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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귀신들이 나의 양식이오- 蓮潭道人 이야기
출처: http://blog.naver.com/wun12342005/220642176259
사람은 어디서 왔고 왜 살고 있으며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심오한 질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근원적인 의문에 대해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편한 대로 살다가 죽는다.
인생의 원리와 목적을 나름대로 깨달은 사람을 우리는 도인이나 성자, 선지자 또는 예언자라고 부른다.
도인과 성자, 선지자, 현인들은 사람이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제일 가치 있는 삶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도인이나 성인, 현자들처럼 우주와 자연법칙,
인간에 대해 깊은 이해와 통찰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얻는 방법이 과연 있기는 있는 것일까?
예수, 석가, 공자처럼 차원 높은 깨달음을 얻는 방법, 곧 도통(道統)하는 방법이 실재로 존재하는 것인가?
여기 영적인 깨달음을 얻는 방법 중에 하나인 쿤달리니 요가를 소개한다.
원초적 생명에너지 쿤달리니
쿤달리니 요가는 인체의 척추 끝에 잠들어 있는 원초적 생명 에너지인
쿤달리니를 일깨워 영적인 힘을 얻고 완전한 인격체에 다다르게 하는 인도 요가의 하나이다.
쿤달리니는 모든 물질의 기초 에너지이다.
쿤달리니를 일깨우면 보통 사람이 보고 느끼는 것보다 더 정교하고 생생하며 폭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
세상을 보는 안목이 넓어지고 진정한 자기 내면의 모습을 보며 우주와 만물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무한한 지혜와 즐거움, 진리의 진수(眞髓)를 발견하게 된다.
관능적이며 세속적인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넓고 높으며 깊은 세계를 보기 위해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쿤달리니 수행은 궁극적으로 완전한 인간,
곧 신과 같이 전지전능(全知全能), 곧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에 목표를 둔다.
산스크리트어로 ‘쿤달’은 코일을 뜻이고 쿤달리니는 ‘감겨진 것’이라는 뜻이다.
쿤달리니란 말은 ‘쿤다’라는 말에서 왔는데 쿤다는 깊은 공간, 공동(空洞)을 가리킨다.
시체를 태우는 것도 쿤다라고 하고 땅에 구멍을 파는 것도 쿤다라고 한다.
쿤다는 또아리를 틀고 잠자는 뱀을 닮은 두뇌 속의 공동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의 뇌는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의 형상을 쏙 빼 닮았다.
쿤달리니가 있는 곳은 척추 맨 밑에 있는 조그만 분비선이다.
남자는 회음부에 있고 여자는 치골의 요도 부분에 있다.
이 부위를 ‘물라다라 차크라’라고도 하며
손으로 만져 보면 조그만 분비샘이 느껴지는데 바로 여기에 무한한 영적 에너지가 감추어진 채 잠자고 있다.
특별한 방법으로 수행을 하면 분비선에서 잠자고 있는 힘을 폭발적으로 나타낼 수 있게 된다.
고대의 많은 성자, 선지자, 예언자, 신통력자들이 쿤달리니 수행으로 영적, 육체적으로 초자연적인 신통력을 얻었다.
요가 수행으로 쿤달리니가 깨어나면 몸과 정신에 엄청난 힘을 얻게 된다.
육체의 구성요소가 바뀌고 의식의 차원이 훨씬 높아진다.
몸과 마음이 바뀌어서 완전히 새사람이 되는 것이다.
마음도 물질이고 생각도 물질이다.
마음은 영혼과 다르다.
영혼은 마음을 초월할 수도 있고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 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마음을 통해서만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몸도 인격의 한 부분이며 몸을 통해서도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은 몸과 마음을 넘어서 감정과 욕망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기도 하다.
요가는 사람의 모든 인격을 완전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수행법이라 할 수 있다.
요가에는 종류가 많다. 체조를 통하여 척추와 내분비선을 조절하고 정화하여 육체적인 능력을 발전시키는 ‘하타요가’,
이웃에 대한 봉사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카르마 요가’, 사랑과 헌신, 찬송, 영무(靈舞) 등을 통하여
차원 높은 감정을 계발하고 신과의 합일(合一)을 추구하는 ‘박티 요가’,
존재의 근원에 대한 깊은 통찰로 인간 본성을 깨우치는 ‘지혜의 요가’, 그리고 ‘쿤달리니 요가’ 등이 있다.
모든 수행법을 생활 속에 하나로 모은 요가, 곧 ‘통합 요가’를 수행하면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손이나, 발, 두뇌의 자질을 높이기 위한 요가가 많다.
그러나 요가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격만을 발달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격의 한 부분은 마음과 몸,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인격의 다른 깊은 부분은 다른 종류의 마음과 감정으로 계발해야 한다.
이를 계발하기 위한 특별한 수행법이 쿤달리니 요가이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박해를 받는다
쿤달리니는 잠자고 있는 에너지이므로 그것이 저절로 한꺼번에 폭발하듯 깨어나지는 않는다.
명상과 참선, 수행으로 우주공간에 있는 기(氣)를 모아 쿤달리니가 있는 곳으로 보내면
잠자고 있는 에너지가 깨어나 척추신경을 통해 뇌로 올라간다.
쿤달리니가 뇌로 올라가면서 뇌의 각성되지 않은 부분들과 뇌에 이어져 있는 차크라, 곧 기(氣)의 센터들을 지나간다.
쿤달리니가 깨어나면서 잠자고 있던 두뇌의 여러 부분들이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폭발하게 된다.
쿤달리니가 잠자고 있는 뇌를 일깨우는 것이다.
쿤달리니가 깨어나면 여러 가지 초의식이 생긴다.
남의 마음을 읽고 앞일을 예언하며 꿈에 본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다.
문학이나 예술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어떤 일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쿤달리니 에너지는 누구나 꼭 같지만 이를 일깨웠을 때 나타나는 모양은
차크라의 수준에 따라 저열하고 본능적인 것에서부터 매우 세련되고 차원 높은 것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르다.
쿤달리니는 창조적인 에너지다.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거나 영감에 찬 그림을 그릴 때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에너지인 것이다.
쿤달리니가 깨어나면 몸의 상태도 크게 바뀐다.
모든 세포가 생명력이 넘치고 젊어진다.
목소리가 바뀌고 몸 냄새도 바뀌며 호르몬 분비도 달라진다.
뇌조직도 바뀌어 몸이 완전히 마치 새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쿤달리니가 깨어나는 경험을 한 사람은 별난 행동을 하게 된다.
보통 사람이 보기에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다.
사람의 후광을 보기도 하고 계시와 환상을 보기도 하며 몸이 이상해지고 남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다른 사람한테는 들리지 않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쿤달리니가 깨어나면 의식의 뚜껑이 완전히 열려 보통 사람이 보기에 미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쿤달리니의 각성과 미친 것은 완전히 다르다.
미친 사람은 정신이 혼미하지만 쿤달리니가 깨어난 사람은 의식이 어느 때보다도 맑게 깨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이상하고 남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난 수천 년 동안 깨달음을 얻은 도인이나 성자들은 스스로는 황홀경을 체험했지만
세상이 보기에는 미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조롱을 당하고 박해를 받았다.
소크라테스는 독약이 든 잔을 마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수피 성자인 알 할라지는 살 껍질을 벗겨 죽였고 잔 다르크는 산채로 불태워 죽였다.
우리 겨레 고유의 심신수련법
요즈음 시대는 영적인 깨우침을 무시하는 세상이다.
요즘 세상에서는 영적인 황홀경을 체험한 사람을 정신병원에 보내고 웃음거리로 삼는다.
그 때문에 오늘날에는 최치원, 서산대사, 사명대사 같은 도인이나 각자들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고유의 심신수련법이 있고 영적인 깨우침을 얻은 사람을 숭배하는 전통이 있었다.
옛날에는 산 속에서 참선을 하거나 수도하여 영적인 깨우침을 얻은 사람을 존경하고 숭배하였다.
우리 역사를 보면 기인이나 이인, 도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옛사람들은 영적인 각성을 얻는 일이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옛 사람 중에는 방안에 앉아서 천리 밖을 보고
천리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천리 길을 한 순간에 오갈 수 있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영적인 깨우침, 곧 쿤달리니 각성은 사람을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보내는 거대한 폭발과도 같다.
쿤달리니 각성이 시작되면 이해하기 힘든 증상이 나타난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수만 볼트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척추 맨 밑에서 전율할 만한 힘이 솟구쳐 오르는 것이다.
이와 함께 북소리, 피리소리, 새소리, 벌레의 날갯짓 소리 같은 것이 들린다.
소낙비가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머리 위에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몸이 종잇장처럼 가벼워지고 척추가 밤에도 환하게 빛을 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수천 개의 불빛이 몸 안에서 타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엄청난 분노와 정욕, 공포심이 생기기도 한다.
무서워서 잠을 잘 수도 없고, 황홀하고 성적인 환상에 시달리기도 하다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식욕이 당기기도 한다.
이런 증상들은 대개 며칠 또는 몇 주가 지나면 사라진다.
초능력을 얻는 사람도 있다.
텔레파시, 천리안, 심신분리, 공중부양,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 등이 생기는데
이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은 유혹도 자제하기 어렵다.
오랫동안 밥맛이 없어 음식을 먹지 못할 때도 있다.
보름이나 20일 동안 밥을 먹지 않으므로 주위에 있는 사람이 강제로 먹이려 하지만 소용이 없다.
의기소침하여 자살이라도 할 것 같기도 하고,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천장만 보고 앉아 있기도 한다.
모든 일이 재미없고 메마르게 느껴지다가 갑자기 활력이 넘치고 예술에 대한 심오한 영감을 얻는가 하면
천사나 도인, 성인들의 환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온갖 것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다가 마음의 폭풍이 차츰 가라앉고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오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보통 사람과 다름없지만 내적으로는 훨씬 깊고 풍부한 깨우침을 얻은 것이다.
쿤달리니가 상승할 때 머리가 몹시 아픈 사람도 있다.
이런 현상은 성관계를 전혀 갖지 않은 사람한테만 나타난다.
격심한 두통은 잠자고 있던 뇌가 깨어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 느끼는 통증과 같다.
보통 사람의 뇌는 10분지 1쯤 만이 깨어서 활동하고 있고 10분지 9는 잠들어 있는데
격심한 두통은 잠들어 있는 뇌의 부분들이 깨어나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전혀 잠이 오지 않아 잠을 잘 수가 없다.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고 의식은 맑게 깨어 있으며 마음은 행복하기 이를 데 없다.
사람이나 동물, 산, 나무, 꽃 같은 것과 말을 나눌 수도 있고 몸이 마치 공기처럼 가벼워지며
주위에서 온갖 종류의 냄새가 나고 귀신이 우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도 하며
몸의 여기저기에 찌릿찌릿한 느낌이 오기도 한다.
열이 심하게 나거나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없는 이상한 병이 생기기도 한다.
쿤달리니 깨우침은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경험이다.
쿤달리니가 깨어나면
마음이 일상을 초월하여 지식의 범위가 무한하게 넓어지고 인생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로 보게 된다.
깨우침을 얻는 과정은 몹시 어렵다.
불교나 도교, 유교, 선교 등에서 나름대로 옛날부터 전해 오는 수행법들이 있으나 대부분 고된 수련을 거쳐야 한다.
오랫동안 깨달음을 얻는 방법은 극소수의 사람들한테만 비밀리에 전하여 왔다.
귀신을 내쫓고 질병을 고친다
전라북도 익산의 미륵산 기슭에서 소나무 몇 그루를 벗하며 사는 연담(蓮潭)도인은
인도 요가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 오는 쿤달리니 요가를 수행하여 한 경지에 오른 사람이다.
그는 온갖 귀신을 내쫓고,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 탁한 의식을 정화하여 온갖 질병을 치료하는 능력을 지녔다.
몸 속에 들어 있는 독소나 불순물을 몸 밖으로 빼내기도 하고,
막힌 혈맥을 뚫어 현대의학이 포기한 온갖 난치병을 다스리기도 하며, 혼탁한 마음을 평화롭게 다스려 주기도 한다.
맑다.
연담도인한테서 느껴지는 첫 인상은 참 맑다는 것이다.
연못에 핀 연꽃, 우리나라의 가을하늘, 잘 닦아놓은 수정구슬, 새털구름, 인적 없는 골짜기를 흐르는 투명한 물살…
이런 이미지로 나타낼 수 있을까. 깨끗한 한복을 차려 입은 단정하고 준수한 생김새, 조용하고 차분한 말씨,
옥에도 티가 있다지만 티라고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겉모습만 맑은 것이 아니다.
그는 영혼이 더 맑은 사람이다.
그에게서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먼 하늘의 것인 듯한 향기가 난다.
그의 삶은 칠흑 같은 하늘에 타오르는 금빛 불꽃처럼 치열하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고도로 정화하여 태산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영적인 힘을 얻는다.
마음이 순결하면 탁하고 악한 영을 제압하고 사악한 기운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나오는 법이다.
그는 치열한 수련으로 인간 의식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는다.
연담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사람들한테 빙의하는 영들, 곧 귀신이나 혼령들에 대한 것이다.
그는 사람의 몸과 마음에 생기는 질병의 90퍼센트 이상이 악한 영들의 장난이라고 말한다.
여기 신령들의 세계에 대한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는다.
내용이 좀 길지만 이 분야에 관심있는 분들한테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귀신은 백회나 장심, 용천혈로 들어온다
이 세상은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데
이 에너지는 제각기 의식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이 에너지를 기(氣)라고도 할 수 있고 귀신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영감(靈感)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이든지 없는 것이든지 만물은 제각기 나름대로 고유의 기운이 존재하며
이 기운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사람이나 동물의 몸 속으로 침투합니다.
하늘의 기운은 백회(百會)를 통하여 사람의 몸으로 들어오고 대기에 있는 기운은
장심(掌心)을 통하여 들어오며 땅의 기운은 용천(龍泉)혈을 통하여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 에너지가 들어오다가 손가락의 관절이나 무릎 관절 같은 곳에서 막히면 신경통이나 관절염 같은 병이 생깁니다.
또 이 기운이 내장에서 정체되면 암이나 결절, 염증이 생기고 뇌에서 막히면 간질이나 정신이상이 옵니다.
수행의 경지가 높은 사람은 막힌 부분을 터 주어서 막혔던 기와 혈이 잘 흐르게 하고
몸 안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밖으로 빼내어 병을 치료합니다.
수행의 경지가 높은 사람은 어떤 병이든지 고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디에 가든지 그 주변에 어떤 영이 있는지 그 영들의 기운이 탁한지 맑은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전에 어떤 곳에 갔더니 엄청나게 힘이 센 기운이 저를 넘어뜨리려고 하더군요.
저는 그 영과 오랫동안 씨름을 하여 한참만에 간신히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전에 간경화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는데 몸에서 썩는 냄새가 몹시 나서 가까이 갈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몸에 병이 생기는 것은 나쁜 에너지 곧 귀신이 몸 안에 들어가 정기(精氣)를 흡수하여
그 사람의 형상으로 변해서 육체와 의식세계를 조절하기 때문입니다.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모든 생물은 인과응보의 법칙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선업을 쌓으면 선한 것을 보상으로 받을 것이오, 악업을 쌓으면 그 행위만큼 벌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선업을 쌓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인과로 인해 새로운 과거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미래가 선택되는 것입니다.
악업을 쌓으면 계속 후퇴하는 것이고 수행은 인과를 소멸시켜 차츰 완전한 인간으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선업을 계속 쌓으면 선한 결과들이 쌓일 뿐만 아니라 이미 쌓아놓은 악업을 탕감 받습니다.
저는 삼매에 들어 선업과 악업에 대한 원리를 깊이 깨닫고 심한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이는 양심의 문제를 초월한 것입니다.
누구라도 이 원리를 깊이 깨달으면 털끝만큼도 악한 행위를 하려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악업을 쌓으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똑똑하게 보았으므로 그 무서움 때문에
눈곱만큼도 잘못을 저지를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한 용기와 헌신을 지니고 털끝 만한 죄를 짓지 않고 완전한 삶을 산 것에 대해 저는 무한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귀신의 장난으로 온갖 질병과 고통이 생긴다
암이나, 간질, 정신병, 나병 같은 무서운 병을 고쳐 주는 것도 어쩌면 악업을 쌓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병에 걸리는 것은 그 사람이 전생에서건 이승에서건 그 원인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질병은 인과에 따른 응보이며 사람은 윤회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죽을 사람은 죽어야 하는 것이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것입니다.
수행을 해서 병자를 치료하는 능력을 얻은 사람은 환자가 선하게 살았는지 악하게 살았는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만약 환자가 악한 행위에서 벗어나지 않고 또 그 사람이 병이 나아서
많은 사람들한테 피해를 준다면 그 사람은 죽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간혹 인연을 만나기 위해 병에 걸리는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경험을 얻고 훈련을 받기 위해 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저는 성서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중에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을 제일 좋아합니다.
이 말에 매우 깊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지은 악업으로 인해 질병에 걸려 고통받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마땅히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윤회의 실체는 간단한 원리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삶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이 갈립니다.
삶을 부정하는 것은 끝없는 퇴보의 길이고 반대로 긍정하는 것은 끊임없는 진보의 길입니다.
나의 미래는 나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삶은 무조건 그렇다고 하는 것 곧 완전한 긍정, 지극한 긍정의 자세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명상으로 삼매의 경지에 들어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행법은 모든 것을 수용하고 긍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무조건적인 긍정, 곧 어떤 추하고 보기 싫은 것일지라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절대 긍정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진정한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잘못된 과거를 완전히 지워 버리고 인과응보의 사슬,
곧 윤회의 고리를 끊어 천상에 있는 완전한 세계에 도달하는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완전한 사람, 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귀신을 잡아먹어 양식으로 삼는다
영적인 세계거나 물질의 세계거나 에너지 법칙으로 인해 우주가 운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의식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만물은 에너지 교환을 통하여 퇴보하거나 발전합니다.
가장 낮은 단계에서의 에너지 교환은 무력이나 성적인 접촉이고
그보다 더 높은 단계에서는 기(氣)를 주고받는 것이며 가장 높은 차원에서는 의식을 주고 받는 것입니다.
의식을 주고 받을 때 완전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며 가장 조화롭고 완전하게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몸 속에는 혼(魂)이 있고 백(魄)이 있으며 정(精)이 있습니다.
혼이란 육신의 주인이 되는 물질로 영원 전부터 존재하면서 발전과 퇴보를 반복하는 것으로
곧 사람의 영혼이며 이것은 하늘로부터 옵니다.
백이란 지기(地氣)에서 오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에서 감각과 의식을 주관합니다.
정은 백의 의식에서 나온 것입니다.
세상에는 가짜 수행자들이 많습니다.
악한 영이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 사람들을 현혹하고 나쁜 길로 인도하는 예가 적지 않습니다.
수행을 통하여 엄청난 힘만 얻고 깨우침을 얻지 못했을 때에는 아수라,
곧 세상을 유리 방랑하는 악령이 됩니다.
왜 악령이 될까요.
이것은 집착 때문입니다.
돈이나, 성욕, 식욕, 원망, 분노 등을 다스리지 못하면서 엄청난 힘을 얻으면
저급한 감정과 경험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이지요.
수행은 신통력이나 힘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내면세계를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도통한다는 것은 가장 높은 차원의 의식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기질이 각기 다릅니다.
도는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고유의 성품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장미나무에서 장미꽃을 피우고 솔씨가 자라서 큰 소나무가 되듯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속성을 완전하게 꽃피워 큰 나무로 자라게 하는 것이 도의 완성입니다.
몸은 음식에서 에너지를 얻지만 마음의 양식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의식의 차원에서 귀신을 잡아먹고 거기에서 에너지를 얻습니다.
귀신은 곧 에너지입니다.
온갖 음귀들이 불빛에 달려드는 벌레들처럼 달려들면 저는 그것을 잡아 밥먹듯이 먹어 수행에 필요한 에너지로 사용합니다.
아리랑에 담긴 깨달음의 비밀
저는 우리 민요인 아리랑과 아리랑 춤이 옛날 도인들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를 얻는 수행 과정을 노래와 춤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삼매의 경지에서 깨달아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춤이며 노래가 바로 아리랑입니다.
아리랑 노래 속에 엄청난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아리랑 노래와 춤, 그 율동 자체가 극치의 수행법이지요.
그 속에 엄청난 파장이 들어 있습니다.
노랫말에도 대단한 뜻이 담겨 있지요.
아리랑이란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단순하게 아무 뜻도 없이 붙인 말이 아닙니다.
아리랑의 ‘아’는 한자로 나 아(我)자 곧 자기 자신을 뜻합니다.
리는 한자로 다스릴 이(理)자를 씁니다.
랑은 신랑을 뜻하는 사나이 랑(郞)자를 가리킵니다.
이를 종합하면 아리랑은 자기 자신을 다스려서 완전한 사나이,
곧 완전한 인격체를 만들도록 하는 노래라는 뜻입니다.
완벽한 조화를 이룬 노래이지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하고 이어지는 것은 깨달음의 과정을 뜻하는 것이며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말은
수행의 과정이 쉽게 잘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나’는 자신의 그릇된 본성을 가리키는 말이고 가시는 님은 자신의 과거의식을 말합니다.
‘풍년이 왔네, 삼천리 강산에 풍년이 왔네’ 라는 말은 높은 수행의 경지에 다다랐을 때
깨달음의 덕과 자비의 덕이 온 세상에 가득한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문경 새재 구비구비 사연도 많다’는 노랫말은 수행을 얻기까지
여러 관문을 거치는 동안에 겪는 여러 가지 사연을 비유로 표현한 것입니다.
아리랑 가락에는 다른 노래나 민요에서 찾아 불수 없는 독특한 곡조와 파장이 있습니다.
수행할 때 느끼는 것과 꼭 같은 파장을 노래와 율동에서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리랑에는 진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 정선 아리랑 등 지방마다 다른 종류가 있는데
진도니 밀양이니 정선이니 하는 말이 그 지방의 명칭을 가리키는 것만은 아닙니다.
진도 아리랑은 참 진(眞)자에 길 도(道)자로 참된 도를 찾는 아리랑을 뜻하는 것이고,
밀양 아리랑은 그윽할 밀(密)자 밝을 양(陽)자로 비밀리에 전해오는 수련법을 지칭하는 것이며,
정선아리랑은 바를 정(正)자에 착할 선(善)자를 써서 사람을 바르고 선하게 이끄는 아리랑이라는 뜻입니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이라는 말은 선한 신들이 수행자들한테 힘을 줄 때 나오는 말로
술술 쉽게 어려운 고비를 잘 넘어간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아리랑 노래를 부르면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도 흥이 저절로 나고 차원 높은 영적인 에너지가 생깁니다.
몸이 아픈 사람도 아리랑을 정말 흥겹게 부르면 나을 수가 있는 것이지요.
중국의 기공 같은 것보다 훨씬 차원이 높은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리랑 노래를 부르면 저절로 마음이 흔쾌해지고 어깨춤이 저절로 나오지 않습니까.
이 저절로 나오는 춤이 열락(悅樂)의 극치이며 가장 자연스럽고 완전한 형태의 기공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중국 기공이나 인도 요가가 감히 따라오지 못하는 신비로운 힘이 아리랑 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깊은 삼매(三昧)에 들어 혼자 아리랑을 부르면 저절로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게 되고
온 몸에 리듬과 전율이 폭발합니다.
이 환희의 힘에 주위에 있는 모든 악한 영들이 봄눈 녹듯이 녹아 버리는 겁니다.
깨달음을 얻었을 때의 기쁨은 감히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기꺼이 목숨을 걸 만한 것입니다.
아리랑을 부르며 흥에 겨워서 춤을 추다 보면 손끝에서 전율을 느낍니다.
의식이 지니고 있는 힘은 대단합니다.
대개의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살거나 올바른 자기 의식을 확립하지 못하고 살기 때문에
늘 귀신이나 영들한테 찌들려 살기 마련입니다.
참혹한 귀신 세계의 참모습
귀신의 세계, 영의 세계는 우리와 늘 같이 있으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세계를 볼 수도 없고
그 세계가 어떤 것인지 모르고 지냅니다.
귀신은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합니다.
형상이 있는 것도 있고 형상이 없는 것도 있는데 대개는 형상이 없습니다.
무아경의 상태에서 삼매 속에 들어가면 귀신의 세계를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심신분리를 하거나 영계로 들어가 보면 귀신의 세계를 자세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귀신은 곧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 체입니다.
에너지는 곧 물질이죠. 물질은 곧 어떤 형태로든 형상이 있습니다.
먼저 귀신은 형상이 없다고 했는데
이것은 귀신이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지 형상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든 에너지는 의식이 있고 존재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귀신이든지 영이든지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목적이 있고 이유가 있습니다.
문제는 귀신이라는 이 에너지체가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가,
곧 선한 마음을 갖고 있는가 악한 마음을 갖고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귀신이나 선신(善神)이냐는 바로 이 목적의 차이입니다.
영들은 선과 악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한테는 보호신이 늘 주위에 붙어 다닙니다.
선한 마음을 지니고 선한 일을 하면 선한 의식이 마음에 채워지고
악한 마음을 갖고 악한 일을 하면 악한 의식이 마음에 채워지는 것입니다.
마음은 비어 있는 무대와 같아서 선으로 인도하는 연극이 공연될 수도 있고
악의 구렁으로 빠지게 하는 연극이 공연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악한 마음으로 채워졌을 때는 악한 신이 힘을 더하여 주고.
우리 마음속에 선한 의식이 싹트고 있을 때에는 선한 보호령이 힘을 더하여 주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 주위에 존재하는 보호령을 오로라라고도 하지요.
살인이나 범죄는 인간의 의식에서 악한 마음이 싹터서
그것이 차츰 자라서 격앙되었을 때 악한 영의 힘이 보태어졌을 때 일어납니다.
살인, 방화, 폭동 같은 악의 물결은 악한 인간의식의 주파수와 악한 신의 힘이 하나로 연결되었을 때 생깁니다.
사람이 악을 행하면 악한 신의 영감을 받고 선을 행하면 선한 신의 영감을 받는 것입니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속담대로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한테는 선한 신들이 호위를 하고
악한 의지를 지닌 사람한테는 악한 신들이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예술적 영감 같은 것도 인간의 고양된 의식이 차원 높은 신과 순간적으로 교감할 때
위대한 예술작품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주위에는 온갖 부류의 신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주위에 선하고 긍정적인 신들이 있으면
그 사람을 둘러싼 오로라가 밝고 아름답지만 악한 영으로 둘러싸여 있으면 오로라가 어둡고 탁합니다.
자살충동이나 우울증 같은 것은 보호령이 보호능력을 상실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곧 외부의 다른 신이 보호령의 울타리를 넘어 침입했을 때 나타나는 것이지요.
외부의 다른 신이란 악한 목적을 가진 신, 곧 무언가 원한이 있거나 한을 품은 신입니다.
깊은 원한이 있는 귀신을 보호령이 막아내기 어렵습니다.
악한 신들은 인간의 의식 곧 에너지가 약해졌을 때 에너지 통로로 사람의 몸 속으로 침투합니다.
백회(百會)나 장심(掌心), 용천(龍泉)혈을 통하여 들어오는 것이지요.
이 부분이 사람의 몸 중에서 가장 나약한 부위입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에는 고유의 떨림, 곧 진동 또는 주파수가 있습니다.
이 주파수는 어떤 존재이든지 각기 다릅니다.
그런데 이 에너지 주파수가 나약해져서 그 수준에 맞는 주파수를 지닌 영의 주파수와 일치되었을 때
그 영이 인간의 몸에 들어와서 인간의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자기 파장의 범위를 넓혀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못된 귀신이 머물고 있는 자리에 있는 몸의 세포는 차츰 정해진 원리와 궤도를 이탈하여
미치거나 병든 세포가 됩니다.
미친 아들이 부모를 죽이듯이 미친 세포는 몸을 망가뜨립니다.
암세포라는 것이 이처럼 세포가 돌연히 미쳐 버려서 무한정 증식하는 병이 아닙니까?
오장육부의 질병에는 이처럼 못된 귀신이 침투하여 생기는 것이 많습니다.
암이라든가, 간경화증, 당뇨병, 간질, 정신병 같은 고약한 병들은 대개 이런 이유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술을 많이 먹어서 간경화증이 왔다고 하면 대개 사람들은 술을 마셔서 간세포가 망가진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따져 보면 그것보다는 술을 많이 마셔서 약해진 의식의 한 부분으로
악한 영이 들어와서 간을 점령하여 일으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병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짓는 것이 더 많습니다.
내장에 생긴 온갖 병은 나쁜 행위로 인한 것이며 신경통이나 관절염 같은 것은 나쁜 마음으로 인한 것이고,
소경이나 귀머거리 같은 것은 눈과 귀의 잘못으로 인한 병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모든 삶은 전생과 연관이 있습니다.
전생에 살생을 많이 했으면 현재의 세상에 절름발이나 소아마비 환자로 태어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신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전생의 업보로 아무리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육신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고 감사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남을 원망하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것은 못난이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도인 주위에서는 잡귀들이 봄눈 녹듯 스러진다
현세에 살면서 깊은 원한을 지니고 있거나 세상의 물질이나 색욕, 권세욕 등에 집착이 많은 사람은
죽어서도 영의 세계에 가지 못하고 흔히 말하는 귀신이 되어 사람들 사이를 떠돌아다닙니다.
한이 많고 집착이 많은 사람은 죽어 귀신이 되어도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니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는 거지요.
귀신은 오래될수록 곧 나이를 먹을수록 주위에 있는 에너지를 흡수하여 강한 힘을 지니게 됩니다.
전에 한 번 어떤 방에 들어갔더니 갑자기 악한 영이 달려들어 나를 꼼짝 못하게 찍어누르는데
얼마나 힘이 센지 한참동안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서야 간신히 물리칠 수가 있었습니다.
악한 영들은 악한 영들끼리 뭉치고 무리를 이루어서 엄청난 힘과 능력을 지닐 수가 있습니다.
누구나 한두 번쯤 가위눌리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겁니다.
가위눌리면 몇 분 동안 숨이 막히고 말도 할 수 없는데 악령에 짓눌리는 경험이 이와 유사합니다.
귀신은 인간의 기운을 흡수하면 힘이 생깁니다.
많은 사람의 힘을 흡수하면 어마어마한 힘이 생기지요.
정신병자 중에는 다섯 사람이나 열 사람이 달라붙어도 붙잡지 못할 만큼 힘이 센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정신분열이나 간질은 귀신의 장난으로 인한 것이 많습니다.
귀신은 각기 독립된 하나의 의식체입니다.
공간계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의식이 존재합니다.
공간도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합니다.
사람의 몸은 뼈와 살로 가득 차 있어서
다른 물질이나 의식이 들어올 수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몸 속에도 실로 무한한 공간이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개체의 하나하나의 세포는 분자로 이루어져 있고 분자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자는 수많은 전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자와 전자 사이에는 엄청나게 많은 공간이 있습니다.
실제로 사람의 몸은 99퍼센트 이상이 공간입니다.
공간에는 수많은 의식의 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의식들은 각기 주파수가 다르고 파장이 달라 각기 서로의 영역 안에서 서로 충돌하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귀신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집도 있고 음식도 있고 시장도 있습니다.
한 번은 수행 중에 아기 귀신 하나가 벽을 뚫고 고개를 내밀고 저를 바라보더군요.
머리를 붙잡고 이놈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니 시장바닥에 앉아 있어요.
살살 달래서 좋은 곳으로 보내려고 했더니 말을 듣지 않아서 쇠망치로 대가리를 부수어서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귀신은 죽어서 몸은 없어도 인간의 의식이 갖고 있는 파장을 지니고 있는 존재입니다.
곧 생명체이되 몸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귀신의 실상입니다.
귀신은 온 주위에 바글바글합니다.
고스트바스트라는 영화를 보면 귀신들이 많이 나오는데 진짜로 이 세상에는 귀신이 인간보다 훨씬 많습니다.
귀신의 세계에 인간이 깃들어 살고 있는 겁니다.
요즘 산 속에서 혼자 수행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 중에는 의식이 제대로 깨어 있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산에서 수행하는 것을 동경하여 무조건 산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깨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수행을 하면 악한 영 곧 귀신의 의식에 지배를 받기 쉽습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대개 백회가 열려서 엄청나게 눈부신 빛이 몸 속으로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대개 이를 큰 능력이 오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대개 산 속에서 혼자 수행을 해서 깨우침을 얻은 사람보다는 사악한 영의 지배를 받거나
자신의 내부에서 폭발하는 엄청난 에너지에 압도되어 폐인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당이나 신접(神接)한 점장이들은 수준이 낮은 하찮은 귀신들한테 지배를 받는 것이지요.
귀신은 사람의 의식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으므로 그 사람의 과거를 알 수 있습니다.
대개 무당이나 점장이는 지나간 일은 잘 맞히지만 다가올 일은 잘 알아맞히지 못합니다.
굿을 하고 푸닥거리를 하는 것은 저급한 신을 달래기 위한 의식입니다.
무당들이 산에 가서 기도하는 것은 바로 수준이 낮은 귀신들한테서 힘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저급한 귀신들이 지니고 있는 주파수에 자신의 주파수를 일치시키려 하는 행위이지요.
저는 주변에 있는 귀신 곧 에너지체를 흡수하여
그 귀신이 가진 나쁜 의식을 선한 의식으로 바꾸어 보내거나 잡아먹어서 양식으로 삼습니다.
귀신을 잡아먹어서 없애는 것이지요.
의식의 세계는 무한정으로 넓고 큽니다.
사람의 의식 안에 우주에 있는 모든 신을 다 담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의식을 그만큼 확장해야 합니다.
진짜 도인이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수도하고 있으면
그 근처에 있는 모든 잡신이 도인이 지닌 선한 의식의 힘에 감화를 입어 천도되거나 정화되어
악한 의식을 버리고 선한 의식을 지니게 됩니다.
도인이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태양이 어둠을 내어쫓듯이 모든 삿된 기운이 물러가고
그 주위가 선한 영향력으로 가득 찹니다.
귀신을 내쫓는 전문가
그는 귀신을 내쫓는 전문가다.
어떤 귀신이든지 내쫓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아무리 능력이 센 무당도 그 앞에서는 신통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는 귀신을 잡아먹어 양식으로 삼는다.
그는 귀신들려서 생긴 온갖 질병을 치료한다.
정신병이나 간질은 귀신의 장난으로 인한 것이 많다.
암이나 간경화증, 관절염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몸 속에 들어가는 귀신은 본질적으로 악한 귀신이라는 것이 그는 말한다.
귀신은 귀신세계에서 살아야 하며 결코 사람의 영역에 침범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몸 속에 들어오려고 하는 귀신은 무언가 한을 품고 있거나 악한 뜻을 품고 있는 귀신이다.
선한 뜻을 지니고 있는 신은 사람의 몸 속에 들어와서 사람 몸의 주인이 되려고 할 리가 없다.
그는 귀신을 내쫓기 위해서 무당이나 주술사처럼 푸닥거리 같은 짓을 하지 않는다.
다만 고도로 정화되고 단련된 순수한 의식의 힘으로 귀신을 내쫓을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두 마디 말이나 손을 몸에 대는 것으로 귀신을 내쫓을 수 있었지만 그는 아직 그런 능력이 없다.
귀신을 떼어내려면 그와 하루나 이틀 밤을 같이 지내야 한다.
그는 환자와 나란히 누운 다음 유체이탈을 하거나 의식을 몸밖으로 빼내어 상대방의 몸 속으로 들어가서
그 속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귀신을 쫓아낸다.
귀신은 육체가 없다.
그러므로 육신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이나 감정을 느낄 수 없다.
귀신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이다.
귀신이 한 번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면 결코 쫒겨나가려 하지 않는다.
그는 처음에는 귀신한테 좋은 말로 타이르고 선한 의식을 지니도록 구슬리고 가르쳐서 영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렇게 해서 말을 듣는 귀신은 별로 없다.
대부분의 귀신은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으며 결코 나가지 않겠다고 버틴다.
그러면 귀신과 한바탕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
결국 귀신을 두들겨 패서 잡아먹어 자신의 에너지로 삼는다.
귀신은 한두 개체가 사람의 몸 안에 들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수천 수만 개체가 제일 힘이 센 귀신을 중심으로 덩어리처럼 한데 뭉쳐서 붙어 있는 경우도 있다.
제일 바깥쪽에는 하루살이처럼 별로 힘이 없는 귀신들이 붙어 있고
안쪽으로 갈수록 힘이 센 귀신들이 붙어 있으며
제일 한가운데에는 귀신의 대장이 붙어 있는데 이 대장귀신은 엄청나게 나이가 많고 교활하며 힘이 센 귀신이다.
그는 이 귀신들한테 하나하나 법문을 해서 천도를 하고 말을 듣지 않는 놈은
힘으로 눌러잡아 대가리를 부수어 꼭꼭 씹어 삼켜 버린다고 한다.
귀신 중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힘이 세어서 잡아먹기 위해서 며칠동안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할 때도 있다.
가끔 그는 치료를 받는 사람의 영을 불러내어 자신의 육신이 누워 있는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게 하기도 한다.
곧 유체이탈을 하게 해 주기도 한다.
귀신은 숙주가 되었던 몸에서 빠져나갈 때 그냥 곱게 나가지 않는다.
엄청난 고통을 주거나 간질발작 같은 것을 일으키게 해 놓고 빠져나가는 수가 많다.
그러므로 귀신을 내쫓기 위해서 그한테 온 사람은 귀신이 쫓겨 나갈 때
온 몸의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것 같은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암, 간경화, 정신병, 간질을 고친다
그에게 치료를 받는 동안 마음과 몸이 정화된다.
병이 있거나 탈이 난 부위가 몹시 아프거나, 어떤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장심이나 용천혈을 통해 들어와
몸 속을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몸에서 화끈화끈 열이 나기도 하며
온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치료하는 사람의 능력이 치료를 받는 사람의 몸 구석구석까지 들어와 막힌 기혈을 찾아내어 뚫어 주고,
종양이나 염증이 있는 부위를 찾아내어 고쳐 주는 것이다.
귀신이 쫓겨나가고 나면 그 사람은 큰 병을 앓고 난 사람처럼 몹시 쇠약해진다.
이럴 때는 귀신한테 시달려서 약해졌던 몸을 보충해 주기 위해 영양을 보충해 주어야 한다.
좋은 약과 정결한 음식으로 영양을 보충하고,
쫓겨나간 귀신이 다시 들어오지 않도록 늘 마음을 선하고 깨끗하게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귀신은 육신의 주인인 사람이 허락하지 않으면 결코 몸 속으로 들어올 수 없는 존재이다.
마음이 악한 것에 이끌리지 않도록 주의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그의 치료를 받고 나면 대개 삶에 대한 자세가 바뀐다.
마음이 맑고 편안해지며 사고가 건전하고 긍정적으로 바뀌며 모든 일에 자신감과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는 귀신을 내쫓을 뿐만 아니라 온갖 질병도 치료한다.
그한테 간경화증, 암, 오적육취, 디스크, 정신병, 간질 등 갖가지 난치병을 고친 사례가 적지 않다.
원인도 알 수 없고 치료법도 알 수 없으며 수십 년 앓은 병이 그와 몇 번 만난 것만으로 나아 버린 예가 많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담배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치료를 거절한다.
환자를 치료하려면 그의 의식이 환자의 몸 속으로 들어가 몸 안에 있는 독을 모두 흡수하여 해독해야 하는데,
온갖 독물질 중에서 니코틴 독이 분해하기가 제일 어렵고 힘이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이 그한테 치료를 받으면 담배를 끊게 된다.
대신 그는 환자의 몸에서 흡수한 니코틴 독을 처리하느라고 며칠 동안 애를 먹는다.
담배는 가장 해로운 물질이라고 그는 자주 말한다.
담배를 피우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 꼭 치료를 받고 싶으면 담배를 끊고 나서 가야 한다.
미륵산 기슭에 기대어 있는 그의 수도처에는 육신과 마음의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거의 날마다 찾아온다.
그는 찾아오는 환자들을 온 정성을 다해서 치료하고 보살핀다.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사람보다는 가난하고 불쌍한 환자들이 더 많다.
나는 꽤 여러 번 그를 만났고 그에게 치료를 받은 일이 있다.
그에게 치료를 받는 일은 특이한 경험이었다.
하룻밤을 같이 나란히 누워서 치료를 받았는데 그는 내 몸에 손끝 하나 되지 않았지만
강력한 기운이 나와서 전류처럼 내 몸에 흘러드는 것을 느꼈다.
온 몸에 화끈화끈 열이 나고 땀이 나기도 했고 무릎이나 발 목 같은 부위가 우리하게 아프기도 했고
어느 한 부분이 가렵기도 했다.
어떤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온 몸을 덮쳐 누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허공에 몸이 둥둥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룻밤을 꼬박 새우면서 1초도 잠을 자지 않았지만 이틑날 내내 조금도 졸리지 않고 오히려 기운이 났다.
그는 은자(隱者)이다.
바깥에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 하지 않고 사람이 찾아오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울창한 대숲과 소나무 몇 그루가 있는 그의 초라한 수도처에는
수행에 관심이 있거나 몸이 아픈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어지간해서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 하지만,
간혹 마음이 맞는 사람이 찾아오면 밤을 새워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꽃밭을 돌보듯 마음밭을 가꾸면서 샘물처럼 솟아나는 즐거움 속에서 그는 한가롭고도 치열한 도인의 삶을 살고 있다.
요즈음 그는 수도처를 깊은 산 속으로 옮겼다.
수행에 몰두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경지에 이르기 전에는 밖에 나오지 않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가 과거의 성자들처럼 위대한 깨달음을 얻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