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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유묵(遺墨)/ 오종문(제11회 오늘의시조문학상 수상작)
하루치 짧은 봄빛 세내 걷는 외길
제 뼈를 세운 고택 멈칫멈칫 들어설 때
기둥에 붙들려 사는
유묵들이 가득했다
필생을 다스려온 필적이 주는 속말
마음에 티끌만큼 사악함이 없었는가*
뿌리째 도굴된 내면
빈 통처럼 고요했다
저 오랜 문장 닮은 한 일가의 높은 품격
청빈한 바람 몇 점 놓아두고 돌아설 때
바닥난 허기진 슬픔
그늘이 더 서늘했다
*사무사(思無邪): 논의 위정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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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정희경(제10회 오늘의시조시인상 수상작)
침침한 운촌시장 어귀를 지켜내던
낡은 목조건물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 앞에 쪼그려 앉던 난전도 흩어지고
밀려난 푸성귀들 누렇게 뜨는 밤
공사 중 접근금지 빛을 내는 노란 철책
시멘트 굳어진 땅에 건물들이 올라간다
별이 된 명희 영희 허기 달래던 시장골목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 외등으로 떠 있다
가녀린 불빛 아래로 하루살이 모인다
*조세희 중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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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에 대한 소고/ 정수자
주름 없는 살이란
부식을 뺀 플라스틱
주름 지운 몸이란
늙음을 버린 석고상
제 몫의 온 시간을 지우는
방부제의 맑은 중독
벗으면 비로소 떠는
우리네 깊은 골들
주름을 활짝 피운
살들의 고요한 항의
시간의 겸허한 포옹들
주름 길을 꽃길 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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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 김영란
젯방에 보일러 꺼라 시어머니 가르치심
추위 타시던 아버님 생각에 차마 끄지 못하고
평소에 즐기신 커피를 아끼는 잔에 올렸다
형제는 수족이다 덮어주고 채워줘라
책처럼 살다 가신 아버님 그 말씀을
영정 속 눈빛을 통해 다시 듣는 설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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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한 시/ 김강호
어느 골
시심으로
키워온
열매기에
씹을수록
상큼하게
스며드는
향기인가
산뜻한
시집 속에서
똑,
따먹는
시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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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 김영재
나이 들어 꾼이 되는 허망한 꿈 자주 꾼다
산(山)꾼 시(詩)꾼 소리꾼 나를 속이는 사기꾼
꾼으로 살아보겠다는 허망함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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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 잉!/ 노창수
땡맹감잎 걷어낸다
팔뚝심을 걱돋운다
침뱉은 낫 새로 쥔다
덩굴 손 날렵 쳐낸다
산밭에 호미 던진다
시를 뿌린 울렁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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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삽화- 빨래/ 박권숙
묶인 채 나부끼는 꿈이 어찌 깃발뿐이랴
깃발이 나아갈 길 앞장서 나부낄 때
빨래는 나부끼면서 지난 길을 들춘다
헐거워진 인기척이 마르는 무게만큼
다시 볕을 채우는 사람의 마을마다
거풍을 끝내지 못한 줄 하나로 남은 가을
바람이 바람을 몰고 허공에 길을 펴다
길이 길을 헤치고 줄에 바람 동이는
묶인 채 나부끼는 꿈이 어찌 빨래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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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박정호
……살자고 일하는데 일하다가 죽을 것 같아……도마 위 생선인 양 비늘 벗은 모습으로……하늘이 절벽이라도 기어오르는 담쟁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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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 서숙희
있으라고 이슬비
가라고 가랑비
있을 사람도 없고
갈 사람도 없어라
저 홀로
야윈 빈 밤이
저 홀로
젖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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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숲/ 서연정
봄의 밀어들을
여름의 가면들을
내려놓는 가을숲
여백의 사원이다
하늘만 푸르게 차는
아름다운 심연(深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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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남사/ 신필영
울어
산을 넘는
절집 종소리거나
그 길섶
돌아앉아
향을 짓는 산국이거나
익히고
잦힌 생각들
운을 떼듯,
어슬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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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바다/ 강경화
쓸어내리다 내리다 속마저 후벼파는
형체 없이 누군가 불러대는 저 소리
나라도
미친 척 안기고픈
허기진
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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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쿨장미/ 고은희
누가 불러왔을까
울 안팎
서성이는
너
봄볕 한 짐
짊어지고
귀화를
청해보듯
경계를 허물고 있네, 활짝
손잡고 싶은
저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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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감기/ 김영철
가을 산
다녀와서
홍시처럼 앓는 여인
가슬가슬한
이마 위에
낙엽 타는 냄새가 난다
단풍만 담으라 했는데
불을 안고
왔
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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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김창근
바다 위로 뿜어내는
고래의 숨처럼
드세게 솟구치는
가쁜 욕망의 진앙지
한 생을 좌초시키는
가슴 속
깊은 암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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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박해성
지린내를 방목하는 늙은 목자를 만났다
징글벨이 징글지윽ㄹ 뒤엉키는 도심에
드디어 임하셨도다
속죄양의 현신인 듯
지상의 가장 낮은 곳 쓰러진 팽이처럼
찬송가 수레를 미는 즐거운 크리스마스
한번쯤 허락하소서
홀려도 좋은 홀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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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세상/ 박희정
기다림의 시간은 계산되지 않는다
보이스톡, 단체 카톡, 밴드로 주고받는
실시간 올라온 소식, 간극이 저리 붉다
농담 앞에 웃음 짓고 진담 앞에 찡그리는
흐린 표정 속에 독소 같은 한 줄 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절규의 항변 같은,
짧을수록 감칠맛인지, 강할수록 매운맛인지
무성한 의욕만 들떠 명품세상 가려질까
댓글이 늘어갈수록 놀치는 저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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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도서관/ 서정택
그가 읽는 책들은 거의 금속성이다
침 바른 기계칼로 책장 넘기다 보면
어쩌다 늙은 당나귀
말라 죽은 파리 한 마리
누군가 물어뜯은 상처도 듬성 있다
강철로 만든 책을 무슨 수로 뜯었는지
칼날이 스칠 때마다
뜨겁게 책이 운다
델 것처럼 서러워 그만 덮고 싶었지만
그래도 읽어야 사는 비정규직 인부 멀리
들깨 밭 까만 깨들이
톡, 톡, 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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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달팽이/ 서정화
집 한 채 둘러업고 슬몃슬몃 핥아가는
@에 낚여 올라 물어뜯고 흥을 내는
댓글들,
난장을 치네
우글우글 씹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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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 석성환
투명한
몸속으로
낱낱이
추락하다
구멍 난
천장으로
세상이
멈춰서면
시간은
녹초 된 나를
또 뒤집어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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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초상/ 오승희
달빛에 걸린 마음
천 개의 강을 헤매고
총총히
박힌 고독
별빛으로 솔기 터져
발 없는 창백한 새여
나는 네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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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산문(散文)/ 유선철
1.
금이 간 갈비뼈의 짙푸른 통증인가
펄 속의 진주 같은 생채기 쓸어안고
불꽃을 사윈 자리에 숨어 사는 별 하나
2.
어제는 또 몇 포기
민들레 심어놓고
긴 머리 말리면서
고쳐 쓴 산문인가
풀빛의 자음과 모음
뒷풀이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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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를 위한 변명-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유헌
문득 눈을 맞춘
그 눈빛이 말을 하네
노지마라 가지마라
비수보다 벼린 왕따
눈동자 시커멓다고
그리 볼까, 세상도
시(詩)의 나이만큼
발자국도 깊어져서
지워도 드러나는
편견의 긴 그림자
까마귀 울고 있는 밤,
나도 따라 울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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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밟기- 고창읍성에서/ 유현주
꽃샘바람 견디며 핀 벚꽃이 흐드러져
방장산 산자락을 환하게 둘러치면
오리 길 성벽에 올라 저승으로 향한다
세 번을 거푸 돌아야 비로소 보이는 문
애벌레로 기어가도 나비되어 난다지만
소망의 온전한 몫은 핏줄들의 무병장수
받쳐 인 돌보다도 무거운 그 은혜가
견고한 바람벽을 더 단단히 다진다
한 치도 흔들림 없는 일평생의 걸음이여
오늘도 한 키만큼 성벽은 높아지고
두고 간 소원들이 또 하나의 성이 된
창포 빛 치마 날리는 윤삼월 초엿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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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이광
엔간한 건 다 이겨낸 경험에서 나온 말씀
섭섭해도 티 날까봐 씩 웃으며 흘린 말씀
울 엄니 이 못난 자식 다독일 때 외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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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북’*에 붙여/ 이교상
시인은
더듬거리듯
세상을 살펴 먹는다
간절한 문장으로
어둠 높이 들어올려
쉼표와
마침표를 찍어
슬픈 몸을
지우고
*문인수 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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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박구리/ 이남순
정이월 칼바람에 난민처럼 웅크렸다
부러진 날갯죽지 뼈 없는 깃을 묻고
역 광장 한 모퉁이에 누가 버린 박스둥지
무수한 헛말들이 쏟아지는 수도 서울
언젠가 저 부리로 세상 말을 흉내 내며
잿빛도 하늘 꿈이라 새벽길 열었을 법
첫 기차 기적소리 우렁찬 홰를 쳐도
활개를 꺾여버린 벙어리 맹수인가
꿈적도 하지를 않네, 저 속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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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이두의
모래와 하얀 포말
경계를 걷다 돌아보니
따라오던 발자국
흔적 없이 사라진다
은빛 꿈
설레임으로
물결 져서 산란케 하고
사라지는 것은
발자국만이 아니다
엉겅퀴 꽃잎을
물들이던 피멍도
푸르게
출렁거리는
물결 속에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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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글세/ 이숙경
1.
바랜 우산 터진 솔기로 떨어지는 빗물
정수리 타고 내려와 목덜미 빗금 친다
변두리 기웃거리는
쉰 넘은 만신창이
이골 난 이사로 모지라지는 세간처럼
자본주의 늪에서 열두 달 여위어 간다
좇으면 달아나는 을의 집
떠도는 허공 참 멀다
2.
능에 누워 천오백 년 우거진 갑의 자리
뭇별 앞 다투어 따라 붓는 잔술처럼
빗줄기 십이지신상을
말갛게 씻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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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이승현
제발 오늘 만큼은 눈 감아 주시오
지금껏 그대에게 숨긴 것 없었소이다
언제나
궁금해 하면
속곳조차 보였잖소
그러니 오늘만큼은 그냥, 그냥 놔주시오
언젠가 달무리에 손가락 끼울 날 있으니
서늘한
눈빛이랑은 이제 그만 거두시오
*옮기면서: 1수 초장 ‘오늘 만큼은’과 2수 초장 ‘오늘만큼은’의 띄어쓰기는 원문대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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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을 향하여/ 이옥진
은행잎이 걸어간다 초록에서 노랑으로
은행잎이 야위어간다 유화에서 수채화로
제 갈 곳 아는 것들은 투명을 향해 간다
어머니 걸어가신다 검정에서 하양으로
어머니 날개 펴신다 소설에서 서정시로
먼 그곳 가까울수록 어머니는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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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이행숙
당신은 나를 너무 쉽게 생각하지
필요하면 왔다가는 미련 없이 가버리지
그건 다 내 잘못이지
24시간 맘 열어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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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눈물/ 이희숙
고추 딴
그 손으로
젖은 눈가 훔치니
슬퍼 할 일 없는데
매운 눈물 흐르네
태양초
한 근에 만원
적자라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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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새로 걸며/ 임채성
등 돌린 애인에겐
눈길조차 주지 마라
삼백예순다섯 여인이 줄을 서 기다리는데
이런 날 웃지 않는다면
넌,
사내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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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절가웃/ 정혜숙
아이에서 어른으로 어른에서 노인으로
여기까지 오는데 나절 가웃 걸린 듯
한바탕 꿈을 꾸었나
된서리에 꽃이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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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4월/ 조금숙
따스한 봄바람이 벚꽃처럼 흩어질 때
하나씩 떠오르는 순하고 예쁜 얼굴들
멍하니 바라만 봐도 울컥 치미는 슬픔
돌아온 건 위로 아닌 묻혀버린 이름이었네
잊으라 잊으라고 없던 일처럼 잊으라고
물속에 잠겨 있는 손 이제 그만 놓으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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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동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입구에서/ 조민희
볼라벤태풍에 꺼꾸러져 민주광장 귀영치에 뉘 보랐고 섰다
광주읍성 동원 뜰이 내 탯자리랑께. 서석대에서 부는 바람 보듬응께 간
질간질 허드구만, 기와집 용마루에 찡그린 도체비낯짝 망새 봉께 또 낄
낄, 어찌 그리 느자구 없이 실실 웃고만 살았는지 몰러, 근디 왜놈들 꼼수
로 헐고 지은 도청은 많은 피를 봤제, 안그렁가, 아따 가심 씨링께 아무
말도 허지 말드라고, 지하꺼정 환한 아시아문화전당 이 마당에서 윷판 굿
판 품바타령 늴리리야 파랑타고 쭉쭉 뻗어가라고 빈당께, 요라고
푸르게
깃 터는 후계목
부활하는 날갯짓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이 스피커를 달았던 150년 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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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끗대다/ 조한일
술김에 쏟아버린 막말 같은 빨래를
삐삐 삐 울어대는 세탁기에서 꺼내니
바닥에 단추 하나가
병든 허릴 채간다
땀에 전 시어 중에,
때 묻은 시어 중에
비비고 헹구다가 버리듯 떨어뜨린
가벼운 시어 하나로
삐끗대는 오후 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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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앗/ 천성수
생각의 건너편에 소리 없이 앉았어도
손톱에 가시든 듯 언제나 아린 핏줄
가을이 깊어서인가 별 하나가 눈에 든다
빛깔 고운 시간들이 풍경화로 피는 이 밤
군불을 넣은 걸까 은근히 따뜻하여
눈 감고 누운 자리에 모처럼 피가 돈다
*띠앗: 형제나 자매 사이의 우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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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최성아
눈 비빈 햇살 덧대어 얼음이 녹고 있다
승강기 문 열리자 해동되는 삼삼오오
갈래로 물길 이루며
도심으로 흘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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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덧의 시간은 가고/ 한분옥
애 터진 무슨 곡절 이리도 생목 죄나
뉘도 눈치 못 챈 느닷없는 풋정인 걸
입소문 번질까 몰라 꽃은 고대 지고 만다
처방도 없는 입덧 가당찮게 잦추더니
객쩍게 앓아눕는 지극한 봄날이다
한사코 핏물 자으며 오장을 다 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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