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프라하에 왔다. 비엔나에서 세시간거리, 우리가 묵는 숙소는 프라하 시내중심가에서 버스로 20분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다행히 하루 50유로의 저렴한 숙소를 찾을 수 있어서 캠핑장을 찾지 않아도 되었다. 비엔나에서 출발해서 프라하의 숙소에 도착한 때는 1시경, 우리는 각자 가고싶은 곳을 다니고 저녁까지 밖에서 해결하고 돌아오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프라하 시내 풍경은 전체적으로 파리나 비엔나 같은 오래된 도시의 느낌 그대로다. 7,8층 정도의 오래된 건물들이 시내도로의 양쪽에 즐비하고 고딕식 성당건물, 그리고 청동상의 동상이 내려다보고 있는.. 시내의 중심에 볼타바 강이 흐르는 옛도시.
프라하가 있는 체코 공화국 줄여서 체코는 중앙유럽에 있는 공화국이다. 북서쪽과 서쪽은 독일, 남쪽은 오스트리아, 남동쪽은 슬로바키아, 북동쪽은 폴란드와 닿아 있다. 수도는 프라하이고, 주요 도시로 브르노, 오스트라바, 즐린, 플젠 등이 있다.
체코는 크게 보헤미아(체히), 모라바, 실레시아(슬레스코) 세 지방으로 나뉜다. 체코는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분리되었다. 1999년 3월 12일에는 NATO에 가입하였으며 2004년 5월 1일에는 유럽 연합의 정회원국이 되었다. 이 나라의 민족 구성은 대부분이 서슬라브족에 속하는 체코인으로 인구의 90% 정도를 유지한다. 슬로바키아인은 두 번째로 주요한 민족이다.
중부유럽에 위치한 내륙국으로서 EU의 회원국이며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국가다. 국토의 면적은 7만 8864㎢ 이며 인구는 약 1060만 명이다. 1인당 실질 국민소득 33200불(2017, 미CIA)
프라하 시내에서 118번 버스를 타고 위에 있는 버스정거장에 내려야 집에 온다.
유럽 대다수 국가들이 세속주의가 주류긴 하지만, 자신을 특정 종교(주로 가톨릭 및 정교회, 개신교 등의 기독교)의 신자라고 응답하는 비율이 높은 반면, 체코는 국민 80%이상이 무신론자라 대답하여 유럽 굴지(?)의 무신론 국가이다. 나머지 10% 정도는 가톨릭을 믿는다. 체코가 처음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은 9세기 동로마 제국으로부터였고 그 때는 정교회였지만 그 후 이미 10세기 초부터 로마 가톨릭의 영향권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체코는 정교회를 버리고 철저한 가톨릭 국가가 되었다.
현재 체코는 유럽에서 무신론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다. 흔히 체코인(특히 남자)의 숭배대상은 여자, 맥주, 신이라고 한다.
성 비투스성당, 이 순서는 점차 맥주, 여자, 신의 순서로 바뀌는데, 신의 존재가 체코인들에게 있어 속(俗)을 상징하는 여자와 맥주에 성스러움의 지위를 빼앗기게 된 것은 체코만의 독특한 종교사와 종교문화에 그 원인이 있다.
체코의 종교사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과 반목의 역사였다.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분열과 군주의 세력 약화는 체코 귀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정치적 종교적 권리 회복을 위한 좋은 기회를 제공하였다.
귀족들은 종교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무력 항쟁도 불사하겠다는 결의를 천명하였고, 군사적 충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루돌프 2세는 유화적인 가톨릭 귀족들의 중재로 1609년 종교의 자유에 대한 칙령인 루돌프 칙령(Rudolfuv Majestat; 또는 Letter of Majesty)을 발표하였다.
이로써 1575년 체코 컨페션이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받게 되었고 개신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공인받았다
15세기 이후 후스파의 종교 개혁이 격렬하게 전개된이후. 17세기의 보헤미아는 로마 가톨릭 국가였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하에 있었고,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 교도들 사이에 여러 차례 불협화음이 일어났으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개신교도의 세력이 크다는 것을 인식하고 신앙을 인정해 준것이다.
이 신앙의 자유는 개인의 신앙의 자유가 아니고 영주가 자신의 영주국의 신앙을 결정하면 그 지역의 주민은 그것에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겸 보헤미아의 왕 마티아스(황제 재위: 1612~19년, 보헤미아 왕 재위 : 1611~17년)도 양쪽 진영에 대한 융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열렬한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인 페르디난트 2세는 보헤미아 왕에 선출(재위: 1617~37년)되는 동시에 개신교에 대한 탄압을 실시했다.
그 와중에 프라하 대주교령에 있던 개신교 예배당들이 철거되었고, 개신교 신자들은 이에 항의하였으나 묵살되었다.
결국에는 탄압에 반발한 개신교 시민들이 프라하의 왕궁을 습격해 국왕 고문관 3명을 왕궁의 창문에서 던져버리는 프라하 투척 사건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으며(1618년), 개신교 신자인 보헤미아 제후는 이 사건을 계기로 단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이 30년 전쟁(1618~48년)의 시발점이 되었다.
반란군 제후들은 다른 개신교 제후에게 협력을 호소하였고, 개신교 제후 연합의 찬성을 얻어냈다. 황제 마티아스가 사망하고(1619년), 보헤미아 왕 페르디난트 2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도 겸임(재위: 1619~37년)하게 되자, 보헤미아의 제후들은 페르디난트 2세를 황제로 인정하지 않고, 개신교 제후 연합의 중심적 존재였던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를 의회에서 보헤미아의 왕(재위: 1619~20년)으로 선출하고 황제에게 대항하였다.
1620년 11월 8일 개신교 동맹측의 보헤미아군은 백산(白山) 전투에서 틸리 백작이 이끄는 로마 가톨릭 교회 동맹군에게 괴멸적인 대패를 당했고,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하는 저항하지 못하고 항복했다.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보헤미아 지배는 강화되었다. 곧이어 1627년 신(新)영지조례법에 의해 의회는 권력을 모두 빼앗기게 되어 사실상 속령이 되었다. 이로 인해 다수의 보헤미아 귀족 및 개신교도가 망명하여 유럽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다.
말라 스트라타 탑(Malostranská mostecká věž)
프라하 성, 프라하 성 은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 블타바 강의 서쪽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성으로 프라하의 초기 역사부터 존재해 왔으며 프라하의 상징이자 체코의 상징이다.
체코의 왕들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들이 이곳에서 통치를 했으며 현재는 체코 공화국의 대통령 관저가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프라하 성은 기네스북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큰 옛성이다. 길이는 약 570 미터, 폭은 약 130 미터에 달한다
체코의 공용어는 체코어이다. 독일어, 슬로바키아어, 영어, 러시아어, 프랑스어가 체코인에게는 선호되는 외국어다. 일부는 우크라이나어, 폴란드어, 헝가리어도 사용된다.
이 나라는 베드르지흐 스메타나를 비롯한 음악가들을 역사 속에 남겼다. 스메타나의 대표적 작품으로는 '몰다우'를 들 수 있다.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이다. 인구는 약 128만 명이며, 광역도시권을 모두 포함하면 인구는 약 216만 명에 달한다.
프라하는 체코의 도시 중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유럽 연합에서 14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블타바 강이 프라하의 중심을 가로지르고 있고, 도시 전체는 온대 기후에 속하여 여름에는 온화하나 겨울에는 기온이 낮아 쌀쌀하다.
프라하는 체코뿐만 아니라 중앙유럽 전체에서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인 중심지 역할을 한 도시 중 하나이다. 관광지로도 유명하여 런던, 파리, 이스탄불, 로마에 이어 유럽에서 5번째로 방문객 수가 많은 도시.
9세기에 창건,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를 거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도시였다가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과 함께 그 수도가 되었다.
1968년 프라하의 봄 사태로 유명하며, 1993년 체코 공화국이 성립되자 그 수도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30년 종교전쟁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보헤미아 지배는 강화되었다. 곧이어 1627년 신(新)영지조례법에 의해 보헤미아 의회는 권력을 모두 빼앗기게 되어 사실상 속령이 되었다.
이로 인해 다수의 보헤미아 귀족 및 개신교도가 망명하여 유럽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왕가에 의한 재산몰수 및 국외추방이라는 가혹한 전후 처리는 다른 개신교 제후의 이탈을 초래하게 되었다.
전쟁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로마 가톨릭 지배가 강화되었고 그대로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帝位)를 독점한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체코를 1918년까지 지배하였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하였으나 1938년 나치 독일에 합병되어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점령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1945년에 소련의 위성국이 되어 공산화됐다.
1980년대 후반 중앙유럽 민주화 물결을 타고 비폭력 혁명인 벨벳 혁명을 통해 민주화에 성공한 후, 국민 투표를 통해 1993년에 슬로바키아와 분리하였다
17세기 재가톨릭화 이후 체코인들은 낮에는 가톨릭을 그리고 밤에는 후스주의를 비롯한 개신교를 믿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재가톨릭화의 압력으로 체코에서의 개신교는 이 시기부터 점차 세력을 잃게 되었고, 공산 정권 시기의 종교 탄압과 이후 신앙의 자유를 되찾은 후에도 개신교와 가톨릭 두 가지 종교 모두가 종교로서 보다는 문화유산의 의미로 남게 된 것이다.
체코는 지리적으로 꽤 다양한 편이다. 서쪽의 보헤미아 지방에는 엘베 강과 블타바 강이 흐르는 분지 지역이 낮은 산릉으로 둘러싸여있다. 자국 내에서 가장 높은 산인 스네슈카(체코어: Sněžka) 산(1602m)이 이 곳에 있다.
체코의 수도이자 체히의 수도인 프라하는, 블타바 강과 라베 강을 사이에 있다. 동부의 모라바 지역은 산악지형으로 모라바 강이 흐른다. 모라비아 서쪽의 일부는 실레시아(체코령 실레시아)라고 불리는 역사적인 지역이다.
체코는 내륙 국가인데 영토 내를 흐르는 강은 북해, 발트해, 흑해로 흘러 들어간다.
체코는 산, 완만한 고원과, 저지대, 동굴, 협곡, 넓은 평원, 습지, 호수, 연못, 댐 등 아름답고 다채로운 자연을 자랑한다.
경작을 위해 수세기에 걸쳐 나무를 베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체코의 1/3은 여전히 숲으로 둘러 싸여 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천연의 숲은 대부분 경작이 불가능한 산악 지역에 있다. 수목 한계선(1,400m)이상으로는 초원, 관목림, 지의류 등이 있다 곰, 늑대, 스라소니와 그 외 야생고양이, 마멋, 수달, 담비, 밍크 등의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숲과 습지대에는 꿩, 자고, 오리, 야생거위 등 사냥조류들이 서식하는데, 이들은 주로 사냥감이다. 독수리, 콘돌, 물수리, 황새, 느시, 뇌조 등도 드물게 눈에 띈다.
여성 1인당 합계출생률은 2004년 현재 1.23명이다. 1999년에는 1.13까지 떨어졌으나,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