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세돌, 바둑계의 새로운 화두
이창호 9단이 90년대 중반에 스승을 밀어내고 한국바둑의 새로운 1인자가 되었을 때부터 한국바둑계뿐만 아니라 세계바둑계의 화두는 항상 이창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둑나라에서 온 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던 소년이 장성한 청년이 되어서는 30년이 넘도록 바둑에 몰두해온 백전노장들을 자신의 뒤로 하고 세계 정상에 섰을 때, 과연 누가, 그리고 언제쯤 이창호를 꺾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이는 없었다. 이창호를 잡을 수 있는 신예로 최명훈, 목진석, 김승준, 안조영 등의 기사들의 이름이 차례로 전문가들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이러한 언급은 객관적으로 이창호와 대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창호의 독주보다는 그에 필적할만한 상대가 나타나주기를 희망하는 바램을 표현한 것에 오히려 더 가깝지 않았을까. 결국 90년대가 저물어가도록 이창호의 벽을 넘어서는 신예는 나타나지 않았다. 가끔씩 반란을 기도하는 기사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영패에 가까운 고배를 마셨을 뿐이며, 여전히 타이틀 무대는 조훈현-이창호 사제와 유창혁 9단의 이름으로 채워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처럼 인식되고 있었다.
이처럼 철옹성 같던 이창호의 벽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기사가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이세돌 9단이다. '9단'의 별호는 '입신(入神)'. 이세돌의 나이는 이제 약관 20세. 세계 최연소 9단이다. 지금은 물론 초단, 2단의 소위 '햇병아리' 기사들이 고단의 중년기사들을 꺾었다는 것 자체가 큰 뉴스거리도 안 되는 시대이긴 하지만, 20세의 기사가 초단 시절에 9단을 꺾는 것과 20세의 9단이 되는 것은 분명히 체감상 gap이 꽤 크게 느껴진다. 최근에는 연초에 조훈현 9단을 천원전 결승에서 격침시키고 후지쓰배 준우승을 차지한 '소년장사', '송타이슨' 송태곤 5단과 박영훈, 최철한, 원성진의 85년생 '송아지 삼총사' 등의 신예 기사들이 이세돌 9단과 함께 주목받고 있지만 이 가운데 이세돌이 단연 돋보이는 주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이 거의 없다. 2000년의 벽두까지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한 언제까지 이창호의 시대가 지속될지 아무도 모른다.'라는 평을 듣던 이창호를 아직도 얼굴에서 악동의 티가 채 가시지 않은 약관의 청년이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 비금도 출신의 형제 기사.
이세돌은 83년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서 태어났다. 형이 8살 위의 이상훈 4단이며, 누나 역시 여류의 아마강자로 알려져 있으니 인구 5,000명이 채 안 되는 섬에서 꽤 많은 기재를 배출한 셈이 되겠다. 한국기사 가운데 잘 알려진 형제 기사는 김수영 8단-김수장 9단, 조상연 5단-조치훈 9단, 그리고 이상훈 4단과 이세돌 9단 정도를 생각할 수 있겠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이유는 딱히 뭐라 지적할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성적면에서는 동생이 형을 앞섰다는 것이다. 김수영 8단은 해설가로, 조상연 5단은 사업가로 더 잘 알려진 데에 반하여 김수장 9단은 80년대 도전 5강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90년대까지도 정상급 기사로 활약했고, 조치훈 9단은 딱히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세계 바둑의 거목이다.
이상훈-이세돌 형제의 경우도 그리 큰 예외는 아닌 듯하다. 형인 이상훈 4단이 입단 이후 몇 년간 본선멤버로 활동한 이후 90년대 말부터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얼마전에 바둑도장을 연데 반하여 95년에 12살의 나이로 입단한 이세돌은 입단 이후 5년 정도 본선에서 예열의 시간을 거치더니 2000년, 밀레니엄과 함께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기 시작했다.
- 고공폭격의 시작, 32연승.
프로기사로서 바둑을 한판 둔다는 것은 한마디로 진을 빼는 일에 다름 아니다. 스타리그에서 게임을 한판 끝낸 게이머들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는 것을 보면서 게이머들이 게임에 얼마나 혼신의 힘을 쏟는지 알 수 있듯이, 아침 10시에 시작해서 저녁 늦게서야 대국을 마치고 나오는 기사들의 얼굴을 '파김치'라는 세 글자 이외에 다른 단어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을 듯 하다.
이런 바둑 한판한판을 몇 번이나 연속으로 이길 수 있을까. 이 부분의 최고기록 보유자는 역시 이창호 9단이다. 한창 본선멤버로 활약하기 시작하던 90년, 이창호는 각종대회의 예선과 본선무대에서 질풍노도의 기세로 41연승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종전 기록이던 김인 9단의 40연승을 넘어섰던 바 있다. 조훈현 9단이 역시 한국바둑계를 본격적으로 평정하기 시작했던 77년에 43연승을 기록한 적이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중간에 윤기현 9단과의 무승부 대국이 한판 끼어있다는 이유로 31연승만이 공식기록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런 연승기록은 아이러니하게도 최정상의 자리에 있는 기사들은 기록하기가 힘든데, 정상에 있는 기사일수록 강한 상대와의 도전기가 주된 스케줄이 되기 때문에 소위 '거저 먹는' 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세돌은 2000년의 벽두부터 연승행진을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입단 이후에 그때까지 큰 '사고'를 치지는 못했지만 계속해서 본선에는 꾸준히 진출하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기 때문에 예선무대에서 올리는 승리로 눈길을 끌기 힘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겠다. 하지만 예선무대를 통과해서 본선 대국의 비율이 높아지는 가운데에서도 '패배를 잊은' 이세돌의 기세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자 바둑관계자들은 슬슬 이 어린 소년의 파죽의 연승행진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연승 행진의 제물이 된 기사들의 명단에 10년간 꾸준히 정상의 언저리에서 맴돌던 양재호 9단과 도전기에도 가끔 모습을 보이며 이창호를 따라잡을 수 있는 신예로서 기대를 모았던 안조영 7단이 포함되고, 한국산 된장바둑 서봉수 9단마저 불계로 때려눕히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바둑계 전체가 이세돌의 연승행진에 눈을 동그랗게 뜨기 시작한다. 약 반년 동안 이세돌은 한번도 지지 않았다. 그리고 배달왕과 박카스배 천원을 차례로 접수하고 2000년 최우수기사로 선정되면서 이세돌은 '포스트 이창호'의 선두주자로 급부상했다.
이세돌의 32연승을 놓고 예선무대에서의 승리가 많다고 평가절하하는 목소리도 많다. 하지만 80,90년대와 비교해서 극도로 상향평준화된 지금의 바둑계에서 이런 '거저 먹는' 판은 이제 찾기가 쉽지 않다. 소위 말하는 정상급 기사들도 예선에서 '거저 먹는'다고 생각했던 대국에서 '물을 먹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이런 상향 평준화 현상을 대변하고 있다. 본인은 이런 90년과 2000년의 배경을 생각할 때 오히려 이창호 9단의 41연승보다 이세돌의 연승 행진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시점 이전에도 이세돌을 주목하던 전문가들이 많았고, 32연승과 함께 국내 타이틀 2관왕을 달성한 2000년에 들어서는 이세돌의 가능성을 높이 사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났지만 이세돌이 앞으로 언제쯤 이창호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사람은 없었다. 반짝하고 사라질 또 하나의 신예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지는 않았을까.
- 진압된 반란. 2001년 LG배 세계기왕전.
2000년에 이세돌이 국내 2관왕에 오르기는 했지만, 정상급 기사의 하나이자 가능성 있는 신예라는 이상의 평가는 받지 못했다. 바둑계의 한중일 3국간 교류가 활발해진 이후로 일본을 제외한 한국과 중국에서는 정상급 기사들을 평가할 때 국내 기전에서의 성적보다는 세계대회에서의 성적으로 기사의 서열이나 능력의 순위를 매기는 경향이 높아졌는데, 당시까지 이세돌은 국제대회에서 뚜렷한 자신의 족적을 남기지는 못하고 있었다. (일본은 여전히 국내 7대 타이틀의 보유와 그 타이틀의 서열을 기사의 능력을 평가하는 가장 잣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이세돌이 세계무대에 그 이름을 알린 대회는 2001년의 LG배 세계기왕전이었다. 국내에서는 유망주 가운데 선두주자로 각광받던 신예였지만 국제적으로는 무명에 가까왔던 이세돌은 이창호와 맞붙은 LG배 결승 5번기 1,2국에서 연속으로 이창호를 불계승으로 제압하며 세계바둑계를 깜짝 놀라게했다. 불계도 그냥 불계승이 아닌 대마를 때려잡은 승리였으니 세계최강 이창호가 가볍게 승리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2000년의 국내기전 2관왕으로 가능성을 타진했던 이세돌이 바로 다음해에 이창호와 처음 맞붙은 결승 5번기에서 이창호를 막판까지 단숨에 몰아붙여버리자 '이세돌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말까지 내뱉는 성급한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열을 정비한 이창호의 반격은 만만치 않았다. 이창호는 3달 후에 열린 결승 3국에서 7집반을 남기면서 반격의 실마리를 잡더니 4,5국을 내리 불계로 따내면서 2연패 이후 3연승의 스코어로 이세돌을 물리치고 LG배의 주인이 되었다. '신구미월령(新鳩未越嶺)'. 어린 비둘기가 이창호라는 높은 고개를 넘기에는 아직 때가 일렀음일까. 이세돌은 세계정상의 문턱에서 이창호라는 당대 최강의 수문장에 막혀 물러서야 했다. 2001년에 이세돌은 삼성화재배 세계대회의 8강에도 올랐지만 역시 이창호에게 패하며 탈락했고, 연말에는 초속기전인 KBS바둑왕전에서 또다시 이창호 9단과 결승에서 맞붙었지만 역시 0:2로 영봉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연초의 2연승으로 한창 타올랐던 불같은 기세가 이창호와의 본격 대결이 무르익으면서 이창호의 '자세잡힌' 대응이 시작된 이후로는 한풀 꺾여버린 듯 했다.
- 19세의 3단, 세계정상에 오르다.
이세돌이 비록 정상의 문턱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2001년 LG배에서 이창호를 상대로 한 2연속 대마포획은 바둑팬들의 인상에 깊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 때 보여준 괴력이 이세돌이 가진 실력의 100%인지, 아니면 이창호가 이세돌에게 부담을 느낀 나머지 실족했던 것에 불과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이후에 이세돌의 향후 행보를 지켜보는 것 말고는 풀릴 수가 없는 것이었겠다.
이세돌은 이러한 팬들의 궁금증에 대해서 즉각 화답을 보냈다. 2002년 7월에 벌어진 후지쓰배 4강전에서 이창호를 또다시 불계로 꺾은 이세돌은 왕위전 도전 5번기에서는 이창호에게 2:3으로 패배했지만 후지쓰배 결승 단판 승부에서 조훈현-이창호 사제와 함께 한국바둑계를 분할하고 있던 유창혁 9단을 꺾고 3단의 신분으로 세계정상에 우뚝 섰다. 조훈현-서봉수-유창혁-이창호의 90년대 한국바둑 4인방이 세계바둑을 제패한 이후 새로운 영웅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세돌에게는 아직까지 숙제가 남아있었다. 이세돌이 비록 세계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주요 무대에서 이창호에게 강펀치를 한방씩 시원하게 작렬시켰지만 아직까지 이세돌은 이창호에게 결승무대의 번기 승부에서 이창호에게 승리를 거둬본 경험이 없었다. 특히 99년 춘란배 결승 3번기에서 조훈현 9단에게 1:2로 패한 것 외에 세계대회의 결승전 3번기, 5번기 승부에서 패한 적이 없는 이창호 9단은 특유의 안정된 실력을 바탕으로 해서 특히 번기 승부에 강한 면모를 보여왔기에 이세돌이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결되어야 할 것은 '이창호를 번기 승부에서 꺾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 '쎈돌'의 돌팔매에 흔들리는 '돌부처'
이세돌은 2003년, 2년만에 다시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에서 이창호와 타이틀을 놓고 맞섰다. 2년전의 혈투를 기억하는 세계바둑팬들의 눈과 귀가 모두 한국에 집중된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2월의 1,2국에서 서로 흑을 들고 한판씩을 KO승으로 장식한 두 기사는 한 달 이후 다시 만났다. 이세돌의 완승으로 끝난 3차전 이후 벌어진 4차전에서 이창호는 흑을 들고 중반까지 유리한 국면을 이끌었지만 한두집을 손해보지 않으려다 찝찝한 뒷맛을 남겨놓은 탓에 이세돌의 페이스에 국면이 말리면서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창호에겐 이세돌이 그의 앞에 앉아서 바둑을 두고 있는게 아니라 뒤에서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는 것으로 느껴졌을까. 이세돌이 3:1로 세계최정상 이창호를 꺾으면서 몇년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세계1인자의 아성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에도 이세돌은 KT배 4강과 바둑왕전 본선에서 이창호를 연파하며 이창호와의 상대전적을 13승 13패의 동률로 만들어놓았다. 세계바둑계의 절대자 이창호의 제국에 공습경보가 울리고 있었다.
이창호가 이세돌에 대해 고전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많은 분석과 추측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신예들이 그동안 이창호에게 도전해왔지만 그들과 이창호의 사이에는 실력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에 근접한 실력에 전혀 다른 스타일의 바둑, 전투에 능수능란하며 감각적인 속기 바둑을 구사하는 조훈현류 천재인 이세돌을 맞아서 고전하고 있다는 스타일 상의 차이에서 원인을 찾는 의견이 있고, 이창호 9단이 지금까지 자신보다 연상이거나 선배기사들을 상대로 해서 주로 업적을 쌓아왔으며, 자신보다 어린 기사로부터 본격적인 도전을 받아본 바가 없었던 이창호의 심리적인 흔들림으로부터 근거를 찾기도 한다. 예전에 혹자는 이창호 9단이 원래 처음 상대하는 기사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예가 많았다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이것은 오히려 이세돌이 최근에 들어 이창호에 대한 전적을 복구해나가는 모습을 보이면서 설득력을 잃었다.
본인이 접한 이 주제에 대한 의견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 것은 타이젬에 게재된 정용진 전 월간바둑 편집장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김성룡 7단의 의견이다. 이창호 9단과 이세돌 9단의 기보에서 볼 수 있는 이창호의 모습은 조훈현 9단의 바둑이 나이가 들면서 후반에 체력적인 어려움을 겪자, 끝내기가 강력한 후배기사들을 상대하기 위한 방법으로 중반 격렬한 전투를 선택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것이다. 90년대에 이창호 9단에게 필적할만큼 끝내기가 강한 기사들이 존재하지 않을 무렵에는 국면 전반에 걸쳐 한집두집 거두어들이는 방식으로 안전하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지만 지금 떠오르는 신예들, 소위 '한끗발 날리는' 신진기사들은 대부분 이창호 9단에 꿀리지 않는 마무리 실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세돌 9단 역시 중반의 강력한 전투력에 가리워져 있지만 2002년 한해 동안 반집승을 3번이나 이끌어내는 등 끝내기에서도 역시 이창호 9단에게 뒤질 것이 없는 탁월한 실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종반으로 끌고가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이창호 9단이 이세돌 9단과의 바둑에서는 계속해서 전투를 유도하며, 한두집도 쉽게 양보하지 않으려 버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전투바둑에서는 소위 '놀던동네가 싸움바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세돌 9단의 승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김성룡 7단의 분석인데, 매우 탁월한 분석이라고 생각했던 바 있다. 한판의 바둑속에서 고루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올라운드 플레이어, 그것이 이세돌의 실체인 것이다.
이세돌은 LG배 세계기왕전에 이어서 2002년에 이미 차지한 바 있는 후지쓰배 결승에 또다시 올라 이창호를 꺾고 올라온 송태곤 4단에게 승리를 거두며 세계대회 2연패와 2관왕을 동시에 달성했다. 한해에 세계대회 2관왕에 오른 것은 조훈현 9단, 이창호 9단에 이어서 사상 3번째였으며, LG배 우승 이후 6단 승단, 국내 대회인 KT배 준우승으로 7단에 오른 이세돌은 후지쓰배 우승으로 드디어 9단으로 승단했다. 1년에 6단을 건너뛰며 '투력(鬪力)'에서 일약 '入神'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 자신감과 당당함이 넘치는 이세돌.
이세돌은 짧은 이력과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구설수에 자주 오르내린다. 기사의 성적에 실질적으로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승단대회에 3단 승단 이후로는 불참했으며, 이창호와 외국기사와의 대국이 끝난 이후 벌어진 복기에서 중간에 끼어들어 복기를 주도했던 모습이 무례한 것이라고 지적받기도 했고, 얼마전에는 국가대항전인 농심배 세계바둑최강전 예선에 이창호 9단의 시드 배정 문제로 불참해서 도마에 올랐던 바 있다. 타이틀 보유자에게 모두 시드를 주는 것도 아니고 유독 이창호 9단에게만 대표의 한자리를 비워주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외에도 이세돌 9단은 '튀는' 행동으로 한 바둑칼럼니스트에게 '바둑 한 냥, 사람 서 푼'이라는 혹평을 들었던 바가 있다. 심지어는 건강문제로 기권패가 잦은 것을 두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자세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이세돌은 꽤 비중있는 기전의 본선리그에서 심심치 않게 기권패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본인은 개인적으로 이러한 이세돌의 행동이 비난받을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건강이 심하게 좋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스스로의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은 프로로서 당연한 일이겠다. 오래전부터 기전 서열이 명확하지 않아서 왕관의 갯수로 기사들의 서열을 평가하는 경향이 짙었던 한국바둑계의 현실에서 이창호 9단과 같은 경우 1년에 100국을 넘게 소화하는 지옥의 레이스를 벌여야했던 예도 있었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기전의 서열을 정해서 기사들로 하여금 특정 기전에 전력투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의견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그 시행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몸이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세돌에게 한국의 정상급 바둑기사들이 그동안 감당해왔던 살인적인 스케줄을 모두 감당해야할 의무는 없는 것이 아닐까. 농심배 불참 문제 역시 이창호 9단에 대한 시드 배정의 정당성을 규정이나 다른 근거를 통해 명확하게 밝혀주지 못한 주최측의 과실일 뿐, 그 불합리성에 대한 문제제기로 불참한 이세돌을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겠다.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과 같은 겸손하면서도 강한 내면의 모습, 그리고 넓은 품을 가진 1인자의 모습은 물론 훌륭한 것이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바와 실력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을 가지고 그것을 당당히 표현할 줄 아는 이세돌의 모습 역시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 이세돌 9단 : 이윤열, 박정석
이세돌의 기풍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탁월한 전투력과 뛰어난 감각이다. 18급도 안다는 안 되는 축을 끝까지 몰아놓고도 여기저기 얽혀있는 돌들을 동에번쩍 서에번쩍 수습하며 결국 승국으로 이끌어내는 모습이 바로 이세돌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이세돌의 기풍을 단정짓는 것은 이세돌의 한면만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이세돌이 워낙 전투에 강하고 뛰어난 감각으로 대표되기에 이런 화려한 측면에 가려지 있지만, 김성룡 7단이 평하는 바와 같이 이세돌은 3집반 이내에서 갈리는 미세한 승부에서 역시 이창호 9단 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강한 모습을 보인다. 한마디로 한판의 바둑에서 딱히 약한 부분을 찾기 힘든 올라운드 플레이어인 동시에, 전투의 감각과 강렬한 공격력, 치밀한 수읽기가 돋보이는 바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이세돌 9단의 바둑은 스타크래프트로 따지면 초반의 빌드에서 우위를 점하면 그 기세로 상대롤 몰아붙여 원사이드하게 밀어붙여버리고, 초반에 꼬였을 때는 중후반의 전투력과 기본기, 체력전으로 역전을 이끌어내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올라운드 플레이어에 모습에 가까운 게이머는 이윤열 선수와 박정석 선수말고는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두 선수 모두 기본적으로는 물량과 기본기에 강한 선수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방송경기를 보면 두 선수 모두 한타이밍씩 상대를 비틀어 강렬한 압박을 가함으로써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며, 정상권에 근접한 이후에는 전략적으로도 상당히 능한 면모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테란과 프로토스의 가장 완성형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들어왔던 두 선수의 플레이에 이세돌의 기풍을 비교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 지금은 이세돌의 시대인가.
이세돌이 세계대회 2관왕에 오른 이후, 어떤 이들은 이제 이세돌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까지 이야기하지만, 조훈현 9단은 재미있는 말로 이런 평들을 일축한다. '내가 창호한테 1인자를 넘겨준 이후, 어쩌다가 한번씩 타이틀전에서 이겼는데, 그럼 그 때마다 다시 조훈현의 시대가 되는건가? 이제부터 시작이지. 피터지게 싸우기 시작하는거야.'
개인적으로 이창호가 한국바둑을 평정해왔던 길과 이세돌이 앞으로 1인자에 올라서기 위해 가야할 길은 그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과거 일본 바둑계에 수많은 기재들이 백가쟁명하며 천하를 다투던 시절처럼, 지금의 한국 바둑계 역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젊은 승부사들이 날마다 시퍼런 칼을 세우고 이미 넘어야할 벽이 되어가고 있는 이세돌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세돌은 아직까지 이런 자신보다 어린 후배들에게 일격을 당하는 일이 많다. 전성기의 조훈현-이창호 사제가 유창혁과 서봉수를 포함한 4인방 이외의 기사들에게 1년에 거의 한손가락에 꼽을만큼의 패배를 당했던 데에 반하여 이세돌이 지금 다른 기사들에게 기록하고 있는 패배의 숫자가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겠다. 이창호를 세계대회에서 제압하긴 했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나 세계적으로나 1인자로 인정받는 이창호는 앞서달리고 있으며, 이세돌은 이창호를 뛰어넘는 동시에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따돌려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그리 체력이 좋지 못하다는 점 역시 이세돌의 입장에서 극복하기 그리 쉽지만은 않은 문제가 되겠지만, 그의 바둑에서 느껴지는, 젊은 시절 조훈현 9단의 바둑을 보는 것과 같은 짜릿함과 천재성을 사랑하는 본인의 입장에서 이세돌이 이창호를 앞질러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이창호 9단의 강함을 너무 망각한 처사일 지도 모르겠다.
첫댓글 보헤미안님..정말 글 잘쓰네요...^^
저도 글에 감탄하고 있습니다.부럽기도 하구요. ^^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우와~0_0;; 읽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읍니다. 한마디로 감.동 먹었습니다.ㅜ_ㅜ
보헤미안님 멋지십니다. 글 하나에 이세돌 9단의 모든 것이 들어 있군여.. [이세돌팬클럽]으로 글을 퍼가도 될지..(영차..영차! 일단 옮기고 보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