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 동읍 석산리에 위치한 도봉서원(道峯書院-원장 손성모)에서는 4월 17일(음력 3월 13일) 임진난 때 원종일등훈(原從一等勳)에 봉해진 김명윤(金明胤)을 모시고 있는 충현사(忠賢祠)에서 향례를 봉행했다. 이날 향례는 경남의 유림들 및 집안 종족들 7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 됐다.
충현사 향례집사의 분정에 따라 초헌관 김정술, 아헌관 박양현, 종헌관 박수태, 집례 조종명, 축 이영유, 장의 김주원·이병길, 찬자 정황근, 찬창 이성규 사촉 정수재, 봉향 이정호, 봉로 임갑종, 사준 김동기, 봉작 노승영, 전작 김호준, 진설 김상규, 척기 김효원 등이 각각 임무를 맡아 진행 했다.
도봉서원 원장 손성모는 유림들에게 전하는 인사말에서 “만물이 소생하고 잎이 돋아나고 꽃이 피는 계절이 도래하면 선조를 추모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사람이 가지는 심성이라 봄철이 되면 꼭 선현들에게 향례를 모셔 온 것이다. 오늘 도봉서원에서 동산선생의 향례를 올리면서 그분의 행적을 잠시 알고 가고자 한다. 선생의 휘는 명윤(明胤)이고 자는 경찬(景纘)이며 호는 동산(東山)이다. 명종 을축(1565년 11월 25일)에 김해 답곡리의 집에서 출생했다. 아버지에게 글을 배우고 9세 때 한림 경윤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경서, 사기와 병서에 정통하여 어릴 때부터 칭송 받았다. 1590년 일본에 통신사를 보낼 때 학봉이 선생의 재주를 높이 평가해 종사관으로 천거했다. 동산선생이 왜국의 정세와 풍토를 상세히 기록한 동차록(東槎錄)을 보고 선조임금이 크게 포상하고 파주목사에 임명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용사지란을 일으키자 성을 방어하고 매복하여 왜구를 토벌했다. 1594년 임기를 마치고 떠나자 고을 사람들이 송덕비를 세워 업적을 기렸다.”고 소개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