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무한도전 특별기획 암, 잡을 수 있다!
Part5. 췌장암 특집
췌장암은 암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암이다. 수술에 성공하더라도 재발률이 높아 2년 생존율이 10% 안쪽이다. 패트릭 스웨이지, 루치아노 파바로티, 이정화…. 많은 사람들이 췌장암으로 목숨을 잃었지만, 배연정 씨처럼 병을 이겨낸 사례도 있다. 진단도 어렵고 치료도 어렵다는 췌장암에 대해 알아보았다.
현대가의 큰어머니로 통하는 이정화 여사가 지난 10월 5일(미국 현지시간)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1세. 이 여사는 최근 건강검진 결과 췌장암으로 추정되는 심각한 병증이 발견돼 국내에서 치료를 받다 병세가 크게 나빠졌고, 추석 연휴 때 전세기를 타고 미국 휴스턴으로 날아가 M.D. 앤더슨 병원에 머물며 치료를 받아왔다. 그러다 수술 도중 타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췌장암은 올 초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제기됐을 때 자주 언론에 오르내린 바 있다. 또 영화 ‘사랑과 영혼’에 나온 할리우드 배우 패트릭 스웨이지도 지난해 초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그는 치료 중에도 티브이 드라마에 출연해 연기 열정을 불태웠지만, 올 9월을 넘기지 못하고 57세로 생을 마감했다. 시간을 거슬러 2007년 9월에는 세계적인 테너 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췌장암 악화로 타계했으며, 같은 해 8월에는 탤런트이자 영화배우였던 김주승 씨가 지병인 췌장암이 재발하면서 고인이 됐다. 안타깝게도 그의 나이 46세였다.
췌장암은 암 중에서도 가장 예후가 나쁜 ‘악질’ 암이다. 병이 발견됐을 때는 암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가 대부분이며, 수술로 암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경우도 10% 내외에 불과하다. 설령 수술로 암을 완전히 제거하더라도 재발률이 매우 높아 2년 생존율이 10% 내외에 지나지 않는다. ‘췌장암’은 곧 ‘사망선고’로 불릴 만큼 두려운 병이다.
그 점에서 보면 코미디언 배연정 씨는 특별한 사례에 든다. 소머리국밥집을 운영하는 경영인으로 더 잘 알려진 배씨는 얼마 전 티브이 방송에 출연해 힘겨웠던 암 투병기를 고백한 적이 있다. 그 또한 2005년에 췌장암에 걸렸지만, 정기검진으로 암을 발견하고 서둘러 수술을 받은 덕에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방송에서 배씨는 “하루 두 시간만 자도 거뜬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 후 1년 반은 걷지도 못할 만큼 힘들었다. 몸무게가 40kg도 안 나갔다”고 말해 충격을 주었다.
배연정 씨는 그 전에도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한 적이 있다. 지난 1996년에 불규칙한 월경으로 산부인과에 들렀다 자궁암 진단을 받고 자궁을 통째로 들어내는 큰 수술을 받았던 것. 그 일을 계기로 생활습관을 싹 바꾸었다.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운동을 거르지 않았고, 먹을거리도 신경을 썼다. 또 4~5개월에 한 번은 정기검진을 꼭 받았다. 그렇게 10여 년을 별 탈 없이 지내다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췌장암 진단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배씨가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증상은 입이 쓰고 등이 아프면서 소화가 잘 안 됐다. 위내시경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지만 3주를 복용해도 통증이 가시질 않았다. 그래서 다시 초음파 검사, 피 검사, 방사선 검사를 거쳐 췌장에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췌장에서 악성종양 3개가 나온 것이다. 그렇게 해서 수술에 들어갔고, 다행히 항암치료가 필요 없을 정도로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췌장암은 조기 진단이 어려운데다 주변 장기나 림프절로 쉽게 전이되어 대체로 예후가 좋지 않다. 한국중앙암등록본부에서 지난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03~2005년까지 우리나라 암 발생빈도에서 췌장암은 2.4%로 9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사망률만 놓고 보면 5위에 든다. 남녀 환자 비율은 1.78대 1로 남자가 더 많았으며, 나이로 보면 60대가 31.5%로 가장 많았고, 70대 29.3%, 50대 16.3% 순이었다.
췌장 머리에 생기는 암이 70% 차지
췌장암은 대장암, 위암과는 달리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 흡연이나 식습관 같은 몇 가지 요인이 암세포 증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특히 69종의 발암물질과 4천 종 이상의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 담배는 췌장암 발병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일부 전문의들은 술이 췌장암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고 주장하며, 미국이나 유럽의 췌장암 발병률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점을 들어 고기 섭취 비율이 높을수록 췌장암 발생률이 높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이 밖에도 만성 췌장염, 물혹 같은 췌장 질환이 암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췌장염이 췌장암 발병 위험을 6~10배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외과 윤동섭 교수는 “췌장암의 80%는 이미 간이나 폐 등 주변 장기로 전이된 상태로 발견된다”고 한다. “수술 경과가 좋았을 때에도 5년 생존율이 15%에 불과할 정도로 무서운 병이에요. 췌장은 우리 몸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초음파 등으로도 진단이 어려워요. 전이가 빨리 되고 조기 진단이 어려워 환자에게 큰 고통을 주는 병이죠. 요즘은 수술 사망률이 3~5%로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적극적으로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해야 하는 병임에는 틀림없어요.”
이자(pancreas)라고도 하는 췌장은 우리 몸속 어디에 붙어 있을까? 이를 정확히 아는 이는 드물다. 췌장은 역(驛)으로 치면 간이역에 든다. 기차가 그냥 지나칠 법한 곳에 숨은 듯 박혀 있다. 췌장은 위장 뒤에 위치해 십이지장과 연결된다. 무게는 80~100g, 길이는 15~20cm 정도로 길쭉하면서 편평하게 생겼다. 위, 십이지장, 대장, 간, 담낭, 비장 같은 장기들에 폭 둘러싸여 있어 암이 생겨도 진단하기가 쉽지 않다.
췌장은 보통 세 부분으로 구분한다. 십이지장에 가까운 넓은 곳을 ‘머리’라 하고, 머리에서 왼쪽으로 갈수록 점점 가늘어지는데, 이를 편의상 ‘몸통’과 ‘꼬리’로 나눠 부른다. 이렇게 세 부위로 나누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암이 췌장의 어느 부위에 생기느냐에 따라 췌장암 증상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췌장의 머리, 즉 췌두부에 생기는 암이 70% 정도로 가장 많다. 췌두부 암은 인접한 총담관이 막히는 것과 관련된 증상을 보인다. 총담관은 간에서 나오는 총간관과 쓸개에서 나오는 쓸개관이 합하여 생긴 담즙의 이동 통로를 말한다. 총담관은 췌관과 만나 십이지장 벽으로 흘러들게 되는데, 이곳에 암이 생길 확률이 가장 크다. 그에 반해 췌장의 몸통과 꼬리 쪽에 생기는 암은 30% 정도로 적은 편이다. 췌두부에 생기는 암과 달리 초기에 거의 증상이 느껴지지 않아 시간이 흘러 발견될 때가 많다