 이미 오래이다. 따라서 영어교육과 관련된 논의는 다분히 권력관계로서 파악하지 않으면 모두 공염불이 되고 마는 속성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영어교육 정책에 조그마한 변화라도 시도하고자 하면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논의에 참여할 뿐 아니라, 영어교육의 공급자들은 자신들의 이해를 지키기 위해 거대한 압력단체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소외계층의 아이들을 위한 올바른 영어교육 방안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실현되기까지는 첩첩히 쌓인 수많은 산과 계곡을 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필자가 제시하고자 하는 방안은 정책입안자들이 하나의 권력으로서의 영어, 이해집단의 거대 이해관계로서의 영어라는 현실을 감안하면서 정책에 참고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수혜가 돌아가는 방법을 모색해보기 위해서이다. 해결의 대 원칙은 결국 영어교육이란 일반론보다는 ‘소외계층’이라는 수식어에 방점을 두는 데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영어마을과 원어민교사 확대공급에 대한 항간의 논란을 되짚어보자.
재정확충만으로는 영어교육의 근본적 혁신이 가능하지 않아
작년과 올해 영어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영어마을이라는 화두를 두고 많은 논란을 벌였음을 기억할 것이다. 반대론자들의 논의는 대략 이렇다. 경기도가 운영하는 파주의 영어마을은 대략 850억 원의 재정이 소요되었고, 매년 수백억의 운영비가 소요되며,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2~3백억의 재정적자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 1천억의 세금이 소요된다고 해보자.
영어마을의 반대론자들은 이 정도의 재정을 특수한 일부 학생이 아니라 더 많은 일반 학생들에게 수익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 차라리 각 학교에 원어민 교사를 더 많이 공급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가령 연봉 3천만 원을 지급하는 원어민 교사를 채용한다면 1천억으로 채용할 수 있는 교사의 수는 대략 1천 명으로, 이들을 약 3년 동안 고용할 수 있는 재원이 된다. 이는 정확한 수치가 아니라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예시한 것에 불과하다. 경기도 내 1천여 개 학교에 원어민 교사를 1명씩 공급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전문가 입장에서 보자면, 1개교에 1인의 원어민 교사가 있을 경우에 얻을 수 있는 교육적 효과는 그렇게 효과적인 방안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경기도의 초,중,등학교 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 1인의 원어민 교사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 재원이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영어마을이 더 효과적인가, 원어민 교사의 공급이 더 효과적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 영어마을을 설치할 수 없는 지방자치단체도 있고, 원어민 교사를 공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지역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재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보이고자 한 것뿐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정부의 획기적 결단이 없이는 재정이 충분히 확보될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한정된 재원으로 원어민 교사를 공급하는 것이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소외계층을 위한 현실적 영어교육 방안들
그렇다면 소외계층의 아이들을 위한 현실적인 영어교육방안은 무엇인가? 몇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필자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영어교육 방법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하나는 정부 예산에서 교육재정을 일부 확충하여 영어교육에 투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 재정으로 현재의 교육방법을 바꾸는 것이다.
첫째, 일부 재정확대를 이용한 방안은 초중등 교육실습생(교생)의 대폭 확대이다. 현재 교생은 교생의 훈련이라는 측면에서 일정기간에 몰려 실시되고 있다. 가령 봄이나 가을에 졸업을 앞둔 교사지망생들만이 교생실습에 참여한다. 이를 교사지망생 뿐 아니라, 교생실습을 봉사점수와 같은 개념으로 모든 대학생들에게 확대하고 상시화 함으로써 영어 관련 대학생들이 언제나 학교에 배치되게 한다. 이는 미국의 개인교사(tutor)와 같은 제도이다. 교생의 임무를 정규수업을 맡는 것보다는 소규모 집단의 영어교육을 담당하는 보조교사와 같은 개념으로 활용하면 될 것이다.
둘째, 컴퓨터 등을 활용한 미디어 학습의 확대이다. 원어민 교사가 없다고 현실을 탓만 할 수는 없다. 현재는 시골의 초등학교에 까지도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고, 인터넷을 활용한 많은 양질의 영어교육 콘텐츠가 비축되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자료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사의 수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소외계층의 아이들에게 방과 후 학습을 이용해 인터넷 자료를 활용한다면, 이는 획기적인 교육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된다. 앞에서 말한 교생들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30여명 안팎의 학생들을 몇 그룹으로 나누고, 이들을 담당하는 영어전담 보조교사가 있어서 이들이 멀티미디어 자료를 이용한 영어교육을 담당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향상된 교육효과를 가져올 것이 틀림없다. 지면 관계상 이를 위한 자세한 프로그램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방향에서 전국의 초중등학교 수와 필요한 컴퓨터 및 운영인력 등을 계산하여 최적의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교과운영의 유연성 확보이다. 이는 전혀 추가 재정이 소요되지 않는 방법으로써, 기존의 초중등 학교 교육과정에 방과후 학습을 일정시간 정도 할애하여 영어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그 대상은 전교의 모든 학생일 수도 있고,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소외계층 아이들일 수도 있다. 대학과 연계하여 교육봉사에 참여하는 대학생에게는 봉사점수나 일정한 학점을 제공하고, 소외계층 아이들에게는 무료 과외수업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각 지자체와 대학 간의 협조라는 문화적 해결방안이 될 것이다. 현재 서울의 영훈초등학교처럼 몰입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들이 처음에는 영어특기반과 같은 부분적 실험기간을 거쳐서 현재와 같은 몰입교육 안정기에 접어들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넷째, 각 영어교육 공급주체에게 일정 비율에 대해 소외계층 아이들을 위한 배려를 하도록 법제화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이익의 사회 환원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이익집단의 반발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기도의 파주 영어마을이 일정 비율의 입소생을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할당하듯이, 영어교육 공급에서 얻은 이익의 일부분을 소외계층을 위한 기금으로 돌린다던가, 아니면 수요자의 일정 부분을 소외계층 아이들로 충당하는 방식으로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이러한 기금은 세금공제를 받게 되므로 회사로서도 적극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큰 틀에서의 영어교육 정상화가 최우선 과제
소외계층의 아이들을 위한 영어교육은 일반 아이들을 위한 영어교육과 크게 분리될 수 없다. 이는 결국 큰 틀에서 전체적인 영어교육의 정상화와 연계되어있으며, 특히 소외계층을 위한 방안이란 결국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으로 해결될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크게 돈이 들지 않는 멀티미디어의 활용, 교생인력의 확대와 활용, 영어교육 산업의 사회적 이익 환원 등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문제들은 관련 주체의 자발적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과 법적 구속력이 병행되어야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장영준 교수는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同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MIT 객원연구원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언어학회 총무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여 저서로는 『언어의 비밀』, 『언어 속으로』 등이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정책포럼’ 제143호 : 2006.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