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도 쉬어가는 조령산
동해안의 폭설이 기상 계측을 시작한 1911년 이래 최고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9일 동안 쉬지 않고 쏟아진 동해안 지역의 눈은 미시령이 164cm의 적설량으로 최고를 기록하였다. 웬만한 성인의 키를 넘기는 적설량이다. 그 외에도 동해안 지역의 최남단인 울산에서도 보기 드물게 6일 동안이나 눈이 내렸다고 한다.
이처럼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것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폭설로 인한 피해는 그야말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고 한다. 지금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소치에서는 눈이 녹아내려 고민이라고 한다. 얄궂은 날씨가 아닐 수 없다. 지금 동해안 지방은 넘쳐나는 눈을 치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과 장비가 동원되고 있다. 마음으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도와주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처럼 동해안 지역에 내린 눈으로 정선에 있는 함백산으로 가려던 산행 일정이 조령산으로 바뀌었다. 새들도 쉬어간다는 새재가 있는 조령산은 2012년 5월에도 다녀온 바가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산이지만 장미에도 가시가 있듯 아름다운 것을 보려면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한다.
봄의 길목에서 만난 동해안의 폭설로 인해 영서지방에도 눈이 내려 꽤 많은 눈이 내렸다. 봄의 길목에서 내린 눈은 봄바람에 대부분 녹아내렸다. 그러나 그늘진 곳에 남은 잔설이 여전히 겨울산행의 묘미를 만끽하게 해주기도 한다. 겨우내 얼어붙은 길 위로 덮인 눈은 한 겨울보다 오히려 더 위험하다. 조령산은 북쪽으로 월악산, 남쪽으로 속리산과 함께 백두대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문경새재는 잘 알고 있지만 조령산이라는 이름은 낯설다. 새들도 쉬어간다는 새재! 그 옛날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려면 꼭 거쳐야 했던 새재는 새들도 넘기가 힘이 들어 쉬어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경북 문경시에서 새재를 넘으면 충북 괴산이다. 중부지방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영남 제일관이라는 현판이 붙은 주흘관을 지나면 고갯길이 시작된다. 길이 험한 새재는 군사요충지이기도 했다. 임진왜란을 맞아 선조의 명을 받은 신립장군은 천연의 요새인 새재를 버리고 탄금대에서 왜군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대패하여 자신은 물론 병사들이 대부분 전사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조선은 결국 한양 도성까지 내주는 비운을 겪게 된다.
이처럼 새재에 묻혀버린 듯 조령산을 아는 이는 흔치가 않다. 조령산은 해발 1017미터로 산악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산이다. 국립공원인 월악산과 속리산에 묻혀 주목을 받지 못한 탓도 있지만 워낙 험준한 산길이 취미로 산을 즐기는 이들의 발길을 쉽게 허락지 않는다. 2년 전 조령산 산행 후 그 후유증으로 한 동안 산행을 하지 못했다.
산행들머리인 이화령에는 새 터널이 생겨났다. 이 터널은 지난해 끊어진 백두대간을 잇기 위해 만든 생태터널이다. 지난 번 산행 때는 없었던 터널이다. 웅장한 모습을 한 터널아치 위로 ‘백두대간 이화령’이라는 새김글이 선명하다. 이종철 산행대장님의 지도로 간단한 산행준비체조를 마치고 산행에 들어갔다.
북향의 산판에 깔린 하얀 눈은 군데군데 흠집이 난 채 봄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훈훈한 봄바람이 서슬 퍼런 동장군의 기세를 꺾을 날도 머지않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눈보라를 잘 견뎌낸 앙상한 나뭇가지들도 머지않아 파란 싹을 틔울 것이다. 산판을 가로질러 난 산길에 잔설이 남아 아직은 동장군의 세력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 헬기장에 이르렀는데 빨간 텐트가 눈에 띈다. 이런 산등성이에 밤새 있었던 것일까? 취사까지 하는 걸로 보아 밤을 지 샌 듯하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조령샘에 이르러 앞서가던 일행들을 만났다. 샘에서 목을 축이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산등성이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산의 색깔이 하얗게 바뀌어 간다.
정상에 이르자 새로 세워진 커다란 표지석이 눈에 띈다. 지난번 산행 때 표제가 ‘白頭大幹 鳥嶺山’이었던 것이 ‘새도 쉬어가는 鳥嶺山’으로 바뀌었다. 표지석의 크기도 많이 커졌다.
백두대간의 북녘에 벽해의 파도가 넘실대는 끝자락, 월악산 영봉은 희미한 회색 도화지에 거친 곡선을 그려낸다.
산행들머리에서 정상까지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이라 눈길로 인한 불편함은 없었다. 그러나 정상을 넘어서는 순간 길은 급변했다. 가파른 산길에 쌓인 눈이 녹지 않아 아이젠이 없이는 산행이 불가능했다. 채 녹지 않은 빙판을 덮은 눈길은 위험천만한 길이었다. 아주 가파른 산길을 밧줄에 의지해 내려가야만 했다. 누군가 매어 놓은 밧줄이 이토록 고마울 줄이야. 지난 봄 산행에서도 가파른 언덕길이 무척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말 그대로 설상가상이다. 발걸음은 무척이나 더뎠다.
그토록 끝이 없을 것 같던 치열한 산행 끝에 드디어 안부에 이르렀다. 먼저 온 산우들은 이미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 옆에 돗자리를 깔았다. 비록 눈 위에 깐 돗자리가 불편하고 비좁았지만 여러 산우들과 함께 하는 식사는 즐겁기만 했다.
조령산 아래에는 잘 알려진 대로 문경새재 과거 길을 따라 3개의 관문이 설치되어 있다. 제1관문인 주흘관과 제2관문인 조곡관(조동문), 그리고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을 이어주는 제3관문인 조령관이 있다. 사적 제 147호인 문경새재관문은 고려 초부터 조령으로 불리며 교통과 군사적 요새로 주목 받았던 곳이다.
최근에는 kbs 대하드라마 ‘태조왕건’을 비롯한 사극의 촬영지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실제로 주변의 여건이 사극촬영지로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잘 보존된 자연환경과 사적지가 옛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또한 kbs 세트장은 궁전과 저자는 물론 초가와 성루 등 옛 모습을 잘 재현하여 유지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신선봉을 30여분 앞둔 안부 갈림길에서 식사를 마치고 선두그룹과 헤어져 곧 바로 동쪽 계곡 길을 따라 하산 길에 올랐다. 계곡을 내려가는 동안에도 가파른 눈길이 한 동안 계속되었다. 양달과 응달의 경계가 극명하다. 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 동토가 녹아내리는 산자락 조령천에서 봄을 만났다.
문경새재 도립공원은 앞서 언급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상설촬영장과 생태공원, 문경새재박물관 등 볼거리가 많다. 주변에는 주흘산과 깃대봉, 마폐봉, 부봉, 월향삼봉 등 산행지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甲午年 2월 16일 조령에서 봄을 만나다. <솔뫼>]
첫댓글 산행도 힘드셨을텐데 사진과 상세한설명 감사드림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너무 휼룽하세요 사진들도..그밑의 주옥같은 글들도 ...
계속 가지고 있고픈 마음이 들어요....
사진과글아주머져부어감사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